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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전체를 교정할 수 있는 유전자가위
점점 현실화 돼 가는 유전체 교정시대
2017년 09월 18일 (월) 19:40:44 배상수 한양대학교 화학과 교수 -
 
지난 1998년 에단 호크, 우마 서먼, 주드 로 주연의 ‘가타카 (GATTACA)’ 라는 제목의 영화가 국내에 개봉됐다. 다소 이상하게 느껴질 수 있는 이 영화의 제목은 ‘유전자의 본체’(이하 DNA)의 4가지 염기인 아데닌(A), 티민(T), 구아닌(G), 시토신(C)의 조합으로 만든 것인데, 유전공학 기술이 발달한 먼 미래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영화에서는 자연임신으로 태어난 인간과 유전체 편집을 통해 우성인자들만 갖고 태어난 인간이 구분돼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준다. 당시 예술인들의 상상력으로 구성한 내용들이 오늘날에 와서는 점차 현실이 되고 있다. 이는 바로 제3세대 유전자가위 기술인 ‘크리스퍼(CRISPR) 유전자가위’의 등장에 기인한다. 크리스퍼 유전자는 제1세대인 징크핑거뉴클레아제(ZFN)나 제2세대인 탈렌(TALEN)과 달리 RNA를 기반으로 특정 DNA에 붙어 유전체 편집을 유도하기 때문에 DNA 타깃을 바꾸기가 용이하고 만들기가 매우 쉬울 뿐 아니라 가격도 저렴하다. 이러한 크리스퍼 유전자가위의 장점들 덕분에 지금은 누구나 유전체 편집을 쉽게 시도할 수 있는 시대가 됐다.

  유전자와 유전체
그리고 유전자가위
  유전자가위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유전자와 유전체에 대해 알아야 한다. 박테리아같은 작은 미생물부터 식물, 곤충, 동물, 그리고 인간에 이르기까지 모든 생명체는 가장 기본 단위인 ‘세포’로 구성돼 있다. 이러한 세포 또는 세포가 모여 이룬 생명체는 각각 본연의 생김새나 특성, 기질 등과 같은 형질들이 정해져 있는데 그 정보는 세포 내에 있는 유전물질인 DNA에 모두 저장돼 있다. 따라서 만약 우리가 세포 내에 있는 DNA를 읽어서 이해할 수 있다면 이 생명체의 특성을 모두 파악할 수 있고, DNA의 유전정보를 바꿀 수 있다면 이 생명체의 특성도 바꿀 수 있을 것이다.

  인간의 경우 총 30억 쌍의 DNA 염기서열이 있는데, 일찍이 2000년대 초반에 그 정보가 모두 밝혀진 바 있다. 사실 모든 염기서열이 의미 있는 것은 아니다. 이 중에서 약 2% 정도에 해당하는 부위가 실제 단백질 등으로 발현돼 성격, 외모, 피부색 등을 결정짓는데 이를 유전자라고 부른다. 그리고 유전자와 같은 유전물질들의 총합을 유전체라고 부른다.

  유전자가 잘못되면 때로는 희귀·난치병이 되기도 하고, 유전자 변이가 축적되면 암과 같은 질환이 만들어지기도 한다. 그렇다면 DNA 내의 잘못된 유전자를 직접 고치는 것이 가능할까. 인간에게 있는 총 30억 쌍의 염기서열은 모두 A, T, G, C로만 구성돼 있기 때문에 다른 곳을 건드리지 않은 채 특정 염기만 없애거나 고치는 식의 유전자 교정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그런데 2013년 1월 크리스퍼 유전자가위가 세상에 공개되면서 이런 일들이 현실적으로 가능할 뿐 아니라 누구나 쉽게 사용할 수 있는 시대가 열리게 된 것이다.
   

  작은 세균의 면역체계에서 착안해 만든
크리스퍼 유전자가위
  크리스퍼 유전자가위는 본래 박테리아, 고세균과 같은 세균에서 유래한 것이다. 세균은 때때로 인간을 공격해 병을 유발하기도 하는데, 세균 또한 외부의 박테리오파지와 같은 바이러스의 공격을 받는다. 이때 외부에서 침입한 바이러스의 DNA를 잘라버리는 역할을 하는 것이 바로 세균 내의 크리스퍼-카스 시스템(CRISPRCassystem)이다. 그리고 이러한 세균의 면역체계에서 착안해 만든 것이 바로 크리스퍼 유전자가위이다. 유전자가위와 같은 위대한 발명은 기초과학인 ‘세균의 면역체계’ 연구에서 유래한 것인데, 기초과학의 중요성을 다시금 엿볼 수 있다.

