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수칼럼]<더러운 잠>, 여성비하인가 반달리즘인가
[교수칼럼]<더러운 잠>, 여성비하인가 반달리즘인가
  • 정무정 미숙사학과 교수
  • 승인 2017.03.13 21:0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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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865년 5월초 프랑스 파리에서 개막된 살롱전은 마네의 <올랭피아>를 보기 위해 모여든 관중들로 북새통을 이뤘다. <올랭피아>는 흰 시트로 덮인 침대 위에서 커다란 베개에 기대 누워있는 누드 여인과 꽃다발을 전해주는 흑인 하녀 그리고 침대 발치에서 꼬리를 곧추 세운 검정고양이가 등장하는 그림으로, 누드 여인이 살롱전의 단골 소재였고 <올랭피아> 자체도 16세기 이탈리아 화가인 티치아노 베첼리오의 <우르비노의 비너스>의 구도를 따랐다는 점에서 외견상 논란의 소지는 없어 보였다.

  그러나 <올랭피아>를 본 관객의 반응은 실소와 조롱 그리고 야유에 이르기까지 했다. 심지어 충격을 받은 관객의 도발적 행동을 염려해 주최 측은 작품을 출입구 위쪽의 잘 보이지 않는 곳으로 이전하고 경비를 세워 두기까지 해야 했다. 비평가들의 반응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올랭피아>를 다룬 70여 편의 리뷰는 거의 모두 노골적인 적대감을 드러냈다. 부도덕하고 저속하다는 비판은 점잖은 편에 속했고, ‘영안실의 시체’, ‘호텐토트의 비너스’, ‘암컷 고릴라’, ‘침대 위의 원숭이’ 등과 같은 자극적 표현이 난무했다. 이러한 반응은 당대의 관객과 비평가들이 <올랭피아>를 분석적, 비평적 관점에서 보거나 기술할 수 없는 공황상태에 내몰린 상황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외견상 무난해 보이는 <올랭피아>에 쏟아진 적대적 반응의 이유로는 아카데미의 전통에서 벗어난 새로운 제작기법, 전원의 풍경 속에 등장하는 이상화 된 여신이나 천사가 아닌 실제 매춘부의 묘사, 그리고 수동적으로 대상화된 모습이 아닌 관람자를 당당하게 바라보는 주체적 모습 등이 거론된다. 특히 점잖은 교양인을 자처하는 부르주아 남성관객과 비평가들에게 <올랭피아>의 도발적 시선은 미를 감상하는 전시공간에서 자신들의 일상의 일부인 매춘을 맞닥뜨리게 함으로써 그들의 도덕적 위선을 들춰내는 효과를 발휘했다. 이 효과가 바로 그들이 <올랭피아>를 보며 공황상태에 빠진 채 자극적 표현을 남발해야 했던 결정적 이유일 것이다. 이렇게 본다면 <올랭피아>의 몸은 단순히 여성의 누드가 아니라 당대 부르주아 계층의 의식을 비추는 거울이었다고 할 수 있다. 이후 세잔, 피카소, 뒤뷔페, 래리 리버스, 야수마사 모리무라 등 무수히 많은 미술가들이 마네의 <올랭피아>를 젠더, 계급, 인종의 맥락에서 패러디한 것도 우리들의 의식 내에 자리 잡고 있는 위선과 차별의식을 들춰내려는 시도였다.

  흥미롭게도 2017년 1월 20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 1층 로비에서 개최된 <곧, 바이!>라는 시국비판 풍자전시회에 출품된 이영구의 <더러운 잠>을 둘러싸고 150년 전 파리의 상황이 재연됐다. 마네의 <올랭피아>를 패러디한 <더러운 잠>에는 대통령의 얼굴과 조르조네의 비너스 몸이 합성된 누드 여인이 침대 위에 누워있고 비선실세 최순실이 침몰하는 세월호를 배경으로 주사기 다발을 든 모습으로 그려져 있다.

  150년의 시간이 흘렀건만 <더러운 잠>을 둘러싼 논쟁은 <올랭피아>의 그것에 못지않은 양상을 보였다. 어느 보수단체 회원은 “대통령과 국회와 국민과 여성을 모욕하고 성희롱했다”고 주장하며 <더러운 잠>을 파손했고, 여성단체에서는 정치비판을 넘어선 여성비하라는 성명을 발표했으며 정치권에서도 풍자를 가장한 인격모독과 성희롱이라며 비판의 날을 세웠다. 장소를 알선해준 어느 의원은 소속정당의 당원정지 6개월 징계처분을 수용하며 정치적 파장을 잠재우기에 급급했다.

  150년 전에도 거론되지 않았던 여성비하의 문제가 불거진 이유는 아마도 한국사회에서의 여성의 지위와 연관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올랭피아>의 몸이 여성의 누드가 아니라 관람자의 의식을 비추는 거울이었다는 점을 고려할 때, <더러운 잠>을 여성비하의 시각으로만 바라보는 것이 타당한지 의문이다. 전시장소가 국회의원회관이었다는 점에서 주최 측이 타깃으로 한 관객은 국회의원 내지 입법부 관계자들이고, 따라서 <더러운 잠>에 등장한 누드여성의 몸은 비선실세에 놀아난 행정부를 제대로 견제하지 못한 입법부의 무능과 나태함을 비추는 거울이지 않았을까?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한바탕 해프닝 속에 반달리즘의 희생양이 된 <더러운 잠>이 우리사회의 표현의 자유와 시각적 문해력(visual literacy)의 수준을 가늠해볼 수 있는 시금석이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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