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상현실과 증강현실이 생활공간을 바꾼다
가상현실과 증강현실이 생활공간을 바꾼다
  • 이인식 문화창조아카데미 총감독
  • 승인 2017.05.22 1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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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상현실 디자이너 유망 직업으로 급부상

  지난 4월 18일 세계 최대의 소셜미디어(SNS) 기업 페이스북의 최고경영자인 마크 저커버그는 “증강현실(AR·Augmented Reality) 기능이 탑재된 안경과 콘택트렌즈가 TV와 같은 디지털 기기를 대체할 것이다. 물리적인 한계에 갇혀 있던 공간을 확장할 수 있는 기술이 바로 AR이다”면서 AR 시대의 개막을 선언했다. 저커버그는 2016년 2월에 “스마트폰의 미래는 가상현실(VR·Virtual Reality)에 달려 있다”고 발언한 적도 있다. 요컨대 저커버그는 VR과 AR 기술이 우리의 삶을 바꿔 놓을 시기가 임박했음을 강조하고 재확인한 셈이다.

 

  컴퓨터 안의 가짜 세계
  대학 중퇴자가 연출한 <매트릭스(The Matrix)>만큼 가상현실에 대해 논쟁거리를 듬뿍 안겨준 영화도 흔치 않을 것 같다. 또한 철학자들의 지적 호기심을 자극한 보기 드문 문제작으로 여겨지기도 한다. 철학자 17명의 공동 집필로 2002년 출간된 ‘매트릭스와 철학(Matrix and Philosophy)’에서 대표 저자인 슬라보예 지젝은 “매트릭스는 일종의 로르샤흐 검사(Rorschach test)의 구실을 하는 영화이지 않은가?”라고 묻는다. 로르샤흐 검사는 사람의 심리 상태를 진단하는 방법이다. 그러니까 “철학자들은 실존주의·마르크스주의·페미니즘·불교·허무주의·포스트모더니즘 등 각자 관심 분야의 틀로 이 영화를 읽는다”는 것이다.

  1999년 부활절 주말에 미국에서 개봉된 <매트릭스>의 무대는 200년이 지난 뒤인 2199년 인공지능 기계와 인류의 전쟁으로 폐허가 된 지구이다. 인공지능 컴퓨터들은 마침내 인류를 정복해 인간을 자신들에게 에너지를 공급하는 노예로 삼는다. 땅속 깊은 곳에서 인간들은 매트릭스 컴퓨터들의 배터리로 사육되는 것이다. 말하자면 인간은 오로지 기계에 의해서, 기계를 위해 태어나서 생명이 유지되고 이용될 따름이다.

  주인공이 등장하는 첫 장면에서 관객은 그가 프랑스 철학자인 장 보드리야르(1929~2007)가 1981년에 펴낸 ‘시뮬라크르와 시뮬라시옹’을 펼치는 모습을 보게 된다. 불어인 시뮬라시옹은 시뮬레이션(simulation), 곧 ‘모의실험’ 또는 ‘모조품 만들기’를 뜻하며 시뮬라크르(simulacre)는 시뮬레이션의 산물인 ‘모조품’을 의미한다. 보드리야르에 따르면 시뮬라시옹에 의해 우리가 사는 세상이 위조될 수 있으며, 머지않아 현실과 비현실 사이의 경계를 구분할 수 없는 시대가 도래한다. <매트릭스>의 주인공이 살고 있는 세계 역시 컴퓨터 시뮬레이션으로 만들어낸 가짜(시뮬라크르)이다.

  시뮬레이션은 컴퓨터 자판을 두드리는 소리로 시작된다. 자판을 두드려 화면에 나타낸 가짜 공간이 다름 아닌 가상현실(VR)이다. 컴퓨터에 의해 생성된 3차원 환경에 사용자가 몰입해 그 세계를 구성하는 가상의 대상들과 현실세계에서처럼 상호작용하게끔 하는 기술을 가상현실이라 한다.

  VR이라는 용어는 미국의 재런 래니어가 처음 만들었다. 래니어는 작곡가가 되려고 고등학교를 중퇴했으나 결국 컴퓨터에 미치게 된 괴짜였다. 1960년생인 그가 1989년 VR이라는 단어를 만들어내자 뉴욕타임스에 대서특필돼 래니어는 29세에 일찌감치 세계적 명사의 반열에 오르게됐다.

 

  2025년 가장 유망한 직업

  가상현실의 세계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컴퓨터에 연결되는 특수 장치가 필요하다. 사용자는 특수 안경을 쓰고, 데이터 장갑을 낀다. 특수 안경은 입체 시각 능력을 부여하는 장치이므로 사용자는 컴퓨터 화면의 2차원 이미지를 현실세계의 3차원 대상으로 착각하게 된다. 한편 데이터 장갑을 손에 끼면 사용자는 컴퓨터 화면에 나타난 자신의 손 모형을 움직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주변에 위치한 이미지를 손으로 잡거나 이동시킬 수 있다. 물론 그 이미지의 모서리에 손을 대면 촉감까지 느낄 수 있다.

