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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우리가 함께 행복하기 위한 페미니즘
일상에서부터 성평등 확대를 위한 노력 필요해
2016년 03월 28일 (월) 22:03:34 강석주 서울대 여성학 박사과정 -
  필자는 여성학을 전공한 지 햇수로 6년차가 되면서도 ‘페미니즘’이 무엇인지 한 마디로 말하려고 하면 대개 곤란한 표정이 된다. 그만큼 페미니즘은 간단히 정의하기가 쉽지 않은 개념이다. 이론과 지식 생산의 차원에서 페미니즘을 다루는 연구자들의 논의와 페미니즘에 대한 대중적 이해 사이에서 중심을 잡아가며 살아야 하는 것도 이 어려움에 한 몫 더하는 이유이다. 페미니즘을 삶의 인식론이자 정치적 이데올로기 및 학문적 베이스로 삼고 있는 사람으로서 필자는 ‘하나의 페미니즘’을 단언하기가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우선 짚고자 한다. 페미니즘은 단수가 아닌 복수이며 그것은 시공간에 따라 다양한 모습으로 변화해 왔으므로 “페미니즘(Feminism)”보다는 “페미니즘들(feminisms)”이라고 말하는 것이 정확하다.
   
   
   

  페미니즘이란 무엇인가
  페미니즘들의 종류에 대해서는 “하이픈 페미니즘(○-feminism)”이라는 분류법이 흔히 통용되고 있다. 자유주의 페미니즘, 사회주의 페미니즘, 맑스주의 페미니즘, 급진적 페미니즘, 문화 페미니즘, 흑인 페미니즘, 에코 페미니즘, 포스트모던 페미니즘, 탈식민주의 페미니즘, 퀴어 페미니즘 등 수많은 갈래가 있다. 페미니즘은 이처럼 각 시대별, 공간별로 유행하는 이론적 자원을 가지고 주류 현실에 비판적으로 개입해왔다. 예를 들어 사회주의 페미니즘은 자본주의와 가부장제가 결합돼 여성 억압을 만드는 방식을 집중적으로 탐구했다. 각각의 주장과 차이점을 알아보는 것은 지면 관계상 한계가 있고 이들이 갖는 공통점을 생각해보는 것이 중요할 것 같다. 페미니즘들은 모두 성불평등에 따른 억압과 착취, 차별과 배제를 집합적 실천을 통해 종식시키려고 한다. 페미니즘은 사상, 담론, 사회운동의 복합체이며 이론과 실천의 긴밀한 협조관계를 갖는다. 성차를 사회적인 구성물로 보기 때문에 ‘젠더(gender)’를 유의미한 분석범주로 사용하고 집단으로서의 남성과 여성의 관계에서 사회적 구조와 권력이 작동하는 방식을 체계적으로 밝히려고 하는 것이 페미니즘의 주된 관심사다.

  역사 속 페미니즘의 물결
  페미니즘이 서구 역사에서 당대 사회 문제에 개입하며 크게 부흥했던 시기들을 물결(wave)에 비유해 표현하기도 한다. 첫 번째 물결이 일었던 시기를 보통 19세기 후반부터 제1차 세계대전 전후로 잡는다. 이때에는 여성들의 시민으로서의 권리즉 선거권, 교육권, 노동권, 재산권을 획득하는 것이 주된 의제였다. 제2물결의 시기는 68혁명 이후부터 1970년대 말까지 이야기되며 ‘여성해방운동’의 시대로 불리기도 한다. 공적 영역과 사적 영역의 관계 재구성, 보살핌의 윤리, 포르노그래피 및 낙태 논쟁, 성적 자기결정권의 이슈 등이 폭발적으로 등장했던 때이다. 페미니즘의 이론적 구축에 있어서도 제2물결은 중요하다. 서구와 한국 모두 1970년대에 페미니즘이 하나의 분과 학문으로 제도권에 진입하면서 연구 성과가 축적되기 시작했다. 1990년대부터는 개인의 다중적 정체성에 의한 차이들이 강조됐다. 이를 페미니즘 제3의 물결이라고 부른다. 흑인, 성소수자, 제3세계 여성들의 관점과 목소리가 힘을 얻었다. 한국 사회에서도 서구 중심의 역사가 아닌 탈식민주의 페미니즘 역사를 독자적으로 기술해야 한다는 움직임이 나타날 수 있었다.

