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3회 학술문예상 학술 논문 가작>
<제43회 학술문예상 학술 논문 가작>
  • 감수민(국어국문 4)
  • 승인 2017.11.24 19: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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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득강전(魚得江傳)> 연구
- 근대 이행기 고전소설과 재담의 교섭양상을 중심으로

Ⅰ. 서론

  <어득강전>은 조선 중종 때의 문신이었던 어득강(魚得江)을 주인공으로 한 해학적이고 발랄한 고전소설이다. 이 작품은 조선말기 『청학동긔』에 합철된 작자미상의 한글필사본으로,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에 유일본이 소장되어 있으며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어득강은 임금에게 총애 받던 유능한 문신으로, 관서 지방의 삼화(三和)마을의 부사(府使)로 임명된다. 당시 관서 지방의 방백(方伯)은 평소에 어득강에 대한 자격지심이 있던 인물로, 자신의 관할구역에서 공무를 맡게 될 어득강을 수하에 길들이고자 한다. 방백은 어득강에게 비장을 보내 욕을 보이게 하려 했으나, 오히려 비장이 머리를 깎여 돌아온다. 또 다른 비장이 어득강을 속이러 갔으나 수염이 물들어 돌아오고, 급기야 방백의 아들이 나서나 똥물을 먹고 돌아온다. 결국 방백이 직접 어득강을 욕보이려 찾아가나, 마을 주민들과 기생이 합심하여 방백을 웃음거리로 만든다.

  이렇게 어득강과 고을주민들이 연대하여 부패한 방백을 골탕먹이는 일련의 사건들은 ‘재담’이라는 서사적 구심점을 주축으로 전개되며, 이는 근대이행기에 조선이 대면했던 시대적 격류 속에서 민중이 문학적으로 향유했던 표현욕구를 응축하고 있다.

  기존연구들에서는 <어득강전>의 서사전개를 설화에서 발생한 재담적 화소로 분석함으로써, 재담이 지표로 둔 설화적 연원을 고찰하는 데에는 성과가 있었다고 평가된다. 그러나 화소 단위를 기준으로 한 작품의 분절적 파악은 <어득강전>의 총체적 주제의식을 파악하는 데에 다소 한계가 있다. 또한 선행연구들의 <어득강전>의 주제의식은 대체적으로 ‘중세적 관료체제와 신분제도에 대한 저항의식’으로 수렴되나, 어득강이라는 인물의 심층적 고찰을 통하여 주제에 대한 재고가 필요하다고 생각된다.

 
본고는 <어득강전>에서 서사적 추동력으로 작용하는 재담을 ‘신체적 재담’과 ‘언어적 재담’으로 분류하여 <어득강전>의 총체적 주제의식을 살피고자 한다. 또한 신체적 재담으로부터 언어적 재담으로의 단계적 확장의 양상을 고찰함으로써, 판소리와 같은 근대 연행물에서 탈락되었던 ‘재담’의 행방을 근대이행기 고전소설에서 찾고자 한다.

 
근대 이행기에 전개된 연행물의 고급화 과정에서 탈락된 재담은 다소 저평가되어온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우리 문학의 잠류로 이어진 재담 정신은 그 맥이 끊기지 않고 근대이행기 고전소설에 자리했으며, <어득강전>은 ‘재담’이라는 민족적 열망을 대변하는 조선말기의 중요한 기록이므로 연구가치가 높다고 생각된다.

Ⅱ. <어득강전>의 주제의식 재 고찰

 
기존 연구에서 <어득강전>의 주제의식은 ‘완고한 중세 신분체제에의 비판의지’로 모아졌다. 그러나 <어득강전>의 주제를 단순히 조선말 신분제에의 반발로 집약하기보다는, 어득강이라는 인물에 대한 근본적인 고찰을 통하여 작품의 총체적 창작의식을 살펴 볼 필요가 있다.

