엉터리 고집
엉터리 고집
  • 정혜원 문화학술부장
  • 승인 2017.04.14 1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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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3월 12일 SBS에서 방영한 <SBS 스페셜-사건번호 2016헌나1> 편에서는 박 전 대통령의 탄핵 심판을 바라보는 국민들의 다양한 모습이 담겼다. 그 중에서도 매주 토요일 촛불집회에 나가는 딸과, 탄핵반대집회에 나가는 그녀의 어머니에 관한 에피소드는 매우 인상적이었다. 부모와 자식, 서로 다른 세대들이 정치적 견해로 대치하는 것은 낯선 풍경이 아니다. 기자와 기자의 어머니 역시 항상 같은 이유로 서로에게 날을 세우곤 한다.

  기자가 박 전 대통령을 비판할 때면, 어머니는 항상 기자에게 ‘불쌍한 영애다’ ‘어릴 적 부모를 잃어서 정신적으로 불안한 것이다’라며 그녀를 옹호하시곤 했다. 처음에는 어머니의 이런 의견들이 마냥 싫었다. 그러다 계속되는 의견 차이에 ‘과연 무엇이 어머니를 이렇게 만든 것일까?’라는 생각에 도달했다. 그러다가 우연히 어머니의 핸드폰으로 도착한 한 통의 메시지를 본적이 있는데, 메시지의 내용은 충격적이었다. 교묘하게 짜깁기 된 정치인들의 발언에서부터, 불안감을 증폭시키는 헛소문들이 사실인 양 전파되고 있었던 것이다. 마치 메시지는 어머니에게 ‘빨리 불안해 해라’라고 속삭이고 있는 듯했다. 그리고 그때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기자가 기성세대가 됐을 때 저런 메시지를 받으면 제대로 시비를 판단할 수 있을까?’

  기성세대가 된다는 것은 어쩌면 무서운 일인지도 모르겠다. 물론 모든 기성세대들이 그런 것은 아니지만 매일 바쁜 생활 속에 살면서 경제적 형편을 걱정해야 하고, 건사할 자식에 대한 책임감과 부담감을 동시에 느낀다면 어머니처럼 쉽게 겁을 먹게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지만 어머니의 생각을 이해할 뿐, 수용하지는 못한다. 어머니가 읽어 오신 그 많은 메시지들은 엉터리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많은 결과가 박 전 대통령이 옳지 않았음을 보여주고 있는데도 끝내 그것을 부정하셨던 어머니에게 불만스러울 때가 많았다. 실제로 박 전 대통령의 임기 동안 일어난 일들은 비참하기 그지없다. 기자만 해도 박 전 대통령의 반값등록금 공약이 지켜지지 않아 대학등록금 납부 시기마다 부모님께 죄송해야 했고, 기자의 조부모님은 65세 이상 모든 노인들에게 월 20만 원씩 지급하겠다던 박 전 대통령의 공약이 번복돼 크게 실망하셔야 했다. 하지만 이건 아무것도 아니다. 3년 전 수백 명의 학생들이 배 안에서 공포에 떨고 있을동안 박 전 대통령이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는 아직도 밝혀지지 않았고, 정부는 일본군 ‘위안부’로 끌려갔던 수많은 할머니들의 동의 없이 일본을 용서했으며, 앞으로 자라나는 아이들은 국정교과서로 우리의 역사를 배워야 할 상황에 처했다.

  기자는 항상 어머니께 말씀드렸다. 우리 같은 서민들을 잘 살게 해줄 정치인을 뽑아야 한다고. 어머니께 정치 성향을 강요하는 것이 절대 아니다. 투표권을 행사할 때 더 넓은 시야를 갖고 객관적인 판단을 해줬으면 하는 마음에 당부를 했던 것이다. 기자의 이런 진심이 통했는지 이제는 어머니가 조금 변하기 시작하셨다. 기자는 어머니의 견해에 무조건 화내기 보다는 어머니가 받으신 메시지 중 무엇이 거짓인지 알려드리며 시야를 넓혀야 한다고 설득했다. 그제야 어머니는 핸드폰으로 오는 메시지보다는 뉴스를 먼저 보시고, 사실이 무엇인지에 초점을 맞추려 하셨다.

  모든 기성세대들이 엉터리 고집을 갖고 있는 것이 아니고, 모든 신세대들이 올바른 생각을 갖고 있는 것은 아니다. 양자가 서로 다른 생각을 가질 수 있다는 것 역시 이해한다. 그러나 이해하는 것의 마지노선은 다른 생각까지이지, 틀린 생각이 아니다. 엉터리 사고(思考)는 사회를 결코 옳은 방향으로 이끌 수 없기 때문이다. 많은 국민들이 대선 이후 이뤄질 정권교체에 희망을 걸고 있다. 새 정부가 좀 더 사람답게 살 수 있는, 좀 더 살고 싶은 국가를 만들어 주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 전에 우리 스스로가 먼저 편협하고 그릇된 생각에 머물러 있지는 않은지 생각해봐야 한다. 이전 정권으로부터 받은 상처를 다시 받지 않기 위한 근거 없는 엉터리 고집 대신, 우리의 권리를 당당히 요구하는 이유 있는 고집이 어느 때보다 필요하다. 민주주의가 지닌 힘의 원천이 우리들로부터 발현되기 위해 우리는 고집스러운 투쟁을 멈추지 말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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