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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얘기를 들어줘! 쉿, 대나무숲
대학가에서 새로운 소통의 공간으로 자리 잡은 대나무숲
2016년 06월 07일 (화) 15:33:43 박소영 기자 thdud95512@duksung.ac.kr

  ‘축제 때 ○○과 주점에서 일하시던 단발머리 분 혹시 남자친구 있나요?’, ‘○○과 MT에서 선배들이 후배에게 술을 강요하고 군기를 잡았습니다. 학내 군기 문화를 해결해주세요.’ 페이스북 대나무숲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문구들이다. 사랑 고백, 연애상담과 같은 사소한 이야기부터 학내에서 일어나는 심도있는 문제에 대한 의견까지. 대나무숲은 익명성을 빌려 자신이 이야기하고 싶 은 주제를 사람들과 함께 나누는 공간이다. 새로운 공론의 장 형태로 나타나 대학가에 큰 영향력을 끼치고 있는 대나무숲에 대해 알아보자.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
  인터넷에 생긴 대나무숲
  한 이발사가 임금님을 이발하다가 임금님의 귀가 당나귀 귀인 것을 봤지만 차마 소문을 낼 수는 없어 대나무숲에서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고 소리쳤다는 옛 동화가 있다. 현재 페이스북에서 심심찮게 찾아볼 수 있는 ‘○○대학교 대나무숲’은 앞서 말한 동화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에 나오는 대나무숲에서 유래한 것이다. 인터넷상의 대나무 숲도 이발사가 찾아간 대나무숲처럼 공개적으로 말하기 힘든 일들을 익명으로 털어놓고 이야기할 수 있는 공간이다. 

  대나무숲은 2012년 처음 등장했다. 한 출판사의 직원이 자신의 트위터에 출판업계의 부조리를 고발하다가 해당 계정을 잃게 됐고 계정의 주인을 위로하고 새로운 고발의 장을 만들자는 의미에서 ‘출판사 옆 대나무숲’이 생겨났다. 이후 신문사 옆 대나무숲, 촬영장 옆 대나무숲, 백수 대나무숲 등 다양한 ‘○○ 옆 대나무숲’이 등장했다. 대학교 대나무숲은 서울대학교에서 2013년에 가장 먼저 시작했다. 기존 대나무숲들이 트위터에서 운영되던 것과는 달리 서울대학교 대나무숲은 페이스북 페이지로 개설됐고 이후 여러 대학에도 대나무숲이 생겨났다.

  우리대학 역시 현재 페이스북에 학우들의 목소리를 익명으로 게시해주는 ‘덕성여대 대나무숲’이 존재한다. 덕성여대 대나무숲을 비롯한 대학가의 대나무숲은 여러 관리자가 함께 운영하며 제보받은 글을 각 대학 대나무숲이 정한 기준에 맞춰 게시한다. 덕성여대 대나무숲의 운영자는 “하루에 적게는 10개, 많게는 20개 가량의 제보가 들어온다”며 “제보된 글 중 약 70% 정도의 글이 게시된다”고 말했다. 
   

캡처/페이스북 페이지<덕성여대 대나무슾>
덕성여대 대나무숲에 학내 이수 중 하나인 세계대회 취소와 관련된 글이 게시되는 등 대나무 숲은 공론장의 역할을 하고 있다.


  사소한 연애상담부터
  심도 있는 학내 문제 논의까지

  대나무숲에 가장 많이 등장하는 글 중 하나는 연애상담 또는 사랑고백 글이다. 자신과 같은 강의를 듣는 여학생에게 애인이 있는지 확인하거나 길에서 만난 맘에 드는 이성이 과잠(학과 점퍼)을 입었을 경우 그 대학 대나무숲에 가서 사람을 찾는 글을 올리기도 한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이러한 글이 대나무숲의 취지에 적절한지 모르겠다는 의견이 있다. 대학생 이산하(남. 22) 씨(이하 이 씨) 는 “대나무숲에 있는 글들이 대부분 애인이 있냐고 묻는 사랑 고백이다”며 “이런 글들은 ‘고발’을 위해 생겨난 대나무숲의 취지에 적절하다고 보기는 어려운 듯하다”고 말했다.

