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리 보는 덕성 100년사] 기억을 둘러싼 투쟁, 차미리사와 송금선의 관계는?
[미리 보는 덕성 100년사] 기억을 둘러싼 투쟁, 차미리사와 송금선의 관계는?
  • 한상권 덕성 100년사 편찬위원장
  • 승인 2018.03.05 1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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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금선이 덕성의 뿌리?

  우리대학은 100년이라는 긴 시간동안 존립했다. 그만큼 덕성의 역사는 가치 있다. 모든 역사는 현재로 통한다. 앞으로 나아갈 덕성의 미래를 위해 덕성의 100년을 되돌아보는 시간이 필요하다. 



  올 초 필자는 우리대학 홍보전략실에서 제작한 다이어리 ‘2018 DUKSUNG WOMEN’S UNIVERSITY’를 보고 우리대학 홈페이지 자유게시판에서 공개 질의를 한 바 있다.

  다이어리에 1920 ‘조선여자교육회 창립’이라는 제목의 사진이 있는데, 사진 맨 앞에 있는 인물이 송금선임을 알 수 있습니다. 학교가 제작한 다이어리에 따르면, 송금선 여사가 1920년에 덕성학원의 뿌리인 ‘조선여자교육회’를 창립했다는 설명이 되는데, 무슨 의도로 이처럼 터무니없는 사진을 배치하였는지 참으로 궁금합니다. 대학본부의 납득할 만한 해명을 바랍니다.
<출처/공개 질의서 : 송금선이 덕성의 뿌리?>, 2018.1.3


  이에 대해 홍보전략실은 다음과 같이 답변했다.


  한상권 교수님께서 질의하신 사진은, 박물관으로부터 정확한 파일명이나 일체의 정보 없이 한꺼번에 전달 받은 수백 장의 과거 사진 자료 가운데 한 장입니다. 수십 년 전 사진으로 화질이 양호하지 못하고 정보도 없어 인물을 식별하는 데 큰 어려움이 있었고, 이를 정리하고 배치하는 과정에서 착오가 있었습니다. 해당 사진의 배치는 특별한 의도 없이 편집 과정에서 발생한 실수이며, 이에 대하여 사과의 말씀을 드립니다. 향후 이러한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습니다.
<출처/한상권 교수님 질의에 대한 답변서>, 2018.1.5


  차미리사 선생이 있어야 할 자리에 송금선 여사의 사진을 배치한 게 단순한 착오라는 답변인데, 이에 학생들이 나서서 우리대학 100년의 역사에 대한 학교측의 무지를 매섭게 질타했다.


  박물관에서 정보 없이 줬으면 다시 확인하고 넣어야 되는 거 아닌가요?? 애초에 박물관에 문의하고 꼼꼼하게 확인했으면 편집과정에서의 실수도 없었을 것 같네요.. 잘 모르는 상태에서 일을 진행하니까 마지막 확인 때도 발견 못하신 거 아닌가요?
<출처/덕성여대 홈페이지 자유게시판 le***********>, 2018.1.5

  엄연히 학교 홍보물인데 제대로 된 검토 없이 그냥 올렸다는 게 말이 되나요?
<출처/덕성여대 홈페이지 자유게시판 al********>, 2018.1.6

  어처구니없는 답변이네요. 학교 역사를 이렇게 무시하셔도 되는 건가요? 어떻게 확인도 안하시고 마구잡이로 올릴 수가 있죠?
<출처/덕성여대 홈페이지 자유게시판 ro********>, 2018.1.7


  송금선 여사가 차미리사 선생의 후계자?
  박원국 전 이사장(이하 박 전 이사장)은 송금선 여사의 장남이다. 그는 20년 동안 덕성학원의 이사장으로 군림했는데, 학내분규로 교육부에 의해 해임됐다가 대법원에서 승소해 다시 이사장으로 복귀했다. 박 전 이사장은 복귀하자마자, “학내 구성원들이 후손이 없는 차미리사 여사를 설립자라 추앙하고 송금선 전 학원장을 민족반역자인 양 매도하는 억지 주장을 일삼는 것은 현 재단의 경영권을 빼앗으려는 의도를 극도로 노골화하고 있는 것”이라며, 차미리사 선생과 송금선 여사의 관계에 대해 다음과 같은 입장을 내놓았다.

  덕성학원의 전신인 근화여학교의 모태는 암울하던 일제시대인 1919년 9월 차미리사 여사에 의해 설립된 여자 야학 강습소 혹은 여자 야학회에 근거합니다. 1940년 무렵 차미리사 여사는 젊고 교장의 자격이 있으며 덕망과 통솔력 그리고 재력이 있는 인물을 물색 중 적임자인 송금선 여사를 후계자로 추대하였습니다.(……) 송금선 여사는 차미리사 여사의 건학 이념을 계승 발전시켜 여성 교육을 통한 민족 교육을 실현하였으며, 이것이 오늘날 덕성학원 건학 이념이 되었습니다.
<출처/학교법인 덕성학원·덕성여자대학교>, 2001.4.9


  송금선 여사가 차미리사 선생의 ‘후계자’라는 게 구재단의 공식 입장인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입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송금선 여사가 차미리사 선생의 건학 이념을 계승하고 발전시켜 여성 교육을 통한 ‘민족 교육’을 실현했다는 주장까지 했다. 이게 사실이라면 친일파가 독립운동가의 교육이념을 계승하고 구현했다는 그로테스크한 결론에 이르게 된다.

