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3회 학술문예상 소설·희곡 심사평>
<제43회 학술문예상 소설·희곡 심사평>
  • 우정민(영어영문)
  • 승인 2017.11.24 19: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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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쁜 일상을 살아가는, 아니 감내하는 우리에게 글쓰기란 가깝고도 멀다. SNS의 홍수 속에 저마다 각자의 의미를 담은 말들을 흩뿌리면서도, 말의 조각을 엮고 시간과 공을 들여 창작에 몰두하기란 결코 쉽지 않다. 게다가 소설이라니! “소설 쓰네.” 하는 말이 괜한 핀잔이 아니다. 현실과 사실에만 몰두하기도 바쁜 팩트체크형 담론의 시대에 소설을 쓰는 이들의 열정이 통과해야 할 고통은 굳이 설명할 필요가 없을 것 같다.

  열정을 뜻하는 영어 단어 passion의 어원은 라틴어로 ‘나는 고통스럽다’라는 말이다. 열정과 고난, 이들이 한 뿌리를 갖는 말임을 되새기며, 열정의 몸부림이 결코 헛고생이 아니라고 천명하는 작은 잔치를 벌이자.

  올해 소설·희곡 부문에 응모한 2편은 이 잔치의 꽃이다. 우수작으로 선정한 <멀리서보면 희극>은 캐나다 밴쿠버와 대한민국 서울을 오가는 아홉 개의 분절로 이뤄진 신선한 형식을 취하고 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우수한 성적으로 대학에 입학했으나 학비를 벌기 위해 워킹 홀리데이를 신청하고 밴쿠버에서 단기 이주노동자의 삶을 꾸리는 김희나, 3대가 부대끼는 서울의 평범한 집에 태어나 대한민국 대학생의 평범한 삶을 누리는 은채. 이들은 어느 날인가부터 저주를 쏟아붓는 괴기한 문자 폭탄에 시달리는 23세 젊은이들이다. 이들은 각자의 바쁜 공간에서 끊임없이 울리는 문자를 애써 외면하려 하지만, 결국 이 사건의 용의자로 수능을 앞두고 사라진 이상한 친구 유세림을 떠올리며 잊고 지낸 슬픈 과거를 추적한다. 김희나, 은채, 유세림, 이 세 학생이 맞춰가는 퍼즐 조각으로 우리는 멀리서 보면 희극인 우리의 삶을 다시 보게 된다.

  가작으로는 <비녹(悲鹿)>을 골랐다. 우리말로는 슬픈 사슴, 첫 장면부터 독자의 궁금증을 자아내는 작품이다. 전제 군주와 아름다운 여인 아라의 만남으로 시작하는 이 소설은 ‘바리데기의 여행 노래’, ‘향악잡영 5수’ 사자춤, ‘향악잡영 5수’ 꼭두각시놀이, ‘천지수’를 노래하며 현대와 고전의 향기를 함께 담아낸다. 흥과 한의 날줄과 씨줄로 엮인 우리 문학의 아름다움을 젊은 열정과 감수성으로 지어낸 작품이어서 감동이 남다르다. “피와 살을 얻은 비녹은 나라의 왕이 돼 슬픔으로 나라를 다스렸다. 그로 인해 기쁨이 생겼고 웃음이 생겼다”는 작품의 마지막 문장은 깊고 긴 여운을 남긴다.

  열정을 노래한 젊은 예술가들에게 진심을 담아 박수갈채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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