  한편 서울대학교 대나무숲의 경우 ‘문학의 숲’이 라는 별명이 있을 정도로 뛰어난 필력을 가진 사람들이 자신의 이야기를 수필로 써내며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얻기도 한다. 지난 2월 많은 주목을 받은 ‘한 대학생 가장의 고백’ 역시 서울대학교 대나무숲에 올라온 글이다. 현재 서울대학교 대나무 숲은 무려 약 14만 명이 페이지 ‘좋아요’를 눌러 구독하고 있다. 서울대생이 아닌 사람들도 해당 페 이지를 구독하고 있는 것을 보면 그만큼 여러 사람들이 대학생이 겪는 삶의 고민과 문제를 함께 나누고 싶어 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뿐만 아니라 대학가의 대나무숲은 과거 학생들이 학내 문제에 대한 의견을 표출하던 ‘대자보’의 역할도 함께 수행한다. 지난 3월 27일, 건국대 학교 대나무숲에 해당 대학 생명환경과학대학의 신입생 오리엔테이션에서 성적 수치심을 유발하는 게임을 진행했다고 고발하는 글이 올라왔다. 해당 사건이 학내를 넘어 사회 전역으로 퍼지자 대학측의 빠른 피드백이 이뤄지기도 했다. 또한 수업 중 교수에게 성희롱을 당했거나 교수가 성적 수치심을 유발하는 발언을 했다는 사실이 여러 대 학 대나무숲을 통해 밝혀지며 해당 교수에 대한 처벌이 이뤄지기도 했다.

  대나무숲의 익명성
  양날의 검?

  이렇듯 대나무숲을 통해 다양한 종류의 이야기가 오갈 수 있는 것은 대나무숲이 가진 ‘익명성’ 때문이다. 대학생들은 평소 자신이 하고 싶었던 말이나 자신이 가진 생각을 익명으로 표현할 수 있다는 점을 대나무숲의 가장 큰 매력으로 꼽는다. 이 때문에 대학 내에서 발생한 문제에 대한 고발이 보다 쉽게 가능하다. 대학사회에서 발생하는 여러 문제에 대한 해당 학교 학생들 또는 외부인의 생각이 올라오고 댓글로 함께 의견을 나누기 때문에 대자보보다 빠르고 적극적인 참여가 가능 하다. 이 씨는 “대나무숲이 새로운 학내 공론장의 역할도 하고 있다”며 “학과 통폐합 문제나 구조개혁과 같은 중대사안에 대해 학내 구성원들의 의견 과 문제 상황을 전반적으로 알 수 있다는 점은 장점이다”고 말했다. 이뿐만 아니라 익명성이 보장되기 때문에 자신이 당했던 성폭행 피해나 학교폭력 피해를 대나무숲에 고백하며 다수의 사람들에게 위로받거나 해결 방법을 얻어가기도 한다.

  그러나 대나무숲이 가진 ‘익명성’이 대나무숲을 곤란에 빠트리기도 한다. 자신의 신상정보가 드러나지 않는 점을 이용해 거짓 제보 또는 사실 여부 확인이 불가능한 제보를 하는 경우가 발생하는 것이다. 지난 5월 중앙대학교 어둠의 대나무숲에 수년 전 자신을 강간한 사람이 중앙대에 다니고 있으며 본인 외에도 여러 피해자가 있다는 글이 올라왔다. 이에 많은 사람들이 분노해 해당 사건 가해자의 신상정보까지 밝혀내며 비난했다. 그러나 얼마 후 해당 글의 주인공이 나타나 글의 내용은 사실이 아니며 단어 선택이나 사건이 사실보다 과장돼 제보된 글이라고 사과문을 올렸다. 해당 제보가 거짓임이 밝혀지자 중앙대학교 어둠의 대나무숲 관리자는 “제보가 모두 익명으로 이뤄지기 때문에 사전에 진위를 파악하기 어렵다”며 “대나무숲이라는 전달 플랫폼의 특성상 관리자의 개입은 최소화돼야 한다고 생각했다”는 말을 전하기도 했다.

  이처럼 익명성은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의견을 표현하게 함과 동시에 과도한 비방이 이뤄지거나 왜곡된 사실을 전달하게 하기도 하는 양날의 검이다. 대나무숲이 대학사회에 새로운 소통의 공간으로 자리 잡은 만큼 이용하는 사람들과 관리자 모두의 노력으로 보다 건강한 역할을 수행하길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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