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미각
인간의 미각
  • 강석기 과학 칼럼니스트
  • 승인 2017.05.10 19: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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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미각이 만족되지 못하면 결코 완전히 행복하지 못하다”

  “먹기 위해 사느냐, 살기 위해 먹느냐?” 이런 질문을 받으면 왠지 “살기 위해 먹을 뿐”이라고 대답해야 할 것 같다. 먹는 데 큰 의미를 부여하는건 나 같은 지적인 사람에겐 어울리지 않는 것 같으니까. 그러나 솔직히 말하면 먹기 위해 사는 정도는 아니더라도 먹는 게 삶을 풍요롭게 해주는 요소 아닐까. 식도락(食道樂)이라는 말까지 있으니 말이다. 생활수준이 올라가면서 식도락에 대한 관심도 커지는 것 같다. 필자가 어렸을 때만 해도 TV 속 요리 프로그램은 오전에 주부들을 대상으로 한 ‘실전’ 요리 프로그램뿐이었지만 지금은 요리나 맛집탐방이 TV 프로그램을 주도하고 있다. 스마트폰이 널리 퍼지면서 SNS에 직접 만든 음식이나 맛집 요리 사진을 올리는 것 역시 일상이 됐다.

  기본 맛은 네 가지?
  흥미롭게도 미각의 과학 역시 최근 들어서야 본격적인 조명을 받고 있다. 인간의 감각 가운데 시각과 청각 같은 물리적 감각은 오래 전부터 폭넓게 연구돼 왔지만 후각과 미각 같은 화학적 감각은 1990년대 들어서야 과학자들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특히 미각은 2000년에야 맛수용체가 처음 발견됐을 정도다. ‘삼시 세끼’를 먹는 사람들이 정작 맛의 과학에 이처럼 무관심했다는 사실이 놀랍다.

  최근까지도 일반인뿐 아니라 전문가들도 맛의종류와 혀가 맛을 느끼는 방식에 대해 잘못 알고있었다. 즉 모든 맛은 단맛, 쓴맛, 짠맛, 신맛 네가지가 조합된 결과라는 이론과 혀에는 이 네 가지 기본 맛을 느끼는 영역이 나눠져 있다는 ‘혀 지도’가 바로 그것이다. 사실 20세기 초부터 일본 연구자들은 네 가지 기본 맛으로 결코 표현할 수 없는 다섯 번째 기본 맛이 있다며 이를 우마미(うま味), 즉 감칠맛이라고 불렀다. 그러나 서구 주류학계는 오랫동안 이를 무시했다.

  2000년 인간게놈 초안이 발표되면서 미각 연구는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었다. 유전자 차원에서 미각을 연구할 수 있게 되면서 기본 맛을 엄밀하게 검증할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 결과부터말하면 기본 맛은 다섯 가지가 맞다. 2000년 쓴맛수용체 유전자가 처음 발견됐고, 2001년 단맛수용체 유전자가 밝혀졌다. 그리고 이듬해 감칠맛수용체 유전자가 실체를 드러냈다. 2006년 신맛수용체 유전자가 발견됐고 2010년 약한 짠맛(유쾌함)을 느끼는 수용체의 실체가, 2013년 강한 짠맛(불쾌함)을 느끼는 메커니즘이 규명됐다.

  사실 기본 맛이 몇 가지냐는 논쟁이 아직 끝난건 아니다. 예를 들어 아이스크림이나 초콜릿에 지방이 없다면 맛이 뚝 떨어질 텐데 그렇다면 ‘지방맛’이 있다고 얘기할 수 있지 않을까. 그렇지 않다면 다섯 가지 기본 맛을 내는 식재료를 조합해 맛은 그대로 유지한 무지방 제품을 만들 수 있을테니까. 실제 지방맛수용체를 발견했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그러나 지방은 미각이 아니라 후각과촉각으로 맛에 영향을 준다는입장이 아직은 우세하다. 즉 지방의 휘발성 분자가 코를, 지방(미세한 기름방울)의 부드러운 촉감이 구강과 혀의 표면을 자극한 결과라는 말이다.
 
  이와 관련해 매운맛과 떫은맛도 엄밀히 말하면 맛이 아니라 피부자극이다. 진짜 맛은 혀에서만 느껴지지만 매운맛과 떫은맛은 구강 전체에서 느낄 수 있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고추의 매운맛을 주는 성분인 캡사이신은 통각수용체 TRPV1을 자극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그런데 TRPV1은 열수용체이기도 하다. 매운 짬뽕을 먹으면 입안이 얼얼하고 이마에 땀이 송송 맺히는이유다.

