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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석] 낙(落)도 낙(樂)이다
2017년 06월 07일 (수) 12:19:40 정예은 수습기자 -

  마크 주커버그는 페이스북을 19세에 창립했다. 빌 게이츠는 그의 나이 20세에 벤처기업 마이크로소프트를 창업했다. 애플의 스티브 잡스가 사업에 본격적으로 뛰어든 나이는 21세였다. ‘정의란 무엇인가’를 집필한 정치철학자 마이클 샌델은 27세에 하버드 최연소 교수 타이틀을 거머쥐었다. 여기까지 읽은 당신은 지금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당신이 부모라면 그들의 천재성에 감탄한 후 자녀들에게 그들을 본받으라고 설파할지도 모른다. 혹은 당신이 청춘의 시기를 한창 즐기고 있을 대학생이라면 열의로 가득 차 ‘저들처럼 빛나는 인생을 살아야지’ 하고 다짐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의 경우에는 조금 삐딱한 생각이 떠오른다. ‘그래서 어쩌라고?’

  시대가 변하며 사회가 겪은 변동 중 하나는 신분제의 철폐다. 신분이 사라졌다는 것은 물론 좋은 일이다. 개인의 사회적 지위 상승이 혈통에 구애받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모든 일에는 장단(長短)이 있다고, 개인을 얽매는 신분이 사라진 것에도 부작용은 존재한다. 전통사회의 신분이 사라진 자리는 현대 사회의 맹목적 성공신화로 채워졌다. ‘개천에서 용 난다.’ 누구나 열심히 노력하면 성공할 수 있다는 진리와도 같은 명제다. 널리 지지받는 국가의 지도자, 통찰력이 있는 석학, 대단한 부를 쌓는 사업가가 되는 데 더 이상 ‘천한 신분’은 걸림돌이 되지 않는다. 그러나 경쟁이 일상화된 사회에서 ‘노오력’을 강조하는 풍조는 역설적으로 지독한 냉소주의와 회의주의를 낳았다. 

  개인의 노력이 ‘노오력’이 된 데에는성공만능주의 사회를 향한 원망이 기저에 깔려 있다. 일명 ‘헬조선’에서는 성공이 ‘노오력’만으로 가능하지 않다는 것이다. 현대사회의 우울함은 여기서 온다. 성공이란 것은 개인의 노력으로 달성될 수 있는 후천적 조건과, 지능과 재능, 때로는 국적, 인종, 성별, 부의 많고 적음과 같은 선천적 조건의 적절한 조합으로 이뤄진다. 그럼에도 사회는 ‘성공=노력의 결과물’이라는 이데올로기를 사람들에게 끊임없이 주입함으로써 개인이 성공하지 못하는 이유가 ‘게으르기 때문’이라고 낙인찍는다. 실패의 모든 원인이 개인의 과오로 귀결되는, 이 철저히 자기감시적인 인식은 개인의 ‘노오력’ 증대로이어져 결국 ‘번아웃(burnout)’을 야기하게 된다.

  사회가 ‘개천에서 용 난다’면서 개인의 ‘노오력’을 요구하는 이유는 단순하다. 사회는 개인들의 집합체로, 각각의 결과물이 좋을수록 사회 전체의 결과물이 좋아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맹목적인 노력만능주의 사회에서 우리는 개인을 착취한 결과를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는 데 지나치게 익숙해져 있다. 한국의 청소년들이 온종일 책만 들여다봐야 한다는 것에 동정심을 느끼면서도PISA(국제학업성취도평가)에서 한국이 상위권을 차지한다는 사실에 뿌듯함을 느껴본 적은 없었나? 기업이 인턴이나 회사원들을 ‘열정 페이’로 부려먹는다고 비난하면서도, 다른 곳에서 한국인은 온갖 고난에도 굴복하지 않고 꿋꿋이 노력하는 끈질긴 민족이라며 자화자찬해 본 적은? 일중독에 걸린 회사원이 업무 외의 일상생활을 어색해 할 때 그래도 성실히 일한다며 치켜세운 적은? 우리는 우리 모두가 탈진 직전까지 노력한 결과물을 두고 지나치게 자랑스러워하는 것이 아닌가.

  사람은 다 같지 않다. 획일적 성공 기준은 존재하지 않는다. 나에게는 나의 재능이, 다른 사람에게는 다른 사람의 재능이 있듯이 각자는 각자의 재능을 발휘하는 것이 좋다. 재능은 있는데 게으르다면? 그것도 괜찮다. 요즘 트렌드로 떠오르는 인재상은 재능 있는 게으른 사람이다. 만약 재능이 없다면?그것도 그것대로 괜찮다. ‘YOLO(You Only Live Once)’라는 말이 괜히 나온게 아니다. 인생은 자기 만족의 문제다. 우리 선조들이 ‘뱁새가 황새 따라가다 가랑이 찢어진다’는 훌륭한 어록을 남겨줬지 않나? 인생을 살아가는 현명한 방법 중의 하나는 내가 적자생존의 경쟁에서 부적격자임을 인정하는 것이다. 그러면 우리사회가 플래카드를 내걸며 자랑하는 성공신화의 주인공들에게 열등감을 느낄 일이 사라진다. 따라서 그들처럼 성공하기 위해 ‘노오력’을 해야겠다는 자기통제도 사라진다. 인간은 행복해지기 위해 태어난 것이 아닌가. 그러니까 ‘아프니까 청춘’이라며 열심히 ‘노오력’할 것을 요구하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해주자. “그래서 어쩌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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