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 가난을 팝니다①] 숨기고 싶은 상처 드러내야 '통과'?… 인권 외면하는 장학금 신청서
[20대, 가난을 팝니다①] 숨기고 싶은 상처 드러내야 '통과'?… 인권 외면하는 장학금 신청서
  • 공동취재단
  • 승인 2016.08.29 2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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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과거 군사독재정권 시절, 기성 언론이 정부 발표에만 기대 '받아쓰기 기사'를 내보낼 때, 대학언론은 학생의 시각에서 '할 말'을 했고, 기득권을 견제했다. 당시에는 학생들이 줄을 서서 신문을 받아갈 정도로 대학언론에 대한 학생들의 관심과 지지는 높았다. 그러나 2000년대에 들어서부터 대학언론은 점차 영향력을 잃었다. 대학신문을 읽기 위해 학생들이 줄을 서기는커녕, 소나기가 내릴 때 우산으로, 날이 좋을 땐 풀밭 위 돗자리로 쓰이는 처지가 됐다.

  '과거 대학언론이 갖고 있던 위상을 복원할 수 없을까.' 이런 고민을 함께하는 덕성여대신문사, 서울여대학보사, 성공회대학교 미디어센터(이상 가나다순)가 머리를 맞댔다. 언론 민주화에 앞장서 온 '민주언론시민연합'이 마련한 '대학문제 공동취재단' 활동을 통해서다. <한겨레신문> 탐사기획팀 김경욱 기자에게 일부 도움말을 받았다.
 
  공동취재단은 이번 기획취재의 주제를 '20대의 가난 증명'으로 잡았다. 기성 언론이 다루지 않은 주제, 대학생이 피부로 느끼고 있는 문제를 다뤄보고자 했다. 우리나라 대학생들은 장학금을 받기 위해 해마다 가계의 소득분위를 확인하고, 장학금 신청서와 면접에서는 자신과 가족의 가난을 구구절절 설명한다.

  왜 우리는 끊임없이 가난을 증명해야만 할까. 가난함을 파는 모욕과 수치를 겪지 않고 인간답게 대학에 다닐 수는 없을까. 공동취재단은 이번 기획을 통해 우리 사회의 대학생들이 처한 슬픈 현실을 들여다보고, 가난함을 팔아야만 하는 우리 사회에 대한 문제 제기와 이를 극복할 대안을 모색해 보고자 했다.

 


 


  가난 아래 인권은 없었다. 낡고 닳아서 구멍 나 버린 속옷까지 모두 헐벗어야 비로소 동정의 손길이 다가왔다. 수치스러움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733만 원(2014년 전국 사립대학 평균 등록금)을 감당해낼 수 없다면 나체의 부끄러움은 마땅히 견뎌내야 할 몫이었다.

 

  그들은 상처를 긁어야만 했다

  서울여자대학교에 재학 중인 ㅂ학생은 일찍이 아버지를 여의었다. 갓 중학교에 입학할 무렵이었다. 췌장암으로 투병하던 아버지는 결국 요양원에서 숨을 거뒀다. 아버지는 식당을 열고 싶어 하셨다. 아버지가 췌장암 판정을 받은 건 이미 사업자금을 투자하고 난 뒤였다. 사업자금과 더불어 병원비까지. 가정 형편은 급속도로 악화될 수밖에 없었다. 어려운 형편에 어머니는 공부방을 열었고 간신히 생활을 유지해 나갔다. 어머니의 수입만으로 부족할 때에는 할아버지의 도움을 받기도 했다.

  “대학만 가라.”

  어머니는 항상 말씀하셨다. 2012년, 그 말씀대로 ㅂ학생은 대학에 입학했다. 문제는 등록금이었다.

  “걱정을 내비치시지는 않았지만 분명 등록금이 부담스러우셨을 거예요.” ㅂ학생은 말했다.

  등록금에 대한 부담만 덜어져도 집안 형편에 도움이 될 것이었다. 다행히 그 고민은 어느 정도 해결됐다. ㅂ학생의 소득분위가 1분위로 책정됐기 때문이다. 330만 원가량의 등록금 상당 부분은 국가장학금으로 메워졌다. 290만 원가량이 지원됐다. 하지만 40만 원은 여전히 부족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 교내통합 장학금을 신청했다. 교내통합 장학금을 신청하면 주로 ‘이웃사랑 장학금’이 지급됐다. 이 장학금은 학기 중 경제적으로 어려운 상황의 학생들에게 지급된다. 지급되는 장학 금액은 수혜자의 상황에 따라 다르다.

