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미러]이 땅에 발붙이기 위해서는
[백미러]이 땅에 발붙이기 위해서는
  • 박소영 기자
  • 승인 2017.02.27 14:2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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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 돼요! 싫어요!” 우리가 어렸을 적부터 성폭력을 ‘예방’하기 위한 방법으로 따라 외치던 말이다. 모든 범죄가 그렇지만 특히나 성폭력은 피해자가 가해자보다 약할 경우 더 쉽게 일어날 수 있다. 따라서 힘이 약한 어린이들은 성폭력 가해자의 대상이 되기 쉽고 그러한 이유에서 아이들은 낯선 사람이 함께 가자고 하거나 누군가 자신의 몸을 만질 경우, 이렇게 외치라고 배운다. “안 돼요! 싫어요!”

  물론 자신의 의사를 표현하는 일은 대단히 중요한 것이지만 아이들이 “안 돼요! 싫어요!”라고 말한다고 해서 범죄자들이 아이들을 상대로 끔찍한 짓을 저지르지 않으리라는 보장은 없다. 우리사회는 아이들에게 이런 식으로 가르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게 있다는 것을 알지 못하고 있는 듯하다. 아이들에게 ‘안전한 환경, 범죄가 없는 세상’을 만들어주는 것. 그것이 아이들에게 “안 돼요! 싫어요!”라는 말을 가르치는 것보다 더 바람직하다는 걸 알아야 할 필요가 있다.

  또 다른 상황을 생각해보자. 지하철에 짧은 치마를 입은 여자가 있고, 그 여자의 다리를 몰래 찍는 남자가 있다. 사람들은 당연히 범죄 행위를 하는 남자에게 비난의 목소리를 내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여자 역시 ‘원인’을 제공했다며 욕을 먹는다. “네가 짧은 치마를 입어서 그런 일을 당한 거다”, “앞으로 짧은 치마는 입지 마라” 직접적인 성폭행의 경우도 다르지 않다. 노출이 있는 옷을 입은 여자가 성폭행을 당하면 불쌍하게 여기면서도 “그러게 누가 그런 옷을 입으래? 앞으로는 조심해라”라는 말을 서슴지 않고 내뱉는다. 힘없이 걸으면 성폭행 대상이 되기 쉽기 때문에 밤에 혼자 걸을 때는 씩씩하게 걸어야 한다는 말을 여러 번 들은 적이 있다. 이 말을 들을 때면 ‘대체 왜 우리가 걷는 것도 신경 써야 할 정도로 무서운 세상을 살아가야 하나’하는 생각이 들지 않을 수 없다.

  교육부가 만든 ‘학교 성교육 표준안’ 역시 논란의 중심에 놓였다. 성교육 표준안을 살펴보면, 성폭력이 발생하는 상황과 그 상황에서의 대처방법이 소개돼 있다. ‘이성친구와 단둘이 있을 경우에는 이성친구와 단둘이 있는 상황을 만들지 않는다’, ‘친구들끼리 여행을 갔을 경우에는 친구들끼리 여행을 가지 않아야 한다’, ‘만원 지하철에서는 가방끈을 뒤로 길게 매고 실수인 척 발등을 밟는다’, ‘조건이 좋은 알바의 경우 가급적 알바를 하지 말고 유난히 조건이 좋은 알바를 믿지 않아야 한다’ 이런 식의 접근은 결국 우리에게 ‘아무것도 하지 말고 집 안에 가만히 있어라’라고 하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

  결국 “안 돼요! 싫어요!”라고 말하는 것, 노출이 심한 옷을 입지 말라는 것, 씩씩하게 걸으라는 것, 그리고 교육부의 성교육 표준안 모두 피해자 중심의 문제해결 방식이다. 이러한 피해자 중심의 문제해결 방식은 ‘원인제공’이라는 명목으로 피해자가 자신이 겪은 일의 원인을 스스로에게 돌리게 한다. 그러다 보니 자신의 피해사실을 당당히 말하지 못해 속으로 끙끙 앓고 그 상처는 곪아서 터져버린다. 스스로 목숨을 끊거나, 사회에 당당하게 나서지 못한다. 피해자들은 늘 이런 생각을 할 것이다. ‘내가 정말 그런 일을 당할 정도로 잘못한 걸까?’ 당연히 아니다. 그렇지만 여전히 우리사회에서 피해자는 당당하지 못하고, 피해자도 잘못이 있다는 논리로 문제를 해결하려 한다.

  바람직한 교육방향은 아주 쉽다. ‘성폭행을 하면 안 된다. 강간을 하면 안 된다’고 가르치면 된다. 그 누구도 우리에게 ‘길을 가다가 차에 치일 수 있으니 밖에 나가지 마라’, ‘지진이 나면 죽으니까 공중에 떠있어라’고 터무니 없는 말을 하지 않는다. 사람이 차에 치이지 않도록 하고 지진이 나도 살아남을 수 있도록 안전망을 구비해 놓는 것이 제대로 된 해결책이라는 걸 모두 알고 있다. 성교육 역시 마찬가지다.

  짧은 치마를 못 입게 하고, 친구들과 여행을 못 가게 하는 것은 ‘진짜 해결책’인 것 마냥 손에 잡힌다. 그러나 지금 우리사회의 문제해결을 위한 알고리즘은 어딘가 어긋나 있다. 그런 1차원적인 해결책으로는 안전한 사회를 만들 수 없다. 모든 사람들이 이 땅에 발붙이기 위해서는, 이 사회에서 안전하게 살아가기 위해서는 결국 그 문제를 일으키는 ‘진짜 원인’을 잡아내야 한다. 가해자 중심의 문제해결, 가해자 중심의 사고가 이뤄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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