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3회 학술문예상 소설 우수작>
<제43회 학술문예상 소설 우수작>
  • 장지영(사학 3)
  • 승인 2017.11.24 19:4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멀리서보면 희극 

 

1. 브리티시 컬럼비아 주, 밴쿠버

드디어 추운 날들이 끝났다. 이놈의 나라는 하루 종일 비가 오고 밖에 나가지 못할 정도로 춥다가 딱 한계절만 해가 쨍쨍한 것이다. 오리털 파카는 옷장 깊숙이 넣어두고 민소매를 입고 다니는 계절이 왔다. 선크림을 꼼꼼히 바르고 거실 겸 부엌으로 나갔다. 식탁 위에 영어로 급하게 휘갈겨 쓴 쪽지 하나가 놓여 있었다.

 

 

히나, 오늘 저녁을 같이 못 먹는다고 말하는 걸 깜빡했어.

김은 네가 다 먹어도 돼.

내일 아침에 보자.

 

 

어제 식료품점에서 사온 김 뭉치가 눈에 들어왔다. 나의 홈메이트 리사코는 일본인 관광객을 상대로 하는 화장품 가게에서 일한다. 나보다 일찍 퇴근하는 그녀가 오늘 저녁에 못 들어온다는 것은 새벽에 술에 절어서 들어오거나 아예 들어오지 않거나, 둘 중에 하나다. 아무튼 오늘 저녁은 아주 외롭게 되었다. 그렇다면 맥주 한 캔과 한국 드라마로 시간을 보내볼까.

워터프론트역으로 가는 버스가 정류장으로 들어왔다. 버스가 사람들의 발 높이에 맞추기 위해 푸쉬시, 공기를 빼는 소리가 나고 버스 기사에게 헬로, 인사를 하며 올라타면 이미 출근하는 사람들로 공간이 꽉 차있다. 다양한 국적과 언어를 가진 사람들이 일자리를 찾기 위해 몰려드는 이곳이 바로 캐나다다.

나는 밴쿠버 시내에서 제법 유명한 일식집에서 일을 하고 있다. 이 동네에서는 초밥을 만드는 사람이 일본 사람인지 한국 사람인지 별로 중요하지 않다. 우리 사장님도 서울의 모 대학 조리학과를 졸업한 뼛속까지 한국 사람이다.

“김희나, 한번만 더 지각하면 진짜 잘라버린다.”

아차, 길이 막혀 5분 정도 늦은 이 때 하필이면 매니저와 맞닥트려 버렸다. 그는 이곳으로 워킹홀리데이를 온지 3년차인데 슈퍼바이저가 되어 시험에 통과하면 곧 캐나다 영주권을 받는다고 했다. 나도 권유를 받았지만 학비를 다 모으면 한국으로 돌아갈 것이기 때문에 영주권에는 관심이 없다.

영어로 주문을 받고 정신없이 음식을 나르다보니 어느새 태양이 태평양의 서쪽으로 넘어가고 있었다. 가게 안으로 쏟아져 들어오는 햇빛과 관광객의 웃음소리가 뒤섞여 따듯한 공기를 만들어낸다. 이 시간쯤 되면 한국에도 아침이 시작되고 친구들이 내가 보낸 메시지의 답장을 보낸다. 매니저에게 쉬는 시간을 알리고 탈의실로 들어와 가방에서 휴대전화를 꺼냈다. 읽지 않은 5개의 문자가 있다는 알림이 떴다.

 

 

삶과 마찬가지로 피할 수 없는 그것이 바로 죽음

지구가 돌고 나무가 자라게 하는 저주

나에게 용기와 그것을 사용할 의지가 있다면

너를 갈기갈기 찢어서 고통 속에 죽게 만들 거야

 

 

등줄기를 타고 오싹한 한기가 느껴졌다. ‘발신번호표시제한’이라는 발신자가 나를 지켜보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아무래도 혼자 어두운 방에서 보낼 오늘 밤은 맥주 한 캔으로 해결되지 않을 것 같다.

 

 

2. 서울, 종로

학생증을 집에 두고 나왔다. 열람실 출입은 불가능하니 포기하고 교내 카페에서 기다리기로 했다. 봄이라고 말하기에는 너무 더운 날씨 때문에 야외석이 한산했다. 얼음이 커피잔에 뿌연 물방울을 만들며 녹아갈 때쯤 선배가 도착했다.

“이번에는 또 무슨 일로 호들갑인데.”

선배는 이마에 송골송골 맺힌 땀방울을 닦으며 퉁명스레 말했다. 최고기온이 28도인 5월 중순에 소매가 긴 셔츠와 긴 바지를 입었으니 더울 만도 했다. 나는 말없이 오늘 아침에 받은 문자를 선배에게 보여주었다. 선배는 표정이 어두워지는 것은 잠깐, 평소처럼 장난스럽게 말했다.

“너, 드디어 죽는 거야? 맨날 과제하면서 죽고 싶다고 노래를 부르더니…….”

내가 그의 다리를 걷어찼기 때문에 선배는 말을 끝내지 못했다. 아침부터 하루 종일 나를 괴롭히는 이 섬뜩한 문자는 뒤에서 누군가가 칼을 들고 쫓아오는 것과 같은 공포를 느끼게 한다. 저주니, 갈기갈기 찢어서 죽인다니, 이런 문자를 보낸 사람은 대체 누굴까? 선배의 장난이 절반인 위로에도 내 마음은 가라앉지 않았다. 자격증 시험이 얼마 남지 않았는데 타이밍도 기가 막히다. 오늘 하루를 날려먹었으니 내일은 두 배로 공부를 해야 한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나는 그 누구에게도 원한을 살만한 일을 한 적이 없다. 누군가가 나를 저주할 만큼 나쁘게 살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이 저주의 문자는 그냥 기분이 나쁘고 잊어버릴 사건이 아니라, 지난 23년 인생을 헛살았다고 증명하는 것과도 같았다. 그러나 나의 주변 사람들은 이 문자를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 듯하다.