  차미리사 선생(1879∼1955)은 3·1 독립운동 정신을 계승해 1920년에 덕성학원의 전신인 ‘조선여자교육회’를 세웠다. 차미리사 선생의 교육이념은 민족혼 발양을 교육의 정신적 지주로 삼은 ‘민족주의’, 남자와 여자는 양 수레바퀴와 같다며 남녀평등을 강조한 ‘민주주의’, 가난한 가정부인이나 소박데기 등 소외당한 여성들을 대상으로 교육하는 ‘민중주의’, 외국 선교사의 도움을 받지 않고 철저히 조선인의 힘으로 학교를 설립하고 경영한 ‘자립정신’이다. 차미리사 선생은 ‘조선인의, 조선인에 의한, 조선인을 위한’ 교육을 실천한 여성교육의 선구자였다. 덕성학원은 민족·민주·민중·자립 이념을 바탕으로 설립된 여성교육기관인 것이다.

 

1940년 8월 27일에 신임 교장 송금선의 취임사를 보도한 매일신보 <출처/매일신보>


  한편 송금선 여사(1905∼1987)는 1940년에 차미리사 선생의 뒤를 이어 덕성여자실업학교의 교장이 된다. 그의 교육이념은 교장 취임식에서 밝힌 포부에서 잘 드러난다.

  전통을 자랑하는 우리 학교요 오래인 역사 속에서 새 출발을 기약할 우리 학교이므로 전 교장(차미리사: 필자)의 큰 뜻을 받들어 총후(후방: 필자)의 학원으로 황국신민 교육의 완성을 위하여 미력을 다하고자 하며 사회 여러분의 지도를 바랄 뿐입니다.
<출처/매일신보>, 1940.8.27


  송금선 여사는 신임 교장 취임사에서 “황국신민 교육”의 완성을 위해 노력하겠다는 의지를 피력했는데, 그가 밝힌 ‘황국신민’이란 자신을 완전히 희생해 오로지 천황을 위해 웃으면서 죽을 수 있는 인간을 말한다. 황국신민화 교육의 구체적 실천내용은 학교의 군사 체제화였다.

  송금선 여사는 비상시국을 맞이해 여학생에게도 군사 교련을 시켰다. 군사 훈련은 학생들에게 국체적 국가 관념, 즉 일본은 만세일계의 천황이 다스리는 신의 나라이니 제국 신민은 이런 국체를 명확히 인식함으로써 본분수행에 어긋남이 없어야 한다는 관념을 주입하는 데 유용한 수단이었다. 천황제 파시즘으로 학생들을 세뇌해야만 학생들이 자랑스러운 황국신민이라는 신념을 갖고 전쟁터에 기꺼이 나가 천황을 위해 웃으면서 죽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송금선 여사의 교육이념은 일제의 민족 억압과 차별을 정당한 것으로 받아들였다는 점에서 ‘반민족적’이며, 폭력적 파시즘 체제를 옹호했다는 점에서 ‘반민주적’이며, 일제의 전시 총동원 체제하에서 전쟁에 협력했다는 점에서 ‘반평화적’이다.


  승계인가, 탈취인가?
  박 전 이사장은 대법원의 확정판결로 2001년 1월 덕성학원에 복귀했다. 하지만 학내 구성원들의 격렬한 저항에 부딪혀 같은 해 10월 임기 만료로 물러났다. 그는 덕성을 떠나고 한참 뒤인 2004년 3월, 필자를 ‘사자(死者) 명예훼손’으로 고소했다. 여기서 사자, 죽은 이는 송금선 여사를 뜻한다. 이 건은 기소돼 1심 판결까지 3년 3개월이나 걸렸다. 대법원이 상고심 판결에서 검찰의 상고를 기각하고 무죄 판결을 확정한 것은 2008년 4월 24일이다. 2004년부터 2008년까지 4년 남짓 재판이 진행된 셈이다. 검찰의 공소장 내용을 보자.

  피고인 신OO, 한상권은 공모하여(……), 사실은 박씨 가문이 조선총독부의 도움으로 덕성학원을 탈취하였다는 증거가 없음에도, “(……) 역사의 기록에 근거한 연구와 토론의 결과, 교주 노릇을 해 온 박씨 가문은 덕성학원의 설립자이기는커녕 조선총독부의 도움으로 독립운동가 차미리사 선생으로부터 덕성학원을 탈취하였음이 확인되었다.” 등의 내용을 포함시켜 유인물을 작성한 다음,(……) 배포하여 출판물에 공연히 허위 사실을 적시하여 위 피해자의 명예를 훼손하였다.
<출처/서울북부지방검찰청,<공소장>>, 2006.1.26


  검찰은 필자가 쓴 “박씨 가문이 덕성학원을 ‘탈취’했다”는 구절을 문제 삼고 기소한 것이다. 법정에서 송금선 여사의 친일행위를 둘러싸고 치열한 공방전이 벌어졌다. 검찰이 징역 1년을 구형했으나, 재판부는 (가)“송금선을 친일파로 볼 수 있으며”, (나)“송금선이 덕성여자실업학교를 인수한 것은 친일파였기 때문에 가능했으며”, (다)“독립운동가가 세운 학교가 친일파 손으로 넘어간 정황으로 미뤄 볼 때 ‘탈취’로 봐도 크게 무리가 없다”는 요지로 무죄 판결을 내렸다. 친일파 송금선이 독립운동가 차미리사의 ‘승계자’라는 지난 반세기 동안의 근거 없는 주장이 일거에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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