  ㅂ학생은 학교 종합정보시스템에 들어가 신청 장학금을 선택하고 몇 가지 절차를 거쳤다. 이름과 학적, 주민등록번호, 주소, 핸드폰 번호 등의 기본적인 개인정보와 학비의 출처가 어떻게 되는지, 보호자는 무슨 일을 하는지, 생활 정도를 상·중·하로 나눠보면 어떠한지, 가족과의 동거 여부 등을 상세히 적었다. 이어서 800자 이내의 신청 사유를 작성했다. 적지 않고서는 넘어갈 수 없었다. 올해부터 300자 이상 신청 사유를 적지 않으면 장학금을 신청할 수 없기 때문이다. ㅂ학생은 꼼꼼히 자신의 상황을 적어 내려갔다. 힘든 기억과 상처이지만 아버지가 중학교 때 돌아가신 얘기를 끄집어냈다.

  “사유가 장학생 선발에 큰 영향을 미칠 수도 있잖아요.” 그는 힘든 기억을 꺼내 자신의 가난함을 증명해냈던 이유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해당 학교 측은 신청 사유가 장학생 선발 당락에 큰 영향을 끼치지 않는다고 했다. 그러나 신청 사유 작성이 필수 요건인 상황에서 학교 측의 해명은 이해하기 힘들었다.

  ㅂ학생은 신청 사유에 아버지 이야기 외에 장학금을 받게 되면 학업에 더욱 정진해 학교를 빛내는 인재가 되겠다는 다짐도 덧붙였다. 가난의 이유를 설명하고 가난을 극복해 학교를 알리는 사람이 되겠다고 열심히 호소했다.

  사실 ㅂ학생에게 신청서를 작성하는 것은 마냥 쉬운 일이 아니다. 평소 지인들에게 소득분위가 몇 분위인지조차 말하기를 꺼리는 그였다. 부끄러운 일은 분명 아니나, 가난이 알려지는 것이 왠지 모르게 두려웠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신청서에 자신의 가난한 상황을 구구절절하게 설명해야만 하는 장학금을 신청한다는 게 다소 부끄러운 게 사실이었다. 게다가 이것은 학교에서 심사하는 장학금이었다. 혹여나 지인이 보게 될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그래도 꼭 받아야 한다는 절박함이 앞서요. 장학금을 조금이라도 더 받는 게 집안 사정에 도움이 되니까요.” ㅂ학생은 이 모든 고단한 과정을 거쳐 남은 등록금 40만 원을 거의 해결할 수 있었다.

  장학금을 신청할 때 본인의 아픔이나 가난을 드러내야 하는 건 비단 서울여대만의 얘기가 아니다. 성공회대학교 2학년에 재학 중인 ㅅ학생은 지난 6월 섬김장학금을 신청했다. ‘섬김장학금’은 성공회대 교내장학금으로 소득 3~8분위에 속하는 학생들만 신청 가능하며, 수업료를 20% 감액해주는 방식으로 지급된다. 섬김장학금을 신청할 때도 자신의 가정 상황 등을 서술해야만 하는 신청서 작성이 필수다. 그는 “신청서를 무슨 내용으로 채웠냐”는 질문에 답하지 않았다. “내 어려운 가정 상황이 기사로 나가는 것을 원치 않는다”라고 그는 말했다. 다만 어려운 가정 형편으로 학교생활과 일상생활이 힘들다는 식으로 작성했다고만 말했다.

  “인증된 서류로 평가하는 게 아니라 그냥 나의 개인적인 형편을 서술하는 것이 불쾌했고, 장학금 제도에 모순이 있다고 생각해요.” ㅅ학생은 말했다.

  같은 학교에서 교내 ‘희망장학금’을 신청한 디지털콘텐츠학과 ㅎ학생은 장학금 신청 사유를 작성해야 하는 것이 인권 문제와 얽혀있다고 말했다.

