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20~30대가 생각난다. 내 인생 전체가 머피의 법칙인 것처럼 학사를 졸업할 때는 대졸 취업난이 나를 괴롭혔고, 석사 과정을 이수할 때는 IMF가 터져 대기발령 중에 퇴사 처리를 당했다. 박사 과정을 이수할 때는 대학 구조조정으로 교수를 뽑지 않는 해가 더 많았다. 누구나 자신이 세운 목표나 꿈을 실현하는 길 도중에 수많은 시련과 좌절에 직면한다. 이 시기를 극복하기위해서 꿈도 지속적으로 꿔야 하지만, 끊임없는 인내와 노력이 필요하다. 박사 과정을 이수한 후 수십 개의 이력서를 작성했는데 유일하게 한 연구소에서 ‘일용직 위촉연구원으로 일할 수 있는가’를 물어왔다. 그래도 ‘한때 계약교수였고 전문연구원 경력이 있는데 복사나 번역, 원고 정리 등을 하는 위촉 연구원은 좀 너무한 것 아닌가!’하는 생각도 있었고 ‘40대의 나이에 가능할까?’하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나는 다른 여느 20대의 신입사원들처럼 일을 했다. 파워포인트를 이용해 발표 자료를 예쁘게 만들고, 엑셀 파일을 보기 좋게 정리하고, 보고서의 목차를 정리하고, 문장도 수정했다. 나름 ‘내 적성이 신입사원이구나!’라고 느낄 정도로 재미있게 열심히 일을 한 기억이 난다. 그 때 만났던 많은 박사님들이 이제 나에게 과제를 검토받아야 한다. 조금은 어깨가 으쓱한다.
사람이 처마 밑에 서면 머리를 숙이지 않을 수 없다고 했다. 어떤 굴욕적인 상황이 와도 한 번은 되돌아볼 줄 알고 깊은 생각을 해보라는 뜻이 아닌가 싶다. 상사의 갑질이 심하다고 바로 직장을 그만 둘 수는 없다. 어려움과 좌절을 감당하지 못하는 사람은 대부분 그 자리에 주저 않는다. 난 가끔 잠이 안 오면 ‘정판교의 바보경’을 읽는다. 이 책에는 마음 위에 칼 하나를 얹은 바보 철학을 가르친다. 마음 위의 칼 하나는 인(忍)을 말한다. 정판교는 청나라 사람으로 총명한 사람이 어리숙한 척 하기 어렵다고 말한다. 따라서 그에 관련된 처세에 대해 인내하고 널리 베풀며 침묵할 것을 이 책에서는 당부하고 있다. 물론 나도 정판교가 말하는 대로 실행하지 못했기 때문에 이 책을 10년째 읽고 있다. 그 책 내용 중에 내 마음에 와 닿은 것은 ‘우리 인생에서 십중팔구는 내 뜻대로 되지 않지만, 내 꿈의 하나 정도는 인내와 노력을 가지면 실현되는 듯하다’는 구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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