  유전자가위는 말 그대로 특정 DNA 유전자를 매우 정교하게 특정부위만 가위처럼 잘라버리는 역할을 한다. 그러면 세포 내에서는 어떤 일이 생길까. 다행히 세포는 스스로 DNA를 복구하는 시스템이 잘 발달해 있다. 따라서 유전자가위로 잘라버린 부위는 세포 스스로의 수선 기작(DNA repair system)에 의해 복구되는데, 이 과정에서 특정 유전자가 망가지기도 하고 또 원하는 방향으로 교정되게 만들 수 있다. 즉 유전자가위로 DNA의 특정 부분을 절단하고, 세포 복구 과정을 통해 결과적으로 특정 유전자를 망가뜨리거나 특정 유전자 변이를 교정할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들을 통칭해 유전체 편집이라고 부른다.

  유전자가위의
무궁무진한 활용 가능성
  지금까지 유전자가위는 유전정보가 담겨있는 DNA에서 매우 정교하게 특정 부위만을 망가뜨리거나 교정할 수 있는 도구라는 것을 설명했다. 그럼 이 도구를 활용하면 어떤 일들을 할 수 있을까. 인간뿐 아니라, 동물, 식물 등에 있어서 모든 상상할 수 있는 일들을 현실화시킬 수 있을 것이다. 예를 들어 근육을 억제하는 유전자를 망가뜨려 근육질의 ‘슈퍼돼지’를 만든다던가, 시간이 오래되면 갈색으로 변하는 갈변현상을 일으키는 유전자를 망가뜨려 오래도록 싱싱한 ‘버섯’을 만들어 낼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에이즈를 일으키는 HIV(인간 면역 결핍) 바이러스의 감염 경로 중 하나의 유전자를 망가뜨리면 에이즈 환자를 치료할 수도 있고, 선천적으로 피의 응고를 담당하는 유전자가 망가져 생기는 혈우병의 경우 그 유전자를 교정하면 혈우병을 근본적으로 치료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뿐만 아니라 애완동물의 털 색깔을 바꾼다거나 식물의 병원균 저항성이 강화된 새로운 품종을 개발하는 등 DNA의 수정을 통해 상상을 현실로 바꿀 수 있을 것이다.

  인간의 배아세포에서의
유전자 교정 시도
  유전자가위를 활용하면 결국 정자와 난자가 만나 만들어지는 수정란에서도 유전자 교정이 가능하다. 이미 2015년에 중국 연구진에 의해 인간의 배아세포에서 최초로 중증 빈혈 질환과 관련한 유전자 교정에 성공한 바 있고, 올해 8월에는 한국과 미국의 공동연구팀이 인간의 배아세포에서 심장질환과 관계된 유전자 교정에 성공한 내용이 학술지 ‘Nature’에 발표된 바 있다. 이는 과학계뿐 아니라 사회, 법, 윤리 분야에 큰 충격을 주고 있는데 특정 유전자의 변이에 기인한 유전질환에 대한 치료법으로서의 기대감과 정상적인 개체로 자랄 수 있는 인간 배아의 유전자를 교정하는 것에 대한 우려를 동시에 낳고 있다.

  유전체 교정에 대한
사회적 논의의 필요성

  우리나라는 물론 다른 선진국들도 빠르게 발전하고 있는 유전체 교정 기술에 상응해 법적·제도적·사회적 장치들이 아직 제대로 정립되지 못하고 있다. 유전체 교정 기술은 제대로 활용하면 유전자 치료, 새로운 식물과 동물 육종 개발, 기초 유전자 연구 등 그 활용 가능성이 무궁무진한 반면 맞춤형 아기, 무분별한 편집 시도 등과 같은 부작용 또한 클 수 있다. 따라서 유전체 교정 기술을 올바르게 활용할 수 있도록 사회적 논의 및 합의가 필요하다. 예컨대 이는 시험관 아기 시술의 개발 및 적용과 유사할 수 있다. 시험관 아기 시술은 난자와 정자를 체외에서 수정시켜 자궁에 착상시키는 방법으로 일찍이 1978년 영국에서 최초로 시도됐고, 1985년 국내에 도입됐다. 현재에는 국내에서만 매년 수만 명의 아이가 이 시술로 태어나고 있는데 처음 시도될 당시에는 여러 사회적·윤리적 우려들이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유전체 교정기술도 이와 마찬가지로 그 장점 및 활용을 극대화해 사회에 기여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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