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전쟁, 한국의 잘못은 현재진행형
베트남전쟁, 한국의 잘못은 현재진행형
  • 나재연 기자
  • 승인 2017.12.04 13:1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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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면해 온 역사를 돌아보다

  우리나라는 오랜 역사 동안 강국의 침략을 받아왔다. 주변국으로부터 잦은 침략을 받았을 뿐 아니라 근대에는 식민지화까지 겪었다. 이에 우리나라는 타국의 침략에 희생당한 피해자로서의 뚜렷한 역사 인식을 갖고 있고 이를 잊지 않으려 큰 노력을 기울인다. 그에 비해 우리나라가 타국을 침략하고 그 국민들을 학살한 가해자였다는 사실은 잘 알려지지 않아 낯설게 느껴진다. 하지만 지금까지 이를 외면해왔을 뿐, 우리의 역사에도 타국에 상처 입힌 잘못이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한국군, 베트남전쟁에 파병되다
  1960년에 시작된 베트남전쟁(이하 베트남전)은 북베트남과 남베트남의 내전으로 시작됐다. 하지만 1964년, 베트남 동쪽 통킹만에서 미군의 구축함이 공격을 받는 ‘통킹만 사건’이 일어났다. 오늘날 이 사건은 미국의 자작극임이 밝혀졌지만, 당시 미국은 북베트남 정부가 구축함을 공격한 것이라며 베트남전에 직접 개입하기 시작했다. 이때부터 미국이 베트남에서 완전히 철수한 1973년까지 베트남전은 미국과 베트남의 전쟁이 됐다.

  이러한 배경 속에서 한국은 미국의 요청으로 약32만 명의 군인을 베트남에 파병했다. 한국군은 미군 다음으로 가장 많은 병력이었으며, 1964년부터 1973년까지 8년 6개월이라는 오랜 시간 동안 베트남에 파병됐다.

  민간인을 학살하고 외면하다
  베트남전에서 미국은 남베트남 정부를 지원하는 입장으로 북베트남 정부·남베트남민족해방전선(이하 베트콩)과 대립했다. 이에 미국의 요청으로 파병된 한국군 역시 베트콩과의 전쟁을 치렀는데, 그 과정에서 한국군은 많은 민간인을 학살했다. 1999년, 한국베트남평화재단(이하 한베평화재단) 구수정 이사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한국군에 의해 학살된 민간인 희생자는 9천여 명에 달한다. 그러나 이에 대한 정확한 집계가 이뤄지지 않아 아직도 확인하지 못한 민간인 희생자가 많다. 한베평화재단의 전미화 총무팀장(이하 전 팀장)은 “평화기행 중 민간인 피해자가 찾아와 ‘우리 마을에도 민간인 희생자가 있다’고 전하기도 했다”며 “이와 같은 사람들을 찾기 위해 전수조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러나 우리나라 정부는 한국군의 민간인 학살 자체를 부정하고 있다. 전 팀장은 “우리나라 정부는 한국군은 민간인으로 위장한 베트콩을 죽인 것이지 민간인을 죽인 게 아니라는 입장이다”며 “정부는 침묵으로 일관하며 진상을 조사하지 않고 있다”고 전했다.

 

 

