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리 보는 덕성 100년사]‘도깨비 집’ 운현궁 양관에서 시작된 덕성여대
[미리 보는 덕성 100년사]‘도깨비 집’ 운현궁 양관에서 시작된 덕성여대
  • 은정태 덕성 100년사 편찬위원회 전임연구원
  • 승인 2018.04.03 15: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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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즘 덕성여대 종로캠퍼스에 많은 관광객이 드나들며 사진 촬영을 하곤 한다. 모두 드라마 <도깨비> 때문이다. 939세의 불멸의 도깨비 ‘김신’이 저승사자와 동거하는 곳. 도깨비는 여주인공 ‘은탁’이 위험에 처할 때마다 그를 ‘세상에서 가장 안전한’ 도깨비 집으로 부른다. 드라마에서 도깨비 집으로 등장했던 이곳은 바로 사적 257호인 운현궁 양관이다. 덕성여대는 바로 이 운현궁 양관에서 시작했다.


  운현궁 양관의 건축
  운현궁은 조선 26대 국왕 고종의 탄생지이자 흥선대원군이 개혁의 웅지를 품고 조선에 마지막 숨결을 불어넣으려 했던 곳이었다. 흥선대원군의 가계는 남연군 - 흥선대원군 - 이재면(고종의 형) - 이준용(이준) - 이우로 이어지는데, 이들은 대부분 역사책에 나오는 인물이다.

  운현궁 양관은 1912년 전후에 지어졌다. 정확한 기록은 없어 추정뿐이다. 설계자는 일본인 건축가인 가타야마 도우쿠마(片山東熊, 1853~1917)다. 당시 조선총독부는 조선인 유력 인사들에게 작위를 주고, 대한제국 황실 직계는 왕족(王族)으로 그 방계는 공족(公族)이라 부르며 저택을 지어줬다. 건축공사는 이왕직에서 감독했다. 왕공족에게는 서울에 본저(本邸)와 도쿄에 별저(別邸)를 주고 일본에서 교육받도록 했다. 운현궁 양관에는 일본 황실의 상징인 국화(菊花)가 전면 가운데에 있고 꼭대기에는 주인이던 이준 공가(公家)의 상징인 이화(李花)가 국화와 함께 보이는데, 당시 운현궁 주인이었던 이준용의 처지를 보여주는 장식이다. 국화 가문 안에 있는 이화 가문이라 할까.

  운현궁 양관은 당시 유행했던 네오바로크 양식의 건물이다. 이는 대학로 방송대학교에 있는 경성공업전습소, 서울대학교 의과대학에 있는 대한의원본관, 구 서울역사 등과 같은 양식이다. 네오바로크 양식은 그리스 신전 건축의 두드러진 특색으로, 일반적으로 조각을 하고 세 꼭지에 벽돌을 붙여 장식한다. 운현궁 양관은 배흘림기둥, 아치, 석조와 모르타르칠, 피라미드형 지붕과 중앙 돔형 지붕, 샹들리에와 벽난로도 있어 근대 건축사적으로도 중요하다.

  2층 건물인 운현궁 양관은 전체면적 240평이다. 그런데도 운현궁 양관에는 부엌과 화장실이 없다. 이는 접객과 연회의 용도로만 사용됐음을 뜻한다. 지금은 사라진 운현궁의 노락당에서 음식을 조리해 운현궁 양관으로 가져와 연회를 베풀었다. 즉 운현궁과 운현궁 양관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임을 말한다. 이것이 운현궁 양관이라 부르는 이유기도 하다.


  운현궁 양관의 주인들
  운현궁 양관 주인은 여러 차례 바뀌었다. 대원군의 손자인 이준용(1870~1917)이 첫 주인이었다. 그가 운현궁 양관의 망실(望室, 덕성여대 종로캠퍼스 입구의 초소)에 올라 밖을 조망하고 독서를 했다는 기록이 있다. 그를 뒤이은 주인은 그의 아들 이우(1912~1945)였다. 이우는 의친왕 이강의 차남으로 1917년 이준용이 죽자 그의 양자로 입적됐다. 그는 10살 때 일본으로 건너가 생활하고 일본육사를 졸업했다. 이후 박영효의 손녀딸 박찬주와 혼인해 동경 저택에서 생활했고 휴가차 귀국할 때 잠시 운현궁 양관을 이용했다. 이우는 1945년 8월 일본 히로시마 원폭으로 사망한 비운의 주인공이다.

  운현궁 양관은 해방공간의 격변을 함께 겪었다. 당시 서울소재의 여러 양관은 해외에서 활동해온 임시정부 인사들이 귀국에 맞춰 사용할 수 있었다. 이승만에게 돈암장과 이화장, 김구에게 경교장, 김규식에게 삼청장을 지정해주는 식이었다. 이때 운현궁 양관은 임시정부 주석 김구의 정치 기반이었던 한국독립당 중앙당부와 대한독립촉성국민회의 사무실로 사용됐다. 김구는 해방 후 귀국해 암살된 1949년까지 경교장을 숙소로 사용했고, 그가 이끄는 단체들이 운현궁 양관에서 활동했다.


