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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을 옭아매는 족쇄, 낙태죄
낙태죄의 당위성을 묻다
2018년 03월 20일 (화) 15:31:02 나재연 기자 njen530207@duksung.ac.kr

  낙태죄라는 말을 들으면 무엇이 떠오르는가? 가장 먼저 떠오르는 건 태아의 생명권과 여성의 자기결정권의 대립일 수 있다. 두 가치는 오래전부터 임신중절에 대해 논의하는 시작점이자 종착점으로 여겨졌다. 현재 우리나라는 태아의 생명권을 더 우선시해 법률적으로 임신중절을 불법으로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낙태죄는 목적대로 태아의 생명권을 지켜내는 역할을 해냈을까?



  임신중절은
  왜 ‘죄’일까?
  우리나라는 형법 제269조 ‘부녀가 약물 기타 방법으로 낙태한 때에는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2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에 의거해 임신중절을한 여성을 처벌 대상으로 규정하고 있다. 이에 임신중절에 대한 법을 개정하려는 다양한 사회적 논의가 이뤄져 왔다. 그러던 중 헌법재판소는 지난 2012년, 낙태죄가 합헌이라는 결정을 내린다. “사익인 임부의 자기결정권이 태아의 생명권 보호라는 공익에 비해 결코 중하다고 볼 수 없다”는 것이 그 근거였다. 이는 여성의 임신중절 결정권을 박탈하는 것을 합법화하는 결정이었다. 이후 ‘임신중절은 죄’라는 사회적 합의가 이뤄진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지난해 9월 30일, 청와대 국민청원에 ‘낙태죄 폐지와 자연유산 유도약(미프진) 합법화 및 도입을 부탁드립니다’라는 청원이 게재됐다.

   
<출처/오마이뉴스>


  청원은 “이 나라 여성들은 사회의 구성원이며 당당히 나라의 케어를 받아야 할 대한민국 국민이다”며 “나라에서 국민의 신체 건강과 정신 건강을 지켜줘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해당 청원은 한 달간 23만여 명이 동의해 청와대의 답변 기준을 충족할 만큼 많은 사회적 지지를 받았다.

   
<출처/청와대>


  이에 지난해 11월,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이하 조 수석)이 해당 청원에 응답했다. 조 수석은 “이번 청원을 계기로 정부는 법제도의 현황과 논점을 다시 살펴보게 됐다”며 “임신중절 현황과 사유에 대한 정확한 실태조사 결과를 토대로 논의가 진전될 것이다”고 전했다. 이어 헌법재판소에서 다시 낙태죄 위헌 법률 심판 사건을 진행 중이라밝혔다. 우리 사회의 낙태죄 폐지가 다시 공론화된 것이다.


  낙태죄 폐지는
  임신중절 권장이 아니다
  낙태죄가 폐지되면 임신중절이 만연해져 생명경시 현상이 일어날까? 한국여성민우회 여성건강팀의 노새(활동명) 활동가는 “임신중절을 법적으로 금지해도 임신중절이 줄어들지 않는다는 것은 통계적으로 증명된 일이다”고 전했다. 이어 “계획하지 않은 임신을 하게 된 여성이 임신중절은 불법이니 출산해야겠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며 “낙태죄는 임신중절을 줄이지 못하며, 허울뿐인 도덕적 단죄로서 여성들을 불법적이고 위험한 상황으로 몰아갈 뿐이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2017년에 발표된 대한산부인과의사회의 ‘인공임신중절 국내외 현황과 법적 처벌의 문제점’ 보고서를 통해 우리나라에서 하루 3,000건 이상의 임신중절 수술이 이뤄지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낙태죄는 임신한 여성들의 무조건적인 출산으로 이어지지 않으며, 오히려 여성들이 불법 임신중절 수술을 받을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 몰아가고 있다. 노새 활동가는 “임신중절을 현실적으로 줄이기 위해 올바른 피임법을 확산시키고 안전한 임신중절이 가능한 시스템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지난해 세계보건기구(WHO)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임신중절을 완전히 금지하거나 제한적으로 허용하는 국가에서 이뤄진 임신중절 중 25%만이 안전하게 이뤄진 데 비해, 임신중절을 허용하는 국가에서 이뤄진 임신중절의 90%가 안전하게 이뤄진다”며 “임신중절을 보다 폭넓게 허용하는 것이 안전한 임신중절이라는 결과를 도출할 것이다”고 덧붙였다.


  생명권을 위해서?
  여성의 생명을 위협 속으로
  우리나라에서는 임신중절이 불법이기 때문에 여성들은 부당하고 어려운 상황을 감수해야 한다.지난 2010년, 임신중절 수술을 했던 병원들이 고발당하는 사태가 일어난 이후 우리나라는 임신중절 수술을 받기 더 어려운 환경이 됐다. 노새 활동가는 “한 사례로 임신중절 수술을 받기 위해 어렵게 찾은 병원의 수술 도구들이 비위생적인 것을 발견한 사람이 있었다”며 “그러나 다른 병원을 찾을 수 없을 것 같아 이에 대해 묻거나 정당한 요구를 하지 못하고 그냥 수술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고 말했다. 이어 “최근에도 임신중절 수술이 가능한 병원을 찾기 어려워 이에 대한 문의가 많이 들어온다”고 덧붙였다.

