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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대하는 삶에서 오는 기쁨
2017년 06월 05일 (월) 17:35:06 정혜원 기자 gpdnjs9657@duksung.ac.kr
  개신교 목사의 가정에서 태어나 복음주의 신앙 속에 자란 그는 청년이 돼 사회적 고통의 현실에 눈을 뜨면서 종교의 의미와 목적에 대해 고민하게 된다. 그는 당시의 한국 교회가 군부독재를 지지하는 현실에 실망해 교회를 떠나 학생운동에 참여하게 된다. 그 후 다시 종교인의 길을 걷게 된 그는 사회와 개인을 함께 변화시킬 수 있는 길을 찾기 위해 노력해왔다. 지금도 고통받는 이들의 아픔에 응답하고 참여하는 종교인의 삶을 추구하는 ‘새길기독사회문화원’ 정경일 원장(이하 정 원장)을 만나봤다.

  모태 신앙,
  교회를 떠나다

  “모태 신앙인 저는 어렸을 때 그리스도교 세계 안에서만 살았어요. 하지만 제 스스로의 의지와 결단으로 종교를 선택한 것은 아니었기 때문에 신앙의 온도는 뜨뜻미지근했던 것 같아요.” 그러던 그는 대학생 시절 교회를 떠나게 될 상황과 마주하게 된다. “80년대에 대학생이 돼 5.18 광주의 진실을 알게 되면서 당시 많은 학생들이 그랬던 것처럼 학생운동에 참여했어요. 그리고 대부분의 한국 교회가 학살에 침묵하고 학살자를 축복하며 지지하고 있는 사실을 알게 됐어요. 그때의 제도종 교는 사람들의 고통에 무관심하고 무책임했던 거죠. 그래서 교회를 떠났고 한동안 종교에 대한 반감을 가진 채 지냈죠.”

  항상 놓지 않았던
  종교의 끈
  학생운동을 하느라 뒤늦게 대학을 졸업한 정 원장은 다시 종교의 길로 들어선다. “학생운동에 격렬히 참여하는 과정에서 다른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고 저도 상처를 받았어요. 민주화를 통해 사회를 변화시켰지만 정작 제 자신은 변화하지 못했던 것 같아요. 깊이 보면 악과 싸우는 과정에서 악 에 물들었던 거죠. 선을 위해 싸우는 저의 악을 깨달으면서 다시 종교에 관심을 갖게 됐어요. 그래서 신학을 공부해보고 싶었어요. 물론 고통받는 이들에게 무관심한 종교로 돌아갈 수는 없었어요. 그래서 정치적, 신학적으로 진보적인 신학교에 들 어가 사회의 변화와 개인의 변화를 함께 추구하는 종교의 길을 찾기 시작했어요.”

  대학원에서 신학 공부를 하며 종교에 대한 그의 관심은 더욱 깊고 넓어졌다. “다종교 사회인 한국 사회에서 그리스도인이 고통에 응답하고 참여하려면 이웃종교인들, 비종교인들과 연대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또한 제가 그동안 잘 몰랐던 이웃종교에 대해서도 공부하고 싶어졌고요. 그래서 신학에 이어 종교학도 공부하게 됐고, 이때 불교, 유교, 샤머니즘, 동학 등을 탐구했어요. 종교학을 공부하다보니 이전에 공부했던 그리스도교 신학을 새롭게 보게 됐어요. 그래서 유학을 가서 신학을 더 깊이 공부했죠. 종교 간 대화와 종교신학을 연구하고 참여불교와 해방신학을 비교한 논문으로 학위를 받기도 했어요. 돌이켜보면 학생운동 시절 종교에 등을 돌리고 살았을 때도 종교의 의미와 목적에 대한 고민은 계속했던 것 같아요. 제 도종교가 사회적 고통에 너무 무관심하고 무책임 했기 때문에 회의가 있었던 것이지 종교 자체를 거부한 것은 아니었어요. 그렇게 종교에 대한 관 심은 제 인생 내내 모양과 색채를 달리하며 지속돼온 것 같아요. 어떤 때는 해방신학에 관심을 가졌고, 또 어떤 때는 종교대화에 관심을 가졌는데 이제는 그런 관심들이 해방지향적인 종교 간 대화와 협력에 대한 관심으로 통합되고 있는 것 같아요. 그렇게 보면 저는 종교를 떠났다가 돌아온 것이 아니라 종교 안에서 물음을 바꿔가면서 살아온 거죠.”

   현재 그가 원장으로 있는 새길기독사회문화원도 종교의 사회적 책임을 실천하기 위해 설립된 단체이다. “새길기독사회문화원은 평신도교회인 새길교회가 모체예요. 새길교회는 ‘모든 신자는 사제’라는 종교개혁 정신에 따라 직업적 목사 없이 평신도들이 스스로 지적, 영적, 사회적 활동을 하 면서 30여 년간 운영됐죠. 그러던 중 2001년에 새길교회의 정신을 사회적으로 확산하기 위해 새길기독사회문화원을 만들었어요. 문화원에서는 주로 그리스도교 신학, 인문학, 종교사상, 문화 강좌와 포럼을 진행하고, 정의와 평화를 위해 일하는 사회운동단체들도 지원하고 있어요.”

