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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석]투명망토를 쓴 여성 게이머
2017년 05월 25일 (목) 16:49:05 나재연 수습기자 -

  우리나라에서 컴퓨터 게임은 누구에게나 접근성 좋은 오락이다. 집집마다 컴퓨터가 있고 길거리에는 고 사양 컴퓨터가 가득 찬 PC방이 널려있다. 이런 환경에서 사람들은 오랜 시간 게임을 해왔다. 그리고 이 시간 동안 ‘여성’ 역시 게임을 해왔다. 하지만 사람들 사이에는 ‘여성은 보편적으로 게임을 하지 않는다’는 인식이 자리 잡혀 있다. 주변을 둘러보면 다양한 장르의 게임을 즐기는 여성들을 쉽게 발견할 수 있는데도 말이다.

  내게는 오빠가 있는데, 한번은 오빠가 “왜 여자들은 게임을 하지 않을까?”라고 물었던 적이 있다. 나는 “여자들이 왜 게임을 안 해? 오빠 주변에만 해도 나부터 해서 사촌 언니들, 내 친구들까지 게임하는 사람들 많아.” 하고 대답했다. 그러나 돌아오는 말은 황당했다. “그건 특이 케이스고, 보편적으로 말이야.” 오빠와 가까운 여성들 중 게임에 관심이 없는 여성은 엄마와 오빠의 여자친구가 전부였다. 게임을 하는 수많은 여성들은 ‘특이 케이스’라며 지워놓고 게임을 안 하는 여성들만 모아 “여자들은 게임을 안 해”라고 말하는 것이다. 이는 한 사람만의 생각이 아니다. 오랜 시간 여성 게이머들은 투명인간 취급을 받으며 소수로 낙인찍혀왔다.

  소수가 된 여성 게이머들은 ‘여성’이라는 이유로 게임에서 신기한 존재로 취급 받는다. 최근 유행하고 있는 ‘오버워치’라는 게임에서는 이런 갈등을 분명하게 느낄 수 있다. 게임을 할 때 팀원들끼리 직접 목소리로 대화를 나누는 음성대화 기능이 활성화돼 있어 성별이 그대로 드러나기 때문이다. 게임 중 여성이라는 사실이 드러나는 순간 다양한 반응이 날아온다. “여자가 있으니 이번판은 졌다”며 아무 이유 없이 게임을 포기하거나, “여자는 힐러나 해야지”라며 특정 역할군을 강요하는 등의 반응이 흔히 일어난다. 나 역시 오버워치를 즐겨 하는데, 음성대화를 하며 다양한 성차별을 겪어왔다. “아까 여자, 다시 말해봐”라며 목소리를 내기를 강요하고, 함께 게임하는 친구를 자연스럽게 남자친구라고 생각하며 “여자친구가 게임 같이 해줘서 좋겠다”는 말로 나를 ‘남자친구를 위해 게임을 해주는 여자친구’로 만들어버리기도 했다. 나는 ‘여성’이라서 다른 플레이어들과 달리 주체적으로 게임을 하는 동등한 존재로 취급 받지 못했다.

  이런 취급에도 멘탈을 다지며 꿋꿋이 게임을 하려 하면 또 다른 문제에 부딪친다. 바로 유난히 여성 게이머에게만 엄격한 실력평가다. 여성은 게임을 못한다는 인식 때문인지, 많은 사람들이 게임에서 여성을 만나면 ‘재수’가 없다고 한다. 이런 부정적 시선을 반박하기 위해서는 누구도 반박할 수 없을만큼 뛰어난 실력을 보이고 난 후에야 그들의 편견이 무례했음을 주장할 수 있다. 그럼 정말 실력이 뛰어나면 문제가 없을까? 오버워치 여성 프로게이머로 유명한 이홈(EHOME) 소속의 ‘게구리’ 김세연 선수는 대회경기 도중 화면이 자동으로 상대팀을 향해 고정되는 불법 프로그램을 사용했다는 의심을 받았다. 의혹을 제기한 상대팀은 “여자가 이렇게 게임을 잘할 리 없다”는 식의 발언을 하며 김세연 선수를 몰아붙였지만 해명 끝에 불법 프로그램을 사용한 것이 아니라는 판명이 났다. 실력이 뛰어나다는 이유로 제기된 오명을 바로잡아야 하는 건 김세연 선수의 몫이었다. 많은 여성 게이머들이 자신의 실력을 끊임없이 검열하며 괴로워하기도 한다. 실력과 관계없이 당당한 다른 게이머들과 다르게 게임을 못하는 여성이 아니라는 걸 증명해야 당당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외에도 게임 속 과한 성적 대상화로 인한 불쾌감이나 성희롱 등 여성이 게임하기에 힘든 원인들은 많다.

  물론 게임을 전혀 하지 않는 여성도 많다. 그러나 여성이 남성에 비해 게임에 관심이 없기 때문은 아니다. 남녀 가릴 것 없이 많은 사람들이 게임을 해봤을 것이고 게임에 재미를 느꼈을 것이다. 하지만 게임을 할수록 여성이라는 이유로 동물원 원숭이 취급을 당해서, 성희롱을 당해서, 실력과 관계없이 게임을 못한다고 욕을 들어서, 과한 성적 대상화와 조롱에 불쾌감을 느껴서 많은 여성들이 게임을 떠나갔을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정말로 다양한 플레이어들과 함께하는 게임을 원한다면 “여자는 게임을 좋아하지 않더라”는 무책임하고 심심한 말이 아니라 투명망토를 벗은 여성 게이머를 마주보려는 행동이 필요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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