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예술계 열정페이
문화예술계 열정페이
  • 정예은 기자
  • 승인 2018.05.28 1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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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비정상의 정상화를 요구한다

  청년에게 노동을 요구하면서 그에 따른 보수를 제대로 지급하지 않는 ‘열정페이’가 우리사회에 만연한 문제가 됐다. 열정페이 문제는 수익성을 내기 어려운 업종에서 빈번하게 발생한다. 그러나 강도 높은 노동을 요구하면서 최저시급 미만의 보수를 지급하거나 아예 보수를 지급하지 않는 열정페이 문제는 노동 윤리와 맞지 않아 연일 논란이 되고 있다. 특히 문화예술계는 열정페이 문제와 열악한 수익 구조가 수면 위로 자주 떠오르는 대표적 분야다. 이에 기사에서는 문화예술계에서 일어나는 열정페이 문제에 대해 알아봤다.

 

  사회에 만연한 열정페이
  청년은 운다

  열정페이는 ‘열정’과 ‘Pay’의 합성어로, 피고용자에게 노동을 요구하되 정당한 임금을 지불하지 않는 것을 의미한다. 이 용어는 청년의 열정을 명분으로 청년을 착취하는 사회 구조에 대한 냉소를 담고 있다. 열정페이라는 용어는 지난 2015년 1월 7일, 청년유니온과 패션노조가 이상봉 패션 디자이너에게 ‘2014 청년착취대상’을 수여한 것이 화제가 돼 대중적 인지도를 얻었다. 당시 이상봉 디 자이너의 사무실은 야근수당을 포함해 견습에게 10만 원, 인턴에게 30만 원, 정직원에게 110만 원의 임금을 지급했다. 이후 이상봉 디자이너는 자신의 SNS에 “저로 인해 상처 받았을 패션업계의 젊은 청년과 저를 사랑하는 많은 분께 진심으로 사과 드린다”며 “전문가와 함께 패션업계 현장의 문제점을 개선할 해결책을 고민해 보겠다”고 밝혔다.

 

  헐값에 청춘을 팔았다
  그때는 당연한 줄 알았다

  사회초년생으로서 직장에 갓 진입한 청년 예술인은 사회 경험을 쌓는다는 미명 하에 종종 노동력을 착취당한다. 웹디자이너 정승지(30. 여) 씨 (이하 정 씨)도 무급 인턴으로 일한 경험이 있다. 정 씨는 “처음 경험했던 인턴십이 무급 인턴십이었다”며 “당시 일했던 회사는 인턴이 ‘사회 경험’을 쌓기 때문에 인턴에게 임금을 따로 지불할 필요가 없다는 입장이었다”고 말했다. 또한 “회사는 점심도 제공하지 않고 추가 야근을 요구했다”며 “디자이너 인턴으로 채용됐는데 회사가 내게 고객을 담당하는 역할을 수행하라고 요구하기도 했다”고 했다. 이어 “ ‘지금까지 다른 인턴들도 동일한 업무를 수행했다’는 말을 듣고 무급 인턴으로서 회사가 강요하는 업무를 거절하기 어려웠다”며 “그 회사는 지금까지 다녔던 회사 중 가장 최악이었다”고 덧붙였다.

 

  주린 배를 부여잡고 묻는다
  누가 ‘예술은 배고픔에서 나온다’고 말했나

  열정페이 문제는 수익을 내기 어렵거나 피고용자를 착취하기 수월한 구조에서 빈번하게 발생한다. 열정페이 문제가 자주 불거지는 문화예술계에서 예술인의 열악한 수익 구조 문제가 두드러지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이에 대해 시인 A 씨는 “문학 계간지를 발간하는 대다수의 문학 출판사는 책을 출판하는 작가나 독자에 의해 수익이 난다”며 “그러나 작가들의 수입이 적은 편이다 보니 자비로 책을 출판하는 경우가 많지 않고 출판사는 수입을 기대할 수 없어 대부분의 문학 출판사가 영세하다”고 말했다. 이어 “작가도 영세 출판사에게 원고료를 기대하지 않는다”며 “원고료 대신 해당 원고가 실린 책을 여러 권 받는 실정이고, 원고료를 받아도 보통 3~5만 원에 불과하다”고 했다. 또한 “작가들도 문학 계간지를 거의 구독하지 않아 문학 출판사도 수익을 내기 어려워 경제적 악순환이 이어진다”고 말했다.

  이어 A 씨는 “작품을 내도 얻는 원고료가 없어 생계를 위해 학원 강사, 호텔 식당, 아파트 분양 등 삶의 현장에 뛰어들었다”며 “예술에 열중하고 싶지만 정기적 수입이 없어 불가피하게 다른 직업을 가질 수밖에 없는 것이 대다수 예술인의 현주소다”고 말했다. 이어 “글을 쓰고 싶은데 일하느라 시를 쓸 시간이 없고 현실도 따라주지 않아 예술인으로서 자괴감을 느낀다”고 했다.

