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힐러리 클린턴 낙선과 ‘부끄러운 트럼프 지지자’
예측하지 못한 결과는 개표로 나타난 ‘부끄러운 트럼프 지지자’ 때문?
2016년 11월 24일 (목) 18:19:42 김준석 동국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 -
  지난 11월 8일 제45대 미국 대통령 선거가 진행됐다. 개표 결과 놀랍게도 온갖 구설수에 올랐던 트럼프가 당선됐다. 개표 전 힐러리 당선 확률을 90% 이상으로 예상했던 것과는 반대되는 결과였고 예측하기 못했던 결과에 적지 않은 사람들이 당황했다. 예측과 한참 빗나간 여론조사는 ‘부끄러운 트럼프 지지자’가 있었기 때문일까, 여론조사 회사와 전문가들의 변명일까.

  지난 11월 9일 열린 미국 대선에서 공화당의 도널드 트럼프 후보가 민주당의 힐러리 클린턴 후보를 꺾고 차기 대통령으로 당선됐다. 전 세계도 놀랐고, 특히 우리가 더 많이 놀랐던 것 같다. 필자는 도널드 트럼프의 당선을 올해 초부터 예측하고, 이를 외교부 등 정부기관에 전달하긴 했었지만 막상 그 예측이 현실이 되자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온갖 막말과 기행으로 동네 저잣거리 불량배처럼 보이던 트럼프가 세계 초강대국의 최고 권력자가 되다니? 불과 선거 하루 전만 해도 뉴욕타임스는 힐러리의 당선 확률이 90%를 훌쩍 넘긴다고 하지 않았던가? 심지어 힐러리는 당선을 넘어 내각을 어떻게 짤 것인지를 고민하고 있다고 했었다.

  ‘숫자에 눈이 멀어, 맥락을 보지 못했다.’ 이번 미국 대선에 대한 언론과 미디어의 예측 실패의 원인은 이렇게 정리할 수 있을 것이다. 사실 시시각각 쏟아지는 여론조사나, 도저히 미국 대통령으로서는 적합하지 않을 것 같은 트럼프의 막말·선동·스캔들만 접어놓으면, 전체 선거 판세는 힐러리에게 대단히 불리한 선거였다. 일단 민주당이 세 번 연속으로 대권을 쥔다는 것 자체가 대단히 어렵다. 2차 대전 이후 단 한 차례만 가능했다. 더구나 (아직까지는) 백인의 나라인 미국에서 흑인대통령 8년에 이어, 여성 대통령 4년까지 연속된다는 것은 큰 벽을 두 번 뛰어넘는 것이 된다.
   
이번 미국 대선에서 공화당의 도널드 트럼프(우)가 당선됐다.   출처/sbs

  필자는 ‘트럼프가 이겼다’기보다는 ‘힐러리가 졌다’고 본다. 백악관 퍼스트레이디, 연방 상원의원, 국무장관이라는 화려한 경력에 눈멀었지만, 본질적으로 힐러리는 낡은 정치인일 수밖에 없었다. 최근 미국 대선에서 민주당이 대통령으로 당선시킨 후보들은 중앙정치에 비교적 ‘새로운’ 인물들이었다. 힐러리가 남편 빌 클린턴 대통령의 정치적 파트너이자 퍼스트레이디로 백악관에 처음 들어간 것이 1992년, 이 글을 읽는 대부분의 학생들은 태어나지 않았거나, 아무리 넓게 잡아도 취학 연령이 되기 전일 것이다. 자신의 유년기 대통령 이름이 클린턴이었고, 20년이 훌쩍 지난 2016년 미국 대통령 후보 역시 클린턴이라면? 일단 지지를 망설일 것이다. 빌 클린턴은 경제적 호황이라는 플러스 요인과 함께 르윈스키 사건으로 의회의 탄핵 표결까지 몰렸던 논란의 인물이다. 더구나 그의 자녀도 아닌 배우자가 20년 뒤에 대통령이 되겠다고 나선다면 쉽게 지지가 가능하겠는가? 청년층이 트럼프가 아무리 싫다고 해도 힐러리 역시 온전히 지지하기 어렵다.

  ‘유리천장(glass ceiling)을 깨뜨리자’는 힐러리의 핵심 공약이다. 미국 사회에서, 특히 미국 정치권에서 여성에게 씌워졌던 보이지 않는 차별의 벽을 깨고 최초의 여성 대통령이 되겠다는 주장이다. 여성 대통령은 당위를 넘어 현실이다. 시간의 문제일 뿐 여성 대통령은 나올 것이다. 힐러리의 실패는 자신이 그 유리천장을 깨뜨리는 데 현재 가장 가능성 높은 사람이란 것 외에는 왜 힐러리여야 하는지, 그 이후 무엇을 할 것인지에 대해 유권자를 설득하지 못한 데 있다. 선거 내내 힐러리가 강조한 것은 ‘자신은 트럼프가 아니다’라는 점이었다. 그녀의 선거구호인 ‘함께 하면 강하다(Stronger Together)’ 역시 ‘분열주의자’ 트럼프와의 대비 효과 외에는 무엇을 하겠다는 비전을 전달하지 못한다.