“다른 사람에게 보내려다가 번호를 잘못 눌렀을 수도 있고.”

그녀는 사과를 와그작와그작 씹어 먹으며 말했다. 사과의 파편이 방 안에 튀든 말든 열정적으로 사과를 깨무는 그녀는 나의 친언니이자 방을 공유하는 사람이다. 방에 벌레가 생기니까 나가서 먹으라고 수도 없이 말했지만 소용이 없다는 걸 잘 알고 있다. 언니는 나의 깔끔한 성격에 넌덜머리가 난다고 하지만 별 수 없다. 우리는 둘 중 하나가 취직을 하고 독립을 할 때까지 이 방에서 함께 살아야할 운명이다. 방 세 개가 딸린 이 주택에서 안방은 부모님이, 작은 방은 할머니가, 또 다른 방은 장성한 우리 두 자매가 쓰고 있다. 이만한 집을 구하기 힘든 주택난의 시대에, 학자금 대출과 부모님의 지원에 의존하는 대학생이 자취할 방을 구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박은채 씨의 예민병이 또 도지셨구만. 이상한 장난 문자라고 생각하면 편한 걸. 넌 너무 생각이 많아.”

“한 시간에 한 번씩 계속 보냈다니까? 좀 성의 있게 고민해줄 수는 없니?”

“그럼 이제 잘못 보냈다는 걸 알고 안 보내겠지. 그냥 잊어버려.”

나는 한숨을 내쉬고 이불을 덮었다. 잠을 청했으나 사과를 씹는 소리가 귓가에 울려서 잠들 수 없었다. 언니의 귀에 꽂힌 이어폰에서는 시끄러운 잡음이 흘러나왔다.

4년째 장학금을 받고 대학을 다니는 언니다. 아무리 똑똑한 언니라지만 이번에는 그녀가 완전히 틀렸다. 절대로 잊어버릴 수 없도록, 그 다음날도 문자가 도착했다는 알림이 끊임없이 울렸기 때문이다.

 

 

 

3. 브리티시 컬럼비아 주, 딥 코브

파도가 자갈을 쓸어내리는 것을 보기 위해 벤치에 앉았다. 벤치의 등받이에는 멋들어진 필기체로 어떤 사람의 이름, 생년월일과 죽은 날짜, 그에게 전하는 말이 새겨진 금속판이 붙어 있었다. ‘그는 훌륭한 아버지이자 남편이었다.’라는 글귀가 새겨져있는 걸 보니 별로 유명한 사람은 아닌 것 같다. 캐나다 사람들은 왜 이런 풍습을 갖고 있는지 생각해본다. 이 벤치가 소중한 사람과 같이 앉았던 추억의 장소이기 때문일까, 아니면 이런 아름다운 풍경을 고인에게 보여주고 싶은 마음 때문일까. 아무튼 이 사람은 죽어서도 세상에서 쉽게 잊히지 않을 사람이다. 문득 내가 죽어서도 이런 걸 해줄 사람이 있을지 궁금하다. 만약 나에 대해 글귀를 새긴다면, ‘김희나, 1995~2017, 저주의 문자 공격으로 스트레스를 받아 죽다.’ 정도 되지 않을까.

“네가 그렇게 괴롭다면 누가 이 문자를 보냈는지 같이 알아봐줄게.”

내 표정이 심각했는지 리사코가 걱정스레 말했다. 그녀의 영어는 우리말을 듣는 것처럼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원어민이 구사하는 영어는 너무 어려워서 주문을 받을 때도 애를 먹는데, 리사코의 뚝뚝 떨어지는 발음은 알아듣기 편하다. 같은 동북아시아 문화권이라서 그런가. 나의 정신을 좀먹어가는 새로 도착한 문자를 리사코에게 영어로 번역하여 읽어주었다.

 

 

나는 오로지 단 하나, 단 하나의 존재로 남아있으며,

그것은 바로 죽은 너의 몸이다.

싸늘한 너의 주검은 나를 그 어떤 행복보다 더 높은 수준으로 올려놓는다.

 

 

누군가 나를 죽이고 싶어 한다. 살인예고라기보다는 내가 죽기를 간절하게 바란다는 문구였다. 문자테러가 시작된 이후로 과거의 내가 어떻게 살아왔는지 생각해보았다. 억울한 점은 나는 그 누구에게도 욕먹을 짓을 하지 않았다고 자신 있게 말을 할 수가 없다는 것이다. 대학에 입학하고 난후 불경기 속에서 부모님은 갑작스레 장사를 접었고, 나는 3개의 아르바이트를 병행하며 살았다. 인간관계를 유지하는 것은 사치였고 그 시간동안 내 주변의 누군가가 상처를 받았을 지도 모른다. 2학년 1학기를 마치고 휴학을 한 후 캐나다로 왔다. 한국에서 10시간동안 일해서 버는 돈을 캐나다에서는 3시간 만에 벌 수 있기 때문이다. 1년 동안 학비를 벌어 돌아갈 생각이었다. 이제 귀국까지 한 달이 남았고 일식집에서 서빙을 하면서 학비를 거의 다 모았다. 나는 누구보다도 열심히 살았다. 하지만 그것이 곧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주지 않았다는 것을 증명할 수 없다.

