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사회의 비주류를 찾아서, 대학신문
우리사회의 비주류를 찾아서, 대학신문
  • 김성해 대구대학교 신문방송학과 교수
  • 승인 2016.09.12 14: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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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시대, 대학신문의 희망찾기

  ‘날은 저물고 갈 길은 멀다’
  얼마 전 드라마 <응답하라 1988>이 인기몰이를 했다. 전혀 그 시대를 살아보지 않은 젊은 세대의 공감을 이끌어낸 게 성공의 요인이었다. 당시는 비록 혹독한 군부독재 시절이었지만 인정이 넘쳤고 ‘함께’라는 시대정신이 충만했다. 1980년대에 유행했던 대중가요도 이런 정서를 잘 반영했다. 김정호란 가수는 그 중의 한 명이었다.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난 그는 <작은 새>란 노래를 불렀다. “고요한 밤하늘에 작은 구름 하나가// 바람결에 흐르다 머무는 그곳에는// 길 잃은 새 한 마리 집을 찾는다// 세상은 밝아오고 달마저 기우는데// 수만 리 먼 하늘을 날아가려나”라는 내용이 있다. 디지털 시대를 맞아 한치 앞을 내다보지 못하는 ‘대학신문’의 심정과 겹치는 부분이 많다.

  길 잃은 ‘작은 새’도 한 때는 잘나가던 시절이 있었다. 1974년에 출범한 덕성여대신문만 하더라도 우선 ‘귀한’ 존재였다. 페이스북이나 카톡 같은 SNS는커녕 공중전화도 몇 대 없던 시절 대학신문은 정보를 교환하고 세상을 알아가는 중요한 창구였다. 국민의 눈과 귀가 정부의 통제에 막혀 있었다는 것도 기회였다. 정부의 직접적인 간섭을 받지 않았기에 기성 언론이 외면했던 대중 집회, 민주화 운동, 정치인 구속 등의 ‘진실’을 접할 수 있는 숨통이었다. 진리와 지식에 목말라 했던 대학분위기 역시 숨은 공로자였다. 해방신학, 마르크스와 관련한 논란들, 미국에 대한 비판과 북한에 대한 다른 관점은 대학신문에서만 접할 수 있었다. 그러나 1990년대의 짧은 황금기를 뒤로하고 지금은 망각의 존재가 되고 있다.

  2016년 현시점에서도 전 세계에는 다양한 형태의 대학신문이 운영된다. 디지털의 확산을 통해 과거에 비해 형편이 더 나아진 곳도 많다. 한 예로, <하버드 크림슨>, <데일리 타검>, <데일리 칼리지안> 등 미국 대학신문의 구독자는 전 세계의 동문과 연결되면서 오히려 늘었다. 물리적인 한계가 있는 ‘종이’라는 장벽을 넘어 ‘디지털’이라는 무한 우주로 진입했다. 텍스트 중심의 뉴스는 동영상, 그래픽, 사진과 팟캐스트 등으로 다양해졌다. 한편으로는 취업에 필요한 경력을 위해, 또 다른 한편으로는 이론과 실습을 병행하기 위해 더 많은 학생들이 몰려든다. 영세한 지역 언론사가 담당하지 못하는 기획기사를 위해 직접 학생 기자를 장기간 파견하기도 하고, 디지털 교육을 위해 연수를 보내는 곳도 있다. 흥미롭게도 한국에서 이런 모습은 거의 찾아보기 어렵다.

  즐겨 찾지 않으면 천덕꾸러기가 된다. 뭔가 주목을 끌 만한 정보나 흥미가 있거나 다른 곳에서는 찾을 수 없는 독특함이 있어야 한다. 땀과 애정을 쏟은 기사를 관심 있게 읽어주고 칭찬이나 애정 어린 비판을 해 주는 독자가 있어야 보람을 느낀다. 원고료는 못 받아도 되지만 함께 고민하고 공감해 주는 이가 없으면 허망해진다. 국내 대학신문은 이 중의 그 어느 것도 충족시키지 못한다. 딱히 누군가의 책임이라고 말할 수도 없다. 한 달에 한 번 또는 격주로 발행되는 신문은 24시간 정보가 소통되는 시대에 별로 소용이 없다. 먹고 사는 문제를 대학본부는 물론 학생회에 의존할 수 밖에 없는 상황에서 학내 민주화를 위한 소금과 같은 역할도 못한다. 취업을 위한 학원으로 변해버린 대학에서 학술논쟁이나 지적 탐험은 더 이상 미덕이 아니다. 대학 기자라는 직책만으로 인정을 받고, 남다른 엘리트 의식을 나누며, 졸업 후에는 특채의 혜택을 누릴 수 있던 시대 역시 저물었다. 적은 인원과 과중한 업무라는 악조건에서 애써 신문을 발행해도 별로 알아주는 이도 없다. 교직원도, 학생도, 동창도, 심지어 인근 주민도 외면한다.

