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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수칼럼] 당신은 왜 질문하지 않는가?
2017년 10월 24일 (화) 17:29:07 정우현 약학과 교수 -

  철학이건 문학이건 혹은 과학이건 수많은 학문의 기원을 꼽으라 하면 모두 약속이나 한 듯이 고대 그리스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리스가 처음 역사책에 등장했을 당시 이미 첨단을 걷던 국제 도시 바빌로니아는 3,000년의 역사를 자랑하고 있었고, 이집트에서는 농사를 위해 천체를 관측하는 기술과 강의 폭을 측량하는 수학, 피라미드를 짓는 수준 높은 건축 기술이 발달해 있었다. 대제국의 관점에서 봤을 때 그리스는 지도 위의 작은 점 몇 개에 불과한 작은 도시국가였지만, 근대 이후 세계를 지배한 인류의 정신을 낳았다고 평가받는다. 문명의 발전을 지향하는 실용적 기술의 축적을 목표로 한 것이 아니라, 인간 사회를 둘러싼 자연 세계가 왜 이런 모습인지, 이 세계가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논리적이고 체계적 방식으로 이해하려는 사고방식을 추구하며 ‘학파’를 형성하고, 후속 세대를 키워내 이를 ‘학문화’했기 때문이다.

 의외의 해석이라 생각할지 몰라도, 내가 보기엔 고대 그리스와 현대의 한국 사회는 닮은 점이 많다. 민주적 정부 형태와 시민 의식을 갖추고자 하는 구성원들의 열망이 강하고, 젊은이들이 도시의 문화생활과 레저 활동을 무엇보다도 중요시한다는 점에서 그렇다. 경쟁을 좋아한다는 공통점도 있다. 아고라에서 웅변 경쟁, 토론, 전차 경주, 올림픽과 같은 스포츠 등 생존을 위한 경쟁이 아닌 놀이로서의 대결을 즐기는문화는 오늘날 한국 사회에서 인기가 많은 각종 서바이벌 및 오디션 프로그램들과 닮아 있다. 얼마나 진짜 가수를 잘 흉내 내며 노래를 하는지, 얼마나 뇌가 섹시한지, 심지어 짧은 시간동안 몇 안 되는 재료로 얼마나 맛있는 요리를 만들어낼 수 있는지 진검승부를 펼치는 것을 시청하며 내 일처럼 흥분한다. 가장 화려하고 주목 받는 존재가 되고자 하는 현대 문화의 욕망은 우리 몸속에 배인 지극히 그리스적인 것에서 유래한다. 철학, 시, 연극, 의학 등 그렇게 한정된 공간에서 단기간에 그토록 많은 불멸의 업적이 창조된 사례는 인류사에서 두 번 다시 나타나지 않았다.

  플라톤은 훗날 까마득한 후배 철학자로부터 “2,000년 서양 철학은 단지 플라톤의 각주에 불과하다”는 찬사를 받을 만큼 독보적인 사상가였고, 그의 제자였던 아리스토텔레스도 도덕과 미학, 논리와 과학, 정치와 형이상학을 포함한 서양 철학의 포괄적 체계를 처음으로 구축한 학자로 유명하다. 그러나 오늘날의 관점에서 봤을 때 그들이 어처구니없는 주장도 많이 했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지 않다. 그들은 세상 만물이 더 이상 쪼개지지 않는 네 개의 원소인 물, 불, 흙, 공기로 이뤄져 있다고 믿었다. 또한 무거운 돌이 가벼운 돌보다 빨리 떨어진다고 주장했고, 생명체의 자연발생을 믿는 등, 이 대단한 철학자들이 범한 오류를 찾자면 사실 한도 끝도 없다. 어쩌면 이들이 후대에 남긴 가장 위대한 유산은 과학적·철학적 진리가 아니라 그 진리에 도달하고자 사용했던 방법론일 것이다. 그것은 바로 ‘질문’의 정신이다. ‘세계는 무엇으로 돼 있는가?’, ‘인간은 어디에서 온 것인가?’ 기나긴 역사에 비하면 별로 새롭지 않은 질문이다. 그러나 이전 시대의 사람들은 신화로 답했을 이 질문들에 그리스인들은 자연의 새로운 원리로 답하기 위해 고군분투했다. ‘빛이란 무엇인가?’ 태초부터 존재해왔을 이 오래된 질문은 현대까지도 계속 되뇌어져 위대한 상대성이론과 양자역학을 빚어냈고, 아주 최근에도 청색 LED를 개발한 공로로 노벨물리학상을 수여할 만큼 지금도 여전히 ‘핫한’ 질문임이 증명됐다. 낡고 진부한 질문이란 없다. 답을 찾는 방법이 시대마다 다를 뿐.

 많은 면에서 닮은 고대 그리스와 현대의 한국 사회가 결정적으로 다른 점은 바로 이것이다. 소크라테스의 후예들은 지혜를 얻기 위해 끊임없이 묻고 또 물었다. 늘상 들어왔던 흔한 질문이라도 어느 순간 함부로 답할 수 없는 순간이 오며 기존에 배워 왔던 익숙한것들이 낯설어지는 그 순간 새로운 창의성이 발휘된다. 그런데 우리는 왜 질문하지 않는가? 질문하지 않고 무엇을 새로 배울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세상에서 가장 안쓰러운 존재가 셋 있다. 부모와 눈을 맞추지 않는 아이, 남의 말을 듣지 않는 노인, 그리고 아무 것도 묻지 않는 젊은이가 그들이다. 젊은 이들이 오만해서, 모든 것을 혼자 깨우칠 수 있어서 질문하지 않는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들은 단지 용기가 없을뿐이다. 아니면 시선을 의식해서다. 그게 뭐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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