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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3회 학술문예상 수필 가작>
2017년 11월 24일 (금) 19:59:24 황주영(영어영문 3) -


조금 더딘 외출

  계절이 바뀌는 것을 증명이라도 하듯 날씨가 부쩍 쌀쌀해졌다. 해가 바뀌기가 무서워 도망이라도 가듯 하루아침에 널뛰기 마냥 급속도로 날씨가 변했다. 이런 환절기엔 따뜻한 ‘집’이 더욱 간절해진다. 홈, 스위트 홈. 귀소본능을 일으키는 안식처, 언젠가 돌아가야 할 공간. 너무도 익숙해 미처 일상 속에서 생각하지 못했으나, 내겐 어느 순간 그것이 무섭도록 낯설게 느껴지는 때가 있었다. 집이라, 어린 시절 나는 참 이사를 많이도 다녔었다. 부모님의 직장 이전을 이유로 우리 가족은 이리저리 몇 번이고 집을 바꿨다. ‘우리 집’이라는 이름으로 명명했던 곳으로 대략 아홉 곳이 넘는 주소를 읊을 수 있을 정도다. 나를 둘러싼 환경이 바뀔수록, 집은 비록 그 모습이 각기 달랐을지언정 더욱 공고히 나를 감싸 안았고, 보호했다. 변화하는 바깥 세계를 향해 느꼈던 어린 날의 두려움과 공포는 ‘집’이라는 공간 속에서 모습을 쉬이 감추곤 했다. 그래서 나는 집을 좋아했다. 위험하지 않고 편안했다. 큰 애착이 있었다. 어린 시절의 주요한 기억들이 각 집에서의 일상들이었을 정도로, 지금까지 집은 물질적이자 정신적으로 나를 보듬는 공간이자, 유일하게 숨을 수 있는 방어막이었다.

  대학에 입학하고 사회를 배우면서, 갑작스레 이러한 집을 ‘떠날’ 일들이 많아졌다. 스물, 성인의 나이가 되어 느낀 세상은 미성년자의 그것과 달랐다. 찬란하기는커녕 검푸른 색을 띠었다. 녹록하지 않았다. 더는 나를 보호하는 방어기제가 존재하지 않아야 했다. 얼렁뚱땅 숨기만 해서는 해결될 일이 아무것도 없었으며, 그 방법은 오직 내가 우뚝 ‘서야’하는 것뿐이었다. 막연히 ‘다들 하니까 나도 해야 하겠지.’라는 마음에서 시작한 일들은 점점 구색을 잃어 갔다. 대학 진학도 마찬가지였다. 남들 하는 대로 하면 다 되는 줄 알았다. 다들 하는 대로 원서를 넣어 대학을 왔다. 남들 하는 대로 아르바이트를 했다. 나의 집 안에서 바깥세상을 관찰했을 때는 그것이 ‘바른길’이었다. 그러나 역시, 목적 없는 항해는 표류로 이어졌고 곧 배의 빛을 잃게 했다. 나는 밤바다에 홀로 남은 배가 되었다. 안개가 낀 듯 어두웠다. 그렇게 나에게는 두려움이 자라났고, 자잘 자잘한 회피들이 늘어갔다. 주목받기 두려워 발표 시간에 손을 들지 않았다. 아르바이트 때 외국인 손님이 두려워 저 멀리 도망을 쳤다. 하고 싶던 활동의 문턱이 너무도 높은 것 같아 감히 도전하지 않았다. 그리고 가까운 지인이 문턱을 넘은 것을 보고 한없이 우울해했다. 그렇게 하나씩 스스로에 대해 용기를 잃어 갔다. 고만고만한 작은 기억들이 눈덩이처럼 불어나 나를 괴롭히기 시작했다. 왜 조금 더 대담하지 못했냐고, 노력하지 않았느냐고, 기회를 놓쳐 버렸느냐고. 그래, 터놓고 말해서 ‘네가 좋아하는 것, 원하는 것이 뭐냐’고, 머릿속을 질리게도 울려댔다. 대답할 수 없었다. 나는 뻔뻔스럽게 변명을 늘어놓으며 합리화를 일삼았다. ‘마음의 스위트 홈’에 숨었다. ‘나는 아직 성숙하지 않으니 괜찮아, 아직 어리잖아? 이 정도야 뭐. 나중에 하면 돼. 다음에, 다음에, 다음에…’ 그다음이란 것은 지독히도 늘려지고 말았다. 그렇게 3년의 세월이 흘렀다.

