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수컬럼] 아보카도 스무디
[교수컬럼] 아보카도 스무디
  • 강규태 약학과 교수
  • 승인 2017.05.11 1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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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게, 음… 건강한 맛일 걸요~?!” 휴일 아침에 출근하면서 노곤함을 어깨에 잔뜩 짊어진 채 ‘매일매일’ 제과점에 들어선 나는, 음료수 메뉴판에서 신상품 이라고 적힌 ‘아보카도 스무디’가 무슨 맛인지 물어봤고, 친절한 종업원은 아리송한 말로 대답을 대신했다. 어젯밤 과식으로 몸에게 미안했던 나는 ‘내가 아는 밍밍한 맛일 테지만 그래도 오늘은 커피 대신 건강을 위해’ 그 신상 음료를 주문했다. 진동벨을 받아들고 기다리는데, 빵집 안은 종업원 네다섯 명과 외국인 관광객 예닐곱 명까지, 휴일 이른 아침인데도 불구하고 제법 활기마저 넘치고 있었다.


  외국인 관광객들의 주문을 열심히 받고 있는 종업원들의 모습을 훔쳐보며 시간가는 줄 모르고 있다가 문득 상황을 파악해보니, 나보다 뒤에 들어온 손님들은 어림잡아 열 명쯤이나 주문한 음료를 받아들고 나갔지만, 내 진동벨은 여전히 감감무소식이었다. 그 순간, 문득 내 주문을 받은 매니저가 옆에 서있던 신입 종업원에게 나지막히 “○○씨, 이거 한번 만들어 봐요.” 라고 속삭이던 목소리를 어렴풋이 들은것 같아서, 불안한 마음으로 둘러보니, 아니나 다를까 신입은 고참의 눈치를 살피면서 매뉴얼을 더듬으며 내 음료를 반복해서 만들고 있었다. ‘아차, 내가 괜히 신상품을 시켜서 신입 훈련시키는데 시험 대상자가 됐구나.’

  얼른 아메리카노 한잔 픽업해서 나가려고 들어온 빵집에서 하염없이 20분 남짓을 기다리다 보니, 나의 인내는 점점 한계에 도달하고 있었다. 여전히 쩔쩔매며 자신의 첫 작품을 망치지 않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는 저 신입 직원…그를 보고 있자니 ‘우리 학생들도 실습, 인턴, 또는 첫 직장에서 저렇게 X고생 하면서 시작하겠지.’ 하는 생각에 마음을 가라앉히고 차분히 기다려주기로 했다. 그 뒤로도 족히 5분이 지나서야 겨우 주문한 음료를 받을 수 있었는데, 묵묵히 기다려 준 것이 고마웠던지 매장 매니저가 작은 조각 케이크들이 담긴 예쁜 상자도 함께 선물로 건네줬다. 그날 보이지 않은 선한 마음을 발휘한 덕분에 뜻밖의 행운이 찾아온 것 같아서 기분 좋게 하루를 시작할 수 있었다.

  우리는 주변에 뜻밖의 좋은 일이 생긴 친구들을 보면서 “걔는 운도 억세게 좋아!” 혹은 “전생에 나라를 구했나봐!” 하고 부러워하는데, 만약 그런 행운을 자신에게도 불러올 수 있다면 우리는 어떠한 마음 자세로 살아야 할까? 야구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2015년 11월 개최됐던 ‘WBSC 프리미어12’라는 국제야구대회에서 활약한 오오타니 쇼헤이라는 젊고 훈훈한 일본인 투수를 기억할 것이다. 고등학교 3학년 때아마추어 야구 사상 최초로 160km/hr대의 강속구를 던지며 미완의 대기로 주목을 받게 된 그는, 2013년 니혼햄에 입단한 뒤 잠재력을 터뜨리게 되고, 2015년 시즌에는 투수 3관왕을 차지하며 20대 초반에 팀의 에이스 반열에 오르게 된다. 그에 대한 기사가 쏟아지면서 알려진 일화 중에, 그가 하나마키 히가시고교 1학년 때 작성했다는 ‘목표달성표’가 화제가 된 적이 있다. 그는 큰 종이 위에 바둑판 도형을 그려놓고, 정중앙에 최종목표인 ‘8구단에서 드래프트 1차 지명’을 적어놓았다. 그리고 그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8개 칸에는 최종목표를 이루기 위한 8개의 서브목표들을 적었다. 서브목표 8개 중 특히 눈에 띄는 것은 ‘운’이었는데, 그는 그 서브목표 를 달성하기 위한 (즉, 자신에게 운을 불러오기 위한) 구체적인 방법 8개를 도표에 적었다. 그가 고교 1학년 때 운을 불러오기 위해 스스로 실천하고자 했던 8개의 구체적인 방법은 무엇이었을까? 그것은 다름 아닌 ‘인사 잘하기, 쓰레기 줍기, 운동부실 청소 잘하기, 물건 소중히 여기기, 심판에게 정중하게 대하기, 긍정적인 사고, 주변 사람들로부터 환영받는 사람 되기, 책 읽기’였다. 그는 고등학교 1학년 때 이미 운이란 우연히 찾아오는 것이 아니라 찾아오게 만들 수 있는 것이라는 걸 깨달았던 것일까?

  사족으로 덧붙이자면, ‘매일매일’ 제과점의 아보카도 스무디는 굵직굵직하게 갈린 아보카도 위에 뜬금없이 에스프레소샷이 부어져 있었다. 신상품 개발자의 번뇌가 느껴지는 쇼킹한 비주얼(녹조 낀 황토물?)이라 처음엔 좀 황당하기까지 하지만, 개의치 않고 마시다보면 나름의 묘한 풍미를 느끼면서 포만감도 더불어 얻을 수 있으니 나중에 출출할 때 한 번쯤 더 사먹어볼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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