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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꾸고 노력하고 이뤄내다
2017년 05월 10일 (수) 19:22:07 김유빈 기자 sallykim6306@
   

  독어독문학과를 졸업한 뒤 이야기를 전하는 영화감독을 꿈꾸던 한 청년이 있다. <역전의 명수>로 영화계에 데뷔한 박흥식 감독(이하 박 감독)이다. 영화를 통해 사람들에게 다양한 이야기를 전하고 나아가 사회개혁의 주체가 되기를 꿈꾸는 그를 만나 이야기를 들어봤다.

  소설가에서 영화감독을 꿈꾸기까지
  박 감독은 서울대학교 독어독문학과를 졸업했다. “제가 독어독문학과에 입학한 건 소설을 쓰고 싶어서였어요. 그런데 그 당시에는 소설의 내용보다는 문장력이 굉장히 중요했어요. 문학을 공부하면서 프로 소설가들의 문장을 보다 보니 제가 그걸 따라갈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공부할수록 소설가라는 직업에 대해 자신감이 사라졌죠.” 그러던 중 그는 인생의 방향을 결정한 경험을 하게 된다. “대학교 4학년 때 학교 문화원에서 <정복자 펠레>라는 영화를 상영했어요. 저는 그냥 시간을 때우려고 갔는데, 그 영화를 보고 깜짝 놀라 그날 밤 잠을 못 잤어요. 처음으로 ‘영화가 이렇게 감동을 줄 수도 있구나’ 하고 느낀 거죠. 일주일 후 또 문화원에서 <아빠는 출장 중>이라는 영화를 봤는데 그날도 똑같이 밤에 잠을 못 잤어요.” 그는 그때부터 영화감독이라는 꿈을 꾸기 시작했다. “말했듯이 소설은 문장력이 중요하잖아요. 영화 역시 대본을 써야 하지만 문장력보다는 묘사가 더 중요하거든요. 한편으로는 글 쓰는 것을 포기하지 않아도 되고요. 그래서 영화감독이 제 길이라고 생각했어요. 스스로가 영상에 대한 감각도 있다고 생각했고요. 제가 그림 그리는 것도 좋아해서요. 그런데 당시에는 우리나라의 영화가 침체된 시기였기 때문에 영화계가 흔쾌히 갈만한 곳이 아니었죠. 특히 지금처럼 취직이 어려운 시절도 아니었기 때문에 영화계에 대학을 나온 사람들이 많이 없었어요. 그렇지만 저는 영화감독을 꿈꿨어요.”

  독일에서의 삶을 통해
  꿈에 한 발짝 다가가다
  박 감독은 이후 독일 베를린자유대학교로 유학을 떠났다. “독일로 유학을 간 건 제가 독어독문학과를 졸업해서가 아니에요. 대학을 졸업한 후 독일문화원과 영화진흥공사(영화진흥위원회)에서 공동으로 실험영화 여섯 편을 만들었는데 저도 거기 연출로 참여하게 됐어요. 영화제작 과정을 독일의 한 교수님이 지도했는데 당시 그 교수님이 제 스토리보드를 좋게 평가했어요. 그분의 영향으로 독일에 가겠다고 마음을 먹었죠.”

  그는 독일에 가서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신나게 놀았다고 말했다. “저는 학위를 딸 목적으로 간 게 아니었기 때문에 대학에 등록만 하고 한 2년 정도 진짜 ‘유학(遊學)’을 했어요. ‘놀 유’자를 쓴 유학이요. 그런데 그 경험이 정말 좋았던 것 같아요. 물론 아무 생각 없이 논 건 아니었어요. 예술영화관을 다니면서 필름영화도 보고, 통신원으로 일할 기회가 생겨서 여러 영화제를 다니며 사진도 찍고 기사도 썼어요. 또 베를린 주립 도서관에서 책도 번역하곤 했죠.” 그는 독일에서의 경험이 자신에게 큰 영향을 끼쳤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 벗어나 우리나라를 객관적으로 보게 되니까 문제점도 많이 보이고 배워야 할 것도 많이 보이더라고요. 시야가 많이 넓어진 거죠. 그래서 학생들한테도 외국은 꼭 가보라고 권하고 싶어요. 단순히 여행이 아니라 좋아하는 도시에서 적어도 6개월 이상 살아봤으면 좋겠어요. 오히려 여행보다도 비용이 적게 들어요. 꼭 공부하러 가는 게 아니더라도 외국에서 살아보는 경험을 했으면 좋겠어요.”

  <역전의 명수>로 데뷔해
  다양한 이야기를 들려주다
  박 감독의 첫 작품인 <역전의 명수>는 코미디 영화로 큰 인기를 끌었다. “사실 제가 감독으로서 처음 다루고 싶었던 주제는 한국남자와 일본여자의 사랑 이야기였어요. 그런데 제가 감독이 될 때만 하더라도 신인 감독은 코미디가 아니면 데뷔하기가 힘들었어요. 영화계 분위기가 그랬던 터라 코미디 영화를 만들게 됐어요. 대본을 쓰고 제작해서 개봉하기까지 일 년 반 정도 걸렸어요. 그다음 작품 <경의선>은 정말 ‘뚝딱’ 만들었어요. 서너달 정도 걸렸죠. <두 번째 스물>은 10년 전에 구상했던 작품이에요. 답사를 하고 대본을 쓴 것은 2011년이고 개봉은 2016년에 했으니, 제작기간은 한 5년 정도네요.”