  “장학금 신청 사유를 작성할 땐 내 인권뿐만 아니라 부모님의 인권까지 보호받지 못하는 것 같아요. 장학금을 받기 위해 구걸하는 것마냥 부모님의 형편과 상황까지 구구절절 설명해야 하나요?”

  교내장학금뿐만 아니라 국내 대부분의 장학금을 신청할 때, 학생들은 사유서나 자기소개서를 필수로 제출해야 한다. 장학금을 지급하는 일부 재단은 사유서를 참고사항 정도로만 여긴다고 주장하지만, 해당 사항이 필수 요건으로 지정돼 있는 이상 장학생 선발의 판단 근거가 될 수밖에 없다.

  국가장학금 신청 때도 ‘가난 증명’이 예외는 아니다. 동덕여자대학교 1학년에 재학 중인 ㄱ 학생은 국가장학금 이의신청을 하며 모진 현실을 감당해야만 했다. 그는 지난 2월 25일 한국장학재단에 장학금을 신청했고, 소득분위 5분위를 받았다. ㄱ학생은 “받아들이기 어려운 결과였다”라고 말했다. 고등학생 때부터 가정 형편이 어려워 정부보조금을 받던 그였다. 장학재단 쪽에서 어떤 근거로 자신을 5분위로 산정했는지 의문이었다.

  한국장학재단은 학생 소득이 70만 원(학생 기본 소득) 이상 발생할 경우 70만 원을 뺀 나머지 금액으로 소득을 측정한다. 예를 들어 한 달에 100만 원을 번다면 70만 원이 공제된 30만 원만 소득으로 인정되는 것이다. 또 건설업에 종사하는 ㄱ학생 아버지는 업종의 특수성(일용직) 때문에 수입의 반이 공제된 금액이 소득으로 잡혀야만 했다.

  이런 산정 방식을 알고 나니, 소득 산정 결과는 더욱 납득할 수 없었다. 한국장학재단에 전화를 걸었다. 상담원은 ‘사회보장정보시스템’을 통해 산출한 결과라고만 답했다. 세부 근거를 확인하고자 했으나 가정 구성원들의 소득을 모두 합쳐 계산된 내역만 나와 있어 오류 발생 지점을 알 수 없었다.

  결국 ㄱ학생은 한국장학재단 홈페이지에 이의신청 글을 올렸다. 그렇게 결과를 알 수 없는 고단한 ‘가난 증명’이 시작됐다.

  이의를 제기한 지 이틀이 지나 받은 답변은 내용이 너무 어려웠다. 고용계약서나 보험증서와 같은 서류들을 제출해야 한다는데 생소한 단어들이었다. 해당 서류들이 정확히 무엇인지 문의 글을 남기려 했으나 답변을 마냥 기다릴 수만은 없었다. 답변 글이 다시 달리기까지 기본 하루 이상이 걸렸기 때문이다. 기다림의 불편을 줄이기 위해 다시 재단에 전화를 걸었다. 30분의 대기시간을 지나 받은 상담원에게 “필요한 서류가 무엇인지 정확히 모르겠다”고 하자 다른 부서로 연결해 주겠다고 했다. 한참을 기다린 후에야 다른 상담원과 연결됐다. 그러나 “이의신청 때문에 필요한 서류가 있어서요”라고 하면 “다른 부서로 연결해드릴게요”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그렇게 상담원 두세 명을 거쳤다.

  오랜 과정 끝에 최종 전화를 넘겨받은 상담원은 ㄱ학생에게 근로계약서와 고용보험 서류를 제출하라고 했다. 서류 제출 기한 때문에 급하게 서류를 준비해 제출했다. 그러나 본래 산출됐어야 했던 주택재산이 처리가 안 돼 있었다며 임대차 계약서를 제출하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주택재산은 학생이 아닌, 재단 측에서 사회보장정보시스템을 통해 확인했어야 하는 부분이었다.

  “그들이 해야 할 일을 제가 수습하는 것 같아 화가 났지만, 이의신청이 기각될까 봐 재단이 요구하는 서류를 준비해 제출했어요.” ㄱ학생은 말했다.

