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을 결정할 권리는 누구에게 있나요?
죽음을 결정할 권리는 누구에게 있나요?
  • 박소영 기자
  • 승인 2016.09.26 22: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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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락사, 개인의 자기결정권과 생명의 존엄성 사이

  이번 리우 패럴림픽에서 벨기에의 휠체어 스프린트 선수 마리케 베르보트가 한 발언이 화제다. “이번 리우 패럴림픽이 나의 마지막 경기가 될 것이며 패럴림픽 이후 안락사 준비에 들어갈 것이다.” 베르보트 선수는 자신의 병으로 인해 매일 상상할 수 없는 고통을 받고 있으며 자신의 버킷리스트 중 하나가 바로 ‘안락사’라고 밝혔다. 패럴림픽 영웅의 갑작스러운 안락사 고백에 세계는 왈칵 뒤집혔다.




  적극적 안락사는 금지,
  소극적 안락사는 글쎄…
  ‘안락사’는 ‘극심한 고통을 받는 불치의 환자에 대해 본인 또는 가족의 요구에 따라 고통이 적은 방법으로 생명을 단축하는 행위’를 뜻한다. 영어로는 ‘euthanasia’라고 하는데 이는 ‘eu(good, well)’와 ‘thanasia(death)’의 합성어로 존엄한 죽음, 그리스어로는 쉬운 죽음을 뜻한다. 안락사에는 소극적 안락사와 적극적 안락사 두 가지 방식이 존재한다. 소극적 안락사는 치료의 목적이 아닌 단순 생명 연장만을 위해 가하는 처치를 중단하는 것을, 적극적 안락사는 치사량의 약물이나 독극물을 직접적으로 주사하는 것을 뜻한다.

  현재 우리나라의 경우 적극적 안락사는 전면적으로 금지하나 소극적 안락사는 그 기준이 모호한 상황이다. ‘보라매병원 사건’은 우리나라가 법적으로 안락사를 허용하지 않는다는 판례다. 1997년 12월 4일, 낙상으로 인해 머리를 다친 김 모 씨는 보라매병원에서 뇌수술을 받았다. 수술 후 자발 호흡이 돌아오지 않아 인공호흡기를 부착해 치료를 받던 김 모 씨의 부인이 경제적 부담을 이유로 김 모 씨의 퇴원을 요구했다. 이에 병원은 퇴원 시 김 모 씨가 사망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설명했고 부인과 의사가 귀가서약서에 서명한 뒤 부인에게 인계했으나 법원은 김 모 씨를 인계한 의사를 살인방조죄로 처벌했다.

  한편 이후 2008년 일어난 ‘김 할머니 사건’은 안락사를 허용할 수 있다는 판례다. 김 할머니는 2008년 2월 폐암 조직검사를 받다가 과다출혈로 식물인간이 됐다. 김 할머니의 자녀들은 김 할머니의 연명 치료의 중단을 요구했고 긴 재판 끝에 2009년 5월 21일 대법원에서 승소해 김 할머니에 대한 연명 치료가 중단됐다. 당시 대법원은 “식물인간 상태인 고령 환자의 현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 이뤄지는 연명 치료는 오히려 인간의 존엄을 해하는 것이다”며 “회복 불능한 환자가 자기결정권을 행사하는 것으로 인정되는 경우에는 연명 치료 중단을 허용할 수 있다”고 판결했다.

  익명의 한 병원 관계자는 “실제로 병원에서 연명 치료 중단을 요구하는 가족이 많지만 병원 입장에서는 소극적 안락사도 위법하다는 판례가 있기 때문에 대체로 협조해주지 못한다”고 밝혔다. 이어 “안락사를 고민할만한 상태의 환자는 연명 치료 중지에 대한 의사를 표현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기 때문에 그 요청은 보호자들에게서 들어온다”며 “만약 요청을 받더라도 심의위원회를 거쳐 판단하는데 극히 제한적”이라고 말했다.

