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의 고리타분한 성교육
우리나라의 고리타분한 성교육
  • 이충민 푸른아우성 교육팀장
  • 승인 2016.09.12 14:3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우리나라 학교 성교육에 대한 실효성 문제

  최근 우리나라의 성범죄 현황과 밤 문화 실태는 한숨을 불러일으킨다. 미디어의 발달로 자극적인 음란물을 접하기 쉬워졌고 이로 인해청소년들의 성 의식과 성 문화는 위험해졌다. 카카오톡 단체방 성추행과 MT에서 일어난 성범죄 사건 등을 통해 알 수 있듯이 대학가의 성 의식 역시 추락했다. 이 같은 일련의 문제들에 대해 우리는 현실적이지 못한 학교 성교육이 근본적인 문제라고 말한다. 평생의 성의식 입지를 세워야 할 시기에 제대로 된 성교육을 받지 못해 올바른 성 의식이 자리 잡히지 못한 채 성인이 됐기 때문이다. 이런 현실 속에 형식적인 성교육은 무의미할 뿐이다.전문가들 역시 시대 역행적인 학교 성교육 표준안을 지적한다. 학교의 성교육과 가정 내 성교육을 진단하고 대안을 찾는 노력이 필요하다. 


  교육부의 의무 성교육 시간 현실적으로 가능한가 먼저 학교 성교육의 정확한 문제점을 파악해보자. 우리나라의 성교육은 ‘보건영역’에 속해 있다. 각 학교 보건교사는 보건영역의 다양한 주제와 함께 성교육을 진행한다. 그런데 대개 보건교육은 1년에 10시간에서 15시간 편성돼 있다. 즉 보건교사는 1년에 10시간가량의 보건수업에서 질병과 건강 등 다양한 주제와 함께 성교육을 진행해야 한다. 그러니 성교육을 할 수 있는 시간이 부족해 성 가치관이나 성관계에 대한 교육은 아예 실행하지 않고 오로지 생물학적 성에 대한 교육만 한다.

  2015년 경기도 교육청에서 조사한 성교육 시간비율을 살펴보면 초등학교 49.1%, 중학교 29.8%,고등학교 19.1%로 성교육이 더욱 필요한 고학년이 될수록 성교육 시간이 줄어들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교육과학기술부의 최근 5년간 교내 성교육 실시현황을 살펴보면 초등학교 5.17시간, 중학교 3.5시간, 고등학교 5.5시간으로 교육부가 주장하는 1년에 15시간의 의무 성교육 시간이 무색할 따름이다. 성교육 시간이 줄어들수록 짧은 시간 안에 보여주기식 성교육만을 할 수밖에 없다. 성교육 강국인 네덜란드나 스웨덴의 토론식 성교육은 터무니없이 짧은 성교육 시간 안에는 따라 할 수 없는 비현실적인 이상일 뿐이다.

  성교육 시간에 어떤 성교육을 받고 있을까?
  학교에서 실시되는 성교육의 질적인 면을 살펴보면 문제는 더욱 심각하다. 대부분의 학교에서 시행하는 성교육은 생물학적 성 지식 교육 또는 성폭력 예방교육이 전부다. 특히 여학생들의 경우 성교육 시간에 성폭력 예방교육만을 받았다고 답한 비율이 60%를 넘는다.

  작년에 개정된 성교육표준안의 내용들은 더욱 큰 우려를 낳고 있다. 예컨대 중학교 교과서에는‘성 충동이 일어날 때 운동 등을 통해 성 에너지를 전환하라’는 내용이 나온다. 즉 성적 욕구가 생길 시 운동을 통해 금욕하라는 뜻이다. 얼마나 비현실적인 내용인지 의심스럽다. 이 밖에도 ‘여성의 단정한 모습은 치마를 입은 모습’이라는 성적 평등의 왜곡이 드러나기도 하고 ‘성폭력은 피해자의 안이한 태도로 인해 일어난다’는 터무니없는 내용이 등장한다.

  필자는 청소년 성교육을 진행하며 현대사회의 미디어에서 보여주는 올바르지 못한 통념을 객관적인 판단 없이 받아들이는 청소년들을 마주한다. 청소년들은 많은 양의 음란물을 접한 경험을 말하며 자신이 성을 제대로 알고 있고 많이 알고있다고 자랑스레 말하곤 한다. 또 ‘멋진 남성은 섹스 테크닉을 갖추어야 한다’거나 ‘남성의 성기 크기가 만족의 기준’이라는 통념에 젖은 학생들 역시 종종 만나곤 한다. 고리타분한 순결관이나 왜곡된 성 지식을 분별하지 못하는 학생들을 마주하면 어디서부터 설명을 해야 할지 막막해지기도
한다.

  학교에서 실시하는 생물학적 성교육만을 받고 자란 청소년들은 생리대 광고를 보고 생리혈이 파란색이라고 알고 있다거나 이성친구와 속옷을 입고 서로 비비며 접촉한 스킨십으로 임신여부를 걱정하는 상담 글을 올리기도 한다. 이런 청소년들을 보면 아직 갈 길이 먼 허울뿐인 성교육의 그림자를 보게 된다.

