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학물질에 대한 불안감, 케미포비아
화학물질에 대한 불안감, 케미포비아
  • 이수연 기자
  • 승인 2018.04.12 14:5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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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젠 뭘 먹고 뭘 써야 할까?
  아침에 일어난 기자는 서둘러 학교에 갈 준비를 했다. 우선 칫솔에 치약을 묻힌 뒤 이를 닦고 샴푸로 머리를 감은 후 린스로 머리를 다시 헹궈냈다. 그리고 온 몸에 로션을 바른 뒤 각종 화장품으로 화장을 하고 옷을 입고 학교에 갔다. 학교에 간 기자는 수업을 듣다가 쏟아지는 졸음에 맞서기 위해 플라스틱 용기에 담긴 아메리카노를 사 먹었고, 쉬는 시간에 잠시 눈을 붙이기 위해 책상에 얼굴을 기댔다. 수업을 다 마치고 집에 돌아온 기자는 클렌징폼으로 세수했고, 더러워진 옷을 빨기 위해 세제를 넣고 세탁기를 돌렸다. 이렇듯 평범한 일상에서 나도 모르는 새에 많은 생활화학제품을 사용하고 있고 이를 접할 수밖에 없다. 즉, 우리는 이미 화학에 익숙해져 있고 우리 주위에서 화학은 당연하다.


  화학의 양면성
  화학은 우리가 편리한 삶을 누릴 수 있게 해주고 우리에게 화학은 필수불가결하다. 그러나 화학이 우리를 위협하기 시작했고 우리는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물품을 불신하기 시작했다. ‘가습기 살균제 사건’이 이의 대표적인 예다. 2011년 4월, 폐손상으로 여러 사람이 잇따라 사망했는데 그 원인이 가습기 살균제로 추정되면서 보건복지부와 질병관리본부는 이에 대한 역학조사를 실시했다. 그해 8월, 4월에 사망한 사람들의 폐손상 원인이 가습기 살균제로 추정된다는 결과를 발표했다. 그리고 2012년 2월, 동물실험 결과를 발표하며 가습기 살균제에 사용된 PHMG(폴리헥사메틸렌구아디닌)와 인산염, PGH(염화에톡시에틸구아디닌)의 독성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이후 정부가 두 차례에 걸쳐 진행한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 조사에 따르면 피해자는 총 377명이다. 그러나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와 가족모임’에 따르면 지난해 9월 10일을 기준으로 가습기 살균제로 인한 사망자 수는 1,239명에 달한다.

▲ 2016년 4월 25일 오전 11시, 광화문광장에서 환경운동연합이 가습기살균제 제조 기업들의 처벌을 촉구하며, 최악의 가해기업 옥시에 대해 불매를 선언하는 모습이다. 출처/시민정치마당

  다른 예로 여성의 필수 용품인 생리대도 인체에 유해한 영향을 끼친다는 결과가 나와 여성들을 두려움에 떨게 했다. 지난해 10월, 여성환경연대는 강원대학교 생활환경연구실 김만구 교수 연구팀에게 국내에서 유통 중인 생리대 10종의 유해물질을 조사해달라고 의뢰했다. 그 결과, 국내에서 생산되는 10개의 생리대 제품에서 발암물질인 휘발 성유기화합물(VOCs)을 포함해 유해물질 22종이 검출됐다.

  이 외에도 각종 생활화학제품이 인체에 유해한 영향을 끼친다는 결과가 나오면서 사람들 사이에 케미포비아*가 확산됐다.

  어떤 게 나쁜 거야?
  일각에서 이러한 사태의 원인으로 화학물질의 유해성을 판단하는 기준이 모호한 점을 꼽는다. 무등일보의 김종석 논설실장(이하 김 논설실장)은 “새로운 화학물질이 생겨나는 속도를 유해성 검증 시스템이 따라가지 못한다”며 “특정 화학물질을 어떻게, 얼마나 사용해야 인체에 무해한지 알 수 있는 명확한 규정이 없다”고 말했다. 또한 우리대 학 식품영양학과 김경희 교수는 “우리나라에서는 화학물질에 대한 허용 기준이 미국, 캐나다 등 다른 나라에 비해 느슨한 편이다”고 말했다.