  힐러리의 낙선은 실패한 선거 전략과 후보자 본인 및 선거캠프의 무능에도 기인한다. 힐러리 개인의 능력과 성취를 폄하하지 않는다. 힐러리는 대단한 성공을 거둔 여성 정치인이며, 여성의 참여에 대단히 차별적이고 적대적인 환경에서 대단한 성취를 거둔 인물이다. 하지만 2016년 선거에서는 대단히 무능했다(그리고 2008년 선거에서도). 일 년이 넘게 힐러리의 발목을 잡은 이메일 스캔들은 생각보다 심각한 사안은 아니었다.힐러리가 국무장관으로 재직하던 당시, 정부 계정과 더불어 사적 계정을 통해서도 보고를 받고 지시를 내렸다는 것이다. 물론 정부 공문서가 사적 이메일을 통해서 오갔고 중요한 기밀이 포함될 수 있었다는 점에서 문제가 있지만, 반대편의 트럼프에 비하면 사소한 것이요, 초기에 그 실수를 인정하고 해결할 수 있는 사안이었다. 위법행뉘 자체를 부인하고, 덮고, 넘기려 하다 보니 무리한 방법들이 동원되고 종국에는 힐러리 후보에 대한 신뢰의 문제로 연결됐다. 선거 전략도 지나치게 안이한 것이었다. 2012년 오바마의 재선성공에 고무됐는지, 그 성공 전략을 그대로 가져와 재현하려 했다. 여성과 청년층, 그리고 흑인, 히스패닉, LGBT 등 미국 사회의 다양한 소수계(minority)를 엮어 ‘무지개 연합(rainbow coalition)’을 한 번 더 시도했다. 4년 전의 전략이 다시 그대로 통할 리 없고, 힐러리는 오바마처럼 지지계층을 강하게 추동하지 못했다. 결국 힐러리는 흑인과 히스패닉 유권자 층에서 오바마보다 적은 지지를 받았다.

  세간의 차가운 시각과 우스꽝스러운 희화화와 달리 트럼프 후보가 적어도 선거에서는 대단히 강한 후보였던 점도 간과해서는 안 된다. 다른 후보라면 진작 경선에서 탈락했을 만한 온갖 설화와 추문, 차별적 언사와 공약에도 트럼프의 지지는 거의 40%를 유지했다. 선거가 막장으로 치닫고, 누가 더 지지층을 투표장으로 끌어올 수 있느냐가 관건인 동원선거에서는 더욱 힘을 발휘한다. 또한 트럼프는 예선에서 부시 가문의 적자인 젭 부시(Jeb Bush) 플로리다 전 주지사를 꺾고 후보가 됐다. 부시 가문은 지난 30년 미국 대통령을 세 차례 배출한 정치 명문으로 공화당의 실질적 대주주다. 반면 트럼프는 공화당 당적을 취득한 것도 얼마 되지 않아 당내 기반이 전혀 없었다. 공화당 예비선거에서 부시 가문을 이기는 것과 본선에서 상대당의 클린턴 가문을 이기는 것 어느 것이 더 어려운 일일까?

  예측과 달랐던 선거 결과를 놓고 여전히 원인 찾기는 계속된다. 가장 쉬운 설명은 소위 숨은 표가 있었다는 것이다. 그 숨은 표의 정체는 평소에는 트럼프를 지지하지 않는 척 하다가 정작 투표일의 장막 뒤에서는 트럼프에 표를 던지는 백인 유권자라고 한다. 백인 기득권을 유지하고 싶은 속마음을 감추고 겉으로는 정치적 올바름(political correctness)을 내세우는 백인의 으스스하고 이중적인 모습이 연상될 것이다. 이들을 소위 ‘부끄러운 트럼프 지지자(Shy Trump Voters)’라고 한다. 예측하지 못한, 받아들이기 힘든 결과에는 이런 설명이 잘 먹히는 것 같긴 하다. 하지만 다시 생각해보자. ‘부끄러운 트럼프 지지자’가 과연 있었을까? 아니면 애초에 여론조사 자체가 잘못된 여론을 잡아내고 있었다고 생각해 보는 것은 어떨까? 트럼프 지지 여론은 그대로 있었는데, 여론조사가 이들을 간과해서 제대로 잡아내지 못한 것이라면? 그리고 ‘부끄러운 트럼프 지지자’라는 것이 ‘응답자들이 거짓말을 하기 시작하면 여론조사는 틀릴 수밖에 없다’는 식의 여론조사 회사와 ‘속칭’ 전문가들의 변명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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