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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리 보는 덕성 100년사]새 천년 들어 덕성 구성원이 뿌리 찾기 운동을 시작한 까닭은?
2018년 05월 28일 (월) 12:51:19 한상권(덕성 100년사 편찬위원장) -

  덕성학원 설립자가 누구입니까
  필자의 해직을 계기로 촉발된 덕성학원 민주화운동이 한창인 1999년 11월 3일, 국정감사에서 박원국 전 이사장을 증인으로 출석시킨 가운데 덕성학원 설립자에 관한 질의가 있었다.

- 설훈 위원 : 박원국 전 이사장님께 묻겠습니다. 덕성학원 설립자가 누구입니까?
- 증인 박원국 : 설립자라는 뜻이 애매한데요. 내가 그래서 이상규 변호사한테 조금 아까도 물어 보았습니다. 설립자가 뭐냐 하니까, 내 입지가 뭐냐, ‘설립자의 장손’이다, 이것입니다.
- 설훈 위원 : 설립자의 장손이라고 그랬어요? 알겠습니다. 교육부 자료에 따르면 차미리사 여사가 설립자로 되어 있습니다. 맞습니까?
- 증인 박원국 : 그렇지요. 맨 먼저 운영권을 어머니에게 주었습니다.
- 설훈 위원 : 차미리사 여사하고 송 씨 집안하고는 어떤 관계지요? 모친이 차 여사하고는 어떤 관계입니까?
- 증인 박원국 : 혈연관계는 없습니다.
<출처/1999.11.03 국정감사 자료>


  평소 당당하게 자신을 학교의 주인, 즉 ‘교주(校主)’라고 일컫던 박원국 전 이사장이 국정감사장에서 ‘차미리사 여사가 설립자’라고 갑자기 태도를 바꾼 이유가 무엇일까? 그 해답은 교육부가 국회에 제출한 ‘국정감사 자료’에 있었다.



  덕성학원 설립자는 차미리사
  국정감사 자료에 따르면 덕성학원 설립자는 차미리사(車美理士, 1879∼1955) 선생이다. 덕성학원의 전신인 근화실
업학원은 1934년에 설립됐으며, 설립 당시 임원은 이사장 차미리사 선생을 비롯해 윤치호, 독고선, 이인, 장병량 5인이었다. 설립자이며 초대 이사장인 차미리사 선생은 1952년에 건강 문제로 사임하고, 2대 이사장으로 박원국의 외조부이며 송금선(宋今璇, 1905∼1987)의 부친인 송우영이 취임했다. 2대 이사장 송우영과 설립자 차미리사 선생의 특수 관계 여부에 대해 국정감사 자료에는 ‘없음’이라고 명기돼 있다. 덕성학원 3대 이사장은 박원국의 부친이며 송금선의 남편인 박준섭, 4대 이사장은 박원국의 모친인 송금선이었다. 박원국은 1977년에 5대 이사장으로 취임한 이후, 1997년에 해임될 때까지 20년 동안 그 자리를 지켰다.

  덕성학원은 차미리사 선생과 아무 관계가 없는 송우영을 통해 박원국의 외가로 전수됐으므로, 박원국 전 이사장 역시 설립자 차미리사와 아무 관계가 없다. 설사 박원국 전 이사장이 설립자 차미리사 선생과 특수 관계가 있다고 할지라도 사립학교는 사회에 헌납한 공익재산이므로 개인 소유물처럼 소유권을 주장할 수 없는 노릇이다.



  새 천년에 열린 덕성학원 뿌리 찾기 대토론회
  설립자와 아무 관계 없는 박 씨 일가가 덕성학원을 세습하는 것이 법리적으로 근거가 없다는 사실이 밝혀지자, 그동안 학내 구성원에게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라’며 윽박지르던 구재단이 당황했다. 이번에는 ‘사학의 관리권’을 내세우며 족벌세습을 정당화했다. 차미리사 선생 서거 이후 지난 반세기 동안 우리가 덕성학원을 관리해왔으니 세습 또한 정당하다는 주장이다. 이에 교육시민사회단체가 나서서 박 씨 일가의 뿌리인 송금선의 친일 행적을 적시하고는, ‘박 씨 일가는 친일·비리·족벌 재단에 불과하다’며 직격탄을 날렸다.

  이에 총동창회가 반발했다. 총동창회는 “박준섭 박사와 송금선 박사는 많은 역경과 고난을 극복하면서 덕성학원을 발전시켜 왔으며, 덕성여자대학교를 설립해 평생 여성 교육에 헌신해 왔음을 우리들은 덕성학원의 80년, 덕성여대의 50년 동안 지켜봐왔다”고 말했다. 이어 “80년간 한국 여성 교육에 헌신적으로 이바지해 온 덕성학원과 덕성여대의 역사를 왜곡하고 명예를 훼손한 것에 대해 왜곡된 자료의 출처를 밝히고 해명하라”고 요구했다. 총동창회의 반격에 민주동문회(회장 조송미, 약학과 87학번)가 맞섰다. 민주동문회는 “송금선 씨는 대표적인 친일파였다”는 공식 답변서를 민족문제연구소로부터 받았다며, 진실규명을 위한 공개토론회를 제안했다. 그 결과 2000년 6월 8일, 민주동문회 주최로 <덕성학원 건학 80주년 기념, 뿌리 찾기 대토론회>가 대강의동에서 열렸다. 2000년 열린 <덕성학원의 역사를 찾기 위한 대토론회>를 계기로 덕성 구성원들 사이에서 그동안 잊혀진 인물인 차미리사 선생에 대한 복권작업이 시작됐다. 그 결과 2002년에 차미리사 선생은 독립유공자로 추서됐다.