  땡감이나 밤의 속껍질, 덜 익은 바나나, 레드와인에서 느껴지는 떫은맛은 탄닌 같은 폴리페놀 분자가 침에 녹아있는 단백질에 달라붙어 서로엉키면서 덩어리가 돼 침전된결과다. 이 덩어리가 구강내벽과 잇몸, 혀에 닿으면서 떫은맛으로지각된다.
불과 10여 년 전까지만 해도 기본 맛이 단맛, 쓴맛, 짠맛, 신맛 네 가지이고 각각은 혀의 특정 영역에서 담당한다는 ‘혀 지도’ 이론이 과학상식으로 알려져 있었다. 그러나 21세기 들어 미각 연구가 본격화되면서 기본 맛은 다섯 가지이고 혀의 모든 영역에서 이를 감지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고통이 쾌감으로 바뀔 때
  매운맛이 통각수용체를 통해 느껴지는 통증이라면 우리는 왜 매운 음식을 즐겨 먹고 심지어 점점 더 매운 걸 찾는 것일까. 흥미롭게도 식물이 캡사이신을 만든 건 열매를 먹은 포유류가 매운맛에 놀라 다시는 그 열매를 찾지 않게 하기위한 방어수단이다. 결국 매운맛을 즐기는 사람의 취향은 식물에게는 황당한 현상인 셈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왜 고통을 주는 물질을 즐기게 됐을까.

  이는 경험을 통한 학습으로 설명된다. 즉 처음 매운 음식을 먹을 때 고통스럽지만 몸에 별 탈이 없다는 걸 경험하면서 그 뒤에도 안심하고 먹을 수 있다. 게다가 매운 음식으로 인한 통증을 완화하기 위해 몸에서 내인성모르핀인 엔돌핀을 분비한다. 그 결과 통증이 클수록 쾌감도 배가된다. 매운맛을 들이면 점점 더 매운 걸 찾게 되는 이유다.

  한편 먹방 프로그램을 보면 청양고추는 물론 훨씬 더 매운 동남아의 고추도 아무렇지 않게 먹는 출연자가 나오는 경우가 있다. 정말 아무렇지 않은 것일까 아니면 엄청난 인내력을 수반한 연기일까. 드물게 고추의 매운맛을 전혀 못 느끼는 사람들이 있는데 TRPV1 유전자가 고장 난 경우다. 또 매운맛을 느끼는 민감도도 개인에 따라 차이가 있는데 TRPV1 유전자의 염기서열이 달라 만들어진 수용체 단백질의 양이나 구조가 달라져 캡사이신분자가 결합하는 정도에 차이가 생기기 때문이다. 이런 유전적 변이를 단일염기다형성(SNP)이라고 부른다.

  SNP는 진짜 맛수용체 유전자에도 널리 존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고 그 결과 같은 음식을 두고도 사람에 따라 맛을 다르게 느낀다. 사람에 따라음식에 대한 선호도가 다른 이유다. 예를 들어 쓴맛에 둔감하거나 단맛에 민감한 사람은 독한 술을 잘 마신다. 에탄올은 쓴맛과 단맛에 영향을 주므로 이런 사람들은 ‘술이 달게’ 느껴지지 때문이다. 반면 쓴맛에 민감하거나 단맛을 잘 못 느끼는 사람은 맥주나 달콤한 와인이 한계다. 얼핏 보면 쓴맛에 둔감하거나 단맛에 민감하면 좋을 것 같지만 이런 사람들은 알코올중독이 될 위험성이 더 높다는 연구결과가 있다.

  최근 ‘오싫모’가 화제다. ‘오이를 싫어하는 사람들의 모임’의 약자로 페이스북에 ‘오싫모’라는 페이지가 개설됐는데 일주일도 안 돼 10만 명에 가까운 사람들이 모였다. 우툴두툴한 오이가 보기 싫다는 사람에서부터 오이가 들어있는 음식을 억지로 먹다 토했다는 사람까지 사연도 가지가지인데 오이의 향을 견디기 어렵다는 사람들이 가장 많은 것 같다.

  이런 반응에 대다수 사람들은‘싱그러운 오이향이 싫다는 게 말이 되냐’며 의아해하겠지만 후각 역시 미각과 마찬가지로 개인차가 큰 감각이다. 오이 향은 노나디에놀과 노나디엔알이 주성분이다. 아마도 오이 향을 싫어하는 사람들은 이 분자들에 결합하는 냄새수용체 유전자의 SNP 때문에 극도로 예민하거나 불쾌함을 느끼는 것일지 모른다.

  고추나 커피의 경우처럼 처음에는 불쾌한 맛이지만 반복 경험을 통해 익숙해지면서 나중에는 오히려 유쾌한 맛으로 느끼는 현상은 인간의 지각(perception)이 얼마나 유연한가를 잘 보여준다. 그럼에도 사람에 따라서는 아무리 노력해도 극복할 수 없는 맛과 냄새가 한두 가지는 있기 마련이다. 오이가 들어간 음식은 먹기 싫다는 아이에게 “편식하는 버르장머리를 고치겠다”며 억지로 입에 쑤셔 넣는 건 전혀 교육적인 행동이 아니라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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