 
어득강은 실존 역사인물임과 동시에 소설에서 허구화의 대상이 된 인물로 그 생존시기와 작품의 창작시기 사이에 큰 간극이 있으나, 떼어놓을 수 없는 인물의 동질성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조선왕조실록』,『어우야담』, 『청구영언』, 『청학동긔』 등에서 어득강의 기록을 찾아볼 수 있으나, 본고는 『조선왕조실록』과 장서각본<어득강전>을 논의대상으로 설정하였다.

 
첫째로 『조선왕조실록』을 통하여 어득강이라는 실존인물을 형상화해 볼 수 있는데, 중종실록에 어득강의 이름이 서른다섯 번 언급될 만큼 그가 조정에서 활발한 논의를 전개했음을 알 수 있다.

丁亥/上因子光陳弊之條, 問子光曰: "橫斂者爲誰, 病不治事者爲誰, 甲子年以後, 存䘏百姓者爲誰?" 子光書啓曰: 橫斂者, 公州牧使金貞幹, 病不治事者, 興陽縣監閔嵩, 恤民者, 山陰縣監魚得江. <중종실록 2권, 중종 2년4월14일>

  위 기록은 당대 문제적 인물이었던 유자광이 중종임금에게 어득강의 백성구휼을 언급하며 포상을 청하는 대목으로, 이를 통하여 첫째로 어득강이 유자광과 면식이 있을 만큼 정치적 영향력을 지닌 인물이었을 가능성을 생각해 볼 수 있으며, 둘째로 유자광과의 친분관계여부를 떠나서 어득가의 이름이 조정에 알려질 만큼 백성에게 선정(善政)을 베푼 뛰어난 관리였음을 유추할 수 있다.

領事柳順汀曰: "今年甚荒, 而京畿尤甚。 民生可慮, 務農之政, 不可緩也。 令民力於農事, 使無閑曠之地, 且於海邊, 若有築堰爲田之地, 勸民築之, 以爲務農之資。 民或不能, 官亦助之爲便。 如此等事, 請諭各道觀察使。" 希壽曰: "廢朝流民, 至今未盡還定, 須務安集之策, 俾民遂其生業。 民間徭役太重, 民不聊生。 守令家屬及士(施) 家屬, 不給轎軍事, 朝廷已立其法。 而守令或迫於威勢, 或牽於私情, 不得已抄給, 路傍之民, 疲困於此, 無務農之暇, 此弊非輕。 請自今嚴禁。" 掌令魚得江曰: "我國家法令雖布, 人不奉行。 且欲革奢侈之風, 而朝旨日下, 略不奉行, 奢侈日興。 須摘其不畏者, 以懲其後。" 上曰: "此言當甚。 法禁雖立, 下不奉行, 則徒爲文具, 有何益耶?"

<중종실록 12권, 중종 5년 9월 27일>

 
위 기록은 중종5년에 발생한 극심한 흉년에 대한 방책을 의논한 것으로, ‘백성으로 하여금 농사에 힘쓰게 하여 묵은 땅이 없게 해야 한다’, ‘백성에게 권하여 둑을 쌓게 하자’, ‘민간의 과중한 요역을 덜어 백성이 생업(농사)에 힘쓰게 하자’와 같은 의견이 제시되어있다. 이러한 방책들은 흉년에 대한 국가적 대책이라기보다는, 백성을 통하여 가뭄의 극복을 도모하는 방법을 제시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어득강은 “사치의 풍습을 개혁하고자 국가가 법령을 반포하여도 사람들이 받들어 행하지 않는다”고 말하며, “법 어기기를 두려워하지 않는 자를 적발하여 장래를 징계해야한다”고 덧붙인다. 이는 가뭄의 해결책이 백성의 노동에 있는 것이 아니라, 국법을 어기고 사치를 일삼는 무리를 처벌함에 있음을 지적한 것이며, 어득강이 일반적인 관리들과는 차별화되는 정치의식을 지녔음을 시사한다. 이에 중종은 "이 말이 매우 마땅하다. 법금(法禁)을 세울지라도 아래에서 봉행하지 않으면 한갓 문구(文具)가 될 뿐이니 무슨 유익함이 있겠는가." 라고 화답한다.