“이 문자들의 문구는 어디서 읽어 본 것 같아.”

리사코는 문자의 내용을 종이에 적어 읽으며 골똘히 생각에 잠겼다.

“확실한 건, 발신자가 지어낸 구절이 아니야. 분명히 어디선가 들어본 적이 있어.”

리사코의 추리에 이 사건은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었다. 그녀의 말이 맞다면, 이 문구의 원본과 연관된 사람을 찾아 발신자가 누구인지 알아낼 수 있다.

“발신자는 분명히 나에게 자기의 존재를 알리고 싶은 거야. 이렇게 꾸준히 문자를 보내면서 괴롭히는 건 나에게 그만큼의 원한이 있다는 뜻이고. 나는 반드시 이 사람을 찾아낼 거야.”

나의 결의에 찬 말에 리사코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 작은 움직임에서 위로를 느꼈다. 이 넓고 낯선 땅에서 리사코와 같은 친구를 만나 다행이다.

바다바람이 잔디를 훑고 우리의 발을 간지럽혔다. 카누를 타는 아이들이 밝은 목소리로 노래를 불렀다. 아름다운 절경 속에서 나의 존재는 점처럼 아주 작게 느껴졌다.

 

 

4. 서울, 종로

 

 

선배는 같은 학과의 두 학번 위지만 군대를 다녀와서 나와 같은 3학년이다. 그는 영화동아리에 4년째 몸을 담고 있다. 나는 가끔 상영회에 초대를 받긴 했는데 동아리 방까지 가는 것은 처음이다. 학생회관의 꼭대기 층, 제일 안쪽에 위치한 동아리방은 습하고 퀴퀴한 냄새가 났다. 선배는 DVD가 빼곡히 정리된 책장 앞으로 나를 안내했다.

“1920년대부터 2010년까지 유명한 영화는 다 있어.”

십년 단위로 정리되어 있는 영화들은 족히 1000편은 넘어보였다. 선배의 추리는 이러했다. 나를 괴롭히는 이 문자의 힌트는 누구나 찾을 수 있는 영화나 책 속에 있을 것이다.

“책이라고는 전공 서적도 억지로 읽는 너한테 독서를 기대하지는 않겠지.”

선배는 정확히 이렇게 말했다. 열 받기는 하지만 사실이다. 그러므로 문자의 힌트는 유명한 영화의 대사 속에서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선배는 1920년대부터 십년 주기로 하나씩 DVD를 뽑아 열편의 영화를 내게 주었다. 그리고 선배도 똑같이 열편을 가져갔다. 이 많은 영화를 언제 다 볼까 싶었지만, 영화 감상 차원에서 동아리 부원들에게도 도움을 구하겠다고 말해주었다.

나는 버스 안에 서 있고 밤비에 촉촉이 젖어 반짝이는 도로 위를 달려간다. 주홍빛 가로등 아래서 고궁의 돌담은 회색빛을 띈다. 이어폰으로 잔잔한 음악이 흘러나오고 감상에 젖어 창밖에 스쳐지나가는 풍경을 바라보면, 이따금 내가 영화 속의 주인공이 된 것처럼 느껴진다. 특별할 것 없는 지루한 영화 속 누군가의 저주를 받는 비참하고 가련한 주인공.

집에 도착하니 몸이 무거웠다. 방에 들어가니 늘 그랬듯이 언니가 무언가를 씹으면서 책상에 앉아있다. 이번에는 바나나맛 과자다.

“노트북 좀 쓰게 넘겨 줘. 급한 일이야.”

가방에서 DVD를 전부 꺼내 책상 위에 올려두고 화장실로 향했다. 세수를 하고 나오면 언니가 자리를 비켜주었기를 바라면서. 하지만 방으로 돌아오니 언니가 여전히 노트북 앞에 앉아 내가 꺼내둔 것들을 유심히 보고 있었다.

“이거 오랜만이네. 너 고등학교 때 친구들이랑 영화만 본다고 엄마가 걱정했잖아,”

언니가 손에 들고 있는 것은 ‘1930년대’ 구역에서 뽑아온 DVD이다.

“내가 이런 옛날 영화를 좋아했었다고?”

“기억 안나? 거의 다 외울 때까지 봐놓고.”

어지러운 톱니바퀴 사이에 끼어있는 찰리채플린, 그 흑백 사진을 보는 순간 머릿속에 잠겨있던 기억들이 수면 위로 올라왔다. 나는 찰리채플린을 좋아해서 그의 영화들을 본 것이 아니었다. 어떻게 단 한 번도 생각하지 못했을까? 찰리채플린과 저주문자의 연관성을. 나는 휴대전화 연락처에 잊고 있던 이름을 검색해 전화를 걸었다. 오랫동안 만나지 못해 다른 세계에 있는 희나에게.

 

 

5. 브리티시컬럼비아 주, 밴쿠버

또 다른 저주의 문자가 왔는지 휴대전화 진동이 울렸다. 제멋대로 쿵쾅거리는 심장을 다스리며 문자를 확인했다. 한국에서 국제전화가 걸려왔었다는 문자다. 한국을 떠날 때 통화를 정지시키고 모든 연락은 인터넷과 스카이프로하기 때문에 나에게 전화를 걸만한 사람이 없다. 문자에 찍힌 번호를 연락처에서 검색해 나온 이름을 다시 한 번 읽어보았다. 박은채.

“히나, 뭐해? 저쪽으로 가자고!”