  벨기에와 네덜란드
  미성년자까지 안락사 허용해
  안락사를 허용하지 않는 우리나라와는 달리 일부 국가들은 안락사가 합법화돼 있다. 세계 최초로 안락사를 허용한 나라는 네덜란드로 2001년에 합법화를 진행했다. 이어 벨기에, 룩셈부르크, 스위스, 콜롬비아가 안락사를 합법화했으며 지난 6월 17일 캐나다도 안락사를 허용하는 국가가 됐다. 미국은 특정 몇 개 주에서만 안락사를 허용하고 있다. 앞서 말한 휠체어 스프린트 선수 마리케 베르보트는 벨기에 국민으로 2008년에 이미 안락사 준비 서류에 서명한 상태이다. 그녀는 언론을 통해 안락사에 대해 “안락사는 살인 행위가 아니다”며 “만약 내가 안락사 서류를 갖고 있지 않았다면 나는 너무나도 힘든 통증 때문에 자살하고 말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벨기에에서는 얼마 전 17세 불치병 청소년의 안락사도 허용하며 이슈가 됐다. 벨기에는 현재 모든 연령대에 안락사를 허용하는 유일한 국가이며 이번에 안락사로 생을 마감한 17세 청소년은 벨기에에서 미성년자로서는 처음으로 안락사를 선택했다. 안락사를 시행하기 위해서는 전문의 판단과 부모 동의 등 엄격한 요건을 갖춰야 하기는 하지만 전 연령에게 안락사 결정권을 부여하는 것은 굉장히 특수한 경우다. 벨기에 연방 안락사위원회의 빔 디스텔만스 대표는 미성년자 안락사에 대해 “이례적인 일이었다”며 “다행히 안락사를 고려하는 미성년자는 극소수지만 그들이 존엄한 죽음을 선택할 권리를 우리가 거부해도 된다는 뜻은 아니다”고 말했다. 현재 미성년자 안락사를 허용하는 국가는 벨기에와 네덜란드이다. 네덜란드도 미성년자 안락사를 허용하되 나이를 12세 이상으로 제한하고 있다. 김서인(여. 22) 씨(이하 김 씨)는 이러한 미성년자의 안락사 결정권에 대해 “죽음을 맞이하는 일은 나이를 불문하고 누구나 처음 겪는 일”이라며 “죽음을 결정하는 판단에 옳고 그름의 기준으로 ‘나이’를 적용하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루게릭병으로 고통 받던 데이비스는 자신이 사는 미국 캘리포니아 주에서 안락사법이 통과되자 안락사를 택했다. 그녀는 안락사를 앞두고 지인들과 함께 ‘생애 마지막 파티’를 가졌다. 출처 / 인사이트
지난 리우 패럴림픽 여자 휠체어 스프린트 400m에 출전한 마리케 베르보트는 2위로 결승선을 통과하며 은메달을 목에 걸었다. 2000년부터 난치성 척추 질환을 앓아온 마리케는 “매일 밤 남들은 상상도 할 수 없는 고통에 시달리고 있다”며 자신의 안락사 결정을 고백했다. 출처 / dailymail

  여전히 우리나라는
  안락사 찬반 논쟁 중
  보라매병원 사건과 김 할머니 사건이 일어난 지 여러 해가 흘렀지만 여전히 안락사에 대해서 법적, 정치적, 윤리적 입장을 바탕으로 한 찬반논쟁이 벌어지고 있다. 이 찬반논쟁의 핵심 쟁점은 바로 ‘자기결정권’과 ‘생명의 존엄성’ 중 무엇이 우선하는 가이다.

  이에 대해 성기백(남. 23) 씨는 “안락사는 본인의 의사가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며 “본인이 안락사를 원하고 그 의사를 표현한다면 안락사를 해줘야 마땅하다”고 말했다. 이어 “가능하면 혹시나 일어날지 모르는 상황을 위해 안락사에 대한 본인의 의사를 주변인들에게 밝히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며 “의사를 밝히지 않은 사람에 대한 안락사를 가족들이 결정하는 것에 대해서는 더 고민해 봐야 할 문제 같다”고 말했다.

  김 씨 역시 “당사자가 자신의 판단으로 내린 결정이라면 찬성한다”고 주장했다. 또한 소극적 안락사에 대해 “인간이 때가 되면 죽는 것이 당연한데 연명 치료는 이미 수명이 다한 사람을 억지로 붙들어 놓는 것과 다름없다고 생각한다”며 “나 역시 연명 치료로 살아가야 한다면 안락사를 택하겠다고 주변인들에게 의사를 표현했다”고 말했다.

  반면 이 모(여. 22) 씨는 안락사에 반대한다며 “일단 생명이 있다면 생명의 존엄성을 생각해서 살려고 노력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한 “적극적 안락사는 자살과 다를 바가 없다고 생각한다”며 “이는 법을 엄격히 하더라도 범죄에 악용될 우려가 존재하기 때문에 신중해야 할 문제”라고 말했다. 소극적 안락사에 대해서도 “적극적 안락사에 비해 허용의 여지가 있을 수 있겠지만 그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생명의 존엄성이라고 생각해 안락사에 반대한다”고 밝혔다.
 
  한편 우리나라는 올해 2월 ‘환자연명의료결정법’을 제정했다. 무의미한 연명 치료로 고통받는 환자의 고통을 완화하고, 환자의 자기결정을 존중하기 위해 소극적 안락사를 일부 허용하는 법안이다. 암, 후천성면역결핍증, 만성 폐쇄성 호흡기질환, 만성 간경화를 비롯한 일부 질병에만 적용되며 내년 8월 시행될 예정이다.

  인간의 ‘존엄’이 항상 ‘살아있음’에 지켜지는 것은 아닐 수 있다. 그러나 ‘죽음’은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너는 것이기에 쉽게 죽음을 선택하는 것은 분명히 인간의 존엄을 해치는 일이 될 수 있다. 우리나라를 비롯한 세계 여러 국가가 인간의 존엄성을 지키기 위한 하나의 방식으로써 안락사 합법화를 진행하는 상황이다. 앞으로 우리가 안락사 합법화를 향해 내딛는 발걸음이 올바른 길을 찾아갈 수 있도록 이에 대한 충분한 사회적 논의를 지속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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