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수칼럼] 알파고, 제도, 그리고 사람
[교수칼럼] 알파고, 제도, 그리고 사람
  • 박건영(국제통상학과 교수)
  • 승인 2016.04.11 21:5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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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3월 초에 있었던 인공지능 프로그램 알파고와 이세돌의 바둑 대결은 바둑뿐만 아니라 사회 전체에 상당한 충격을 던져 줬다. 만약 이세돌이 장담한 것처럼 인간의 일방적인 승리로 끝났으면 그 경기 이후의 인공지능에 대한 논의는 지금과 크게 달라졌을 것이다. 그러나 보통의 사람이 가진 능력을 훨씬 뛰어넘는 초고수가 속절없이 패하는 장면을 지켜본 사람들은 인공지능의 실체에 큰 충격을 받았고 인공지능이 널리 활용될 앞으로의 사회를 부정적이고 우려 가득한 시각으로 바라보게 됐다.

  앞으로 어떤 세상이 펼쳐질지, 그 세상에서 어떻게 살아야 할지, 정말 어려운 질문이고 시간을 내서 충분히 고민해 볼만한 문제인 것은 분명해 보인다. 그렇지만 ‘배운 게 도둑질’이라고 내가 가장 큰 관심을 두는 것은 인공지능으로 사람들의 일자리가 사라질 수도 있다는 것이다(특히 수요·공급만 알면 누구나 교수를 할 수 있다는 경제학은 인공지능이 더욱 쉽게 배우고 가르칠 수 있을 것이다).

  분명 걱정할 일이다. 특히 이세돌이 지는 것을 보고 난 후에는 더욱 그렇다. 그런데 사람들의 일자리에 대한 두려움, 그러니까 세상이 변한다고 느낄 때 내가 무엇을 해서 먹고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불안은 새로운 일이 아니다. 경제학적인 관점에서 보면 인류는 생산방식과 관련해 몇 차례 혁명적인 변화를 겪었으며 그때마다 특히 기계의 출현에 대해서는 지금과 비슷한 불안과 공포로 가득 찬 반응을 보여 왔다. 나아가 기계를 적으로 간주하고 그것을 파괴함으로써 일자리를 유지하는 노력도 있었다.

  그러나 돌이켜보면 사람은 기계와 더불어 공존했고 기술 개발을 통해 생산력과 경제적 후생 수준을 대폭 향상시키는 과정을 밟아왔다. 그리고 이것은 자본주의와 시장에 의한 경제활동의 성과라고 받아들여지고 있다. 자본주의하에서 사람은 소득이 있어야 생활을 하는데 이 소득은 자신의 노동을 자본에 결합시켜야지만 얻을 수 있다. 노동과 자본이 결합해 만들어낸 생산물(물건이나 서비스)의 소유권은 일단 자본을 소유한 사람에게 부여하고 각 생산요소는 생산에 기여한 만큼을 소득으로 가져간 후 다시 시장에서 교환을 통해 생활에 필요한 물건을 얻게 된다. 이 과정에서 직업이나 일자리가 사라지기도하고 새롭게 생겨나기도 한다. 지금 우리는 이렇게 일하며 살아가고 있다.

  중요한 것은 인공지능에 의해서 일자리가 사라지느냐가 아니라 사회의 거대한 변화를 효과적으로 흡수하고 궁극적으로 사람의 삶에 도움이 되게 하는 제도를 만들 수 있는 능력이 사람에게 있느냐이다.

   인공지능이 인간의 노동을 완전히 대체한 세상을 상상해보자. 소름끼칠 정도로 무서운 세상인가? 그렇지 않다. 그 유명한 케인즈도 언급한 것처럼 기계를 통해 인간이 힘든 노동에서 벗어나 생활을 유지할 수 있다면 그것이 바로 상상할 수 있는 천국의 삶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왜 사람들은 희망보다는 두려움으로 인공지능의 등장을 바라보는가? 그것은 우리의 시각이 현재의 제도와 그것에 의한 생활양식을 벗어날 수 없기 때문이다.

  인공지능만이 노동을 하는 세상에서의 제도가 지금과 똑같이 자본주의와 시장경제라고 한다면 인공지능이 만들어낸 생산물은 인공지능을 소유한 사람(사람이 아닐 수도 있겠지만)이 소유할 것이므로 생산과정에 참여할 수 없는 보통의 사람들은 생활에 필요한 소득을 얻을 수 있는 방법이 사라지게 될 것이다. 결국 사람들은 정말 인공지능이 할 수 없는 일을 하거나 인공지능을 소유하지 못한 사람들끼리 원시시대와 같은 생활을 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런 세상은 마르크스가 예언한 자본주의 종말의 음울한 한 장면처럼 보인다. 이런 일이 정말로 현실이 될 것인가? 그렇지 않을 것이다. 비록 우주나 지구를 사람이 지배해야 할 이유는 없고 인류 역사의 대부분이 타인과 다른 집단에 대한 억압과 잔인한 폭력의 사례로 가득 차 있다고 할지라도 어떻게 하든 사람의 삶을 유지해온 과정을 돌이켜볼 때 사람들은 새로운 세상에 맞는 새로운 제도를 만들려고 할 것이며 또 만들어낼 것이다.

  결국 핵심은 사람인가? 그렇다. 인공지능을 개발하는 일도 사람이 하고 있으며 새로운 세상에 맞는 제도를 만들어가는 일도 사람의 몫이다. 어쩌면 정말 두려운 것은 인공지능이 아니라 사람일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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