리사코가 내 귀에 대고 소리를 지르는 통에 정신을 차렸다. 이제 막 퍼레이드가 시작해 시끄러운 참이었다. 오랜만에 놀이공원을 오니 복잡하고 어지러운 게 머리까지 아프다. 사방에서 피에로가 춤을 추며 풍선을 나눠주고, 무지개색의 고깔지붕이 빙글빙글 돌아간다. 아무래도 리사코처럼 신나게 뛰어놀기는 틀린 것 같다.

그녀는 강아지를 산책시키는 것 마냥 나를 끌고 가 퍼레이드가 제일 잘 보이는 자리에 앉았다. 나팔수 뒤로 북을 치는 요정들이 지나가고 마차 위에서 공주가 인사를 하고 있다. 고깔 모자를 쓴 사람들이 공중제비를 넘고 비눗방울을 만들고 뛰어가기를 반복한다. 흑백영화에 등장할 것 같은 지팡이를 들고 뚱뚱한 모자를 쓴 남자들이 뒤뚱뒤뚱 걸어간다. 자세히 보니 콧수염은 없다. 콧수염이 붙어 있었다면 좀 더 그럴듯한 찰리 채플린 같을 텐데. 그러고보니 고등학교 때 친구들과 도서실에서 그의 영화를 참 많이도 봤다. 종례가 끝나자마자 도서실로 달려가 DVD를 예약하고, 매점에서 과자랑 음료수를 사와서 다 같이 영화를 봤다. 딱히 오래된 영화를 좋아하는 취미가 있었던 것은 아니다. 우리 중 누군가가 그의 팬이었기 때문이다.

은채의 연락은 당황스러울 정도로 뜻밖의 일이었다. 카카오톡 프로필 사진으로 근황을 확인하고 SNS에 사진이 올라오면 ‘좋아요’를 눌러주지만 직접 연락은 하지 않는 그런 사이, 고등학생 때 가족보다도 많은 시간을 같이 보낸 사람이지만 졸업 이후 굳이 만나려고 하지 않는 그런 사이다. 그리고 또 다른 친구인 유세림은 졸업식 이후, 아니 졸업식에서도 모습을 나타내지 않았고 어디에서도 소식을 들을 수 없었다. 꼭 이 세상에 없다고 알리고 싶은 것처럼.

적당히 따듯한 바람과 평화로운 날씨다. 사람들이 붐비는 역 승강장에서 스카이트레인이 오기를 기다린다. 조종사가 없는 경전철에 올라타 건물보다 높은 위치에서 밤거리를 내려다보며 달린다. 차이나타운역에 가까워지고 창밖에는 과학관의 커다란 돔이 반짝반짝 빛나고 있다. 그 빛을 받은 호수의 모습은 한강의 야경을 떠오르게 한다. 서울에서 지하철을 타고 한강철교를 건너 하교를 하곤 했다. 무거운 피로를 양 어깨에 달고 한강의 야경을 바라보던 그 익숙한 시간들이 너무 멀게 느껴진다.

리사코는 영어를 배우러 온 유학생답게 집에 오자마자 책을 읽겠다고 했다. 역 앞에서 산 가벼운 재질의 종이로 만든 명언모음집이다. 출퇴근길에 읽으면 좋을 것 같아서 리사코의 생일 때 선물했다. 나는 딥 코브에 갔을 때 사온 도넛을 꺼냈다. 줄을 오래 서가면서 겨우 손에 넣은 도넛이다. 달달한 냄새가 나는 그것을 한입 베어 물려할 때 리사코가 소리쳤다.

“찾았어! 그거 찾았다고!”

리사코가 달려와 자신이 읽던 책의 페이지를 가리켰다. 한눈에 알아볼 수 없는 조그마한 알파벳들이 나열된 종이를, 리사코는 어떻게 읽는 것일까. 선물 받은 의리로 억지로 읽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내가 말했잖아. 어디서 읽어본 것 같다고. 그 문자, 이거를 베껴다 쓴 거야.”

 

 

나는 오로지 단 하나, 단 하나의 존재로 남아있으며, 그것은 바로 광대다.

광대라는 존재는 나를 그 어떤 정치인보다 더 높은 수준으로 올려놓는다.

 

 

리사코의 말대로 두 번째로 받은 문자는 이 글귀에서 단어 몇 개만 바꿔 오싹한 저주로 만들었다. 그렇다면 첫 번째 문자도 이 명언모음집에서 찾을 수 있을까? 바로 밑의 문장을 읽는 순간 그럴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아마 내가 몇 년 전에 보았던 영화 속 대사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Charles Chaplin (1889. 4. 16 – 1977. 12. 25)

 

 

6. 서울, 왕십리

선배가 여기까지 따라올지는 몰랐는데 정말 의리 하나는 끝내주는 사람이다. 졸업식 이후 처음으로 나의 모교 교문으로 들어갔다. 어른의 몸을 한 아이들의 발밑에서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모래처럼 고등학생 때의 기억이 떠올랐다. 아차, 감상에 젖어 있을 시간이 없다. 나는 유세림의 행방을 알기 위해 이곳에 왔다. 서둘러 교무실로 발걸음을 옮겼다.

“박은채, 이제 이런 거 김영란 법에 걸리는 거 알지?”

선생님은 내가 내려놓은 박카스 박스를 받으며 농담을 하셨다. 나와 희나, 유세림이 같은 반이었던 3학년 때 담임 선생님이다. 대학입시 때 추천서를 잘 써주셔서 나에게는 정말 고마운 분이다. 나는 선생님께 유세림의 주소 혹은 연락처라도 알고 계시는지 물어보았다.

“비상연락망은 버린 지 오래됐고 컴퓨터 파일로도 딱히 갖고 있는 건 없는데…….”

예상은 했지만 훨씬 더 절망적이었다. 결국 아무런 소득도 없이 교무실을 나왔다. 터덜터덜 걸어가던 중에 선배가 말했다.