 
둘째로 장서각본 <어득강전>을 통해 어득강이라는 인물을 파악하고자 한다. 중종실록과 달리 소설에서는 어득강이 세종 임금 시기의 인물로 등장하며, 이른 나이에 진사 급제 후 홍문관·사헌부·사간원직을 맡아 그 명망이 높았다고 적고 있다. <어득강전>에서 득강이 관리를 맡았던 삼화마을에 관한 묘사는 아래와 같다.

비장 즉시 ᄒᆞ직ᄒᆞ고 삼화로 가니 어공이 군영 비장 온단 말을 듯고 웃더라

비장 와셔 어공의 허물을 잡ᄋᆞ 셜치코져 ᄒᆞ야 각 고을을 젹간ᄒᆞ니 탈 ᄌᆞ불 고지 업더라.

올ᄋᆞ엇다가 쇽을ᄀᆞ 두려워 ᄉᆞ|ᄇᆞ| 일즉 갈이랴 ᄒᆞ더라.

  고을마다 비리를 저지르지 않는 수령을 찾아보기 어려웠던 시대상의 역설적인 반영인 듯, 위의 대목에서 비장은 마을을 탐문해도 어득강의 허물을 하나도 찾지 못했다고 적고 있다. 어득강이 다스리는 삼화고을을 비롯하여 주변 마을에서조차 흠을 발견하지 못하자, 비장은 두려워하며 황급히 마을을 떠나고자 한다.

 
중종실록과 장서각본 <어득강전>에서 단편적으로 남겨진 어득강의 역사적·허구적 기록을 살펴본 바, 어득강은 스스로가 지닌 신분적 위치와 그 함의된 영향력을 부정하지 않는 인물로 파악된다. 그는 실록과 소설에서 공통적으로 충성스럽게 공무를 수행하며 올바른 치세를 위한 노력을 아끼지 않았던 인물로, 스스로가 지닌 위정자의 속성을 철저히 내면화하는 동시에 정치인으로서의 자의식을 놓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어득강은 임금에게 부여받았던 위정자로서 임금을 성실히 섬기는 인물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이를 종합해보면 <어득강전>의 주제의식으로 기존에 논의되었던 ‘중세적 관료체제와 신분제도에의 부정적 인식’보다는, 각 신분마다 요구되는 덕망과 자질을 갖추지 못한 특정 신분계층(양반층)을 비판함으로써 올바른 치세를 기대하는 주제의식이 담긴 것으로 보는 것이 적절해 보인다. <어득강전>에서 큰 흐름으로 전개되는 ‘비장·방백·어사 골탕먹이기’ 일화는 신분적으로 상위층에 자리한 위정자를 속이는 일련의 해프닝을 보여주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이는 조선시대 신분질서를 뒤엎어 완전히 타파한다는 의지보다는, 역사적 격류와 난세의 전운 앞에 선 조선 말기 통치자들의 올바른 의식과 반성을 촉구하는 것으로 파악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된다.

Ⅲ. <어득강전> 속 재담의 단계적 확장
(1) 신체적 재담으로부터 언어적 재담으로

 
재담이란 ‘재치를 바탕으로 한 재미있는 이야기’로, 설화로부터 그 연원을 두어 고전소설에까지 국문학의 오랜 지류로 이어져왔다. 근대이행기의 접점에 위치한 <어득강전>에서도 재담적 표현이 중추적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데, 필자는 어득강이 임금에게 나아가는 대목을 기준점으로 작품 속 재담의 전개를 ‘신체적 재담’과 ‘언어적 재담’으로 나누어 논의하고자 한다.