 

1947년 5월 Johnny Florea가 찍은 운현궁 양관 사진이다. 건물에 '대한독립촉성국민회'(우) '한국독립당중앙당부'(좌) 현판이 걸려 있다.<출처/ 다음 블로그>

  “서울의 기온이 갑자기 영하 20도로 강하하는 혹한이 12월 10일 하오 4시 사양이 비치는 운현궁 내의 독립촉성국민회 위원장실에서 열린 국민회중앙간부회의에 임석한 김구선생…
<출처/동아일보(1946.12.12)>

  “지난 1일 전국국민대표자대회에서 ‘대한 임정을 봉대하는 동시에 국민의회로 하여금 대한임정을 확대강화하라’는 건의문을 받은 국민의회에서는 3일 하오 1시부터 시내 운현궁 독촉국민회 회의실에서 긴급 대의원대회를 비공개로 소집하고 대한 임정 확대강화에 대하야 신중히 토의한 결과 우선 대한 임시정부 주석에 이승만 박사, 부주석에 김구씨를 추대하는 동시에…”
<출처/동아일보(1947.3.5)>


  운현궁 양관에는 이들 유력단체만이 아니라 우익청년단체인 대동청년단, 국민대학기성회, 출판사인 한보사, 농사개량원 등의 조직이 자리하기도 했다.



  해방과 전쟁의 소용돌이에 휩쓸린 덕성여대
  1948년 정부 수립 직후 당시 경제적으로 어려움에 처해 있던 때 운현궁은 운현궁 양관을 매물로 내놨다. 이에 덕성학원이 1948년 11월 30일에 이를 매입했다. 당시로서는 거금인 3천 6백만 원을 들여 2천 3백여 평의 대지와 2층 건물인 운현궁 양관을 손에 쥐었다. 이후 운현궁 양관을 새로 수리하고 정원을 꾸미는데도 적지 않은 돈을 썼다.

운현궁 양관이 드라마 <도깨비>에서 도깨비 집으로 나왔던 장면이다. <캡처/네이버 TV캐스트>

  그러나 대지와 건물 매입이 곧바로 대학 설립으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정부 수립 후 친일파 청산을 위한 반민족 행위 특별 조사 위원회(이하 반민특위)가 설치됐고, 반민특위가 해체되는 시점인 1949년 8월에 덕성학원의 송금선 전 교장이 반민특위에 출두했다. 친일행위자의 공소시효 종료와 반민특위의 해체가 이승만 정권에 의해 귀결되지 않았다면, 그녀의 미래와 덕성학원의 미래는 달랐을지도 모른다. 물론 이에 대한 기록은 덕성학원사와 각종 회고록에는 보이지 않는다. 이 시기에 관해서는 단지 운현궁 양관 매입 과정과 국회의 왕실 소유 토지 여부 논란이 언급됐을 뿐이다.

  친일파 청산이라는 파고를 간신히 모면한 가운데 덕성학원은 1950년 5월 17일 교육부로부터 2년제 덕성여자초급대학의 인가를 받았다. 기왕의 덕성학원사에는 이날 47명의 학생이 참석해 개교식을 했다고 하는데, 초기 국문학과 교수로 있었던 오준영의 기록은 이와 다르다. 그에 따르면, 인가를 받고 서둘러 교수진을 구성하고 칠판 등 강의시설을 갖춘 것이 5월 26일이라 했다. 이미 한국전쟁이 발발해 북한 인민군이 서울에 진입하는 상황에서 개교식은 할 수 없었다는 것이다.

  개교식을 제대로 하지도 못한 상태에서 덕성여대의 운명은 전쟁의 소용돌이에 그대로 휩쓸려 들어갔다. 덕성여대는 1951년 피난지 부산 용두동에 터를 잡고서야 비로소 수업을 개시했다. 학생 수는 20명 내외였고 대부분 덕성여고 출신이었다. 전란 중인 1952년 3월에 덕성여대는 4년제 대학으로 승인받고, 4월부터는 운현궁 본교에 분교를 설치할 수 있었다. 그러나 당시 운현궁 양관은 미군 첩보부대(K.L.O) 사령관실로 사용돼 이를 이용할 수 없었다. 이에 덕성여대 종로캠퍼스의 정문 가까이에 있던 행랑채에 4개 강의실을 두고 수업을 진행했다. 이는 야간초급대학이었다. 당시 국문학 전공과 영문학 전공, 가정과에 가정학 전공과 기예학 전공을 각각 설치했다. 1953년 봄부터는 2부 대학이 설치·운영됐고, 1955년에야 비로소 운현궁 양관을 미군으로부터 이양받았다.


  종로캠퍼스에서 꿈꾸는 덕성의 미래
  이후 덕성여대는 약학관, 가정관 등의 건물을 신축했고 주변 가옥을 매입해 공간을 확장했다. 이런 과정에서 학과가 증설됐고 학생 수가 증가했다. 1972년부터 쌍문동 종합대학계획이 구상됐고, 1984년까지 덕성여대는 쌍문동 캠퍼스로 이전했다. 이에 덕성여대 종로캠퍼스는 2부 대학과 덕성여대 부설 평생교육원이 자리하게 됐다. 야간대학과 평생교육원은 배움에서 소외된 여성들을 교육시키며 실업교육으로 여성해방을 꿈꾸려 했던 덕성학원의 모태인 근화학교의 교육 정신을 온전히 계승했다. 이를 토대로 덕성여대 종로캠퍼스는 학생들과 시민들을 대상으로 교육프로그램을 마련하고 있다.

  덕성학원은 안국동에 있는 덕성여중·고, 운니동에 있는 운현유치원과 운현초등학교, 그리고 쌍문동에 있는 덕성여대로 이뤄져 있다. 운현궁 양관은 덕성여대의 산실이었고, 덕성학원의 중추이자 상징공간이다. 현재 운현궁 양관에는 덕성학원재단 사무국과 덕성 100년사 편찬위원회가 자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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