   

덕성학원 뿌리 찾기 대토론회 플래카드다.
<제공 / 한상권 덕성 100년사 편찬위원장>

  오래된 약속, 차미리사 평전 집필
  이날 토론회에 박 씨 일가를 옹호하던 총동창회는 참석하지 않았다. 토론회에서 필자는 “덕성학원 설립자 차미리사 선생은 식민지 조국의 독립과 여성들의 권익 신장을 위해 평생을 헌신한 민족 지도자요, 여성 교육의 선구자였다”고 밝혔다. 그 후 “차미리사 선생은 조국의 자주독립을 쟁취하는 수단인 여성 교육의 소중함을 자각한 선구자이고, 그의 노력은 교육기관 설립으로 나타났으며 그 구체적인 결실이 덕성학원이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오늘 발표 내용은 잠정적 초고에 불과하기 때문에, 이후 사료 수집과 발굴 작업을 통해 더 정밀히 수정하고 보완하겠다”고 약속했다.

  토론회에서의 다짐은 8년 만에 결실을 맺어, 2008년 ‘차미리사 평전-일제강점기 여성해방운동의 선구자’로 출간됐다. 원래는 차미리사 선생 서거 50주기가 되는 2005년에 평전을 간행하려 했으나, 여러 사정으로 인해 예정보다 많이 늦어졌다. 필자는 머리말에서 평전을 집필하게 된 동기가 ‘기억 투쟁’에 있음을 밝혔다.

새 천년이 시작되는 2000년, 덕성여대에서는 ‘기억을 둘러싼 투쟁’이 벌어지고 있었다. 지금까지 일방적으로 강요된 하나의 기억-덕성여대의 설립자이자 민족·여성 교육의 선구자라는 송금선에 대한 기억-을 거부하고, 덕성학원의 뿌리를 다시 찾아 새로운 기억을 만들려는 싸움이었다. 그것은 망각의 저편으로 영원히 사라질 수도 있었던 또 하나의 기억-교육운동가이며 독립운동가인 덕성학원 설립자 차미리사에 대한 기억-을 역사의 이편으로 되살리려는 노력이었다.
<출처/한상권 ‘차미리사 평전-일제강점기 여성해방운동의 선구자’ 중에서>



  송금선이 차미리사 전기 집필을 의뢰한 까닭은
  차미리사 선생의 전기를 집필한 것은 필자가 처음이 아니다. 이미 반세기 전에 차미리사 전기가 출간됐다. 일제 강점기에 조선일보 기자로 활약했던 최은희(崔恩喜, 1904∼1984)가 저술한 <씨 뿌리는 여인-차미리사의 생애>가 그것이다. 차미리사 선생의 타계 2년 뒤인 1957년에 출간된 이 책은 차미리사 선생을 해주에서 직접 만난 인연이 있는 최은희가 쓴 전기로, 차미리사 선생을 이해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된다. 그러나 이 책은 두 가지 문제점이 있다. 하나는 사실 오류다. 사실 확인 결과, 차미리사 선생의 미국 유학 시점과 학교 이름, 재학 기간, 졸업 여부, 귀국 시점 등이 사실과 다르다. 문제는 ‘가짜 뉴스’가 버젓이 통용되고 있다는 점이다. 현재 우리대학 홈페이지 덕성약사에는 “차미리사 선생은 미국에서 도산 안창호(島山 安昌浩) 선생과 함께 독립운동에 헌신하였으며 1917년 귀국하여”라고 쓰여 있다. 이는 최은희의 전기에의거한 내용으로 보이는데, 전혀 사실이 아니다. 이에 필자는 올초부터 공개질의서를 보내는 등 여러 차례 수정 요구를 했다. 그러나 학교 당국은 반년이 다 돼가는 지금까지 여전히 묵묵부답이다.

  더 큰 문제는 집필 동기가 석연치 않다는 점이다. 최은희는 당시 덕성여자중·고등학교 교장이며 덕성여대 학장인 송금선의 부탁을 받고 이 책을 집필했다. 그래서인지 이 책은 송금선의 친일 행적에 대한 언급이 전혀 없다. 기자 출신인 저자가 당시 여성계를 대표하는 송금선의 반민족 행위를 몰랐을 리 없다. 송금선이 최은희에게 차미리사 선생의 전기 집필을 의뢰한 까닭은 자신의 치부를 은폐하고 싶기 때문이었다. 송금선은 이 책 서언에서 “나는 이 숭고한 정신과 빛나는 전통을 오붓하게 계승한 사람”이라고 했다. 자신이 차미리사 선생의 승계자라는 역사적 사실을 널리 알리기 위해 차미리사 선생의 전기 출판을 결심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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