  기자는 영화를 제작하는 데 가장 큰 어려운 점이 무엇이냐고 물었다. “영화는 제작비가 많이 들잖아요. 그러니까 제작비를 투자받는 게 가장 어려워요. 지금 영화계에 큰 문제가 있어요. 원래 영화는 투자, 제작, 배급이라는 세 가지 축으로 이뤄져요. 이 세 가지 요소가 분리돼 있어야 하는데 현재는 사실상 대기업이 장악하고 있어요. 따라서 감독들은 대기업 투자자들에게 먹히는 영화를 만들어야 하는 거죠. 그리고 소위 말하는 ‘예술영화’, 즉 의미 있는 영화를 만들려고 할 때는 투자받기 힘들어요.” 그는 이런 영화계의 현실이 하루빨리 바뀌어야 한다고 말했다. “곧 정권이 바뀔 테니 법도 재정비가 돼 다양한 영화가 나올 수 있는 구조가 됐으면 좋겠어요.”

  앞으로의 계획
  “고대 로마의 시인 호라티우스는 예술을 즐거움과 유익함으로 정의했어요. 쉽게 말하면 재미와 의미죠. 저는 영화가 그 두 마리 토끼를 모두 노려야 한다고 생각해요. 제가 만든 작품 중 <경의선>과 <두 번째 스물>은 예술영화라는 낙인이 찍혀있어요. 저 역시 여전히 그런 영화를 만들고 싶기는 해요. 그런데 앞서 말했듯이 예술영화는 투자를 받기 너무 어려워요. 그래서 다음 작품은 좀 더 큰 영화를 제작하려고요. 그렇다고 해서 의미를 포기할 수는 없어요. 그래서 우리사회가 발전하는 데 영향을 줄 수 있는 영화를 만들려고 해요. 곧 정권이 바뀌고 여러 분야에 개혁이 일어날텐데 정권의 힘만으로 개혁할 수 없는 부분이 있어요. 촛불처럼 시민의 힘이 모여야 하는 부분이 있죠. 저는 영화로 시민의 힘을 모으는 역할을 해보고 싶어요.”

  그는 현재 이화여자대학교와 아주대학교에서 강의를 하고 있다. “여자대학교에서 강의를 하다보니 페미니즘에 대해 알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우리는 모두 페미니스트가 되어야 합니다’라는 책을 읽었어요. 그리고 지난주에 학생들과 페미니즘을 주제로 한 토론을 진행했어요. 그러던 중 제가 ‘나도 젊은 시절에 성추행을 당한 적이 있다’고 말했거든요. 근데 그 이야기를 들은 한 학생이 남자가 여자한테, 그것도 지하철에서 성추행을 당한다는 것은 극히 드문 경우지만 여자들에게는 그런 경험이 일상적이라고 말하더라고요. 생각해보니 저는 성추행을 당한 사실을 수치스럽게 생각하지 않고 심지어는 좀 자랑스럽게 얘기를 했거든요. 그 학생의 말을 듣고 제가 페미니스트가 되려면 아직 멀었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학생들은 제가 아직 페미니즘에 대해 잘 알지 못하긴 하지만 다가가려는 자세를 가지고 임했다는 것에 고마움을 느끼더라고요. 저는 학생들에게 많은 걸 배웠다고 생각해요. 올해 고등학생이 된 제 딸도 이런 배움을 함께 했으면 하는 마음에 딸에게도 그 책을 선물했어요.”

  하고 싶은 일을 하세요
  “제 막내 남동생은 현재 세계적인 색소포니스트예요. 동생이 고등학교 삼학년 때 뒤늦게 음악을 하겠다고 하더라고요. ‘그게 지금부터 해서 되는 거냐’라고 말했지만 막을 수가 없었어요. 왜냐면 저도 당시에 하고 싶은 걸 멋대로 하면서 살았거든요. 그런데 제 동생에게 아무도 모르던 재능이 있었던 거예요. 불과 몇 개월 만에 색소폰을 배워서 해군 군악대에 들어갔어요. 대학도 안 들어간 군인은 제 동생밖에 없었대요.”

  그는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말했다. “지금 우리나라 사회구조에 문제가 많아요. 뭘 하든 장벽이 크고요. 그리고 대부분 전공을 살려서 직업을 선택하려고 하는데, 그럴 필요가 없는 것 같아요. 대학에서 어떤 공부를 했던 ‘나는 교양을 공부한 거다’ 생각하고 편하게 하고 싶은 걸 하면 돼요. 저도 독어독문학을 전공했는데 지금 영화를 만들고 있잖아요. 제가 전공을 바꾼 게 아니에요. 영화는 이야기거든요. 단지 영화라는 매체를 통해 이야기를 보여주는 것뿐이에요. 영화감독에게 가장 중요한 자질은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능력이에요. 저는 독어독문학과를 다녔고 문학을 공부했잖아요. 그게 결정적인 도움을 준 것 같아요. 제가 하고 싶은 걸 하기로 결심한 게 정말 잘했다는 생각이 들어요. 여러분도 전공에 너무 얽매이지 말라고 말해주고 싶어요. 하고 싶은 걸 하세요. 한 번 사는 인생이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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