“나는 학급문집에 메일주소, 전화번호 이런 거 썼었어. 친구들아, 졸업 후에도 연락하자, 뭐 그런 차원에서. 너네는 그런 거 안 만들었어?”

물론 우리 반도 학급문집을 만들었다. 그러나 더 작은 집으로 이사를 오게 되어 짐을 줄이던 와중에 다 버렸던 기억이 난다. 나에게 남아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뜻이다. 그러다가 퍼뜩 그토록 자주 갔던 도서실의 구조가 생각이 났다. 영화를 보던 TV 옆에 유리장식장이 있고 그 안에는 90년대 졸업생들의 학급문집 등이 잔뜩 꽂혀있었다. 어쩌면 내가 찾는 것도 있을지 모르겠다. 나는 선배의 손을 잡아끌고 건물의 2층으로 올라갔다. 교복을 입은 아이들이 커다란 성인 남녀가 복도를 뛰어다니는 것을 신기하게 쳐다보았다. 도서실의 문은 닫혀있고 고리에 자물쇠가 걸려있었다. 선생님들은 점심시간이라 잠시 자리를 비운 것 같다. 하긴, 열려있었다고 해도 외부인들이 와서 도서실을 뒤진다는데 허락을 해줄리 없을 것이다. 선배는 자물쇠를 이리저리 살펴보더니 예고도 없이 내 머리카락에서 실 핀을 뽑아갔다.

“이거 좀 구부려도 되지? 내가 사물함 열쇠를 자주 잃어버려서 자물쇠 따는 데에 도가 텄거든.”

선배는 실 핀을 자물쇠에 넣고 열려고 용을 썼다. 대단한 것을 훔치러 온 도둑이 된 기분이라 불안하게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러나 학생들은 식당 혹은 매점으로 부지런히 걸음을 옮길 뿐 우리에게 관심이 없다. 선배는 손을 분주히 움직이더니 드디어 자물쇠를 여는데 성공했다. 선배가 망을 보기로 하고 나 혼자 도서실 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오래된 책장들과 따듯하고 탁한 공기까지 모두 그대로다. 좀 더 안쪽으로 들어가 자주 갔던 공간을 찾았다. 영화를 보던 TV가 더 크고 좋은 것으로 바뀌었다. 그 옆에 있어야할 유리장식장이 없다. 도서실의 따듯한 온도 탓인지 아니면 요동치는 심장 때문인지, 등에서 땀이 흐르기 시작한다. 최대한 빨리 이곳을 나가야한다. 하지만 아무리 둘러보아도 장식장 같은 것은 눈에 띄지 않는다. 마지막 희망을 걸고 도서부위원실 문을 열었다. 도서실에서 들어갈 수 있고 복도와 연결되어 있는 공간이다. 혹시라도 선생님들이 온다면 이곳을 통해 밖으로 나가면 된다. 문을 열자마자 심장이 내려앉는 것 같았다. 그러나 저쪽이 나보다 더 놀란 것 같다. 회의테이블에 둘러앉아 간식을 먹고 있던 학생들이 일제히 토끼눈을 하고 나를 쳐다보았다.

“밖에 문 잠가놨는데…….”

빵을 씹고 있던 아이가 중얼거렸다. 나도 매일 같이 사먹었던 매점표 피자빵이다. 문을 잠갔는데 어떻게 들어왔냐면 말이지, 그걸 설명하자면 선배와 나는 정말로 범죄자가 될 것 같아서 말을 돌렸다.

“그게 말이야, 내가 뭘 좀 사왔는데.”

나는 담임 선생님이 선배와 나눠 먹으라고 주신 도넛상자를 가방에서 꺼내 테이블에 내려놓았다. 상자를 열고 도넛의 냄새가 퍼지자 분위기가 많이 누그러졌다. 아이들은 내가 후배들을 만나고자 모교를 방문한 도서부 선배쯤 되는 사람으로 믿는 눈치였다. 한숨 돌리고 주변을 살펴보니 낯이 익은 물체가 눈에 들어왔다. 내가 그토록 찾아 헤매던 유리장식장이다. 그러나 유리문이 잠겨서 열리지 않았다. 도대체 열어야할 것이 몇 개인지, 문집을 찾기 위한 과정이 험난하기도 하다.

“열쇠 그거 선생님한테 있어요.”

키 큰 아이가 도넛을 우물우물 먹으며 말했다. 교복이 아니었으면 대학생으로 보였을 것이다. 요즘 애들의 발육은 정말 빠르다.

“아니야. 그거 맨날 자리에 두고 다니시잖아. 제가 가져다 드릴 게요.”

다른 아이가 일어나 위원실을 나갔다. 내가 가져오는 게 더 빠를 것 같은데. 그러나 몇몇 아이들이 여전히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는 통에 서두르는 티를 낼 수가 없다. 한 시간 같은 오 분이 지나고 아이가 열쇠꾸러미를 들고 돌아왔다. 그 중 제일 작은 열쇠로 유리문을 열었다. 2016, 2015……. 2013년도 학급문집을 열 한권 찾았다. 나는 그 가운데 5반의 것을 찾아 펼쳐보았다. 우리 반 아이들이 그린 4컷 만화, 체육대회 사진 등이 인쇄되어 있고 끝으로 갈수록 고등학교 생활을 마무리하는 이야기가 있다. 드디어 이름순으로 아이들의 연락처가 있는 페이지를 찾았다. 나는 휴대전화를 꺼내 유세림의 집 전화번호, 메일 주소 등을 재빠르게 사진 찍었다. 다음 장에는 각자 하고 싶은 말을 한 줄씩 적어놓은 글귀가 있었다. 유세림의 것을 찍으려던 순간 휴대전화 진동이 울렸다. 선배의 전화다. 그와 동시에 도서실 입구 쪽이 소란스러웠다. 나는 문집을 제자리에 돌려놓을 계획이었지만, 상황이 이렇게 된 이상 아이들의 시선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가방에 챙겨 넣었다. 의외로 도둑질이 적성에 맞을지도 모르겠다.