  결과는 허무했다. 자신이 가난하다는 것을, 어려운 가정 형편 탓에 장학금을 더 받아야 한다고 증명하기 위해 전화도 하고, 각종 가난 증명 서류를 떼서 제출했음에도 소득분위는 달라지지 않았다. 소득분위가 바뀌지 않은 핵심 원인은 주택자산 때문이었다. 본래 책정됐어야 하는 주택보증금이 적용되지 않았었다며 서류 재검토를 통해 이를 적용하니 5분위가 나온다는 것이었다.

  “집이 몇십억짜리도 아니고, 실질적인 월 소득이 100만 원이에요. 월 소득 100만 원이면 등록금 마련 능력이 부족한 것 아닌가요? 집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월 소득이 300~500만 원으로 잡혀요. 집도 오래전에 빚으로 산 건데.”

  애초부터 소득분위가 5분위로 나온 것은 장학재단의 실수 때문이었다. 먼저 소득 산정부터 잘못돼 있었다. ㄱ학생의 소득은 원래대로라면 총소득 170만 원에서 70만 원이 공제된 100만 원으로 책정됐어야 했다.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하는 그는 당시 근무 시간이 길어 일용직에서 상용직으로 바뀌었다. 그런데 재단 측의 설명을 들어보니, 해당 시기의 소득을 이중으로 계산해 200만 원을 소득으로 잡아 놓고 있었다. 일용직인 아버지의 소득을 공제액 없이 그대로 소득으로 계산한 것 역시 재단 측의 실수였다. 일용직은 소득의 반이 공제돼야 한다.

  결과를 통보받고 난 후 ㄱ학생은 직접 사회보장정보시스템을 조회할 수 있냐고 물었지만 재단 측에서는 아직 민간과 공유할 수 없다고 했다. 이번 학기 ㄱ학생의 소득분위는 7분위가 나왔다. 지난 학기보다 두 분위나 올랐지만 이의신청을 하지 않을 예정이다. 고단한 ‘가난 증명’의 과정을 더 이상 겪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기초생활수급자가 관광할 돈이 어디 있느냐”

  일상적으로 가난을 증명해야 하는 20대들도 있다. 성공회대학교 영어학과 4학년 원다솔 학생은 기초생활수급자다. 그는 어린 시절부터 세계 여행의 꿈을 키웠다. 초등학생 때 외국에 다니는 친구들을 항상 부러워했던 그였다. 그래서 고교 시절부터 평일에는 학교생활을, 주말에는 꼬박 아르바이트를 하며 열심히 돈을 모았다. 고등학생이라 아르바이트가 쉽게 구해지지 않던 탓에 식당 10곳을 넘게 전전하며 단기 아르바이트로 모은 돈이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그는 알래스카로 3개월간 여행을 떠났다. 오랜 기간 여행을 할 수 없었던 이유는 그가 기초생활수급자이기 때문이었다. 기초생활수급자는 해외에 3개월 이상 머물면 안 된다. 만약 3개월 이상 해외에 체류할 경우 기초생활수급자 가구원에서 제외돼 재신청을 해야 한다. 기초생활수급자 재신청은 과정이 번거롭고 재등록이 어렵다.

여행을 마치고 돌아온 어느 날 면사무소에서 집으로 전화가 왔다. 담당 면사무소 직원은 전화를 받은 어머니에게 “따님의 비행 내역이 조회됐다. 원다솔 학생은 알래스카에 왜 간 것이냐”고 물었고, “관광하러 갔다”는 대답에 직원은 “기초생활수급자가 관광할 돈이 어디 있느냐”며 추궁했다.

  원다솔 학생은 당시를 떠올리며 “가난한 사람들은 스스로 모은 돈으로 여행도 할 수 없나? 가난하게만 살아야 하는 것인가?”라고 반문했다.

  부정수급을 방지하기 위한 행정기관의 철저한 관리 감독 업무였음은 인정되나, 원다솔 학생은 일상적으로 가계 조사를 받아야 했다. 면사무소에서는 그의 계좌를 수시로 조사하는 것은 물론이고 가정을 방문하기도 했다.

  “부정수급, 남들에겐 정의감을 들끓게 하는 말일 거예요. 하지만 저와 같은 사람들에겐 그다지 도덕심을 자극하지 않아요. 조금이라도 사람답게 살려고 하는 일들이니까요.” 그는 힘주어 말했다.

