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사 퇴임기자들은 무얼 하고 있을까?
신문사 퇴임기자들은 무얼 하고 있을까?
  • 김유빈 기자, 박소영 기자
  • 승인 2016.11.24 18:5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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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배들의 인생 엿보기

  1967~1969년도 기자
  최명은 선배님
  현재 무슨 일을 하고 계세요?
  지금 저는 뉴욕에 살고 있어요. 학교를 졸업한 뒤 1976년 3월에 미국으로 이민을 갔어요. 당시 월남전이 끝나고 미국에는 의료인이 부족했기 때문에 전 세계적으로 외국인 의사를 고용했던 시기였죠. 저는 약대, 제 남편은 의대를 졸업했기 때문에 미국으로 이민을 갈 수 있었어요. 미국에서 남편이 의사로서 자리를 잡는 동안 저는 뉴욕 주에서 공무원으로 일을 했어요. 지금은 나이가 들어서 살림을 하고 있죠. 요새는 그림도 그리고 소설도 쓰고 있어요.

  기자의 길을 선택하시지 않은 이유는 무엇인가요?
  당시 현직 기자들에게 기자 제의를 받기는 했어요. ‘자리는 있으니 원서만 내라’고 연락이 왔었죠. 그렇지만 저는 미국이 더 좋아서 미국으로 향했어요. 한국에서의 생활이 답답했고 더 넓은 곳으로 가고 싶었어요. 당시에는 특권층이거나 유학 시험을 따로 보지 않는 이상 미국으로 나갈 수 있는 길이 없었어요. 약사 이민의 길이 열리고 졸업 후에 바로 허가를 받아서 미국으로 오게 된거죠.


  신문을 발행하면서 학교의 검열을 받아본 적이 있으신가요?
  당시엔 기자들이 자가 검열을 했던 것 같아요. 지금 와서 그때의 신문을 보니 ‘우리가 참 소심했구나’하는 생각이 들어요. 저희는 전쟁 이후에 태어나서 공산주의가 얼마나 무서운지 세뇌된 상태로 살았잖아요. 그래서 스스로 검열하는 버릇이 있었나 봐요. 얼마 전 최근 발행된 덕성여대신문을 몇 부 가져가서 읽었어요. 현재 덕성여대 학생들은 정신이 살아있는 것 같아요. 신문을 보면서 ‘기자가 이 정도는 돼야지’ 생각했어요(웃음).

  신문사에서의 경험이 삶에서 도움이 된 경우가 있나요?
  제가 살던 동네에 한국 사람들이 몇몇 살았는데 서로 알 길이 없었어요. 그래서 소식지를 만들기로 결심했죠. 생각이 맞는 사람들이 모이다 보니 가톨릭대 학보사에서 편집장을 했던 사람도 있었고 이화여대 학보사에서 편집장을 했던 사람도 있었어요. 저까지 셋이 중심이 돼서 소식지를 만들기 시작했어요. 다니던 교회에서도 1년에 네 번 ‘샘터’라는 교회 책자를 만들었어요. 교인들의 간증이나 교회에서 일어나는 일, 목사님 소개 등을 싣는 책자를 만드는 일을 몇 년간 했어요. 신문사 경험이 토대가 됐기 때문에 할 수 있었던 일이었죠. 뉴욕 주에서 공무원으로 일했을 때 역시 영어로 된 소식지를 만드는 일을 하기도 했어요. 이처럼 신문사 경험이 제 삶 구석구석에서 도움이 됐어요. 세상에 대한 호기심이 추진력이 됐죠. 무엇보다도 기자를 했기 때문에 판단력과 비판력이 생긴 것 같아요.

  신문사 후배들에게 해주고 싶으신 말씀이 있다면요?
  최근에 세상이 뒤집어지고 있잖아요. 뒤집어지면 다치는 사람이 많아요. 태풍 같은 거죠. 세상은 서서히 변화해야 해요. 그리고 그때 사람들의 의식을 서서히 깨우는 역할을 미디어가 해야 합니다. 그런 역할을 하려면 기자들이 깨어있어야 하고, 깨어있으려면 역사와 사회 공부를 정말 많이 해야 해요. 내가 이전에 썼던 기사들을 보면 ‘내가 정말 무식했구나, 무식하면 용감하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요. 그 당시에는 몰랐지만 그때의 경험이 지금의 제가 눈을 뜨는 계기가 됐고 크게 깨달을 수 있는 계기가 된 거예요. 여러분도 잘 해보라고 말해주고 싶어요.