  그리고 스물셋. 당연지사, 나는 ‘집 밖’에서 나를 드러내기를 두려워하고 있었다. 무서웠다. 우물 안 개구리임을 알았기에, 집 밖을 ‘나서는 것’을 감히 생각해보지 않았기에. 앞을 향해 박차고 나아가는 친구들에 비해 정체되었던 나는, 수업만 착실하게 듣는 ‘착한 학생’이었다. 그렇게 멍청해 보일 수가 없었다. 무언가 다른 것이 필요했다. 외부 활동을 시작했다. 그러나 이윽고 알 수 없는 열등감에 빠져 허우적거렸다. 집 바깥에서 생기는 감정의 골에 쉽게 홀려 자괴감에 빠져버렸다. 내가 원망스러웠다. 나는 마음의 문을 닫고 ‘집’으로 자주 드나들었다. 마치 방문을 꼭 걸어 잠그고 눈과 귀를 막은 어린아이 같았다. 나 하나 제대로 세우지 못하는 채 걸음마를 못 뗀 아이였다. ‘청춘’이라는 시리도록 푸른 이름을 이렇게도 빛바래면서까지 어둠으로 빠져드는 나를 이해할 수 없었다.

  그렇게 몇 번이고 감정의 널뛰기를 하며 여러 번 실감한 것은, 가정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세상을 알아간 나는 ‘매우 정제된’ 아이로 자라났다는 거였다. 참으로 곱게 키워진 순종적인 학생의 원형이었다. 어떤 선택의 상황이든 교육의 틀에 맞춘 자기검열이 작동했고, 나는 그것을 부정 없이 온순하게 받아들였다. 무의식적으로 체화한 규율에 맞춰서 행동했다. ‘나는 이것 밖에 안 돼, 나는 변할 수 없어. 나는 이렇게 태어났을 뿐인데. 이게 나의 한계인데.’ 한계를 규정지었다. 넓은 세상을 눈앞에 두고 나의 ‘집’은 한없이 평수를 좁혀 갔다. 할 수 있었음에도 하지 않았고, 포기하고, 기회를 쉬이 놓쳐버렸다.

  나의 세계관에 속하지 않은 사람들을 억지로라도 나의 세계에 끌어오면서 수많은 유형의 사람들을 마주했다. 각기 사람들은 ‘마련된’ 집을 나와 자신만의 집을 ‘마련해가고’ 있었다.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들은 자유로웠다. 그때야 나는 나를 보호해왔던 마음의 집이, 그 세계관에 대한 믿음과 의존이 매우 굳건했음을 알았다. 너무나도 익숙해 인식할 수도 없던 나의 집이 보였다. 낯설어졌다. 충격적이었다. 모르는 사이 다른 사람들은 집의 평수를 한없이 넓혀 가고, 추억이 서린 집을 떠나기도 하며 모험을 꾀하고 있었다. ‘우리 집’이라고 여겼던 사고 회로들은, 곧 부모님과 앞선 이들이 ‘만들어줬던’ 집이었을 뿐, 내가 만든 진정한 나의 집이 되지 못했다. 나는 그곳에 진득하게도 머물러있었다. 아, 지금이라도 내가 보금자리를 ‘마련해야’ 했다. ‘정신적 독립’을 찾아야 했다.

  졸업을 앞두고, 취업 준비생이 된 나에게 집 밖은 더욱 매서운 바람이 부는 겨울이 됐다. 나는 어린 시절, 한 번도 어른이 되고 싶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두려웠다. 어려서부터 어른은 근사해 보이지 않았다. 어른이란 집을 나설 채비를 해야 하는 사람임을 알았다. 추운 겨울 날씨를 알더라도, 바람이 불 것을 알더라도 무언가를 등에 지고서 나서야 하는 사람이었다. 어느덧 내가 그 나이에 다다랐다. 집을 나서기 위해, 내게는 사전적인 준비들이 필요했다. 나를 확립하지 못한 채 서툰 모습을 다른 이에게 보이는 것은 고역이었다. 그 때문에 종종 다시금 집으로 숨기도 했다. 단, 이제 문은 열어 두기로 했다. 틈 사이로 고개를 내밀기도 하고 바람이 들도록 창문도 열었다. 환기도 시키려 한다. 새로 집을 짓기에는 아직 무리가 있으니.