 
<어득강전>의 주된 서사전개는 어득강이 방백의 부하들을 골탕 먹이는 일화로 구성되어 있다. 어득강이 뛰어난 계책으로 ‘비장1 →비장2 → 방백의 아들(진사) → 암행어사’를 마을의 웃음거리로 전락시키는 과정은, 비단 활자화된 언어유희가 아니더라도 재담적 성격을 띤다. 첫 번째로 속이는 사람(어득강)과 속임을 당하는 사람(위정자)의 해학적인 대화가 연행물의 언어적 놀이구조를 보여주며, 두 번째로는 민중이 주동인물이 되어 비판대상을 우스꽝스럽게 전락시키는 모습이 공연물에서 나타나는 재담과 같이 공통적 목표의식과 실현태를 몸으로 표현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재담의 양상은 ‘신체적 재담’으로, 어득강과 마을백성이 연대하여 부패한 위정자를 유희적 차원의 재담으로 희화화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신체적 재담의 주체는 마을백성이며, 어득강은 자신의 신분적 위치와 상황을 이용하여 ‘민중’에게 재담 참여의 기회를 부여한다. 여기서 민중에게 허용되는 재담의 범위는 신체적 재담까지를 의미하며, 이는 유학적 지식이 부족한 민중에게 언어적 재담은 이해되거나 전파되기 어려운 반면, 신체적 재담은 즉각적인 효과를 다수가 목격함으로써 공동체에 파급력을 줄 수 있는 성격을 가지기 때문이다. 어득강이 민중에게 제공한 신체적 재담의 기회는, 신분제도에 있어서 평면적 유희로부터 수직적 유희로 가능케 했다는 점에서 그 의의가 있다.

 
이후 어득강의 궁극적 지향점인 ‘언어적 재담’은 임금과의 대면에서 능청스러운 입담을 전개하는 대목에서 성취된다. 언어적 재담은 설화로부터 양반층이 시도한 문학적 언어유희까지, 언어를 매개로 한 모든 재담을 포함하지만, 필자는 <어득강전>에서 주인공과 임금의 이야기 대목을 언어적 재담으로 파악했다. <어득강전>에서 임금과 주고받는 맹랑한 유머는 인물이 지향하는 재담의 최종적 목적지로, 어득강의 직접적인 생각이 드러난 부분은 다음과 같다.

득강 잡히여 올 졔 벗덜이 길ᄀᆞ에 셧ᄃᆞ가 물르ᄃᆞ| 엇지 죽을려 간ᄂᆞᆫ다 ᄒᆞ니 어공이 왈 현슈ᄒᆞᆯ 고ᄉᆞㅣ 목들나 가노라. 이난 즉 한 ᄌᆞ|담이라.

  위 대목은 어득강이 임금의 부르심을 받아 길을 떠날 때에, 벗들이 ‘어찌 자네는 이대로 죽으러 가는가’라고 묻는 장면이다. 이에 어득강은 ‘내 목을 걸어 놓을 곳에 목을 쳐들러 가노라’고 답하는데, 이는 인물이 자신의 목을 내 놓을 정도로 뜻을 둔 곳으로 향해가고 있음을 의미하고 있다. 따라서 어득강이 궁극적 목표의식을 둔 곳은 신하와 임금이 있는 궁궐로, 여기에서 득강은 언어적 재담이라는 최후의 담판을 벌이겠다는 의지를 보인다.

 
‘언어적 재담’은 신체적 재담보다 고차원적인 놀이로써, 첫째로 언어놀이를 구사할 만큼 유학적 식견이 있는 자가 향유할 수 있으며, 둘째로 언어놀이를 이해할 만큼 유학적 소양을 갖춘 자를 청자로 설정한다. 따라서 언어적 재담은 신체적 재담 이후에 도달할 수 있는 재담의 최종적 단계라고 볼 수 있다.

 
비록 작품의 외관으로 보기엔 어득강이라는 양반층 인물이 행한 ‘위로부터의 파격’이지만, <어득강전>은 민중이 일군 신체적 재담을 시발점으로 출발한 ‘아래로부터의 파격’에 중점을 두고 있다. 따라서 어득강은 1차적인 신체적 재담의 호응에 힘입어 2차적인 언어적 재담으로까지 나아갈 수 있었다고 보인다.