  사회적 고통을 없애기 위한
  종교 간 대화와 협력

  현재 정 원장은 사회적 고통을 해결하기 위한 종교 간 대화와 협력의 길을 찾고 있다. “종교의 목적은 ‘고통으로부터의 구원과 해방’이라고 생각해요. 그것을 위해 역사 속에서 많은 종교들이 생겨났죠. 이처럼 다양한 종교들이 존재하지만 모든 종교의 공통된 의미와 목적은 가난하고 연약한 이들의 신음소리에 응답하고 그들의 고통을 없애기 위해 함께 일하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종교들은 서로 대화하고 협력해야겠죠.”
 
  또한 정 원장은 종교인이 이웃종교에 대한 배움을 꺼려선 안 된다고 말한다. “우리사회의 종교인들은 이웃종교인들을 만나고 대화하려는 노력이 너무 부족해요. 그 이유는 이웃종교를 배우면 자신의 신앙이 흔들릴 거라고 걱정하기 때문인 것 같아요. 그런데 그렇게 쉽게 흔들릴 신앙이라면 굳이 갖고 있을 이유가 있을까요? 이웃종교인들을 만나 ‘다름’을 경험하고 배울수록 자기 신앙을 더 분명히 알게 돼요. 서로 더 깊어지고 풍요로워지는 거죠.”

  우리사회 안에서의
  종교의 역할

  정 원장은 현대사회에서 종교가 처한 위기를 극복하려면 사회적 위기에 처한 사람들에게 종교가 먼저 다가가야 한다고 말한다. “요즘 ‘종교가 사회문제’라는 말을 많이 하죠. 그만큼 종교의 사회적 신뢰도는 많이 떨어져 있어요. 그러다 보니 사회적 관심과 신뢰를 다시 얻기 위해 종교들이 인문학 강좌, 문화예술 행사, 템플스테이 등 다양한 선교 활동을 하고 있고요. 그런 활동이 종교와 사 회의 벽을 허무는 데에는 도움이 되겠지만 종교의 위기를 근본적으로 해결하지는 못해요. 종교가 세상의 사랑을 받는 가장 좋은, 그리고 유일한 길은 세상의 고통받는 이들을 사랑하는 거예요. 지난 2014년 한국을 방문한 프란치스코 교황이 세월호 유가족을 만나 진심으로 위로하는 모습을 보며 가톨릭 신자만이 아니라 이웃종교인도, 심지어 비종교인도 깊이 감동했던 것이 그 예죠. 종교가 우리사회의 가장 약한 이들을 위로하고 함께 연대한 다면 종교에 대한 사회적 신뢰와 사랑이 자연스레 회복되지 않을까요?”

  또한 정 원장은 고통받는 이들과의 인격적 연대 역시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기존에 새길기독사회문화원과 새길교회에서는 이주노동자 의료봉사나 장애인 공동체 방문봉사 등은 직접 했지만 사회운동에 있어서는 주로 사회운동단체들에 대한 재정 후원만 했어요. 그런데 세월호 참사 이후에는 고통받는 이들과의 직접적, 지속적, 인격적 연대를 고민하며 애쓰고 있어요. 처음에는 주로 큰 집회나 행진, 농성, 삼보일배 등에 참여했는데 점차 세월호 유가족과 ‘집단 대 집단’으로 연대하는 것을 넘어서 인격적으로 서로 더 깊이 알아가는 만남이 필요하다는 것을 깨달았어요. 어떻게 보면 모두를 사랑한다는 것은 아무도 사랑하지 않는다는 것과 같아요. 고통받는 사람들은 각자의 이름과 얼굴과 경험이 있는 이들이니까요. 그래서 2015년부터는 그리스도인 유가족과 정기적, 지속적으로 만나고 있어요. 물론 이런 인격적 연대에는 더 큰 책임이 따르기 때문에 힘이 들기도 하지만 그만큼 뿌듯함도 있어요. 함께 우는 사람들이 함께 기뻐할 수도 있으니까요.”

  홀로 떠 있는 섬보단
  공동체를 향해
  마지막으로 기자는 정 원장에게 덕성여대 학우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는지 물었다. “오늘날 우리가 살아가는 신자유주의의 원리는 강한 자만이 살아남는다는 ‘강자독생’과 각자 알아서 살길을 찾아야 한다는 ‘각자도생’이에요. 옛날에도 힘들긴 마찬가지였지만 그래도 그 시대의 고통받는 사람들은 서로 공동체적으로 연대하며 고통을 일으키는 이들에 맞서 싸웠어요. 하지만 오늘의 우리는 개인으로, 마치 하나의 고립된 섬처럼 살아요. 고통 받는 이들이, ‘을’과 ‘을’이 서로 연대하기보다는 경쟁하잖아요. 이제는 저도 중년이 되면서 세상이 외롭고 차가워지는 것을 막지 못한 것에 죄책감이 있어요. 우리를 이기적 개인들로 파편화시키는 신자유주의에 맞서는 길은 결국 함께 살아가는 ‘공동체’를 재건하는 거예요. 그러기 위해서는 공부하고 성찰해야 해요. ‘우리가 왜 이렇게 됐을까’ 에 대한 근본 원인을 찾고, 다른 세상이 필요할 뿐만 아니라 그런 세상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을 신뢰하게 하는 공부 말이에요. 그래도 요즘 청년들이 ‘혼자 살아남기 위한’ 공부가 아니라 ‘함께 살아가기 위한’ 공부를 하는 모습을 보면 고마움과 희망을 느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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