  같은 맥락으로 생활화학제품이 인체에 유해하다는 결론을 내는 과정도 불분명하다. 인간에게 유해한 생리대로 알려진 ‘릴리안’ 생리대의 4개 제품은 식품의약품안전처(이하 식약처)가 지난해 4월부터 5월까지 실시한 ‘품질관리 기준 검사’에서 ‘적합’ 판정을 받았다. 품질관리 기준 검사에는 형광증백제, 산·알칼리, 색소, 포름알데히드 여부 등 9개 항목만 포함돼 있고, 문제가 된 휘발성유기화합물은 아예 검사 항목에서 배제돼 있어 이 생리대에 ‘부적합’ 판정을 내릴 수 없었던 것이다. 머니투데이방송에서 서강대학교 화학과 이덕환 교수(이하 이 교수)는 “식약처는 품질관리 기준 검사 과정을 개선해서 공개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또한 지난해 8월, 생리대의 유해성이 드러난 후 식약처는 휘발성유기화합물이 인체에 미치는 유해성만을 조사해 생리대가 ‘안전하다’고 발표했 다. 지난해 10월, 문재인 정부 첫 국정감사에서 류영진 식약처장은 “생리대에서 휘발성유기화합물이 검출된 것이 문제가 돼 그걸 먼저 조사했다” 며 “현 단계로서는 안전하다고 판단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논란이 된 휘발성유기화합물이 포함된 생리대가 여성의 자궁·난소 질환을 일으킬 가능성은 조사하지 않고, 인체에 미치는 유해성만 조사해 안전하다고 발표한 것은 적절치 않았다는 목소리가 나왔다. 서울대학교 보건대학원 최경호 교수는 “생리대에 대한 유해성 조사 외에 광범위한 노출평가와 잘 설계된 역학조사가 필요하다”며 “제품을 사용한 수많은 여성들이 문제를 호소한 만큼 분명히 원인이 있을 텐데 유해성 조사에만 집중하면 원인을 찾지 못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안전관리 체계 마련이 시급
  하지만 유해성을 판단하는 기준이 모호한 점보다 생활화학제품에 대한 상시적인 안전관리 체계가 마련돼 있지 않은 상황이 문제라는 목소리도 있다. 안종주 사회안전소통센터장(이하 안 센터장)은 “식약처가 각종 생활화학제품에 대한 기준을 설정하고, 안전관리를 한다”며 “이 품목 가운데 선진국에 비해 느슨한 기준이 적용되는 품목이 있 어 문제지만, 이 기준을 지키는 과정을 관리하지 못하는 것이 더 문제다”고 말했다. 중앙일보에서 신용승 한국환경정책평가연구원 역시 “관리가 필요한 화학물질과 생활화학제품이 제대로 관리되지 못하고 있다”며 안전관리 체계의 허술함을 지적했다. 또한 화학안전원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생활화학제품에 담긴 화학물질은 1만 8770종인데 이 가운데 유해성 여부가 파악된 물질은 15%에 불과하다. 즉, 나머지 85%는 인체에 얼마나 해로운 지 전혀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케미포비아로 이어진 안일한 대처
  화학물질과 생활화학물질에 대한 안전관리 체계의 허술함이 드러났음에도 정부는 안일하게 대처했다. 안 센터장은 “우리나라의 경우 화학물질과 관련한 각종 사태로 엄청난 피해가 발생해 소비자들이 충격을 받았다”며 “그러나 조치가 더뎌 케미포비아가 더욱 확산됐다”고 말했다. 실제로 2011년 8월, 가습기 살균제로 폐손상을 입은 사람들이 잇따라 사망했을 때 보건복지부와 질병관리본부는 폐손상의 원인이 가습기 살균제로 추정되나 확실한 인과관계가 입증되지 않았다며 해당 제품을 바로 수거하지 않다가 그해 11월이 돼서야 제품을 수거했다. 그 후 가습기 살균제의 유해성이 명백해졌음에도 가습기 살균제를 제조한 기업에 대해 제재가 이뤄지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피해자에 대한 구제 대책이 마련되지 않았다. 게다가 정부 차원의 피해자 조사는 2013년에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 구제를 위한 결의안’이 국회에서 본회의를 통과하고 나서야 시작됐다.

