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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질’한 증거가 필요해
2017년 09월 04일 (월) 14:29:18 나재연 정기자 -
  ‘덕질’은 우리에게 일상이 됐다. 과거에는 ‘빠순이’나 ‘오타쿠’ 등 부정적인 이미지였지만 요즘은 “나는 ○○덕이다” 라며 자기소개를 할 만큼 덕질이 친근해졌다. 광고나 미디어, 일상대화에서도 ○○덕이라는 표현이 아무렇지 않게 등장하게 됐다. 덕질은 부정적 인식에서 벗어난 것뿐만 아니라 오히려 그 지식이나 능력이 높게 평가받아 대단한 것으로 취급받기도 한다.

  심지어 덕질은 취업 시장에서도 인정받기에 이르렀다. ‘덕업일체(덕질이 곧 직업이 된 경우)’의 사례가 생겨나고, 열심히 덕질한 능력을 증명해 자신은 남들과 다른 인재라고 어필할 수 있게 됐다. 자기소개서에 덕질한 것을 기재하라는 항목이 생긴 회사도 있다. 기뻐하다가도 의문이 생겼다. 정말 열심히 덕질을 해오다가 마침 이를 어필할 수 있는 기회가 찾아온다면, 그 사실을 증명할 수 있을까?

  덕질의 증거는 블로그, SNS, 스크랩 등이 될 수 있다. 만약 이 중 아무것도 하지 않아 증명할 수단이 없다면? 증명이 안 된다. 취업 시장에서는 ‘덕질’이 아니라 ‘덕질에서 나온 그만의 장점’을 원하기 때문이다. 억울할 건 없다. 어차피 나 좋아서 한 덕질, 도움이 되면 되는 거고 아니면 마는 거지. 하지만 묘하게 차오르는 아쉬움이 사라지질 않는다. 분명 남들이 알아주기를 바라고 한 덕질은 아니지만 마음이 상한다.

  취업이 어려운 요즘, 무엇이든 스펙이 된다는 건 희소식이다. 하지만 이로 인해 덕질은 더 이상 취미에 그칠 수 없게 됐다. 즐기는 것을 넘어 이제 덕질은 스펙으로서 의미를 갖추게 됐다. 일명 ‘덕질의 스펙화’다. 내 덕질을 남들에게 보여주기 위해 증거를 남겨야 하는 것 이다. 왠지 덕질마저 즐기고 끝내는 것으론 부족해져버린 현실에 조금은 힘이 빠진다.

  덕질은 휴식의 일종이다. 덕질이 스펙이 되는 현상은 긍정적으로 보이지만, 다르게 생각해보면 ‘현생’에 지쳐 즐기는 취미가 또 다른 ‘현생’이 돼 버린 것이다. 나의 덕질을 스펙으로 만들기 위해 남들에게 보일 결과물을 만들다보면 ‘내가 좋아서 하던 일이 맞나’하는 의문이 들어 자괴감이 든다. 내 덕질을 평가요소로 만들어버리니 결과물을 생각지 않았던, 결과물이 없었던 지금까지의 덕질은 다 부질없게 느껴지기도 한다. 지친 몸을 달래는 휴식마저 효율을 갖춰야 하니, 더 이상 휴식이 아니다. 이쯤에서 다시 생각해본다. 일에 도움이 되는 ‘생산성 있는 휴식’을 장려하는게 정말 긍정적인 일일까? 어쩌면 ‘덕질의 스펙화’는 가벼운 마음으로 즐기던 덕질이 더 이상 휴식의 의미를 갖지 못하고 퇴색된 것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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