  가상현실의 가능성은 현실세계의 가능성만큼이나 무한대이므로 그 응용 분야 역시 광범위하여 비디오게임 등 오락산업에서 건축 설계와 의료 부문에 이르기까지 활발히 응용되고 있다. 가령 건축가는 가상현실 기술을 이용해 새로 설계한 건물이 어떤 모습이 될지 3차원으로 고객에게 보여주고, 고객은 가상건물의 내부를 이리저리 모두 살펴 볼 수 있다. 외과의사는 컴퓨터로 환자의 시체를 본떠서 수술 연습을 한다. 가상현실로 축구 경기장을 만들어 스스로 유명선수처럼 뛸 수도 있고, 문화유적지를 구현해 현장에 가지 않고도 관광을 즐길 수 있다.

  가상현실은 예술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가상예술(virtual art)의 출현으로 2차원 화폭에 그리던 화가는 가령 구글의 틸트 브러시(Tilt Brush)를 사용하여 가상공간에서 3차원 그림을 그리고, 조각가는 실제의 재료로는 만들기 어려운 온갖 형태 의 작품을 창조한다.

  이처럼 가상현실 기술이 발전함에 따라 가상 공간 디자이너(virtual habitat designer)가 주목을 받게 됐다. 2016년 8월 미국 마이크로소프트가 영국 컨설팅 업체와 함께 10년 뒤인 2025년에 각광받을 직업 10가지를 선정한 <내일의 일자리(Tomorrow’s Jobs)>를 펴냈는데, 이 보고서에서 가장 유망한 미래 직업으로 뽑힌 것은 다름 아닌 가상공간 디자이너이다.

  가상현실 세계를 실제와 거의 구별하기 어려울 정도로 설계하려면 가상공간 디자이너는 온라인 게임 디자이너에게 요구되는 스토리텔링(storytelling) 능력과 함께 건축가나 도시계획 전문가에게 필요한 공간 설계 지식도 갖추지 않으면 안 될 것 같다. 이 보고서는 가상공간 디자이너가 되려면 인지심리학과 행동과학을 공부할 것을 권유한다.
 

 

증강현실 게임 ‘포켓몬고’는 실제 환경에 가상의 사물을 합성한 가상현실 기술을 이용했다.
증강현실 게임 ‘포켓몬고’는 실제 환경에 가상의 사물을 합성한 가상현실 기술을 이용했다. <출처/중앙일보>

  증강현실 게임 ‘포켓몬 고’의 성공
  한편 현실세계에 가상현실을 혼합하는 기술도 다양하게 활용된다. 다름 아닌 증강현실(AR)이라고 명명된 이 기술은 실제 환경에 가상 사물을 합성해 원래의 환경에 존재하는 사물처럼 보이도록 하는 컴퓨터 기술이다. 증강현실은 사용자가 눈으로 보는 현실세계의 이미지에 가상 물체의 이미지를 겹쳐 하나의 영상으로 보여주기 때문에, 완전한 가상세계를 전제로 하는 가상현실과는 달 리 사용자가 실제 환경도 볼 수 있다. 따라서 증 강현실은 가상현실보다 현실감이 더 뛰어날 수밖에 없다.

  증강현실 기술을 스마트폰에 응용한 게임인 ‘포켓몬 고(Pokemon Go)’가 2016년 7월 출시돼어 세계 곳곳에서 폭발적인 인기를 끌게 되면서 증강현실에 대한 관심이 증폭됐다. 포켓몬 고 게임의 성공 요인은 증강현실 기술 자체가 전부가 아님은 물론이다. 가상의 괴물인 포켓몬은 1996년부터 일본 닌텐도가 비디오게임·애니메이션·만화로 선보인 캐릭터이다. 포켓몬의 다채로운 캐릭터들은 일본의 민담에 등장하는 요물이나 괴수를 많이 닮았기 때문에 포켓몬 고 게임의 성공은 100년 전부터 육성된 일본의 요괴학(妖怪學)에 기인한 것으로 볼 수 있다는 분석도 설득력을 지닌다.

  가상현실과 증강현실의 발전으로 보드리야르의 주장처럼, 진짜 현실이 거의 전부 위조된 가짜 현실로 대체되는 공간에 살면서 실제현실과 가상현실(시뮬라시옹), 이를테면 원본과 모조품을 더 이상 구분할 수 없게 될 날도 멀지 않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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