  가난 증명에서 장학재단 예찬으로…

  20대 학생들의 가난 증명 방식은 한국장학재단의 수기공모전 선정작을 통해 엿볼 수 있다. <대학문제 공동취재단>이 장학재단 수기공모전 대상 및 최우수상 9편을 분석한 결과, 수상작들에서 공통점이 발견됐다. 수상자들이 수기공모전을 통해 또 한 번 자신의 가난을 증명하고 있다는 점이다.

  수상자들은 공통적으로 먼저 본인의 고단했던 상황을 회상했다. 수상작에서 가장 많이 언급된 단어는 ‘아버지’였다.(총 97회) 아버지를 가장으로 설정하고 가장의 어려운 현실로 집안 사정이 어려웠음을 말했다. 한 수상자는 파킨슨병에 걸린 아버지의 사연을 적어냈다.

  다음으로 많이 언급된 단어는 ‘어머니’였다.(총 65회) 가장의 어려운 상황과 이어지면서 어머니가 집안을 일으키려 노력하는 모습을 묘사한 데서 비롯됐다. 한 수상자는 본인의 항암 치료에 들어가는 비용과 집안 생활비를 마련하기 위해 어머니께서 본인을 돌보시면서 부업까지 병행하셨다고 한다.

  또 수상자들은 직접적으로 ‘감사’라는 단어를 사용하지 않더라도 “한국장학재단은 나의 꽃망울을 터뜨려준 봄바람이다.”, “별똥별처럼 날아든 희망, 한국장학재단”, “학자금대출 제도와 장학금 제도라는 키다리 아저씨” 등과 같은 표현으로 한국장학재단을 예찬했다.

  슬픔의 크기가 과장되기도

  장학금을 받기 위해 자신의 가난을 증명하는 수준을 넘어서서 부풀리는 일이 일어나기도 한다. 기업에 채용되기 위해 ‘자소설’을 쓰는 것과 마찬가지로 말이다. 지난 2월 동덕여자대학교를 졸업한 안 모(26) 씨는 2015년 1학기가 시작되기 전 겨울방학에 지역 장학금을 신청했다. 자신의 가정 상황을 증명할 수 있는 가족관계증명서, 과세증명서, 건강보험증, 재학증명서 등의 객관적인 증빙 서류와 함께 신청 사유서를 썼다. 사유서에 글자 수 제한은 없었고 장학금을 받아야 하는 이유를 자필로 작성해야 했다. 장학금을 지급하는 해당 군청 측에서는 그 자필 사유서를 스캔해서 온라인으로 제출하라고 요구했다.

  안 씨는 사유서에 어려운 가정 형편을 설명했다. 사실이 아닌 내용을 적지는 않았지만 사실에 대한 의미나 원인을 부풀리거나 과장해서 썼다. 아버지가 직장을 그만두시고 사업을 하게 된 것부터 건물세 인상을 견디지 못하고 사업을 접어야 했던 것, 그 후 서울에서 해당 지역으로 이사를 했고 현재 본인 혼자 서울의 큰아버지 댁에서 얹혀살고 있다는 것까지 모두 적었다. 그러나 이 모든 과정이 아버지 사업이 어려워졌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장학금을 받으려면 그렇게 쓰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했어요. 남들보다 어려워 보여야 하니까. 근데 사유서에 증명된 내 모습과 위치가 너무 초라해 보이더라고요.” 안 씨는 당시를 회상하며 말했다.

  전문가들은 20대 ‘가난 증명’의 원인에 대해 우리 사회가 인간답게 사는 것을 ‘권리’가 아니라 ‘능력’의 문제로 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김동춘 성공회대 교수(사회학)는 “선별적 복지를 채택하고 있는 상황에서 국가가 가난을 책임지지 않고 한 개인의 문제로 돌리다 보니, 가난에 허덕이는 대학생에게 ‘장학금을 줄 테니 가난함을 증명해보라’ 식으로 책임을 묻고 있다”고 말했다.

  다시 9월이다. 뜨거운 여름이 지나고 학기가 시작되는 이때, 주어지지 않는 권리를 얻어내기 위한 학생들의 시름은 또다시 깊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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