위원실의 철문을 열자 복도가 나왔다. 저쪽에서 불안하게 서 있는 선배의 뒷모습이 보였다.

“선배!”

그는 뒤돌아서 나를 보더니 한달음에 달려왔다. 우리는 빠르게 교정을 빠져나갔다. 체육시간에 그토록 뛰기 싫었던 먼지가 풀풀 나는 운동장을 달려 교문을 지난다. 이 학교를 벗어나 지금 내가 다니는 학교로 돌아가야 한다. 자격증 시험, 취업준비 같은 머리 아픈 단어들이 떠올랐다. 그렇다고 운동장에서 뛰어놀고 있는 저 아이들이 부러운 것은 아니다. 그 때도 하루하루 나아가는 것이 힘에 부쳤으니까. 우리는 버스정류장을 향해 걸었다. 이 긴 하루의 남은 시간들을 버티기 위해 선배의 손을 잡았다.

 

 

7. 브리티시컬럼비아 주, 밴쿠버

“일종의 열등감이지. 그런 말도 있잖아. 열등감의 원칙이었나?”

정답은 열등처우의 원칙이다. 매니저도 대학을 나왔다는데 강의시간에 졸았던 걸까? 아니, 게다가 이건 지금 내가 하는 이야기랑 전혀 관계가 없다. 유세림이 저주를 보낸 의도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있던 참이다. 매니저는 자기 휴대전화로 나의 카카오톡 프로필 사진을 보여주었다. 사진을 넘길수록 캐나다의 명소를 돌아다니면서 웃고 있는 나의 모습만 보인다. 이걸 본다면 매일 고추냉이 냄새에 절어 답답한 만원버스를 타고 노숙자가 가득한 거리를 지나는 모습을 상상하기 어려울 것 같다.

“네 친구는 이걸 보고 외국 놀러 다니면서 잘 먹고 잘산다고 생각했을 거고. 너 한국에서 꽤 이름 있는 대학 다닌다며? 명문대학에 해외여행에, 워홀 와서 돈 버는 애라고 누가 믿겠냐. ‘난 이렇게 힘든데 김희나, 넌 잘 살고 있네.’ 하고 괴롭히고 싶었나보지.”

24번 테이블에서 중국인 부부가 매니저를 부르는 바람에 그는 황급히 말을 마치고 달려갔다. 매니저의 말에는 틀린 부분이 있다. 우선 나는 유세림이 부러워할 만큼 행복한 인생이 아니다. 오히려 괴롭히고 싶은 상대가 은채였다면 수긍할 수 있다. 유세림이 내가 아닌 은채에게 저주의 문자를 보내는 게 이치에 맞다는 말이다.

3년 내내 붙어 다닌 것보다 수능 전 기숙사에서 살았던 6개월이 더 파장이 컸다. 동네에서 나름 알아주었던 인문계 고등학교는 성적이 좋은 아이들만 기숙사에 모아 입시 집중반을 만들었다. 3학년 5반에서는 나와 은채, 유세림이 들어갔고 철저히 성적순으로 번호를 매겨 방과 책상을 배정해 주었다. 3인실인 방 안에도 번호가 붙어있기 때문에 기숙사에 사는 아이들이라면 누가 전교 몇 등인지 다 알 수 있었다. 103호의 1번은 나. 2번은 은채 그리고 유세림이 3번이었다. 중간, 기말, 모의고사의 성적이 나올 때마다 방과 책상이 새로 배정되었지만, 이 번호는 한 번도 무너진 적이 없다.

아무리 가족 같은 친구라도 함께 살게 되면 보이는 단점을 이루 말할 수 없다. 처음에는 은채의 예민한 성격이 문제가 되었다. 유세림이 매운 스프가 들어간 컵라면이라도 먹는 날엔 은채의 과장된 재채기가 밤새 계속 되었다. 슬리퍼를 끄는 소리, 베개를 뒤집을 때 나는 먼지도 은채의 공격 대상이었다. 기숙사에서 새벽 2시까지 공부를 해도 된다는 규칙이 있었지만 최대한 자습실에서 모든 걸 해결하고 방에서는 잠만 잤다. 스탠드 불빛에 예민한 은채가 자정이면 침대에 누웠기 때문이다.

은채는, 좋게 말하자면, 사랑을 많이 받고 컸구나, 느낄 수 있는 그런 아이였다. 이십 만원이 넘는 폴라로이드 사진기를 들고 온 날도 그랬다. 열아홉이나 되어서 그 정도로 자랑을 할 줄은 몰랐지만, 중요한 사실은 그게 없어졌다는 것이다. 은채가 103호 밖으로 들고 나간 적이 없고 좁은 방 안을 아무리 찾아도 나오지 않았으므로 은채의 의심은 유세림을 향했다. 정부의 지원으로 학비를 내고 있는 그녀가, 폴라로이드처럼 비싸고 쓸데없는 물건을 가질 수 없으니 욕심이 났을 거라는 이유였다. 돌려주면 없던 일로 하겠다는 은채의 말에도 울면서 항변하는 유세림의 얼굴은 정말로 결백해보였다. 유세림이 자진 퇴소를 한 뒤 나는 그것을 찾아냈다. 우리는 한 사람 당 책상 옆에 옷장이, 그 위로 이층 침대가 있는 가구가 주어졌다. 그 옷장과 벽 사이에 박혀있던 사진기는 침대에서 떨어졌는지 앞판이 쿠키처럼 부서져있었다. 은채의 자리에서 사진기를 꺼내 내밀었을 때 그녀의 얼굴은 길을 잃은 아이 같았다.

