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직한 육두문자와 구수한 사투리의 세계, 관촌수필
걸직한 육두문자와 구수한 사투리의 세계, 관촌수필
  • 사학과 남동신 교수
  • 승인 2004.05.22 2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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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촌수필』은 작년에 세상을 떠난 이문구의 자전적인 연작소설집이다. 늘 남의 덕으로 살아 왔다고 생각하는 작가가 여러모로 자신을 키운, 그러나 반 이상이 죽었거나 행방불명이 된 사람들을 회고하는 글이다. 많은 평론가들이 동의하였듯이, 이문구는 순우리말과 토속적인 어휘를 풍부하게 구사한 작가이다. 걸직한 육두문자와 구수한 충청도 사투리, 거기에 고상한 한문투가 한데 어우러져 한 사람의 입에서 나오고 있다. 학위논문 심사를 받을 때 나는 한글도 아니고 영어도 아니고 일어도 아닌 그야말로 ‘같잖고 되다 만’ 문장을 쓰고 있음을 절감하였다. 그런 고민을 먼저 겪은 선배가 적극 추천해 준 글이 바로 이 책이었다. 다음은 생각나는 몇 대목이다. 이런 책일수록 남의 소갯말보다는 직접 읽어보는 것이 나은 법이다.

“숭헌……뉘라 양력슬두 슬이라 이른다더냐, 상것들이나 왜놈 세력(歲曆)을 아는 벱여…….(할아버지)” ‘페에엥―’ 소리는 ‘숭헌……’이라는 말과 함께 할아버지의 전용어였다. 화가 상투 끝에 이르러 아랫사람들에게 걱정을 하실 때와, 되잖은 말, 같잖은 꼴, 어질지 못하며 어리석은 것 등, 꾸중을 대신하던 할아버지만의 용어였다.―「일락서산(日落西山)」
“이런 육시럴늠으 가이색깃 지랄허구 자빠졌네. 주둥패기 뒀다가 뭣 허구 이 지랄허여. 너 니열버텀 잘 굶었다. 생전 밥 구경을 시키나봐라.(옹점)” 그녀는 그만큼 입도 걸고 성질도 사나웠지만 늘 시원시원하고 엉뚱한 데가 있었으며 의뭉스럽기도 따를 자가 없었다. 육덕 좋은 허우대나 하고 곱게 쪽집은 눈썹과 사철 발그레하게 피어 있던 얼굴이며, 그녀는 안팎 모가비 총각들에게 선망의 대상이었다.―「행운유수(行雲流水)」
“넘의 둥네 질을 공으루 지나댕기는 벱은 으니께……여러 말 허자먼 날 저물 테구, 통행세나 받구 말 티여.(대복)” 대복이는 여간 좋은 친구가 아니었다.……그때 대복이는 이미 어른처럼 목소리가 굵었고, 우리집 머습 철호마냥 국한 대접으로 고봉밥 두 사발을 거뜬히 먹어치웠으며, 옹솥에 든 고물팥이 삶아지기 전에 돌메공이로 두 말 떡살을 무거리 없이 빻아 낼 만큼 기운이 장사였고, 진일 마른일 없이 한번 손댔다 하면 또려지게 마무리를 낼 줄 알아, 장가 안들어 아이였을 뿐 내 친구는 될 수가 없는 처지였다. ―「녹수청산(綠水靑山」
“형씨, 나헌티 뭔 유감 있슈? 팔꿈셍이루 치구 굿수발루 짓밟게……나두 내 승질 근디리면 바뻐지는 인품이니께, 참어보슈.(석공)” 그 사람은 내가 일생을 살며 추모해도 다하지 못할 만큼 나이를 얻어 살수록 못내 그립기만 했다. 그의 이름은 신현석……이름에 돌 석자가 들어 그랬던지 그는 살아 생전에 유난히 돌을 좋아했거니와, 돌이켜 따져보면 그 자신이 천생 돌과 같은 사람이기도 했다. 그래서 모두들 그를 석공(石公)이란 별명으로 부르기를 즐겨하였고 본인도 그런 명칭을 마다하지 않았던 줄 안다.―「공산토월(空山吐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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