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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4.3사건과 역사적 트라우마
2016년 09월 28일 (수) 15:37:48 음영철 삼육대학교 자유전공학부 교수 -

  오늘의 책 ‘순이 삼촌’
  소설 ‘순이 삼촌’은 1948년도에 발생한 제주4.3사건의 충격으로 트라우마를 겪는 한 여성, 순이 삼촌의 일대기를 다루고 있다. 순이 삼촌은 평생을 트라우마에 시달리다가 결국은 자살로 인생을 마감한다. 그렇다면 순이 삼촌이 시달렸던 트라우마는 무엇이고 우리에게 어떤 영향을 끼칠까? 또 트라우마는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까?



   

  삼다도(三多島)에 어린 비극
  제주는 예로부터 돌, 바람, 여자가 많다고 해 삼다도라 불렸다. 지금도 제주는 사시사철 많은 관광객이 몰려들어 가히 생명의 땅이라 부를 만하다. 그러나 사실 제주는 척박한 땅이다. 돌이 많다는 것은 그만큼 농사짓기가 어렵다는 뜻이고, 바람이 많다는 것은 태풍의 길목이라는 뜻이다. 여자가 많다는 것은 말해 무엇 하겠는가. 혹여 역사에 관심이 있는 대학생이라면 제주도가 한국전쟁 다음으로 인명 피해가 많았던 한국 현대사의 비극적인 땅이라는 것쯤은 알고 있으리라. 우리의 이야기는 영화 <지슬>로 알려진 제주로부터 시작해보자.
   
영화 <지슬>은 제주 4.3사건을 바탕으로 만들어졌다. 출처/네이버

  트라우마와 역사적 트라우마
  정신건강 영역에서 ‘트라우마(trauma)’란 과도한 위험과 공포, 스트레스 상황에 대한 심각한 심리적 충격을 일컫는 말이다. 따라서 트라우마는 심각한 죽음이나 상해를 입을 위험을 실제로 겪었거나 그러한 위협에 직면했을 때, 혹은 타인이 죽음이나 상해의 위험에 놓이는 사건을 목격했을 때, 이에 대해 강렬한 두려움, 무력감, 공포를 경험한 경우를 의미한다. 이와는 달리 ‘역사적 트라우마’는 그 대상이 개인이 아니라 집단이며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가 한 사회의 이해 불가능한 병리적 현상으로 극단화돼 나타난 경우를 말한다. 따라서 홀로코스트, 난징대학살, 제주4.3사건, 광주민주화운동, 세월호사건 등은 일반적인 트라우마 개념이 아닌 집단적이고 역사적인 개념으로 접근할 필요가 있다. 주디스 허먼은 많은 사람들이 심리적 외상을 준 사건이나 사고를 ‘기억’이 아니라 ‘망각’의 해법으로 풀려고 하지만 그것은 잊으려고 한다고 해서 잊히는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잔학 행위는 묻히기를 거부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망각의 방식으로는 역사적 트라우마를 해결하려는 어떠한 시도도 성공할 수 없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역사적 트라우마의 원인
  역사적 트라우마가 왜 생기는지를 알려면 현기영의 소설 ‘순이 삼촌’을 우선적으로 봐야 한다. 먼저 작품의 줄거리 파악해보자. 작중 인물인 ‘나’는 이틀간의 휴가를 얻어 고향을 방문한다. 8년 만에 찾아간 고향에서 ‘나’는 순이 삼촌이 자살했다는 소식을 듣게 된다. (여기서 순이 삼촌은 남성이 아닌 여성이다. 제주에서는 여성에게도 삼촌이라는 호칭을 쓴다.) 순이 삼촌이 죽게 된 원인은 제주4.3사건이 발생한 3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순이 삼촌은 ‘나’의 할머니에게 맡겨 뒀던 오누이 자식을 데리러 왔다가 빨갱이로 몰려 군인들이 쏜 총탄에 쓰러진다. 그러나 그녀는 구사일생으로 살아난다. 허나 그녀는 평생을 역사적 트라우마에 시달리다가 자살로 생을 마감한다. 역사적 트라우마는 제주4.3사건 때에 기적적으로 생존한 순이 삼촌을 통해 알 수 있듯이 외상 사건과 유사하거나 회상 사건을 상징하는 여러 사건에 노출됐을때 발생한다.