<출처/한베평화재단>꽝응아이성빈호아학살증오비
<출처/한베평화재단>비문이연꽃무늬대리석으로덮인꽝남성하미마을위령비베트남,잔혹한학살을기억하다한국군의민간인학살이없었다는우리나라정부의입장과달리베트남곳곳에는명백하게한국군의민간인학살흔적이남아있다.한국군의민간인학살을기록한‘증오비’와민간인희생자들의정보가담긴‘위령비’가그증거다.꽝응아이성의빈호아학살증오비는‘하늘에닿을죄악만대를기억하리라!’라는문구와함께한국군의학살을기록하고있다.빈호아학살증오비에는1966년한국군에의해430명의주민이희생됐으며이때희생된주민의대부분이여성이나노인,어린이라고기록하고있다.전팀장은“베트남에는한국군의민간인학살과관련된비가50~60개정도있다”며“베트콩이민간인으로변장했다고해도이름도없는아기들까지희생당한것은설명할수없다”고말했다.한편비를통해한국군의민간인학살을기록하지못하는상황도있다.2001년,꽝남성하미마을에서는한국군에의해목숨을잃은희생자들을기리기위해위령비를세웠다.처음세워졌던하미마을위령비에는한국군의학살이기록돼있었다.그러나하미마을위령비건립을지원했던월남참전전우복지회가그비문을보고‘위령비는한국군과주민들모두를위로하는화해비라생각했다’며해당내용을지워달라요청했다.이를거부한하미마을유가족협의회는언젠가비문을공개하겠다는의미를담아비문을지우지않고연꽃문양의대리석으로비문을덮었다.하지만최근까지도월남전참전자회가하미마을을방문해해당비문을지워야하미마을을지원하겠다고말해논란이되기도했다.희생자와생존자,뒤로밀려나다우리나라는왜베트남전에서저지른잘못에대해부정하고책임을회피하는걸까?또베트남정부는왜우리나라에진상규명을요구하지않는걸까?베트남전후베트남정부는‘과거를닫고미래로가자’라는실리주의적외교방침을내세웠다.이에맞춰미군의용병이었던한국군에대한유감은없다는것이베트남정부의입장이다.전팀장은“베트남은사회주의공화국이기때문에국가의결정에피해자들이목소리를낼힘이없고,기회도없다”며“하지만피해자는여전히남아있어그들의상처를무시할수는없다”고말했다.한국군의민간인학살에대한우리나라정부의외면역시계속이어져오고있다.이는아직우리나라에뿌리깊게남아있는반공주의때문이다.전팀장은“우리나라에서베트남전의학살을논하면반공과연관되기때문에이와관련된논의가이뤄지기어렵다”고전했다.한편,베트남전의피해자는베트남에만있는것이아니었다.학살을행했던한국군참전자의트라우마역시고려돼야하기때문이다.전팀장은“참전군인들은파병될당시대부분어린나이에아무것도모르는상태로명령을따라베트남에왔을것이다”며“그들은낯선나라에서사람을죽이며트라우마가남았을것이다”고말했다.이어“진실규명은민간인희생자뿐만아니라베트남전에참전한한국군을위해서이기도하다”며“그분들에게도위로가필요하기때문이다”고말했다.
<출처/오마이뉴스> 제주 강정마을에 세워진 베트남 피에타상


  사죄와 화해를 위해 노력하다
  베트남 민간인 학살에 대한 진실을 규명하기 위해 노력하는 단체와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다. 일본군에 의한 위안부 피해를 기리는 ‘평화의 소녀상’을 제작한 김서경·김운성 조각가는 공동으로 '베트남 피에타상’을 제작했다. 태어난 지 1년이 지나지 않아 이름도 갖지 못한 채 한국군의 학살로 목숨을 잃은 아기들을 기리는 동상이다. 이 동상의 미니어처는 2015년에 베트남 다낭 박물관에 기증되기도 했다. 이어 베트남 피에타상은 베트남에 기증될 예정이었으나, 한국 정부가 이를 거부해 지난 4월 제주 강정마을에 세워졌다. 김서경 조각가는 오마이뉴스와의 인터뷰를 통해 “한국군이 학
살한 수많은 무명 아기들을 위로하는 마음을 담아 피에타상을 만들게 됐다”고 밝혔다. 또한 많은 사람들이 <연꽃아래>나 한베평화재단의 <만만만 캠페인>과 같은 다양한 활동을 통해 베트남전 당시 한국군에 의해 벌어진 민간인 학살의 진실을 규명하고 이를 사죄하기 위해 목소리를 내고 있다.

  이제는 마주 봐야 할 때
  그러나 이런 목소리에도 우리나라 정부의 공식적인 사과는 없다. 지난달 11일 베트남 호찌민시에서 열린 ‘호찌민-경주세계문화엑스포 2017’ 행사의 영상 축전에서 문재인 대통령은 “한국은 베트남에 ‘마음의 빚’을 지고 있다”고 말했다. 국내 언론은 이를 베트남전에 대한 ‘우회적 사과’로 평가했다. 그러나 한베평화재단의 ‘문재인 대통령 베트남 사과 보도에 대한 한베평화재단 논평’에서는 “한국과 베트남의 문화교류 행사장에 영상 메시지로 전달된, 그것도 베트남 정부나 국민이 아닌 행사 참석자를 대상으로 한 발언이 마치 공식 사과인 것처럼 한국 언론에 보도되고 이를 접한 국민들은 베트남에 사과를 했다고 받아들이고 있다”고 전했다. 이어 “진정한 사과는 가해사실에 대한 인정과 책임이 전제돼야 한다”고 말했다.

  전 팀장은 “50년이 넘은 옛날 일을 들추는 이유는 이것이 현재의 문제이기 때문이다”며 “반인권적이고 반인륜적인 사건에는 유효기간이 없다”고 말했다. 이어 “이를 기억해야 잘못을 반복하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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