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의 칼을 쥔 부드럽고 흰 손을 기다리며
권력의 칼을 쥔 부드럽고 흰 손을 기다리며
  • 덕성여대 기자
  • 승인 2004.05.22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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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헌정 사상 초유의 탄핵 정국도 기각으로 매듭이 지어졌다. 일이란 반드시 옳은 쪽으로 결론에 이르기 마련이라는 성어의 의미를 곱씹게 되는 요즘이다. 탄핵과 총선 정국을 따라 출렁거려온 이 나라 정치판과 사회상을 찬찬히 들여다보면 참으로 재미있다. 어느 외국 기자의 말마따나 말할 수 없이 역동적이어서 한시도 눈을 뗄 수 없게 만드는 게 이 땅의 정치다. 기대를 한 몸에 모았던 젊은 정치인들이나 영향력의 크기에 있어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을 중진들이 한 순간에 뜨거나 가라앉고 감옥과 구치소를 오간다.

 이 모든 잡답(雜沓)을 바라보며 생각하는 바는 오직 한 가지, 도덕성과 인간성의 중요함이다. 크게는 자기가 속한 파당의 이익과 작게는 한 개인의 눈먼 사익에 이르기까지, 의롭지 못한 이익에 눈멀어 몸을 가볍게 판 자는 이제 더 이상 한국의 정치판에서 살아남기가 힘들게 되었음을 이 즈음의 사태가 여실히 증명하고 있기 때문이다. 원리와 원칙을 무겁게 여겨, 한번 대의라 믿었다면 아무리 힘 있는 다수가 밀어붙여도 끝내 흔들리지 않는 것, 그것이 뭇 사람들의 의사를 대변하는 사람들의 기본적인 자세라는 사실도 새삼 분명해졌다.

 이 번 총선 결과를 두고 흔히 40여년만의 진정한 정권 교체라고들 한다. 혹은 김대중 정부로부터 시작된 이 땅 민주화의 긴 여정이 이제 마무리의 본 길로 접어들었다고도 한다. 아닌 게 아니라 금번 총선과 탄핵 기각 과정에는 그런 관점을 뒷받침해줄 소재들이 얼마든지 널려 있다. 특히 김종필의 몰락과 한나라당의 지역 정당화는 그 대표적 보기일 뿐이다. 하지만 이러한 일련의 변화들을 정치적 입장으로만 좁혀 보아서는 안 된다. 그보다 깊이 우리 사회의 밑바닥을 타고 흘러온, 친 박정희 정서와의 결별이라는 측면이 보다 강조되어야 마땅하다. 박정희 파시즘의 대변인 구실을 자임한 얼치기 소설가, 심지어 이 땅 파행적 민주주의의 득을 가장 많이 입어 단 한 번도 제대로 정치인으로서의 자격이 있는지 없는지 검증조차 받지 않고 일개 공당의 대표가 된 박정희의 맏딸까지 나섰지만, 결과는 참패였던 것이다. 우리 사회의 구석구석에 잠복해 있다가, 정치적 경제적 위기의 시기마다 슬그머니 나타나 그 위기 국면에 기름을 붇곤 하던 박정희 신드롬의 실체가, 기실은 특정 지역 특정 계층의 이익과 면밀히 결부되어 있음을 만천하에 드러낸 채, 이제 박정희는 실체로서 죽었다.

 이 시대를 끌고 갈 민의의 대표들은 반드시 기억해야 한다. 일개 정파니 정당이니 하는 것들은 결코 영원할 수 없다는 사실 말이다. 특히 여당의 입장에서 일을 꾸려갈 사람들에게 이 점은 더 엄혹히 제기되어 마땅한데, 엄격한 도덕성과 인간성만이 지나간 역사의 미아들, 혹은 반성할 줄 모르는 도덕 불감아들의 우위에 서는 길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부드러운 권력의 힘이 얼마나 근원적일 수 있는지를 깨달아 실천하는 모범 사례를, 이 땅에서 기대하게 되었다는 점만으로도 이 봄은 이미 충분히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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