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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 가난을 팝니다③] 가난을 말하지 않을 권리는 없나
2016년 08월 29일 (월) 21:47:03 공동취재단 -
  ‘모든 국민은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를 침해받지 아니한다.’ 우리나라 헌법 제17조에 명시된 말이다. 자신의 사생활과 관련된 비밀을 누구나 함부로 타인에게 공개 당하지 않을 권리를 가진다는 뜻이다. 그러나 현재 우리나라 대학생들은 이 ‘기본권’을 박탈당한 채 살아간다. 국가나 학교로부터 학비 등의 지원을 받기 위해 이른바 ‘가난 증명’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다른 나라들은 어떤 상황일까.

  우리나라와 지리적으로 근접한 일본의 대학생들은 장학금을 신청할 때 가난 증명이 필요 없다. 신청서를 작성해야 하지만 집안 사정이 얼마나 어려운지, 가정 형편이 어떤지 등은 쓰지 않아도 된다. 현재 고려대학교 교환학생으로 공부 중인 이시다사키(오사카대학 4학년) 학생은 “가정 형편은 객관적인 서류로 충분히 파악 가능하기 때문에 집안 사정을 구구절절 쓰지 않아도 된다”며, “감추고 싶은 자신의 가정 상황을 지속적으로 말해야 하는 한국 학생들이 안타깝다”는 심정을 내비쳤다.

  독일 대학생들 또한 가난함을 증명하지 않고도 복지 혜택을 누린다. 대학 등록금이 대부분 무료인 독일에는 대학생들에게 생활비를 지원해 주는 학자금대출 제도 ‘바푁(BAf?G)’이 있다. 국가에서 학생들에게 매달 약 450~500유로(원화로 약 56만 2,500원~62만 5,000원) 정도씩 대출해 주는 제도다. 대출금 가운데 절반은 국가에서 제공하는 장학금, 혹은 보조금이라 학생들은 졸업 이후 소득이 생기기 시작할 때부터 대출금의 절반만 갚으면 된다. 주목할 점은 신청 방법이다. 현재 독일 슈투트가르트에서 유학 중인 박예진(27) 학생은 “가난 증명을 해야만 장학금이 지원되는 우리와 달리, 독일 바푁은 형식적인 신청 서류와 재학증명서 정도만 제출하면 되는 아주 간단한 방식이다”라고 말했다. 그는 또 “이곳에서는 대학생이 가난하다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그가 머무는 독일은 가난함을 증명해야 하고 돈이 없어 주눅 드는 한국 사회와는 전혀 다른 분위기이다.
   

  스웨덴의 상황도 우리가 본받을 만하다. 스웨덴의 대학 등록금은 전적으로 국가가 지원한다. 사회경제적으로 뒤처진 사람들의 대학 진학 기회를 박탈하지 않기 위해서다. 스웨덴도 독일과 마찬가지로 대학생들의 생활비에 대해서 고민한다. 스웨덴은 1989년 생활비 대출에 대해 소득연계 대출제도(ICL)를 도입했다. 특징적인 것은 지원 금액을 정할 때 부모나 배우자의 소득은 제외하고, 오직 학생 본인의 소득만 고려한다는 점이다. 이를 통해 부모의 사회경제적 지위와는 무관하게 저소득층 학생이라도 경제적 부담 없이 대학 교육에 참여할 수 있는 길을 터놓았다. 그 결과, 스웨덴에서는 대학 교육이 사적재가 아닌 ‘공공재’로서, 그리고 개인이 향유할 수 있는 ‘권리’로서 인식되고 있다.

  교육이 ‘권리’가 아닌 ‘능력’인 우리나라에서, 학생들은 교육을 받기 위해 스스로 비참해져야 한다. 오창익 인권연대 사무국장은 “헌법 31조에는 모든 국민이 교육 받을 권리가 있다고 규정돼 있지만, 학생들은 그 권리를 누리기 위해 가난을 증명하며 창피함을 감내하고 있다”며, “학생들에게 가하는 이런 모질고도 반인권적인 행태는 사라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일본, 독일, 스웨덴의 대학생들은 우리나라 대학생들과 같은 시대를 살고 있는 동시대인이다. 그러나 그곳 학생들과 한국의 학생들이 경험하는 삶과 인권의 무게는 매우 다르게 느껴진다. ‘내 가난을 말하지 않을 권리’는 지금, 이 땅 위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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