  예술인의 처우를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이전부터 꾸준히 있었지만 많은 예술인이 처한 현실은 달라지지 않았다. 이에 지난해 2월 28일, 구로아트밸리 예술극장에서 진행된 <2017 제14회 한국대중음악상> 시상식에서 최우수 포크 노래상을 수상한 가수 이랑은 무대에서 트로피를 즉석으로 판매하는 퍼포먼스를 진행하기도 했다. 그는 수상 소감을 밝히며 “지난달 전체 수입이 42만 원이었다”며 “이번 달은 고맙게도 수입이 96만 원이다”고 말했다. 이어 “상금이 있으면 좋겠지만 상금이 없어 대신 트로피를 판매하려 한다”며 “월세가 50만 원이니 트로피를 경매에 부쳐 50만 원부터 판매하겠다”고 했다. 이랑의 트로피는 그의 음반을 제작한 ‘소모임 음반’ 김경모 대표에게 50만 원에 낙찰됐다. 이랑의 퍼포먼스는 저작권자에게 적은 수익이 돌아가는 음원의 유통 구조를 비판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에 대해 한국대중음악상 김창남 선정위원장은 “이랑의 퍼포먼스는 재미있고 유쾌했다”며 “그의 행동은 아티스트의 현실 풍자적 퍼포먼스였고 시상식의 명예를 훼손하지 않았다”고 전했다.

<출처 / 다음 웹툰 마늘오리무중>


  어떤 논리가
  젊은 예술가의 착취를 정당화하나

  문화예술계에서 열정페이 문제가 빈번하게 일어나는 이유 중 하나로 강력하게 거론되는 것은 문화예술계에 도제식 교육이 많다는 것이다. 도제식 교육이란 스승과 제자가 함께 노동하며 스승이 제자에게 가르치는 방식을 일컫는다. 그러나 도제식 교육이라는 미명 아래 교육을 빙자해 저임금 노동을 일방적으로 요구하는 경우도 많다. 근무 환경이 열악하고 임금이 적더라도 스승에게 교육을 받을 수 있는 기회는 적정한 임금보다 낫다는 논지다. 이와 관련해 한국노동사회연구소 김종진 연구위원은 “문화예술계는 선후배가 함께 일하며 가르치고 배우는 도제 문화가 잘 형성돼 있는 직종이다”며 “그렇다 보니 비정규직으로 고용되거나 임금이 낮아도 울며 겨자 먹기로 일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프리랜서의 비율이 높은 문화예술계 특성상 예술인이 부당한 수익 구조에 항의하기 어렵다는 지적도 있다. 2015년에 대통령 직속 청년위원회가 ‘청년 열정페이’ 실태 조사를 실시한 결과, 전체 응답자 5,128명 중 53.6%가 ‘열정페이를 경험했다’고 답했다. 열정페이를 경험한 응답자가 고용됐던 형태에 대해 중복 답변한 결과, ‘창업·프리랜서’가 34%에 달했다. 그리고 문화체육관광부의 ‘2015년 예술인 실태조사’에 따르면 조사에 답한 예술인 중 72.5%가 프리랜서였고, 정규직 형태로 고용된 예술인은 6.4%에 그쳤다. 이에 정 씨는 “문화예술계에서 저임금 문제가 자주 거론되는 것은 계약 형태와 관련이 있다고 생각한다”며 “일반 기업에서는 피고용자들을 일거에 고용하지만 문화예술계에서는 프리랜서 개인이 기업과 계약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이어 “개인이 집단인 기업을 상대해야 하는데 기업이 임금을 지불하는 입장이라 힘의 불균형은 더욱 극대화되고, 개인의 입장에서 이에 항의하는 건 말처럼 쉽지 않다”며 “이 같은 계약 형태의 차이가 문화예술계의 저임금 문제를 가속화하는 데 영향을 끼친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출처 / 문화체육관광부>


  삶과 예술이 함께 하는
  내일을 그린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 소속의 류하경 변호사는 매일노동뉴스에서 교육과 실습을 빙자해 이뤄지는 열정페이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제도적 변화를 추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고용노동부가 ‘청년 과도기 노동*’의 정의를 명확하게 규정해야 한다”며 “그러면 규정된 정의에 맞게 현장에서 교육과 실습이 제대로 이뤄지도록 선도하거나, 이에 맞지 않는 실질적 노동 착취를 적발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또한 “교육을 목적으로 시행되는 청년 노동이 교육의 성격을 갖고 있지 않은 단순 노동에 불과한 경우가 많다”며 “산학협력과 현장 실습의 경우 이를 허용할 업종과 허용하지 않을 업종을 정하고, 실습을 진행할 때 정부의 인가를 얻도록 제도를 개선해야 위법한 노동 착취를 원천적으로 차단할 수 있다”고 했다.

  일각에서는 문화예술계에 만연한 예술인 착취에 대해 예술인이 목소리 높여 항의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2014년 11월 27일, 서울 시민청에서 열린 <노동하는 예술가, 예술환경의 조건> 심포지엄에서 ‘왜 예술가는 가난해야 할까’의 저자 한스 애빙 교수는 “예술인이 빈곤하지 않기 위해 예술인 스스로의 인식을 변화시켜야 한다”고 촉구하며 “예술인은 저임금이나 무료로 예술 활동을 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정 씨 역시 “예술인이 부당한 처우에 직접 맞서야 한다”며 “예술인 노조를 활성화시켜 저임금 문제에 맞서 싸워야만 예술인 착취 행태가 줄어들 것이다”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A 씨는 예술인을 위한 정부의 지원이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정부가 예술인을 지원한다고 해도 유명 작가나 유명 출판사가 아니면 지원받지 못한다”며 “정부지원기금도 수혜 받는 인원이 적을 뿐만 아니라 인지도가 어느 정도 있는 사람이 주로 받는다”고 말했다. 이어 “예술인의 빈곤 문제는 문화예술계에서 오래된 고질적 문제다”며 “정부와 기업이 예술을 받쳐줘야 예술이 활성화되고 발전할 것이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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