(2) 사회적 폐색증의 자각과 <어득강전>의 문학정신

 
그렇다면 <어득강전>에서 산골마을로부터 궁궐로까지의 파격적인 재담의 전개를 통해 말하고자 하는 의미지향은 무엇인지 살펴보자. 어득강이 민중과 동참했던 신체적 재담으로부터 언어적 재담으로의 확장은, 당대 재담(혹은 농담)에 대한 불편한 시선에 대한 일탈적 표현이라고 볼 수 있다. <어득강전>은 동시대를 재담이 불가능한 ‘폐색증의 사회’로 파악하고, 사고의 경직이 고착화되는 사회적 풍토 내에서 모순적으로 심화되는 위정자들의 비리를 포착했다. 여기서 폐색이란 ‘소통의 불가능’을 의미하며, 이는 농담이 농담으로 받아들여지지 않던 사회적 긴장(tension)을 뜻한다. <어득강전>에서 전개되는 일화들을 살펴보면, 공통적으로 위정자들은 사건을 재담으로 받아들이기보다는 ‘보복’으로 받아들인다. 이는 소통이나 농담 자체가 불가능한 이들에게 어득강의 행적이 보복행위로 받아들여짐을 의미한다. 반면에 민중은 재담의 속성을 잘 파악하고 있으며, 유희적 차원으로 즐겁게 받아들인다. 즉, 어득강이 사회적 긴장을 파열하려는 시도를 할 때마다 양반층은 민중과 달리 그 현상을 두려움의 대상으로 인지하고 대항하는 모습을 보인다.

 
따라서 어득강이 시도한 ‘재담’의 반란은 삼화마을에서 내부적 폭발로 이어지며, 이는 궁궐에서도 폐쇄적 사고의 파열로 전개된다. 즉, 어득강이 삼화마을에서 실현한 ‘신체적 재담’은 1차적 내파화에 해당하며, 이는 ‘백성 대 위정자’의 대결구도를 보인다. 이후 어득강이 실현한 ‘언어적 재담’은 2차적 외파화에 해당하며, 이는 ‘백성 대 임금(국가)’의 구도를 보인다. 한 가지 주지할 점은, 어득강이 두 가지 형태의 재담을 통해서 왕조를 부정하려는 의도는 없었다는 점이다. 어득강이 임금에게 목을 내놓고 재담을 강행한 이유는, 소통과 재담이 불가능했던 시대적 조건에 맞선 ‘숨통 트이기’ 담론을 제시하고자 했던 것에 가까워 보인다. 이는 어득강(魚得江)이라는 이름이 의미하는 바, 물고기가 물을 만나듯 ‘숨 쉴 수 있는’ 나라에의 갈망을 내포한다. 따라서 어득강은 첫째로 재담적 호흡과 소통이 가능한 나라, 둘째로 자신의 뜻을 펼칠 수 있는 시대에 대한 염원을 언어적 재담으로 응축했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어득강전>에 나타나는 재담은 단순히 위정자를 속이는 흥미위주의 내용이 아닌, 조선의 사회적 폐색증에 대항하는 재담의 단계적 확장을 통해 소통과 해방을 추구하는 애민정신을 담은 중요한 문학적 장치라고 판단된다.

Ⅳ. 결론
- 근대이행기 재담을 통한 시대적 은유
  기생과 승려, 삼화(三和)고을 주민들이 합심하여 어득강의 놀이에 참여했던 것은, 나라의 부패세력에 대하여 민중이 주동적으로 참여하는 신체적 재담의 기회를 부여받았음을 인지했기 때문일 것이다. 어득강은 민중과 시도했던 신체적 재담에서 그치지 않고, 임금에게 나아가 맹랑하고 유쾌한 언어적 재담을 권유한다. 이에 임금은 승품(陞品)으로 답변함으로써, 어득강이 제기한 문제적 담론에 긍정적인 메시지를 전한다.

 
탈춤과 같이 ‘가면’으로 가린 후에야 재담이 가능했던 시기로부터, 타령에서 ‘병신’과 같이 불구의 주체가 되어야만 중세적 억압을 폭로할 수 있던 시기를 지나, 근대이행기 <어득강전>에서는 민중이 위정자를 향해 ‘재담’이라는 강력한 위트를 날리는 문학적 성취를 이루었다. 임금에게 나아가 동시대적 재담을 제시한 유일하고 독보적인 작품으로써, 장서각본 <어득강전>은 근대이행기 고전소설사가 시대적 격류를 대면하면서 재담과 교섭하던 역동적 양상을 간직한 문제적 작품이다.

