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상식과 원칙이 통하지 않는 사회에서 힘들게 저항할 것인지 무기력하게 순응할 것인지 고민한다. 많은 경우 힘들게 저항하기보다는 무관심하게 외면하는 모습을 보인다. 개인이 사회의 비상식과 무원칙에 도전하거나 저항하기에는 그 힘이 미력할 뿐만 아니라 현실적으로 그럴 여유조차 부족하기 때문이다. 문제는 우리가 비상식과 무원칙의 문제를 회피하는 만큼 더 많은 영역에서 상식과 원칙은 무너진다는 점에 있다. 비상식과 무원칙 속에서 자신의 이해관계를 챙기는 사람들도 역시 많아진다.
최근 한국 사회에서 상식과 원칙을 회복시키기 위한 시도와 도전이 많이 나오고 있다. 그동안 비상식적이고 무원칙적으로 진행됐던 일들에 대한 저항이 사회 도처에서 불거졌다. 도대체 그동안 우리가 얼마나 상식과 원칙이라는 가치를 외면했는가를 반문하고 반성해야 할 정도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이러한 사회적 반향은 바람직하다. 앞으로 상식과 원칙을 바로 세우는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최근에 진행되고 있는 상식과 원칙을 다시 정립하려는 시도들과 관련해 다음의 점들에 대한 고민이 추가되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먼저, 원칙이 어떻게 마련됐으며 정당한 것인지 끊임없이 반문하자는 것이다. 우리는 원칙이라고 정해지면 그 원칙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정당한 것인지에 대한 고민을 크게 하지 않는다. ‘원칙을 만든 사람들이 알아서 잘 만들었겠지’하는 안일한 생각으로 별 고민 없이 믿거나, 정해진 원칙은 지켜야 하는 것으로만 생각한다. 하지만 원칙을 만드는 사람들이 성인군자는 아니며, 인간으로서 오류를 만들어낼 가능성은 언제든지 존재한다. 그래서 원칙이 엉터리이거나 문제가 있는 경우도 많다. 적절한 절차와 상식에 기반을 두지 않은 원칙은 사회 다수의 이익보다는 소수 또는 누군가의 이익을 보장하는 수단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다. 원칙의 준수보다 원칙의 정당함을 먼저 고민해야 한다. 정당하지 않은 원칙에 대해서는 저항하고 빨리 바뀔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더 바람직하다.
다음으로 비상식적인 것에 대해서는 고민 없이 반발하자는 것이다. 말 그대로 상식은 고민이 필요 없는 부분이다. 원칙은 따져보고 고민할 필요가 있는 영역이지만 상식은 자동적으로 반응할 수 있는 영역이다. 원칙에 대한 반응에는 시간이 소요되지만 상식에 대한 반응은 많은 시간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단지 비상식에 즉각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할 뿐이다. 상식적인 사회는 용기로부터 만들어진다. 요즘 한국은 비상식적인 것들에 대해 반발할 용기를 갖기 좋은 환경에 놓여 있다. 이를 잘 활용할 필요가 있다.
마지막으로 우리의 말과 행동이 얼마나 상식과 원칙에 부합하는가를 성찰하자는 것이다. 우리 스스로 비상식과 무원칙에 익숙해져 있어 상식과 원칙을 외치면서도 실제로 그런 말과 행동을 보여주지 못하는 모순적 모습을 보일 수도 있다. 인간은 성찰하면서 발전하는 존재다. 지금 한 번쯤 생각해보자. 나는 얼마나 상식과 원칙을 중시하는 삶을 살고 있는지. 부끄러운 마음만큼 우리에게는 해야 할 일이 많이 남았고, 이는 그만큼 우리 사회가 좋아질 수 있는 가능성을 의미한다.
나는 남들보다 훨씬 낙천적이다. 그런데 요즘에는 화가 나는 일들이 많이 생긴다. 친구들이 나이가 들어 나타나는 갱년기 현상이라고 핀잔하고 위로도 해준다. 하지만 화를 다스리는 데 별 도움이 안 된다. 견고한 껍데기가 깨어지고 나니 상식과 원칙이 무너진 민낯들이 사회 곳곳에서 목격되고 있다. 그 민낯은 추하고 또 추하다.
덕성이라는 공동체 안에서라도 상식과 원칙이 외면되지 않기를 바란다. 만약 우리가 지키지 못한 상식과 원칙이 있다면 이번 기회에 성찰하고 바로 세우자. 그것이 100년의 역사를 가진 덕성의 진정한 힘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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