 

한국성과학연구협회에서는 의사, 간호사, 법률가 등 전문가가 소속된 성교육 교재 편찬위원회를 구성해 건강한 성교육을 위한 교재를 발간했다.

  성교육을 진행하는 교사의 역량과 환경
  최근에는 전문적인 교육을 받고 양성된 성교육 강사들이 등장하고 있다. 그리고 일부 역량 있는 보건교사는 훌륭한 교안으로 현실적이고 효율적인 수준 높은 성교육을 진행하기도 한다. 보건교사가 아니라도 성교육 담당교사들이 직접 전문기관을 통해 교육을 받은 후 성교육을 진행하는 경우가 늘고 있는 것도 다행스러운 부분이다. 그러나 여전히 전문적인 성교육을 지속적으로 가능한 학교는 소수에 불과하며 성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지원하는 학교는 많지 않다.

  앞서 말한 전문적이고 올바른 성교육이 지속되려면 제도적 힘이 바탕이 돼야 하고 지원이 따라야 한다. 학교마다 갖추고 있는 성교육 여건과 환경에 대한 격차는 매우 크다. 슬픈 현실은 보건교사가 배치돼 있는 학교는 그나마 양반이란 것이다. 현재 우리나라 학교의 보건교사 배치율은 대략 65% 내외 수준이다. 가까운 일본은 95%가 넘는 배치율을 보이고 해외 선진국의 경우 보건교사 배치율이 평균 89% 이상인 것을 보면 낮은 수치이다. 보건교사가 없는 경우에는 일반교과 교사가 성교육까지 병행해야 하는데 성교육에 관한 교육 자체를 받아본 적 없는 일반교과 교사에게 성교육은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 성교육의 질 역시 담보할 수 없다. 따라서 성교육이 일반교과로 편입되는 경우가 다반사인 것이다.

  보건교사의 부재 문제는 교사의 근무 여건이 열악하기 때문이다. 대다수의 학교에서는 보건교사를 비정규직 혹은 기간제 교사로 채용하고 있다. 경기도 교육청에서 작년 3월 조사한 내용에 따르면 경기도 내 보건교사 중 기간제 교사의 비율은 초등학교 24.9%, 중학교 29.1%, 고등학교 37.8%이다. 기간제 교사인 보건교사가 지속적이고 장기적인 계획을 수립해 성교육을 하는 것이 불가능한 상황이다.

 

교육부에서 제시한 교사용 성교육 자료에는 청소년에게 성에 대한 잘못된 인식을 심어줄 수 있는 성교육 내용이 포함돼 문제가 되기도 했다.

  올바른 성교육을 위한 변화
  이 같은 환경과 여건 속에서 성교육의 악순환이 계속되고 있다. 악순환을 끊기 위해서는 주어진 성교육 시간을 반드시 이행할 수 있도록 사회 제도적 환경의 개선이 필요하다. 학교에서는 성교육 의무 시간을 지킬 수 있도록 노력이 필요하며 정부의 제도적인 지원 역시 필요하다. 1년에 한두번 의례행사처럼 진행하는 성교육이 아닌 10여년 이상 체계적으로 계획해 현실적인 성교육이 이뤄져야 한다. 또 모든 학교에 보건교사 의무 배정을 조속히 시행해야 한다.

  인식개선 역시 이뤄져야 한다. 학부모연합에서는 피임교육이 성관계를 조장한다며 중학교 성교육 과정에서 피임교육을 빼달라고 요구하기도 한다. 그러나 화재예방 교육을 했다고 다음날 학생들이 방화를 일삼는 행동을 하지 않듯 피임교육을 했다고 성관계를 하는 학생은 없다. 오히려 책임교육을 통해 성관계에 대한 준비와 중요성을 깨닫고 생명존중에 대한 가치관이 생긴다. 피임실습은 중학생 시기에 반드시 받아야 할 교육이다. 우리나라가 OECD 국가 중 청소년 낙태율 1위를 기록한 것을 보면 성을 무조건 감추려고만 할게 아니라 안전한 성관계를 위해서는 피임이 반드시 필요하며 올바른 피임법이 무엇인지 알려줘야 한다. 유럽의 성교육은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 졸업 때까지 체계적으로 진행된다. 우리나라의 성교육 역시 체계적이고 시대의 흐름에 맞게 꾸준히 변화시켜야 한다. 그리고 남녀가 서로를 존중하는 건강한 성 의식에 기초한 성교육 교재 혹은 교과과정을 구성해야 한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 서울특별시 도봉구 삼양로144길 33 덕성여자대학교 도서관 402호 덕성여대신문사
  • 대표전화 : 02-901-8551, 8552, 8558
  • 청소년보호책임자 : 고유미
  • 법인명 : 덕성여자대학교
  • 제호 : 덕성여대신문
  • 발행인 : 김건희
  • 주간 : 조연성
  • 편집인 : 고유미
  • 메일 : press@duksung.ac.kr
  • 덕성여대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덕성여대신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press@duksung.ac.kr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