 
조선 말기에 음반녹음으로 박제화 된 판소리와, 개화기의 전조로 붕괴되기 시작한 공동체의 놀이판으로부터 탈락된 재담은 그 생명력을 잃지 않고 고전소설에 남아있는 것으로 보인다. 오래 전 실존 역사인물이었던 어득강을 소설화할 정도로 재담에 대한 민중의 열망은 강했으며, <어득강전>은 ‘재담’이라는 민족적 표현욕구를 대변하는 근대이행기의 유쾌한 기록물임이 분명하다.

 
<어득강전>은 이본이 현전하지 않으므로 그 비교군을 설정하여 대조하기가 어려우나, <어득강전>계통의 근대이행기 고전문학의 모색을 통하여 기존의 유사한 서사구조 및 결말을 보이는 고전소설과 구별되는 새로운 연구가 진전될 것으로 보인다. <어득강전>을 시작으로 역사적·문화적 변혁을 맞이했던 마중물로서의 근대이행기 고전소설 연구를 통하여, 그동안 중점적 논의대상이 되지 못했던 중세로부터 근대변환기의 재담 및 소설의 활발한 논의가 전개되기를 기대해본다.

 
참고문헌 및 사이트

·『어득강전』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본

·『조선왕조실록』

·『어득강전』, 작자미상, 지식을 만드는 지식 고전선집, 2010

· 오희정, 「<어득강전>의 기법적 특징과 창작의식」,『嶺南學』8집, 2005

· 심경호, 「<어득강젼>과 실존인물의 소설화」,『국문학 연구와 문헌학』, 태학사, 2003

· 심재숙, 「<어득강전>의 형성과정과 주제의식」,『우리어문연구』16집, 2001

· 조동일,『한국문학통사4』제3판, 지식산업사, 1994

· 조동일,『한국문학통사4』제4판, 지식산업사, 2005

· 최진형, 「재담의 활용 양상과 판소리의 변화」, 『반교어문연구』36집, 2014

·한국고전문학연구회,『고전소설 연구의 방향』, 새문사, 1991

<제43회 학술문예상 학술 논문 수상소감>
  <어득강전> 논문을 통해 덕성여대신문사 창간 53주년 학술문예상 가작이라는 큰 상을 받게 돼 깊이 감사드립니다. <어득강전>은 일반 독자들과 학계에 다소 잘 알려지지 않은 소설입니다. 그러나 <어득강전>은 제가 접한 고전문학 중 가장 유쾌하며, 젊은 우리들이 옛 사람들과 교감할 수 있는 뛰어난 작품성을 지닌 소설이라고 생각합니다. 아마 <어득강전> 외에도 현대를 살고 있는 우리에게 알려지지 않은 작품들이 많을 것입니다. 그 작품들을 찾아내 ‘고전소설’이 아닌 ‘소설’로 만들어주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그 시대의 소설은 당시에는 ‘고전’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최근 저는 절에 머문 적이 있습니다. 국어국문학을 전공하신 스님과 인연처럼 만났고, 문학을 피해 내려간 사찰에서도 문학을 피할 수 없었습니다. 절에서 피마자를 뜯고, 메밀국수를 뽑고, 마지막으로 고수 나물을 광주리에 담았는데, 다음날이 돼서도 고수 향은 제 손에 강하게 남아있었습니다. 계속 향을 맡는 제 모습을 보고 스님이 웃으며 말씀하셨습니다. “고수 향처럼 짧게 만난 인연인데도 오래 기억남을 것 같은 사람이 있지요.”

  이후 호남선을 타고 서울로 돌아오는 길에서도 제 손톱에는 고수향이 강하게 남아, 삶의 필연을 고민하게 했습니다. 이것이 문학일지, 사람일지는 모르겠으나 지난 대학 4년간 제게 은은하고도 강렬한 고수 향으로 남아주신 여러 소중한 인연들에게 미안한 마음과 깊은 감사를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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