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도 차별에 찬성하나요
당신도 차별에 찬성하나요
  • 최한나 기자
  • 승인 2016.03.15 2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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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정한 현실에서 스스로를 서열화하는 대학생들
  “수시충(蟲), 지균충, 분캠충” 대학생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들어봤을 법한 단어들이다. 놀라운 건 이러한 단어를 만든 것이 대학생 자신들이라는 것이다. 같은 대학생들에 의해 벌레가 될 수밖에 없었던 대학생. 차별의 중심에 놓인 대학가를 들여다봤다.

  차별의 중심에 놓인 대학
  서울에 소재한 대학의 이름 앞글자만 따서 순위별로 나열해놓은 ‘서연고서성한중경외시…’, 대학입시를 준비하던 고등학생 때부터 마치 주문처럼 외웠던 말일 것이다. 그만큼 대학을 서열화하는 것은 언젠가부터 당연한 일이 됐다. 책 <우리는 차별에 찬성합니다>의 저자 오찬호 서강대 사회과학연구소 박사(이하 오 박사)는 “대학 서열은 늘 있어왔지만 그 서열을 붙들고 예민하게 반응하는 것은 과거보다 심해졌다”며 “대학인구가 늘어나면서 대졸자 취업문제가 커졌고 이 과정에서 ‘인서울’과 ‘지방’의 차이가 도드라졌다”고 밝혔다. 서울 소재 대학을 중심으로 대학 서열화가 가중되면서 학벌주의는 점점 더 심해졌고 소위 인서울대학과 지방대학의 양극화는 더욱 가열된 것이다.

  이처럼 지방대학의 입지가 점차 축소되면서 이른바 ‘지잡대(지방의 잡스러운 대학)’, ‘지방충’ 등 지방에 있는 대학에 다니는 학생을 차별하고 비하하는 단어들이 생겨나고 있다. 몇 년 전에는 대학서열을 골품제에 비유하는 글이 온라인 커뮤니티에 올라와 화제가 됐다. 그 글은 서울대생과 연세대생, 고려대생을 성스럽고 신성한 성골로 표현하며 다른 대학들도 급을 나눠 진골, 6두품, 심지어는 노예계급까지 정해놓고 있었다.

  이러한 차별은 대학 내까지 이어진다. 같은 대학 안에서 정시, 수시, 특별전형, 편입 등 대학에 들어온 전형에 따라 서열을 나누고 차별을 극대화하는 것이다. 여기서 또 한 번 골품제로 계급이 나뉘는데 정시생과 수시생, 재수 정시합격생을 성골로 교환학생은 6두품으로 농어촌전형과 편입생 등은 5두품으로 분류된다. 이에 더해 정시 입학생들은 수시충, 지균충(지역균형선발), 기균충(기회균형선발) 등 뒤에 벌레 충(蟲)자를 붙여가며 자신들보다 수능 성적이 낮은 이들을 비하한다.
대학생들은 같은 대학교 학생들을 정시, 수시, 특별전형, 편입 등 대학에 들어온 전형에 따라 서열을 나누고 차별한다. 심지어는 수시충, 지균충(지역균형선발), 기균충(기회균형선발) 등 뒤에 벌레 충(蟲)자를 붙여가며 자신들보다 성적이 낮은 이들을 비하한다. 출처/서울신문

  피해자이자 가해자인 대학생
  이처럼 많은 대학생들이 수능 성적을 잣대로 계
  급을 나누고 서로를 멸시한다. 계급이 나뉘면 그에 따른 무시와 차별이 생기기 마련이다. 누군가는 가해자가 되고 누군가는 피해자가 된다. 그러나 대학 서열화에서 비교적 높은 곳에 있는 학생들은 “지방대는 우리대학보다 입시성적이 낮아도 한참 낮기 때문에 우리와는 급이 다르다”고 말하며 서열화를 정당하다고 여긴다. 본인들이 서열이 낮은 학생들보다 열심히 살아왔으며 인격적으로도 훨씬 우월한 사람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대학이 같더라도 배려전형으로 들어왔다면 같은 급으로 허락되지 않는다. 이들에게는 오로지 수능
성적만이 한 사람의 모든 능력을 평가하는 잣대인 것이다.

