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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태일, 차미리사…그리고 그대 근화의 딸에게
2018년 04월 17일 (화) 18:28:09 박우철 아동가족학과 교수 _
  4월이다. 4.3과 4.16, 4.19의 눈물이 굽이쳐 흐르고, 저 멀리서 5.18과 6.10의 울 부짖음이 거센 파도로 일렁이는, 유난히 아름다운, 그리고 아름다워서 슬픈 강산의 봄이다.

  벚꽃이 만발한 아름다운 봄날 캠퍼스에 선다. 저 위로 삼각산이 보인다. 내게 삼각산은 전태일을 떠올리게 한다. 전태일은 동대문 평화시장의 재단사로 일하며 어린 여공들의 노동인권을 위해 자신의 몸을 불살랐다. 전태일이 죽은 후 노동쟁의가 열 배로 증가하며 한국에 노동운동이 탄생했다. 전태일은 삼각산 할렐루야 기도원 공사장에서 죽음을 결심했다. “나는 돌아가야 한다. 불쌍한 내 형제의 곁으로... 나를 버리고, 나를 죽이고 가마.” 조정래 작가가 그의 소설 ‘한강’에서 적듯 삼각산 바위의 굳건함으로 그는 자신을 버렸다. 그는 숨이 멎는 순간에도 자신의 길을 이어가 달라고 어머니인 이소선 여사에게 당부했다. 이소선 여사는 노동운동의 전설 청계피복노조의 결성을 주도했고 수차례 투옥되는 삶을 살았다. 이소선 여사는 생애 많은 시간을 쌍문동과 창동에 살아 ‘창동 어머니’로 불리기도 했던 우리 이웃이었다.

  눈을 거둬 민주동산을 바라본다. 차미리사 선생의 동상이 보인다. 아직도 교수 임용 면접을 보러와 차미리사관에서 차미리사 선생의 말씀을 처음 접하던 순간이 생생하다. “살되, 네 생명을 살아라. 생각하되, 네 생각으로 하여라. 알되, 네가 깨달아 알아라.” 그것은 여전히 거룩한 가르침으로 내 안에 살아 있다. 우리대학은 차미리사 선생이 눈물로 세웠다. 그녀는 고된 유학 생활에서 돌아와 청각장애의 어려움도 갖고 있는 상황에서, 그 더운 날 전국 방방곡곡을 유랑하며 이 땅의 여성을 살려야 한다고 외쳤다. 그 외침에 백성은 쌈짓돈을 내놓았고, 그 삼천리강산의 쌈짓돈이 모여 우리대학이 세워졌다. 자립정신을 갖고 스스로 서되 민중을 지배하기보다 섬겨야 한다는 그녀의 철학, 스스로 강해지지만 그 강해짐의 끝은 섬김으로 이어져야 한다는 철학, 그것이 우리대학의 근간을 이룬다.

  눈을 남으로 돌려 수유동을 바라본다. 10여 분이면 닿는 ‘늦봄’ 문익환 목사의 집 인 <통일의 집> 정원에 따스한 봄 햇살이 내린다. 그는 구약성서의 권위자이자 한신대학교의 교수로 존경받고 안락한 노후를 살 수 있었음에도 전태일과 장준하의 죽음이 자신을 사회로 부르고 있다며 운명을 외면치 않고 서슬 퍼런 시절 박정희 정부에 맞섰다. 이에 그는 안락한 교수 연구실 대신 안기부의 고문실에서, 차디찬 감옥에서, 민중의 거리에서 자신의 삶을 바쳤다. 지금도 그 통일의 집을 바라볼 때면, 영화 <1987>에 나오듯 그가 이한열 열사 장례식에서 “전태일 열사여, 박종철 열사여, 이한 열 열사여!”하며 열사들의 이름을 부르짖던 그 소리가 생생하다. 그는 1970, 80년대 엄혹한 시절, 민중의 참 벗이었다.

  이제 북쪽 쌍문동 언덕배기를 바라본다. 거기에는 함석헌 선생이 생을 마감했던 <함 석헌 기념관>이 있다. 함석헌 선생은 오산 학교의 선생으로 수많은 독립운동가를 길 러냈고 일제와 군사독재에 끊임없이 맞섰 던 민족의 등불이셨다. 그는 간디를 존경해 비폭력의 정신을 갖고 칼보다는 평화로 싸웠다. 함석현 선생은 <뜻으로 본 한 국역사>를 저술하며 한국역사에 배어 있는 신의 뜻은 ‘고난’이라고 말했다. 그를 통해 우리는 고난받은 아픈 민족이지만 상처받았기에 누군가의 눈물을 닦아줄 수 있는 민족임을 깨달았다. 그는 우리가 경제성장보다 다른 민족의 상처를 싸매주는 치유와 평화의 나라가 돼야 함을 일깨워줬다.

  이제 캠퍼스를 찬찬히 걷는다. 어느새 곁으로 전태일 열사, 이소선 여사, 차미리사 선생, 문익환 선생, 함석헌 선생이 함께 걷고 계신다. 이들은 모두 공동체를 위해 한껏 울었던 자만이 가질 수 있는 따스한 미소를 머금고 계신다. 모두 민주동산에서 쉬며 캠퍼스를 거니는 근화의 딸들을 바라 본다. 모두 “덕성은 그대를 품으리니, 그대는 세상을 품으라”는 문구를 보고 흐뭇한 미소를 지으신다. 이분들은 모두 세상에서 높아질 수 있었지만 그 자리를 마다하고 낮은 자리에서 세상을 섬겼다. 누가 그랬던가. 바다는 가장 낮은 곳에 있기 때문에 온 세상을 품는다고. 덕성의 땅은 서울의 변두리가 아닌, 이 민중의 큰 스승들을 사방에서 만날 수 있는 거룩한 땅이다. 이 땅 에서 근화의 딸들은 세상 흐름에 일희일비 하지 않고 온 세상을 품고 섬기는 유장한 바다의 물결을 만들어 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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