  역사적 트라우마의 증상
  역사적 트라우마에 시달리는 사람들에게서 볼 수 있는 일반적인 증상은 환청, 결벽증, 기피증을 들 수 있다. 이러한 증상은 피해자가 타인의 공격에 대한 방어 기제가 실패한 데서 온 정신 병리로 볼 수 있다. 역사적 트라우마를 앓는 사람들은 상대방이 가볍게 한 말에도 오해를 하거나 피해의식에 시달린다. 예컨대 순이 삼촌은 ‘나’의 아내가 “쌀이 벌써 다 떨어질 리가 있나요?”라고 한 말을 오해하면서 된밥 만들기 강박관념에 시달린다. 쌀이 떨어진 전적인 책임이 자신이 밥을 질게 하거나 눋게 한 데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이는 일종의 결벽증이다. 그런가 하면 이웃집 여인과의 사소한 말다툼을 벌이다 이웃집 여인이 파출소에 가자고 팔을 잡아끌었을 때 순이 삼촌은 그만 주저앉아 버리고 온갖 누명까지 뒤집어쓴다. 이는 기피증에 해당한다. 순이 삼촌의 예에서 알 수 있듯이 역사적 트라우마 증상은 자신을 끊임없이 학대하는 것이 특징이다. 실제로 죽음의 장면을 목격한 제주도민 중에 한 사람은 시체가 자꾸 달라붙는 환상에 시달리다가 결국 죽게 됐다는 증언이 있다.

  역사적 트라우마의 치료
  역사적 트라우마에 시달리는 환자 대다수는 과거의 외상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 ‘외상성 신경증’을 앓고 있다. 프로이트는 ‘쾌락원칙을 넘어서’란 책에서 외상성 신경증이 히스테리와 흡사하지만 정신 기능이 훨씬 더 광범위한 전신 쇠약과 전신 장애의 조짐을 보인다고 말하면서 히스테리의 증상적 특성을 뛰어넘는다고 했다. 물론 모든 사람이 공포를 경험했다고 해서 외상이 생기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제주4.3사건과 같은 국가 폭력으로 가족을 잃어버린 사람들은 반복되는 역사적 트라우마에 시달린다. 이제 이들을 치료할 수 방법을 찾아야 한다.

  첫째, 피해자들을 치료하기 위해서는 심리적 안정을 줘야 한다. 치료자는 환자에게 자율성을 주고 자신이 존중받고 있다는 것을 알게 해야 한다. 주디스 허먼은 안전이 단단히 단속되지 않는 경우 어떠한 치료 작업도 성공할 수 없다고 한다.

  둘째, 애도의 한 과정으로 외상 이야기를 재구성해야 한다. 이는 외상에 담긴 특정한 의미를 파악해 외상 전의 심리 상태를 회복하기 위함이다. 예컨대 순이 삼촌은 집단 학살이 이루어지는 순간에 무엇을 느꼈는지를 구체적으로 말해야 치료의 길이 열린다.

  셋째, 피해자와 공동체 사이의 연결 복구가 있어야 한다. 역사적 트라우마에 시달리는 사람은 역사로부터 소외되고 사회와 단절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따라서 이러한 외상 환자들을 치료하기 위해서는 우리가 역사의 진실을 재발견하는 일에서부터 시작돼야 한다. 늦었지만 제주4.3사건의 진상을 규명하는 ‘제주4.3사건진상규명및회생자명예회복에관한특별법’(약칭 ‘제주4.3특별법’)이 2000년 1월 12일 제정 및 공표된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다.

  제주4.3사건과 기억 투쟁
  우리가 진정으로 역사적 트라우마에 시달리는 피해자를 돕기 위해서는 피해자를 인정하는 사회적 합의가 있어야 하며, 피해자와 목격자가 상호동맹을 맺을 수 있는 공동체의 복구가 있어야 한다. 이러한 노력이 이루어지지 않을 때 망각의 역사는 되풀이되기 때문이다. 이제 더는 제주4.3사건을 제주도민만의 아픔으로 인식하고 그들만의 ‘기억 투쟁’으로 남겨둬서는 안 된다. 순이 삼촌이 나의 삼촌이 되는 그날이야말로, 단재 선생이 말한 “역사를 잊은 민족은 재생할 수 없다”는 말은 기우에 그칠 것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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