  천차만별인 유해성의 정도
  한편 생활화학제품에 쓰이는 화학물질은 개별 화학물질만이 아니라 합성화학물질로도 이뤄졌다. 안 센터장은 “생활화학제품에는 수많은 합성화학물질과 중금속 등 유해성분이 들어간다”고 말 했다. 전문가들은 개별화학물질이 유해하지 않다고 입증됐을지라도 이를 이용한 합성화학물질이 인체에 유해할 수 있다고 말한다. 이 교수는 “독성 은 특정 개별화학물질의 고유한 특성이 아니다” 며 “이를 이용해 제품을 어떻게 제조하느냐에 따라 독성의 생성 여부가 달라진다”고 말했다. 이어 “제품에 특정 개별화학물질이 포함돼 있다고 해서 무조건 이를 피해야 하는 건 아니다”고 덧붙였다. 마찬가지로 생활화학제품을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 결과가 달라질 수 있다. 안 센터장은 “플라스틱을 부드럽게 만들기 위해 가소제로 프탈레이트라는 물질을 사용하는데 뜨거운 물이나 기름이 플라스틱에 닿으면 이 화학물질이 쉽게 녹아나온다”고 말했다. 이어 “평상시 플라스틱을 주의해서 사용하면 별 문제가 없지만 잘못된 방법으로 플라스틱을 사용하면 인체에 악영향을 끼칠 수 있다”고 말했다.

  최근 한 생활용품 회사에서 만든 스프레이 탈취제에서 가습기 살균제에 쓰였던 PHMG가 검출돼 환경부가 이를 회수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이에 tbs 라디오 <색다른 시선, 김종배입니다>에서 강양구 코리아메디케어 부사장은 “논란이 된 탈취제에서 검출된 PHMG는 인체에 큰 문제가 없다” 며 “가습기 살균제와 달리 문제가 되지 않는 이유 는 그 분자의 크기가 다르기 때문이다”고 말했다. 이어 “가습기에서는 PHMG가 작게 쪼개져 호흡 기관을 통해 폐 안 쪽에 깊이 박힐 수 있다”며 “같은 물질이라도 어느 상황에서 어떻게, 얼마나 노출되느냐에 따라 유해성의 정도가 다르다”고 덧붙였다.

  단지 걱정 없이 살기 위해
  이러한 난맥상을 극복하고 케미포비아를 해소할 대안은 없을까? 경북대학교 이덕희 교수는 “개별·합성화학물질로 인해 발생하는 문제를 예방하고 관리하는 건 당연히 정부와 기업의 몫이다”고 말했다. 또한 안 센터장은 “유해성이 있는 생활화학제품이 유통되는 것을 근절하기 위해서는 유해한 화학물질을 다루는 기업을 우선적으로 관리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화학물질은 어떤 경로로 인체에 흡수되느냐에 따라 독성이 완전히 달라지기 때문에 흡수 경로별 유해성에 대한 연구를 강화하고, 정기적으로 생활화학제품을 점검해 문제가 적발되면 그 기업을 시장에서 퇴출시켜야 한다”고 덧붙였다. 또한 김 논설실장은 “유해 화학물질이 검출된 기업에게 피해액보다 많은 과징금을 물리는 ‘징벌적손해배상제’나 유해성 여부를 소비자가 아닌 기업이 입증하도록 하는 ‘미국식 집단소송제’를 도입해야 한다”고 말했다.

  제대로 일을 하는 정부와 이윤만 추구하지 않는 정직한 기업이 함께 존재해야 비로소 우리는 걱정 없이 살 수 있을 것이다. 

  *케미포비아 : 화학물질에 대한 공포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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