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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가치는 우리 스스로가 올리는 거예요
2016년 06월 07일 (화) 15:23:51 정혜원 기자 gpdnjswjd@hanmail.net

  학교를 졸업하고 직장생활에 육아까지. 그녀는 바쁜 일상 속에서 어느 샌가 열성적이었던 대학생 시절을 잊고 지냈다. 그러다가 3년 전부터 대학 시절의 열정을 되살려 학교에 봉사하는 마음으로 우리대학 총동창회 대외협력위원장을 맡게 됐다. 취업이 고민이라던 후배들을 위해 직접 창업에 나서서 어엿한 맛집의 사장님까지 된 그녀. 우리대학 아동가족학과를 졸업한 장미원 동문(이하 장 동문)을 만나봤다.


   

 

  뭐든지 활발히 했던 대학생 시절
  장 동문은 아동가정학과의 전신인 가정학과 졸업생으로 원래는 의상디자인을 전공하는 학생이었다고 한다. “처음에는 의상디자인학과로 입학을 했어요. 제가 학교를 다니던 시절에는 운니동에서 쌍문동으로 캠퍼스 이전이 시작됐을 때였죠. 그렇게 두 캠퍼스 간에 교류가 활발해지면서 학생들에게 전과 지원을 받았는데 가정학과를 전공하면 교사 자격증을 따는 데 유리하다고 해서 전과를 하게 됐어요. 그렇지만 의상디자인도 부전공으로 돌려 계속 공부를 했죠.”

  그녀의 대학생활은 전공 공부를 하는 것에 그치지 않았다. “저는 지금의 학생회와 같은 격이었던 학도호국단에서 간부생활도 열심히 했어요. 학교생활에는 뭐든 활발히 움직였던 것 같아요. 대외활동도 열심히 했고요(웃음).”

  잊고 있던 덕성으로 다시 돌아오다
  장 동문은 대학을 졸업하고 기업 ‘효성’에 입사한다. “약 10년 동안 상품개발팀 디자이너로 근무했어요. 그런데 육아를 위해 직장을 그만두게 됐죠. 요즘 흔히 하는 말로 저에게도 경력 단절이 있었던 거예요.” 그렇게 가정에서 ‘엄마’로 살아가던 그녀는 3년 전 뜻밖에 전화 한 통을 받게 된다. “전 총동장회장님의 지인분이 총동창회에서 일할 사람으로 저를 추천하셨나봐요. 그때 총동창회장님이 직접 저에게 전화를 하셔서 함께 일을 해보자고 제안하셨죠. 처음에는 그 제의를 받고 고민을 했어요. 그런데 문득 대학시절 열성적이었던 제 모습과 대학 졸업 후 학교를 등한시했던 제 모습이 상충하면서 ‘그래, 임기 3년 동안은 학교에 봉사해야겠다’라고 생각했어요. 그때부터 총동창회 대외협력위원장으로 활동하게 됐죠.”

  그녀는 긍지를 가지며 총동창회 일을 한다고 했다. “예전에는 대학을 졸업과 동시에 직장생활을 하느라 덕성은 이력서에 한 줄을 채워주는 존재일 뿐이었어요. 동창회의 중요성도 잘 몰랐고요. 하지만 지금은 총동창회가 불이익에 맞서 학생들의 의견을 대표할 수 있는 중요한 곳임을 알아요. 이번에 졸업생들의 연락처가 들어간 회원명부를 만들어 총동창회 해외지부에 회원명부를 보냈는데 그곳에 있는 동문들이 서로 반가워하며 만났다고 하더라고요. 시간과 노력을 빼앗긴다고 생각할지도 모르지만 학교에 애정이 있기 때문에 긍지를 갖고 일하고 있어요.”

