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칼럼]행복한 돼지
[학생칼럼]행복한 돼지
  • 서정아 (국어국문 2) 학생칼럼 위원단
  • 승인 2017.02.27 14:3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매년 종강과 함께 나는 다짐했다. 개강 때는 소위 말하는 ‘개강 여신’이 돼 금의환향 하겠다고. 그리고 길면서도 짧은 듯한 방학은 머리의 양식이 되고 마음의 양식이 돼, 급기야는 뱃살까지 부풀리고야 만다. 그래도 괜찮다. 뱃살쯤이야 옷 사이로 묶어 넣어 보이지 않게 감추면 된다고, 나는 그날 밤에도 치킨을 시켜 먹는다. 나에게로 날아오는 닭은 오늘 하루 정도는 괜찮다고 다독인다. 괜찮아. 너만 먹는 거 아니야. 그러니 이토록 맛있는 나를 포기하지 마.

  개강이 2주 남은 시점. 거울을 보고 생각에 잠긴다. 두 손 위에 담긴 지방이들을 만지작거리며 긴급대책을 마련해야겠다고 중얼거린다. 이대로는 안 되겠다고 급하게 다이어트를 시도하지만 두 달이 넘는 시간 동안 뒹굴뒹굴하던 몸뚱이가 한 번에 말을 들을 리 없다. 그렇게 나는 부푼 몸을 껴안고 개강을 맞이한 지만 2년째였다.

  내가, 그리고 나와 같은 수많은 여성이, 분기마다 개강 맞이 외모 가꾸기에 신경 써야 했던 이유는 무엇일까. 남학생이 개강을 맞이하며 외모를 가꾸는 일이있던가. 그네들이 좋은 피부, 깨끗하게 정돈된 머리, 잘 마무리된 화장, 갖춰 입은 복장 상태를 요구받은 일이 있던가. 비슷한 맥락의 강압이 존재했을지라도 여성에게 부과되는 의무적인 수준은 아니었을 것이라고 나는 감히 자신할 수 있다. 분명 우리사회는 여성에게 더 엄격한 외모 기준을 적용하고 있다.

  그리고 페미니즘에 제대로 눈을 뜨게 된 지 이제 겨우 2년째, 나는 그제야 여성이 직면한 근본적인 불평등과 마주하게 됐다. 이를테면 다이어트를 비롯한 모든 외모 관리 행위들의 기저에 깔린, 여성을 상대로 한 폭력적인 사회적 학습 같은 것들 말이다. 엄밀히 따지자면 건강상의 이유로 진행하는 행위가 아닌 이상, 모든 외모 관리는 자기만족의 범주에서만 바라보기는 어렵다. 누군가 무인도에 홀로 떨어져 있다면, 그가 보기 좋은 상태로 지내야 한다는 것이 대체 무슨 상관이 있겠는가. 심미적인 요소는 결국 누군가의 평가가 존재할 때 가치가 생기는 법이다. 외모 관리를 하며 얻는다는 그 ‘자기만족’도 결국 타인에게 외모 권력을 행사할 수 있다는 데서 생기는 ‘자신감’과 분리해 놓고 보기는 힘들다는 뜻이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지금 하고 있는 다이어트나 피부 관리를 당장에 그만 둘 필요는 없다. 그 행위를 함으로써 당신이 행복하다면, 우선은 그것으로 된 것이다. 행복하자고 사는 인생이 아니던가. 행복하지 않은 당신이라면(지금 당장은 행복한 당신도), 한걸음 뒤로 물러나 천천히 생각해 보자. 자기만족을 위해서 하는 모든 외모 관리에는 결국 사회적 학습이 존재하고, 그러니 그 행위 자체가 오로지 본인만을 위해서 존재하지는 않는다는 것을.

  그래서 나는 오늘도 치킨을 시키고, 행복한 돼지가 되기로 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 서울특별시 도봉구 삼양로144길 33 덕성여자대학교 도서관 402호 덕성여대신문사
  • 대표전화 : 02-901-8551, 8558
  • 청소년보호책임자 : 고유미
  • 법인명 : 덕성여자대학교
  • 제호 : 덕성여대신문
  • 발행인 : 김건희
  • 주간 : 조연성
  • 편집인 : 고유미
  • 메일 : press@duksung.ac.kr
  • 덕성여대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덕성여대신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press@duksung.ac.kr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