  누군가는 “대학 서열에 따라 사람을 차별하고 같은 대학생을 ‘지방충’, ‘수시충’ 등으로 부르는 것은 일부 대학생들 사이에서만 벌어지는 일”이라며 지나친 일반화라고 말할 수도 있다. 그러나 겉으로 드러나야만, 노골적으로 차별적 단어를 뱉어야지만 차별이 아니다. 대학 서열 나누기는 이미 오래전부터 개인들의 의식 속에 자리 잡아 인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우리의 생각을 바꿔놓았을 것이다. 이를테면 본인이 서열 높은 대학생들로부터 차별을 받거나 무시를 당하는 경우 잘못됐다고 느끼며 그들을 비난하지만 자신의 대학보다 서열이 낮은 지방대나 전문대 학생들과 같은 급으로 취급받는 것은 불쾌해 하는 것이다. 자신의 위치는 방어하고 타인에게는 공격을 하는 이들 역시 대학 서열화의 피해자이자 가해자이다.

  왜 이러한 차별이 일어나는 것일까
  그렇다면 대학생들은 왜 수능 성적에 따른 차별을 당연하게 여기며 대학 서열화의 가해자가 됐을까. 오 박사는 “서열을 통해 ‘자신의 서열 아래’보다 자신이 ‘위’라는 것을 규정할 수 있기 때문이다”고 밝혔다. 불안정한 현실과 치열한 경쟁사회 속에서 대학생들은 자신의 위치를 확인하려 하고 자신보다 낮은 위치의 누군가를 보며 위안을 받고 싶어 하는 것이다. 또한 미래가 불안한 만큼 최대한 자신과 경쟁상대가 될 수 있는 같은 대학생들을 멸시하게 된다. 그러면서 자신과 자신보다 낮은 계급을 자꾸 구분하게 되고 같은 집단에서도 “수시나 지역균등과 같은 배려가 없으면 내 경쟁상대도 아니었을 텐데 쟤 때문에 취업하기가 힘들어진다”며 배제해버린다.

  또 다른 이유는 대학생들이 이러한 서열화에 문제의식을 느끼지 못하기 때문이다. 누군가는 “서열화가 왜 나빠? 사실인데?”라고 반문할 수도 있다. 이들은 서열은 곧 차별과 무시를 낳는다는 걸 인지하지 못한다. 오 박사는 “대학생들은 이러한 서열화가 왜 문제인지 배워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고 밝혔다. 왜 잘못된 것인지 사회가 가르쳐주지 않기 때문에 대학생들은 서열화가 야기하는 부작용이 아무리 심하다고 해도 이를 성찰하지 못하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경쟁사회니까 어쩔 수 없다’는 순응적 논리만이 높아진다. 오 박사는 “‘경쟁사회이니까 어쩔 수 없다’는 논리로 한국사회가 지금껏 흘러와 많은 부작용을 낳았다”며 “모든 개인이 ‘일단 나부터 살고보자’는 식으로 생각하니 사회는 ‘파죽지세’로 나쁘게 변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대학 서열화를 인정하게 되고 차별을 정당화하게 되는 것이다.

  대학 서열화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수능 점수’라는 잣대 하나만으로 다른 사람을 폄하할 수는 없는 일이다. 나보다 서열이 높은 대학에 다니는 사람이 나를 무시할 수는 없으며 마찬가지로 나보다 낮은 대학에 다닌다는 이유로 내가 누군가를 무시할 수도 없다. 수능에서 높은 점수를 얻은 사람이 인격도 우월하다고 말할 수는 없으며 수능 점수가 낮더라도 다른 분야에서 탁월한 능력을 갖고 있을 수 있다. 수능 점수가 우리의 급을 정해주는 것은 너무한 일이다.

  대학생들은 치열한 경쟁사회 속에서, 학벌주의가 잘못됐다고 가르쳐주지 않는 사회 속에서 살고 있기 때문에 서열화로 인한 차별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는 없다. 그렇지만 서열화에 대해 문제의식을 느끼고 가해자가 되지 않는다면 이러한 서열화 세상에서 조금씩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 우리가 이렇게 된 건 온전히 우리의 잘못이 아니기 때문이다. 아직도 서열화가 문제라고 생각되지 않는가, 아직도 차별에 찬성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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