  디지털이라는 거대한 흐름을 거스를 수는 없다. 대학 구성원의 냉정한 평가도 비난할 수 없다.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으라는 말이 있는 것처럼 ‘종이신문’을 접는 것도 한 방법이다. 그러나 “제비는 작아도 오장육부를 모두 갖고 있다”는 말이 있다. 갈 곳 잃은 작은 새에 비유되는 대학신문에도 적용할 수 있다. 문제는 방법이다. 제대로 된 희망전략이다. 비교적 성공적으로 희망의 싹을 틔우고 있는 사례도 있다. 먼저 주목할 만한 곳으로는 손석희라는 브랜드를 통해 돌파구를 연 JTBC가 있다. 국내 방송 시장에서 종편이 직면한 상황은 결코 녹록하지 않았다. JTBC는 양질의 뉴스, 신뢰할 수 있는 뉴스, 언론다운 언론이 되면 시청자는 찾아올 것이라고 믿었다. KBS와 MBC, TV조선과 채널A 및 연합뉴스 등이 정부의 말을 앵무새처럼 반복할 때 손석희의 뉴스팀은 달랐다. 세월호 현장으로 달려갔고 청와대의 부정과 비리를 고발했다. 학내 민주화라는 차원에서 봤을 때 덕성여대 신문이 모방할 수 있는 전략이다.

많은 언론사가 종이신문과 방송을 통한 뉴스 전달을 넘어 디지털 시대에 발맞춘 ‘카드뉴스’를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오마이뉴스>의 성공도 주목할 만하다. 인간은 누구나 뭔가를 공유하고 싶어 하고, 자신이 가장 잘 아는 게 있고, 또 타인을 도울 수 있을 때 행복해한다. 자기 글이 실리면 인간은 자연스럽게 더 관심을 갖는다. 대학신문을 만들어 가는 사람이 반드시 장학금을 받는 소수 기자일 필요는 없다는 말이다. 그 밖에, <Vice.com>, <Upworthy.com>과 <Buzzfeed.com>처럼 동영상과 카드뉴스 등에 특화시킨 곳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비행기나 기차를 타고 이동하면서, 카페에서 누군가를 기다리면서, 또 잠들기 전에 ‘편리하고 손쉽게’활용할 수 있도록 변신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이 모든 것보다 더 본질적인 것은 ‘존재가치의 회복’이다.

  ‘꽃이 되고 싶다’
  김춘수 시인의 <꽃>이라는 시가 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우리들은 모두 무엇이 되고 싶다// 나는 너에게 너는 나에게//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의미가 되고 싶다”는 소망이 담겨 있다. 희망을 위해서는 ‘존재가치’에 주목해야 한다는 것을 잘 보여준다. 언론은 사회적 필요에 따라 인간이 만든 공적인 제도다. 대학신문 역시 특정한 시기를 배경으로 구성원의 필요에 부합하기 위해 등장했고 발전해 왔다. 만약 역사적 소임을 다했다면 소멸하는 게 맞다. 그러나 존재가치가 ‘여전히 있고 더 키울 수 있다’라고 믿을 때는 이 문제에 집중해야 한다.

  대학 구성원에 관한 뉴스는 이곳에서만 제공할 수 있다. 대학의 크고 작은 의사결정과 학생 행복과 관련된 주요 결정에 대한 소식도 다른 곳에서는 관심이 없다. 공동체에 속해 있는 교수, 직원과 학생, 동문과 지역사회의 정보를 교환할 곳도 이곳이다. 대학이 직면하고 있는 모순을 고민하고 함께 머리를 맞대며 단합된 목소리로 세상을 바꿀수 있는 출발점이기도 하다. 덕성여대신문이 그 주역이 되지 말란 법은 없다. 미래에 개입할 수 있는 가장 확실한 것은 현재를 바꾸는 것이라는 말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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