  페미니즘의 오해와 이해
  페미니즘은 학문적이면서 사회운동적이고 대중성도 띄는 복잡한 성격 때문에 정확한 이해가 어렵고 따라서 많은 오해를 동반하며 발전해왔다. 우선 여자들만의 것, 남자에 반대하는 사상이라는 것이 대표적으로 그릇된 인식이다. 페미니즘이 초점으로 삼는 문제는 성차별주의이고 이것을 구조적, 제도적, 무의식적으로 재생산하는 것은 가부장적 문화이다. 여성의 존재가치가 남성들로부터 인정, 존중, 보호되고 여성의 역할이 남성들의 자원 배분에 의존할 때 그 문화가 가부장적이라고 말한다. 따라서 페미니즘은 여성의 권리만을 배타적으로 옹호한다든지, 여성우월주의를 주장한다 든지 하는 세간의 편견과 무관하다. 남성도 당연히 페미니스트가 될 수 있으며 여성도 성차별주의자일 수 있는 것이다. 남성의 사회적 경험 안에서 젠더 관계가 어떻게 드러나는지 특히 가부장적 문화가 남성의 행복추구권을 어떻게 저해하는지 살펴보는 것도 오늘날 페미니즘의 주요 과제 중 하나이다. 또 다른 오해는 성평등이 사회적으로 이미 달성된 것이 아닌가 하는 의문에서 온다. 이것은 일부 엘리트 여성들의 성공 스토리가 마치 사회 전반에 두루 퍼진 것처럼 조명돼 착시효과를 불러오는 것에서 생기는 오해이다. 온전한 성평등을 이룬 나라는 전 세계 어디에도 아직 없다. 특히 한국은 올해에도 유리천장(보이지 않는 장벽이 여성들의 사회 진출과 승진을 막는 구조) 지수가 4년 연속 OECD 최하위를 기록한 나라이다. 인류의 절반이 여성인 지구에서 젠더에 따른 평등과 정의가 실현돼야 하는 것은 민주사회의 가장 기초적인 조건이 된다.

  물론 성공적으로 자기 삶을 조직해 나가는 개별 여성들도 많고 남자와의 사적 관계에서 강자인 여자들도 얼마든지 있다. 그러나 이들을 페미니스트라고 할 수는 없다. 페미니스트는 개인의 역량이 뛰어난 사람을 이르는 것이 아니므로 최소한 자신의 분야에서 성평등의 확대를 위한 실천적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자신의 성취가 선배 여성들의 고투 위에서 이뤄졌음에 대한 인식이 먼저 있어야 하고 그것이 동시대 여러 계층의 여성들에게 확산되고 후대에 더욱 확대돼야 한다는 신념이 필요하다. 성차별이 없어져야 한다는 피상적 선언만을 반복하는 것이 아닌 소소한 일상에서부터 동등한 기회구조와 자원 배분이 정의롭게 이뤄지고 있는지 살펴볼 수 있는 감각을 연마하는 것이 중요하다. 여성은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여성으로 길러지는 것이듯 페미니스트도 만들어진다. 특히 노력에 의해 만들어지며 끊임없이 자기와 사회를 성찰하는 눈을 가져야 한다. UN Women 친선대사로 활동하고 있는 영국 배우 엠마 왓슨은 자신이 백인으로서 가진 특권, 딸이라는 이유로 차별 받지 않은 가정환경 등에 대해 정확히 인식한다. 그러나 세계 각국의 여성들이 자신과 같은 경험을 해야 한다고 믿고 이를 위해서는 10만 이상의 남성 페미니스트들도 함께 힘을 합쳐야 한다는 사실을 말한다. 배우 활동을 잠시 쉬면서까지 여러 주체들과의 연대를 통한 집합적 실천을 수행하고 있는 그녀는 페미니스트의 면모를 보여주는 좋은 예라고 할 수 있다.
   
   
   
   
   
   
   
아직까지 온전한 성평등을 이룬 나라는 전 세계 어디에도 없다. 특히 우리나라는 4년 째 OECD 국가 중 최하위를 기록한 나라이다. 이러한 사회적 구조를 바꾸기 위해 과거 서구 역사에서부터 현재까지 다양한 방식으로 변화의 물결이 일고 있다.

  차별 없는 세상을 위해서
  아무리 다양한 페미니즘이 존재한다고 해도 그것의 핵심은 연대의식과 정치성이다. 자신이 발딛고 살아가는 그 위치에서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부터 설득해 나가면서 마음들을 모아 작은 변화부터 이끌어내는 것이 정치이다. 자기 안에 여성혐오 혹은 남성 혐오는 없는지, 가부장제가 준 혜택을 포기하는 게 어렵지는 않은지, 끝없는 자기성찰을 해야 하고 가족관계, 학교생활, 대외활동, SNS글쓰기 등에서부터 변화를 시작해야 한다. 한편 개인들은 여성, 남성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학생, 노동자, 동성애자, 이민자, 채식주의자 등이기도 하다. 모든 차별과 배제는 우리의 이러한 복합적이고 다중적인 정체성에 맞물려 작동되고 있다. 계급, 세대, 인종, 학벌, 출신지역, 성정체성 등에 따라서 억압이 교차돼 발생한다는 사실을 안다면 연대의 필요성은 더욱 높아진다. 나와 다르다는 이유로 타자를 배척하면서 자기 권리를 강조하는 것만큼 불행한 삶도 없다. 사람들이 모여 사는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나와 남이 평등하고 정의롭게 더불어 살 때 만들어지는 행복이다. 자기삶의 주인이 되는 자신을 소중히 여기고 다른 이와 상생하며 공존하는 가치를 동시에 품고 있는 그릇이 바로 페미니즘이다. 페미니즘을 가까이 하는 것은 행복한 삶을 살기 위한 첫걸음이 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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