같이 밥을 먹고 매점을 가고 찰리채플린의 영화를 빌리러 달려가던 일상이 무너졌다. 수능이 얼마 남지 않았으니 어차피 곧 그만 두었을 것들이라고 위안했다. 우연히 은채와 유세림이 마주칠 때 그 어색한 공기 속에서 숨이 막혔다. 피곤하다. 고등학교 생활도 이 인간관계도 빨리 끝나버렸으면 좋겠다, 라고 교정에 땅거미가 드리우는 것을 지켜보며 매일 생각했다.

 

 

8. 서울, 미아

골목마다 있는 맨홀 위를 지나갈 때마다 숨을 참았다. 하여튼 예민해, 선배가 옆에서 고개를 가로 저었다. 친구라는 말에 좋아하시던 어머니의 목소리는 가느다랗고 힘이 없었다. 어머니는 집 주소를 차근차근 불러주고는 전화를 끊었다. 강의가 끝나자마자 선배의 차를 타고 이곳까지 오는데 30분도 걸리지 않았다. 빛이 바랜 붉은 벽돌로 이루어진 주택의 좁은 계단을 올라갔다.

계속 이야기를 이어가려고 애썼지만 잘 되지 않는다. 무거운 공간 안에서 사각사각 과일을 깎는 소리만 들렸다. 셋이서, 아니 넷이서도 다 먹지 못할 많은 사과의 껍질이 길어져가도 굳게 닫힌 방문은 열리지 않았다.

“세림아, 친구가 왔네. 잠깐만 나와 보자.”

어머니의 부드러운 회유에도 조그만 미동조차 없었다. 어머니는 나를 향해 어색한 미소를 지어보이자 나도 최대한 입 꼬리를 올려보았다. 오랜 침묵을 깨고 그녀가 말했다.

“저, 부탁이 있는데…….”

조그만 종이쪽지를 받아들고 밖으로 나왔다. 유세림이 지내던 노량진 어딘가의 주소가 적힌 쪽지였다. 어머니 혼자 딸의 짐을 다 옮기기는 불가능할 것이다. 그녀는 흔쾌히 고개를 끄덕이던 선배의 손을 잡고 고맙다는 말만 연신 반복했다.

유세림은 대학에 가지 않았다. 노량진으로 들어간 것은 올해 초라고 했다. 고등학교 때 성적도 좋은 편이었고 졸업식에만 나타나지 않았을 뿐, 수능과 기말고사를 보러 학교에 왔었다. 네 번의 수능을 보았고 네 번 모두 실패했다는 말이 된다. 유세림의 대학 진학에 대한 이야기라면 희나의 비중이 크다고 할 수 있다. 유세림은 영화 전공으로 유명한 A대학을 목표로 삼았다. 매일같이 A대학의 장점과, 어떤 전형으로 지원을 할 것인지 성적은 어느 정도 나와야하는지 이야기했던 기억이 난다. 문제는 그 성적의 정도가 희나에게는 쉬웠고 유세림에게는 약간 아슬아슬 했다는 것이다. 희나가 유세림과 똑같은 전형으로 A대학에 지원할 거라고는 나도 예상치 못했다. 선생님이 추천해주었다는 것, 최대한 모든 가능성에 다 지원을 하다보니 그렇게 되었다고, 누가 들어도 구차한 변명을 했다. 당연한 일이지만, 같은 고등학교 출신에 비슷한 역량을 가진 두 아이 중 성적이 조금 더 높은 희나가 붙었다. 유세림은 대기번호를 받았고 희나는 다른 대학에서도 합격을 받았지만 A대학에 입학했다. 추가합격만 기다리던 유세림이 우리와 말을 하지 않게 된 것은 그때부터인 것 같다.

최대한 발끝으로 살금살금 걸으며 고시원 안으로 들어갔다. 일자형 책상이 있고 그 책상만한 공간이 전부다. 이 바닥에 이불을 깔고 유세림이 잠을 잤을 것이다. 손바닥만 한 창문에서 들어오는 햇빛 부스러기가 먼지를 하얗게 비추었다. 우리는 최대한 조용히 두꺼운 책과 컵라면 등을 챙겼다. 별안간 옆방에서 벽을 쿵쿵쿵 세게 때렸다. 선배와 나는 그대로 얼음이 되어 눈치를 살폈다.

“이런데서 있으면 나 같아도 우울증에 걸리겠다.”

선배가 소곤소곤 말했다. 그 말에 반론이라도 하듯이 아까보다 더 크게 벽을 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가방을 메고 선배는 상자를 안은 채 밖으로 나왔다. 유월의 햇볕이 목덜미를 뜨겁게 달구었다. 고시원의 서늘한 공기가 등에 달라붙어 있는 것 같아 몸을 떨었다.

 

 

9. 인천, 중구

공항버스정류장에 앉아 주위에서 들려오는 우리말을 듣고 있으니 한국에 돌아왔다는 것이 실감이 난다. 그러나 마음이 무겁다. 내일까지 제출해야하는 과제가 있는 것처럼. 나는 휴대전화로 메일을 열어보았다. 보낸 사람은 박은채, 내 메일주소는 어떻게 알았을까.