  ‘진짜’ 세상에 나올 준비를 하는 이러한 마음 변화는 곧 지금까지의 나를 정성스럽게 파괴하는 과정이었다. ‘우뚝 선 어른이 된다.’는 것은 곧 이러한 파괴를 필연적으로 담담히 받아들여야만 했다. 굳게 믿어온 마음의 집을 부수고, 집을 나서고 떠날 준비를 해나가는, 매서운 바람에 맞설 준비를 하는 ‘외출’이었다. 사실 아직도 바람이 매섭다. 사회가 무섭다. 흔들리는 나무처럼 나 또한 한없이 위태롭게 흩날릴 테다. 다들 겪는다고들 말하는 미래의 불안함이나 세상에 대한 불편함, 문득 낯설게 느껴지는 사회들이 파도처럼 한 번에 나를 집어삼킬 때도 있을 테다. 그래, 지금의 나에 있어서는 나서는 것 그 자체에 의미를 둔다. 나서고자 하는 의지를 다졌다는 데 의미를 둔다. 오늘의 내게 어른이 된다는 것은, ‘인생의 환절기’를 맞아 진정하게 집 밖으로 나서는 것을 의미하게 됐다. 안전하고 편안했던 집을 떠나 진정한 나를 찾아서 말이다.

  나는 지금 외투를 입고, 장갑을 끼고, 목도리를 두르고, 신발을 고쳐 신으며 추운 겨울을 향해 발길을 내딛으려 한다. 어떤 브랜드의 옷을 입는가와 같은 잣대에 ‘내 옷은 내 옷인데’라며 의연하게 반응하기로 마음먹었다. 이는 곧 오늘의 젊음을 지닌 나에 대한 예의로, 청춘이라는 이름 앞에 후회 없이 오늘을 사는 방법으로, 지금까지의 나의 집, 나의 세계를 만들어주신 부모님에 대한 보답이다. 그리고 앞서 나를 괴롭힌 ‘네가 좋아하는 것, 원하는 것이 뭐냐’는 물음에 답을 내비칠 행위이기도 하다. 쌀쌀해진 날씨와 따뜻한 집. 조금 더딘 외출이라도, 비록 느리게라도, 나는 집을 떠나 한 발 한 발 확실히 걸어보고 싶다.


<제43회 학술문예상 수필 가작 수상소감>
 
바람이 한창 거세지는 겨울입니다. 저는 여전히 복잡한 마음 반, 의연해진 마음 반으로 일상을 보냅니다. 가작 선정 연락을 받고서 매우 기뻤습니다. 하지만 한편으로 부끄러운 마음도 들었습니다. 퇴고에 오랜 시간을 쏟지 못한 나머지, 제출에 의미를 두며 원고의 끝을 맺었던 기억이 납니다. 생각이 흐르는 대로 숨을 토해내듯 써 내린 부족한 글을 좋은 시선으로 바라봐 주셔서 감사합니다. 감정에 치우쳐 문맥이나 문장 호응 등을 다시금 고려하지 못한 것이 크게 아쉽습니다. 소재 선정에 오랜 시간을 쏟은 끝에 정작 표현에 집중하지 못한 점 또한 아쉬움이 남네요. 역시 글이든 삶이든 한 걸음 물러서서 바라봐야 새로이, 그리고 낯설게 볼 수 있는 것 같습니다.

  답답했던 감정을 허물없이 생생하게 털어낸 것 같아 후련하면서도, 표현력의 부족함을 더욱 통감할 수 있던 기회였습니다. 선정 결과는 우연히 운이 닿았을 뿐, 더욱 노력하라는 뜻으로 알고 더욱 정진하겠습니다. <조금 더딘 외출>은 집이라는 울타리를 벗어나 한 사람의 성인으로 우뚝 서고 싶다는 마음에서부 터 시작됐습니다. 자신을 멀리서, 똑바로 바라보는 이 도전으로 저는 한 단계 발걸음을 옮긴 것 같습니다. 비록 많이 부족하지만, 저와 비슷한 겨울을 앓고 있는 분들께 공감과 위로를 전합니다. 다들 저마다의 집을 쌓아올리고 그 과정에서 세상으로 자유로이 넘나들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학술문예상 공모에 도움을 주 신 덕성여대신문사와 그 관계자분들께 감사함을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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