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을 가린 선의의 저울, 블라인드 채용
눈을 가린 선의의 저울, 블라인드 채용
  • 정예은 기자
  • 승인 2017.09.25 20:0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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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후 추이 지켜보며 개선해가야

  이번 하반기부터 공공부문에서 블라인드 채용이 의무화되면서 이에 대한 논쟁이 격렬하다. 블라인드 채용을 찬성하는 사람들은 블라인드 정책을 시행하면 구직자 모두에게 공평한 기회가 생기고 사회적 비용도 절감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반면 이에 반대하는 사람들은 블라인드 채용을 하게 되면 명문대 출신 구직자들이 역차별을 받을 뿐만 아니라 사회적 혼란도 생긴다고 반발하고 있다. 이에 기사에서는 블라인드 채용에 대한 논란을 더 자세히 알아봤다. 


  ‘공평한 고용’을 목표로
  차별적 조건 기재 금지해

  블라인드 채용은 기업이 구직자의 성별, 학벌, 신체조건, 출신 지역, 가족관계 등에 얽매이지 않고 오로지 직무적합성만을 평가해 구직자를 고용하는 방식이다. 이는 구직자들이 취업할 때 학벌이나 성별 등으로 겪는 차별을 줄이려는 취지로 도입됐다. 지난 7월 5일 고용노동부가 공개한 ‘블라인드 채용 추진방안’ 보고서에 따르면 블라인드 채용은 이미 여러 해에 걸쳐 공공부문에 적용돼 왔다. 2004년 국가인권위원회 산하 9개 공공기관은 구직자를 채용할 때 나이와 학력에 제한을 두지 않았다. 2005년에는 공무원 공개경쟁 채용 시험 응시를 위한 원서에 학력 기입란이 삭제됐다. 2007년에는 공무원 시험 응시자들이 성별·나이·외모 등으로 불합리한 제한을 받지 않게 됐다. 이후 2015년에 NCS(국가직무능력표준 시험)가 도입돼 공공부문에서는 구직자가 갖춘 직무능력을 중심으로 채용하기 시작했다. 이에 지난 6월 22일 있었던 수석보좌관회의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공공부문에서 블라인드 채용을 의무화해야 한다”고 공언한 바 있다.

   사회적 비용 경감하고
  구직자들의 부담 덜어줘

  블라인드 채용을 시행하면서 이력서에 구직자의 학력이 기재되지 않아 사원들의 학력이 다양해졌다. 실제로 2003년부터 2007년까지 블라인드 채용을 했던 KBS의 경우 명문대 출신 신입사원의 비율이 70%에서 30%로 떨어진 반면 지방대 출신 신입사원의 비율은 10%에서 31%로 증가했다. 인사담당자가 구직자의 출신 대학을 알 수 없게 되자 능력 있는 지방대 출신 구직자가 면접에서 돋보이게 된 것이다.



  블라인드 채용이 구직자의 직무적합성과 직업 적성을 평가하기 때문에 얻는 장점은 더 있다. 기업 관계자들은 블라인드 채용을 한 뒤 직무에 적합한 능력을 갖춘 신입사원이 늘어났을 뿐만 아니라 신입사원의 이직률과 퇴사율도 낮아졌다고 입을 모았다. 지난 7월 ‘일자리 15대 기업 초청 정책 간담회’에서 KT 황창규 회장은 “채용할 때 학점이나 어학성적과 같이 직무와 무관한 항목을 보지 않았더니 실무적 역량을 보유한 인재가 많이 선발됐다는 의견이 있었다”고 말했다. 지난 8월, ‘공공기관 블라인드 채용 현장간담회’에서 코바코 곽성문 사장 역시 “블라인드 채용을 시행한 결과 신입사원이 업무에 잘 적응하고 신입사원의 이직률도 줄었다”고 말한 바 있다.

  또한 한국지질자원연구원은 2015년부터 약 2년간 세 차례에 걸쳐 구직자가 가진 능력을 평가하면서 채용한 결과, 직무에 적합한 능력을 갖추지 않은 지원자가 대폭 감소했다. 기업이 직무적합성을 기반으로 구직자를 채용하면 채용하는 과정에서 업무와 관련된 내용을 많이 다루게 돼 해당 업무에 대한 능력이 부족한 구직자는 그 기업에 지원하지 않게 된다.

  이뿐만 아니라 구직자들은 용모를 관리해야 한다는 부담을 덜기도 한다. 김현지(심리 4) 학우(이하 김 학우)는 “개인의 만족을 위해 성형한다는 말은 옛말이다”며 “‘취업성형’이라는 신조어가 생길 정도로 기업에서는 구직자의 외모도 본다”고 말했다. 실제로 2015년 6월, 고용노동부가 공식 트위터와 블로그에 ‘취업성형’을 권장하는 내용의 글을 올려 각종 비난을 받고 해당 게시물을 삭제한 바 있다. 김 학우는 “직무와 외모는 상관없다”며 “취 업할 때 구직자들이 외모 때문에 불이익을 받는 일은 없어야 한다”고 했다. 