은채는 감정을 넣지 않고 간결하게 글을 썼다. 유세림이 지금까지 모든 대학입시에 실패한 뒤 노량진에서 공무원시험을 준비했다는 것, 고등학교 졸업 이후 줄곧 어두웠던 생활이 결국 우울증이 되어 돌아왔다는 것, 대학에서 유유자적하고 있는 것 같은 은채와 해외여행을 즐기는 것 같은 나에게 문자를 보낸 것 등의 내용이었다. 은채는 다음 학기에 휴학을 하고 졸업과 취업준비는 잠시 미루기로 했으며, 지금은 다리가 불편하신 어머니를 대신해 유세림의 통원치료를 다니고 있다고 말했다.

졸업식 날 학급문집에 실린 유세림이 남긴 마지막 글귀를 읽었던 기억이 난다. 우리가 찰리채플린의 영화 중 최고로 뽑았던 <라임라이트>의 명대사다. 그 내용이 유세림이 보낸 첫 번째 문자에 인용되었다는 것을 알아챘을 때는 밴쿠버공항에서 인천행 비행기를 기다리던 중이었다. 찰리채플린이 다리를 다친 발레리나에게 삶의 의지를 되찾아주는 장면이, 마지막 퍼즐조각처럼 떠올랐기 때문이다.

 

 

“무엇을 위해 싸우라는 거죠?”

“해파리에게도 삶은 아름답고 멋진 거란다. 죽음과 마찬가지로 피할 수 없는 것이 바로 삶이야.

지구가 돌고 나무가 자라게 하는 우주의 힘을 생각해봐. 너에게 용기와 그 힘을 사용할 의지가 있다면

우주의 힘이 너에게 깃들 거야.“

 

 

각자의 길로 떠나는 우리에게 유세림이 마지막으로 남긴 말은 축복과 격려였다. 찰나에 즐거운 순간에만 찍어 올려놓은 사진을, 그녀가 멀리서 지켜보는 동안 4년이 지났다. 그 착한 마음이 저주로 바뀌는데 걸린 시간이다.

나의 삶은 작은 흠집조차 없이 완벽해 보였을 것이다. 캐나다의 파랗게 펼쳐진 하늘을 배경으로 걸림돌 하나 없는 미래를 보았을 것이다. 유세림에게 자초지종을 설명하려던 억울한 마음이 사그라진다. 나는 끝내 그녀가 그토록 좋아하는 찰리채플린의 말로 마음을 아프게 할 수 없을 것이다. 인생은 멀리서보면 희극이고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라고.

짐칸에 커다란 캐리어와 가방을 싣고 버스에 올라탔다. 조금만 더 참으면 길고 긴 귀향길이 끝난다. 나는 휴대전화에서 은채의 연락처를 찾아냈다. 무슨 말로 시작을 해야 할지 한참을 고민하다 통화버튼을 눌렀다. 유세림도 이렇게까지 가슴이 뛰었을지 생각해본다. 버스가 찬란한 햇빛이 내리는 도로를 멈추지 않고 달려간다. 지금까지 우리가 그래왔던 것처럼.

<제43회 학술문예상 소설 우수작 수상소감>
 
유독 사나운 날씨를 느끼며 하교를 하던 중에 전화를 받았습니다. 놀라서인지 추위 탓인지 입이 얼어붙어 제대로 대답도 못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날 밤은 커피 열 잔을 마신 것처럼 심장이 두근거려서 잠을 이룰 수가 없었어요.

  이 소설이 떠오른 것은 도서관 열람실에서 공부를 하던 중이었습니다. 창밖으로 지나가는 학우들이 참 즐거워보였어요. 그들이 쌀 한 톨만한 걱정도 없이 웃고 있는 건 아닐 테지만요. 인생은 멀리서 보면 희극이고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라고, 찰리 채플린이 그랬거든요.

  문득 학창시절에 도서실에서 같이 영화를 보고 수다를 떨었던 친구들이 그리웠습니다. 그래서 SNS로 친구들의 근황을 살펴봤어요. 누구는 시험에 합격했고 누구는 유학 중이고 누구는 여행을 자주 다니는 것 같습니다. 한 명도 빠짐없이 정말 행복해 보였어요. 친구들의 웃는 얼굴을 보니 기분은 좋은데, 비릿한 감정이 느껴지는 건 왜인지 모르겠습니다.

  각자의 사정 그리고 열등감, 이 두 단어를 갖고 소설을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제가 지어낸 문장들이 더 섬세해질수록 제 자신에게 솔직해지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저는 이 소설의 등장인물 세 사람 모두에 해당됩니다. 그래서 더 간절하게 이들에게 감정을 이입할 수 있었습니다.

  나의 소설을 누군가 읽는다는 사실은 아직 도 매우 부끄러운 일입니다. 더 솔직하게 글쓰 기에 임해야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앞으로 글 을 ‘잘’ 쓰기보다는 ‘좋은’ 글을 쓰고 싶습니다. 기꺼이 애독자가 돼준 친구 B양과 R양, S양에 게 고마운 마음을 전합니다. 저의 소설이 우수 작으로 뽑히는 기회를 주신 덕성여대신문사에 감사드립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 서울특별시 도봉구 삼양로144길 33 덕성여자대학교 신문사
  • 대표전화 : 02-901-8551~8
  • 청소년보호책임자 : 나재연
  • 법인명 : 덕성여자대학교
  • 제호 : 덕성여대신문
  • 발행인 : 한상권
  • 주간 : 조연성
  • 편집인 : 나재연
  • 메일 : press@duksung.ac.kr
  • 덕성여대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18 덕성여대신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press@duksung.ac.kr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