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3회 학술문예상 시·시조 심사평>
<제43회 학술문예상 시·시조 심사평>
  • 이명찬(국어국문) 교수
  • 승인 2017.11.27 18: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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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덕성여대신문사가 주관하는 제43회 덕성여대신문사 학술문예상 시·시조 부문 투고작을 심사해 달라는 기자의 연락에 흔쾌히 응한 이유는, 이 무정한 시대에도 문학이라는 한물 단단히 가버린 옛것에 들려[憑] 형편없는 몰골을 한 채 교정 곳곳을 누빌 것으로 짐작되는 영혼들을 혹시라도 만나게 될지 모른다는 일말의 기대감 때문이었다. 그들과 만난다면 볼썽사납게 낡은 계몽주의자 행색을 하고서라도 아직 그대가 만나지 못한 문학의 광휘가 저기 어디쯤 빛나고 있노라고, 내가 보았노라고 세 치 혀를 바다뱀처럼 놀려 꼬드겨도 볼 작정이었다. 그런데 6명(오 놀라워라!)의 18편이라는 시 텍스트를 받아들자 내 도도했던 치기는 차갑게 가라앉을 밖에 도리가 없었다. 내 몰골이 그중 제일로 꾀죄죄했던 것이다. 그나마 손이라도 들어 조금이라도 알은 체 하고픈 말들의 조합은 아래의 몇 편들이 전부다. 그래도 아직은 모든 것이 다 죽은 것은 아닌 이 십일월을 기려서라도 섭섭한 마음을 또 다른 기대로 채워 둔다. 아직은 숫된 마음들이어서 타인의 시선 아래로 썩 나서지 못하는 것일 뿐이라고. 그들의 생각을 비벼 발효시키기에 분주한 신발들의 그늘만을 골라 서성이고 있을 것이라고.

  강혜주의 <오늘에게>는 사변(思辨)의 시가 될 싹이 보였다. 하지만 아직은 제대로 자라지 못한 생각이 목에 걸려 쉬 넘어가지 않아 불편했다. 곽인아의 <갇혀버린 나>는 ‘겉치레를 좋아해 나는 나를 색칠한다’라는 전반부의 빛나는 주제의식이 후반에 가서 새로움이나 놀라움, 성찰로 이어지지 못하고 원래의 나로 되돌아갈 수 없음에 대한 맥없는 고백으로 결론이 나서 싱겁고 아쉬웠다. 후반부를 살리는 좋은 퇴고 작업이 뒤따른다면 자신의 문학적 포트폴리오의 제일 앞자리에 세워둬도 아깝지 않은 텍스트가 될 확률이 높아 보였다.

  정연주의 <대화>를 가작으로 선한다. 사실 정연주 학생이 투고한 세 편의 텍스트 가운데에서는 <not found>에 더 마음이 기울었던 게 사실이지만 덜어내고 압축해야 한다는 강박증이 과하게 작동한 결과, 너무 메마른 북어같이 돼버린 점이 최종 결심을 바꾸게 했다. <대화>가 우수작이 되지 못한 이유는 제목의 헐렁함과 새 세대의 감정선을 드러내는 시법(詩法)의 진부함 때문이다. 제목에는 좀 더 악센트를 줘도 무방했을 터인데 문득 거기서 멈추고 있어 맹하다. 행과 연이라는 오래된 무기를 다루는 기법에 대한 고민도 필요했을 터이다. 투고자 가운데서는 시 혹은 문학이라는 과민성대장 증후군에 가장 근접해 있다는 생각이다. 문학에 더 정진하라는 발언이 이 시대에 도대체 가당키나 한 요구인지를 혼자 오래 곱씹어보고 말한다. 그래도 한 걸음 더 나아가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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