  후배들을 위해 직접 창업에 나서다
  그렇게 총동창회에서 일을 시작한 그녀는 학생들로부터 수많은 전화가 오는 것을 알게 됐다. “4학년 2학기 등록금 고지서에는 동창회비 3만 원이 나와 있어요. 그런데 너무나 많은 후배들이 그 돈을 돌려달라고 총동창회에 연락을 한다는 걸 알게 됐어요. 그래서 총동창회 직원에게 그 전화를 전부 제 전용 전화로 연결해달라고 했죠. 그 뒤로 동창회비를 돌려달라는 후배들과 직접 통화하게 됐어요. 그리고 후배들이 왜 동창회비를 내지 않으려고 하는지 물어봤죠. 정말 형편이 어려워서 못내는 후배들이 있는 반면에 동창회비를 낼 필요성을 모르겠다는 후배들, 선배의 조언과 상담은 필요없다는 후배들도 있었어요. 저는 이런 후배들을 최대한 설득하려고 노력하지만 그럼에도 돈을 돌려달라고 하는 후배들에게는 직접와서 받아가라고 하죠(웃음). 그래도 어려울 때 꼭 찾아오라는 말은 잊지 않고 해요.” 그리고 그녀는 취업의 문턱에서 힘겨워하는 후배들을 위해 작년 4월 직접 창업에 나섰다. “후배들과 통화를 하다가 어려운 일이 뭐냐고 물어보면 다들 취업이라고 대답하더라고요. 제가 어려운 일이 있으면 찾아오라고 했는데 그 어려운 일 중에 취업만 빼버리는 건 말이 안 되는 거잖아요. 그래서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을 하던 차에 후배들에게 물었죠. ‘내가 직접 취업을 시켜줄 수는 없고 혹시 창업에 관심 있니?’라고요. 후배들은 창업에 무척 관심이 많지만 엄두가 나지 않아 시도조차 하지 못하고 있다고 하더라고요. 그 말에 저는 우리 후배들을 위해 후배들의 시각에서 직접 창업을 해보자고 결심했어요.”

  그녀의 창업 아이템은 바로 공갈빵이었다. “사회초년생들에게는 자본이 없다는 것이 가장 큰 문제니깐 그것을 고려해 직접 화덕, 간판을 만들고 전기나 가스, 인테리어 등에 필요한 자재들도 직접 구해서 최대한 후배들 눈높이에 맞추려고 노력했어요.” 그녀의 공갈빵은 기존의 공갈빵과 차별화됐다는 점에서 사람들의 이목을 끌었고 그 결과 가게를 연 지 몇 달 만에 맛집으로 성장했다. “예전에 중국사람에게 공갈빵 만드는 방법을 배운 적이 있었어요. 공갈빵 반죽에 베이킹파우더와 이스트가 들어가는데 저는 그 방법 그대로 만들지 않고 저만의 방법을 개발했어요. 바로 반죽에 다른 재료 없이 막걸리만 넣은 것이었죠. 물론 저도 처음 창업을 했을 때는 혹시라도 가게가 망할까봐 반죽 기계를 사지 않았어요(웃음). 그런데 우연히 배우 박수진 씨가 가게에 방문했고 ‘테이스티로드’라는 방송에도 출연하게 됐어요. 가게를 운영한 지 몇 달 만에 맛집이 된 거예요. 외국인 손님들도 좋아하고 우유, 계란, 버터가 들어가지 않아 채식주의자와 아토피를 앓는 손님들에게도 인기가 많아요. 후배들의 이야기를 들어주다가 맛집의 사장님까지 된 거죠(웃음).”

  그녀는 자신이 창업에 성공한 것을 보고 후배들도 용기를 얻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공갈빵은 쉬운 아이템이라서 후배들도 아이템만 바꾸면 쉽게 창업을 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해요. 또 공갈빵은 어떻게 보면 그냥 길거리 음식에 지나지 않잖아요. 그렇지만 제가 직접 공간을 꾸리고 남들과 다른 아이템을 내걸어서 지금까지 가게가 잘 운영된 것 같아요. 후배들 역시 취업을 못했다고 해서 절대 좌절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또 다른 길은 반드시 있으니까요.”
   
장 동문은 손맛을 위해 아직까지도 반죽 기계를 사지 않고 직접 반죽한다. 사진/박소영 기자


  스스로의 힘을 키우고 도전을 즐기세요
 
   장 동문은 우리대학 학우들에게 꼭 해줄 말이 있다고 했다. “우리대학의 위상은 바로 우리 스스로가 높이는 거라고 말해주고 싶어요. 더불어 후배들이 우리대학에 애정을 가졌으면 좋겠어요. ‘졸업하면 학교와의 인연은 끝이다’라는 생각은 정말 아닌 것 같아요. 어떻게 보면 졸업을 하고도 학교를 빛낼 수 있는 기회는 많아요. 졸업이 끝인 동시에 또 다른 시작인 거죠.” 또한 그녀는 후배들에게 자신만의 힘을 기르라고 한다. “물론 큰 기업체에 소속되면 안정감이 있고 좀 더 쉬운 길을 갈 수도 있어요. 그렇지만 무언가를 혼자 시작했다고 맨 위에 우뚝 서지 못할 거란 보장도 없어요. ‘난 안 될 거야’, ‘취업하지 못할 거야’와 같은 생각은 버려야 해요. 저도 직장을 그만둘 50대의 나이에 창업이라는 도전을 했는데 여러분들이 못할 이유가 뭐가 있겠어요(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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