  2012~2013년도 기자
  손혜경 선배님
  현재 무슨 일을 하고 계세요?
  저는 정치외교학을 주전공으로, 스페인어를 복수전공으로 공부했어요. 처음에는 호기심으로 스페인어를 배우기 시작했고, 이왕 배운 거 제대로 해보자는 생각에 스페인에서1년 동안 교환학생 생활도 했죠. 그렇게 인연이 이어지다 보니 지금은 스페인 바르셀로나 현지 투어 업체에서 가이드 업무를 맡고 있어요. ‘가이드’라 하면 어떤 일인지 이해가 잘 되실 테지만, 저는 바르셀로나를 이야기하는 ‘스토리텔러’라 표현하고 싶어요. 큰 단체를 인솔하고 관광지를 소개하기보다는 지식을 스토리화해 전달하고 여행에서의 만족과 감동을 극대화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이제 갓 반년을 채운 사회 초년생이지만 현재 제 일에, 그리고 이곳 환경에 만족하며 즐겁게 생활하고 있어요.

  기자의 길을 선택하시지 않은 이유는 무엇인가요?
  많은 친구들이 제가 학보사 편집장까지 했으니 언론사 취업을 원한다고 생각했지만 졸업 후 그쪽 일을 진지하게 고민해본 적은 없어요. 물론 새내기 시절 기자라는 직업에 선망과 막연한 바람으로 덕성여대신문사에 들어간 건 사실이에요. 하지만 대학생활 4년 중, 반 이상 신문사 생활을 하며 느낀 건 웬만한 열정과 사명감 없이는 기자가 될 수 없고, 돼서도 안 된다는 것이었어요. 사실 신문사 생활을 했다고 해서 꼭 관련된 일을 해야만 하는 건 아니라고 봐요. 저는 그런 생각이 오히려 미래의 다양한 가능성을 제한한다고 생각했거든요. 신문사에서 배우는 건 비단 글을 잘 쓰고, 취재를 잘 하는 방법뿐만이 아니라 어떻게 사람을 대하고 사회에 대한 통찰력을 가져야 하는지 등 기본적이지만 쉽게 배울 수 없는 것들이었어요.

  신문사에서의 경험이 삶에서 도움이 된 경우가 있나요?
  지금까지도 가장 큰 도움이 되는 건 넓은 시야를 갖게 해줬다는 거예요. 만약 신문사에 들어가지 않고 학업에만 열중했다면 저는 좁은 시야로 사회에 나왔을 거예요. 하지만 신문사에서 많은 사람들을 만나 깊은 이야기를 나누고, 새로운 분야에 대한 지식을 넓혀가고, 썩 반갑지만은 않았던 사건·사고를 겪으면서 같은 것을 봐도 시야의 폭과 깊이가 커졌다는 생각이 듭니다. 또 기사를 많이 쓰고, 다듬고, 읽었던 경험이 지금 가이드 일을 하면서 빛을 발하는 것 같아요. 가이드에게 있어서 말을 조리 있게, 논리적으로 잘 풀어내는 능력이 중요한데 글쓰기와 말하기는 비슷한 점이 많거든요. 글쓰기 훈련을 많이 한 덕에 나만의 스토리텔링을 방법을 더 쉽게 터득해가고 있어요.

  신문사 생활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추억이 있으신가요?
  기자들의 체취가 남아있는 소파는 아직도 그대로인가요? 그곳에서 편집 중간중간 쪽잠도 자고 졸린 눈을 비비며 교정도 봤었는데 말이죠. 그때는 정말 힘들었지만 지금 생각해보니 재미있는 추억이 됐네요. 취재를 하다 보면 다양한 일들이 생기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기억에 남는 건 내내 붙어있던 동기, 선배, 후배들과의 추억이에요. 팍팍했던 신문사 생활과 취재원들의 냉대 속에서도 신문사 가족들과 함께 머리를 맞대고 먹는 짜장면 한 그릇이면 힘이 났죠. 신문사 엠티도 기억나네요. 엠티의 설렘은 없었지만 ‘덕성여대 도서관 402호’에서 벗어난다는 사실만으로도 즐거웠죠.

  신문사 후배들에게 바라는 점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남들이 잘 선택하지 않는 길에 들어서서 꾸준히 잘 해내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더 바랄 것이 없습니다. 욕심내서 딱 하나만 바라자면 책임감과 사명감, 이 두 가지요. 기자 한 명 한 명이 곧 덕성여대신문사라는 책임감과 사명감으로 아주 오래 전부터 선배들이 만들어 놓은 역사를 잘 이어줬으면 좋겠어요. 또 덕성여대신문사 기자라는 자긍심을 항상 마음에 품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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