  이뿐만 아니다. 우리나라는 임신중절이 불법이라는 이유로 의과대학에서 임신중절 수술에 대해 교육하지 않는다. 이 때문에 의사마다 임신중절에 대한 지식 차이가 크다. 노새 활동가는 “여성들이 약물로 임신중절이 가능한 초기에 임신을 알게 된다 해도 의사가 약물 임신중절에 대해 모르면 위험한 수술을 통해 임신중절을 하게 되고, 약물 임신중절을 아는 의사를 만나면 보다 안전하게 임신중절을 하게 된다”며 “여성의 안전이 운에 달리는 것이다”고 말했다. 또한 약물치료에 사용되는 자연유산 유도제인 ‘미프진’은 우리나라에 정식으로 들여올 수 없는 약품이다. 이에 여성들은 약이 정품인지 확신할 수 없으며, 이를 의사에게 문의하기도 힘든 입장에 놓인다.


  예외적 허용규정,
  실제로는 허울뿐
  우리나라 형법은 강간 또는 준강간에 의한 임신의 경우 임신중절이 허용돼 수술비용을 지원받을 수 있다. 그러나 실제로 성폭행에 의해 임신했을 때도 합법적 방법으로 임신중절 수술을 받는 경우는 드물다. 노새 활동가는 “임신중절을 허용하는 사유에 대한 규정은 있으나 이때 성폭행에 의한 임신임을 증명하는 방법에 대한 규정은 없다”고 말했다. 이어 “병원은 이를 판단하기 위해 성폭행으로 인한 임신이 맞는지 입증할 수 있는 자료를 요구한다”고 전했다. 이때 병원에서 요구하는 자료는 주로 경찰에 접수한 성폭행 신고장이나 재판 판결문 등이다. 그러나 성폭행을 신고할 수 없거나 재판이 길어져 판결문을 받기 위해 오랜 시간이 필요한 상황에는 이를 대체할 국가 공인문서가 없다. 이 때문에 여성들은 합법적으로 임신중절 수술을 받을 수 있음에도 불법 수술을 받게 된다.

  노새 활동가는 “임신중절 수술을 진행하는 병원에서 여성에게 성폭행 신고와 재판을 하지 않겠다는 각서를 쓰게 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이어 “수술 후 재판에서 성폭행 사실이 인정되지 않으면 병원이 고발당할 수 있기 때문이다”고 전했다. 낙태죄로 처벌받지 않기 위해 성폭행으로 임신한 여성이 불법으로 임신중절 수술을 받게 될 뿐만 아니라 이후 성폭행을 고발할 수 없는 상황까지 맞닥뜨리는 것이다.


  여성을 억압하는
  권력의 도구
  낙태죄는 인간관계 속에서 여성을 협박하는 도구가 되기도 한다. 노새 활동가는 “낙태죄를 빌미로 한 협박이 이혼이나 이별 과정에서 많이 발생한다”며 “임신중절을 한 여성은 협박에 의해 돈이나 관계 유지를 요구받는다”고 말했다. 이어 “실제로 고소를 하진 않지만 말로 협박하는 사례까지 고려한다면 이는 많은 여성에게 일상적으로 일어나고 있는 문제다”고 전했다. 이러한 협박은 여성들이 가정폭력이나 데이트폭력과 같은 범죄에 노출돼있을 때 심각한 문제가 된다. 여성이 법적으로 대응하려 할 때 남성이 자신의 범죄를 입막음하는 수단으로 낙태죄를 악용하기 때문이다. 남성의 불합리한 요구와 범죄에도 여성은 낙태죄로 처벌될 것을 우려해 적절한 조치를 취하기 어려워진다.


  임신중절을 줄이고
  나아가기 위해서는
  낙태죄는 1953년부터 있었지만, 인구가 많아 산아제한정책을 펼치던 1960년대에는 정부가 나서서 ‘낙태 수술 버스’를 운영하며 임신중절을 피임 방법의 하나처럼 여기기도 했다. 불법 임신중절 단속이 강화된 것은 인구가 줄고 저출생 문제가 심각해진 때부터다. 국가의 상황에 따라 임신중절에 대한 사회적 관점이 달라져 여성들이 주체적으로 임신중절에 대해 결정하기 어려운 것이다.

   
한국여성민우회에서 진행한 낙태죄 폐지를 위한 사진 프로젝트 'Battleground 269'의 사진이다. <제공/Ⓒ2017. 한국여성민우회. 혜영>


  노새 활동가는 “여성에게 출산이란 단순히 아이를 낳는 것이 아닌 삶의 문제다”며 “임신중절을 비범죄화하는 것을 시작으로, 여성이 동등하고 존엄한 인간이라는 것을 인정하고 여성이 주체적으로 가족계획을 세울 수 있는 문화로 나아가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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