예술이 살아 숨 쉬는 문래동에 가다
예술이 살아 숨 쉬는 문래동에 가다
  • 정혜원 기자
  • 승인 2016.03.15 19:2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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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철강 공장과 철제상이 밀집돼 있던 1990년대 초반까지의 문래동. 그러나 서울시가 철강판매상가를 다른 곳으로 이전시키면서 문래동에 있던 사람들은 하나둘씩 떠나기 시작했다. 대신 자신의 작품활동을 할 수 있는 곳을 찾던 예술가들이 비교적 땅값이 저렴한 문래동으로 모였다. 이후 이곳은 사람들에게 잘 알려진 ‘문래 예술창작촌’이 됐다. 철강소 인부의 터전과 예술가의 공간이 상생하는 문래 예술창작촌에 직접 가봤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기자에게 예술촌은 생소한 단어였다. 그래서 예술촌을 체험하기 앞서 예술촌이 무엇이고 어떤 예술촌에 방문할 것인지를 알아봤다. 예술촌 관련 기사와 후기 등을 찾아본 결과 문래동에 위치한 문래 예술창작촌에 관심이 갔다. 서울에 있어 지리적으로 가깝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철공소와 예술촌이 어우러져 있다는 점이 흥미롭게 다가왔다. 이에 기자는 문래 예술창작촌을 탐방하기로 결심했다.

  문래 예술창작촌에 가던 날, 처음 가보는 곳이라 길을 잃을까 걱정이 됐다. 그러나 문래 예술창작촌은 지하철역과 매우 근접한 곳에 있었다. 설레는 마음을 안고 철공소가 즐비하게 늘어선 골목에 들어섰다. 골목골목을 돌아다닐수록 철공소와 예술촌이 공생하고 있는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다. 시멘트벽에 그려진 벽화나 곳곳에 설치된 조형물은 삭막할 것 같은 철공소의 분위기를 재치 있고 밝게 만들었다. 철공소와 예술촌이 만나 예술창작촌이 탄생한 것처럼 철을 이용해 만든 예술작품들이 특히 인상 깊었다.

  철공소 사이에는 공방이나 식당, 카페 등의 시설도 갖춰져 있었다. 이 시설들은 아늑한 인테리어와 내부 곳곳에 꾸려놓은 예술품들 때문인지 철공소의 분위기와는 다르게 따뜻한 느낌이 들었다. 기자가 식사를 하기 위해 들렀던 식당 역시 마찬가지였다. 차가운 골목의 분위기와 대조되는 식당은 더욱 이색적이라는 생각이 들면서도 곳곳에 배치된 예술품들이 문래 예술창작촌의 성격을 잘 나타낸다고 느꼈다.  

  문래 예술창작촌을 돌아다니며 가장 기억에 남았던 것은 건물 곳곳에 붙어있던 ‘초상권을 존중하는 매너있는 촬영문화를 만들어주세요’라는 문구였다. 문래 예술창작촌은 누군가의 생계를 위한 장소이며 삶의 터전이다. 이 문구는 우리가 추억을 남기기 위해 했던 이기적인 행동이 문래 예술창작촌에서 일하는 분들을 얼마나 곤란하게 만들었는지 느껴지게 했다. 

  문래 예술창작촌에 방문하기 전에는 철공소 인부와 예술가의 조합이 생소해 어울리지 않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실제로 방문해보니 오히려 그런 점이 문래 예술창작촌만이 지닌 독특한 분위기를 만들었다. 철강소 인부와 예술가들의 직업정신을 발휘하게 해준 예술창작촌처럼 외부적인 것에 구애받지 않고 자신의 일을 자유롭게 할 수 있는 공간이 더 많이 마련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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