  ‘스펙’이 아니게 된 학벌
  계속되는 역차별 논란

  이력서에 학력을 기재하는 것이 금지되면서 명문대생을 비롯한 이른바 ‘인서울’ 대학생들은 블라인드 정책이 역차별을 낳을 수 있다며 불만을 토로하고 있다. 구직자를 평가하면서 노력의 결과물인 학력을 배제하는 것은 불공평하다는 주장이다. 지난 7월 구인구직 사이트 ‘인크루트’가 회원 404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한 결과, 전문대 학교나 지방사립대학교를 졸업한 구직자들이 블라인드 채용을 반대하는 비율은 각각 10% 미만이었던 반면 서울권 또는 해외 대학 출신 구직자들이 블라인드 채용을 반대하는 비율은 30%에 육박했다. 구직자의 출신 학교에 따라 블라인드 채용에 대한 찬반 여론이 갈리고 있는 것이다.

 
  이에 따라 인사담당자에게 출신 대학을 어떻게든 알리려는 구직자들의 꼼수도 등장했다. 이메일 기입란에 출신 대학 이메일 계정을 적거나 자기소개서에 학교의 위치나 동아리를 설명해 특정 대학을 연상시키게 한 것이다. 이와 관련해 김 학우는 “면접에서는 명문대 출신 사람들이 높게 평가받는 ‘후광효과(하나의 뛰어난 특징 때문에 그 전체의 가치를 과대평가하는 것)’가 나타난다”며 “하지만 명문대에 진학하는 비율이 부모의 소득에 비례한다는 점을 고려하면 학력을 오롯이 노력의 결과로만 치부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객관적 평가 지표의 부재
  거세게 이는 실효성 논란
  블라인드 채용이 시행되면서 취업할 때 자기소개서의 비중이 높아졌다. 이에 구직자에게 자기소개서를 쓰는 법을 가르치거나 자기소개서를 대필해주는 시장이 확장될 것으로 우려된다. 지난 7월 취업 포털 사이트 ‘잡코리아’가 418명의 인사 담당자들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한 결과, 인사 담당자들의 45.1%가 “블라인드 채용이 도입되더라도 ‘자소설(허구에 기반을 둬 꾸며낸 자기소개서)’ 등은 여전히 범람하게 되고 또 다른 스펙도 갖춰야 할 것이다”고 응답했다. 업무와 관련 없는 스펙을 갖춰야 할 필요성은 줄었지만, 자기소개서를 더 잘 써야 한다는 부담은 늘어난 것이다. 한양대학교 경영학부 이상민 교수(이하 이 교수) 는 “자기소개서는 구직자를 평가하는 하나의 요소일 뿐 절대적 평가 지표는 아니다”고 말했다. 이어 “구직자가 직무와 조직에 적합한 능력을 갖췄는지 판단하기 위한 평가 방식이 축적될수록 기업의 구직자를 채용하는 노하우가 쌓일 것이다”며 “이로써 사교육의 영향력은 약화될 것이다” 고 덧붙였다.

  전문가들은 인사담당자들이 구직자의 직무적합성과 창의성을 평가하게 되면 많은 창의적 인재가 기업에 입사하게 될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사원의 창의성을 요구하지 않는 단순 사무 행정직을 채용할 때는 블라인드 채용이 적합하지 않다는 지적도 있다. 이에 이 교수는 “단순 사무 행정직에서 일할 신입사원을 채용할 때도 그 특성에 따라 구직자가 조직과 적합한 역량을 가졌는지 평가해야 한다”며 “단순한 행정 업무의 비중은 줄어들고 다양한 직무가 개발될 것이기 때문에 구직자의 직무적합성을 측정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또한 기업은 구직자의 직무적합성을 평가하기 위해 그에 맞는 평가 방식을 도입해야 한다. 그러나 기업이 자체적으로 개발한 전형에 대한 객관성과 공정성은 의심받을 가능성이 있다. 한국조세재정연구원의 재정포럼 8월호에 실린 ‘공공기관 채용의 사회적 책임에 대한 소고’에 따르면 전문적으로 구직자를 채용하는 방식이 갖춰지지 않은 상태에서 블라인드 채용이 진행되면 인사 청탁 때문에 비리가 발생할 수 있다. 또한 기업은 새로운 평가 방식의 투명성에 대한 논란을 피하고자 구직자를 채용하는 과정에서 지나치게 필기시험에 의존할 가능성도 있다.

  해외 사례 참고하며
  지속적으로 개선해 나가야
  블라인드 채용이 비교적 최근 도입된 우리나라와 달리 일부 다른 국가에서는 이미 수 년 전부터 블라인드 정책을 적극 시행해왔다. 대표적인 예로, 독일은 2006년 일반동등대우법(이하 동법)을 제정해 구직자들이 인종, 성별, 종교, 연령, 성 정체성 등을 이유로 불합리한 대우를 받지 못하게 했다. 동법이 시행된 이후 독일 정부는 ‘연방차별금지청’을 설치해 ‘익명지원제도’를 추진해 오고 있다. 익명지원제도는 이슬람 국가 출신 이민자들이 취업할 때 이력서에 자국의 이름을 썼다는 이유로 차별당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도입된 제도다. ‘채용상 차별에 관한 해외사례 및 실태조사 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인사담당자들은 구직자의 인적 사항과 사진이 없어도 구직자를 채용하는 데 문제되지 않았다고 한다. 이에 구직자들은 익명지원제도를 통해 불이익을 받지 않게 됐다. 결국 익명지원제도는 취업을 할 때 소외되기 쉬운 집단에 더 나은 기회를 제공한 셈이다. 이러한 예시는 블라인드 채용을 시작하고 있는 한국이 참고할만한 모범 사례다. 이처럼 블라인드 채용을 더 보완하고 개선해야 할 상황에서 당분간은 정책의 성패 여부를 지켜봐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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