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살과 해학, 해박한 지식과 수준 높은 안목의 '노학생의 향수'
익살과 해학, 해박한 지식과 수준 높은 안목의 '노학생의 향수'
  • 사학과 남동신 교수
  • 승인 2004.05.10 1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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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은 삼불 김원용선생(1922∼1993)의 두 번째 수필집이다. 선생에게는 작고하신 다음에 나온 것까지 합해서 모두 4권의 수필집이 있는데, 이것은 그 중에서도 50대 초반 무렵에 씌어진 글들을 모았다. 학창시절에 선생의 강의도 듣고 선생의 논문도 읽고, 또 간간이 선생의 그 유명한 ‘일배화(一杯畵)’도 감상해 보았는데, 정작 선생의 수필은 서른이 훌쩍 지나고 나서야 인연이 닿았다. “수필이라는 것을 읽어 보면 뻔한 거짓말과 가식이 많아서 자기 자신을 좀 솔직하게 드러내려고 하였다”고 고백할 정도로, 선생의 수필에는 조금도 숨김 없이 자신을 드러내는 솔직담백함, 허를 찌르는 통쾌한 비판 정신, 세태에 얽매이지 않는 초탈한 인생관, 군더더기 없는 간결명료한 문장, 포복절도할 익살과 해학, 해박한 지식과 수준 높은 안목이 넘쳐흐른다. 여기에 인생의 허무와 페이소스가 진하게 배어나는 선생의 그림들이 삽화로 곁들여져 있다. 그런데 유독 이 수필집에 애착이 가는 까닭이 있다. 당시 나는 원효를 주제로 박사학위논문 작성에 골몰하고 있어서 사방에 보이는 것이 죄다 골치아픈 불교경전 더미였고, 꿈속에서조차 논문 쓰기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선생께는 죄송한 노릇이나 나는 아침마다 화장실에서 선생의 수필 한꼭지씩 읽으면서, 잠시나마 논문을 잊을 수 있었다. 그러던 어느날 ‘막생막사(莫生莫死 : 태어나지도 말고 죽지도 말라)’라는 글을 읽으면서 눈이 번쩍 떠인 적이 있다. 사실 이 말은 원효와도 관련 있어서, 당시 나는 그 출처를 찾아 고전을 뒤지느라 부심하고 있었는데, 선생은 글에서 이 구절이 『열자(列子)』에 나온다고 한 것이다. 그래서 부랴부랴 『열자(列子)』를 사서 처음부터 무작정 훑어내려갔다. 그런데 네 번을 읽어도 그 구절은 끝내 찾을 수가 없었다. 그때의 허탈감이란! 수필은 말 그대로 ‘붓가는 대로 쓴 글’이다. 형식과 내용상 일정한 격식을 요구하는 논문과 달리 자유분방한 글쓰기인 것이다. 그러니 수필을 가지고 선생께 여쭙기도 그렇고 궁금한 것은 못참는 성질상 그냥 있기도 그렇고 하여, 이러구러 만나뵐 기회만 엿보고 있었다. 그런데 천만뜻밖에도 선생은 얼마 지나지 않아 돌아가시고 말았다. 그후 나는 혹시나 하는 심정에서 선생께서 즐겨 탐독하시던 『노자』와 『장자』를 샅샅이 뒤지다시피하며 읽어보게 되었다. 물론 나의 의문을 해소시킬 수는 없었지만, 덕분에 노장사상의 주요 텍스트를 읽게 되었으니, 삼가 선생의 명복을 빌어드릴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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