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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속, 장신구가 된 여인들
마음 편히 볼 수 없었던 영화 속 여성의 처지
2017년 08월 28일 (월) 17:57:54 나재연 기자 njen530207@duksung.ac.kr

  영화를 평가할 때 연기, 스토리, 연출 등과 함께 여성 캐릭터의 활용은 중요한 평가지표에 속한다. 영화 평론가부터 관객들까지 모두가 영화에서 여성 캐릭터를 어떻게 활용했는지 주시하고 있다. 하지만 여성 캐릭터의 활용에 대한 꾸준한 비판의 목소리에도 영화는 계속 남성 중심으로 제작되고 있고, 영화 속 여성들은 아직도 주인공의 장신구에 불과해 우리를 불편하게 한다.


  입장을 바꿔보고야 떠오른 문제점
  <고스트버스터즈>(1984)의 리부트 작품인 <고스트버스터즈>(2016)는 개봉 전부터 많은 관심을 받았다. 기존의 남자주인공을 모두 여성으로 바꿔 제작했기 때문이다. 그중 여성에서 남성으로 바뀐 비서 ‘케빈’이 특히 주목을 받았다. 여기서 비서 역인 케빈은 영화에서 금발의 훤칠한 미남이지만 전화도 제대로 받지 못하는 멍청한 인물로 묘사된다. 이른바 ‘덤 블론드(Dumb Blonde,금발 백치)’라고 불리는 캐릭터다. 이에 관객들은 “캐릭터의 멍청함이 남성에 대한 비하로 느껴지기까지 했다”며 케빈 역에 대한 부정적 평을 쏟아냈다.
 

   
▲ <고스트버스터즈>(2016)의 포스터이다.

  하지만 케빈의 멍청함은 영화에서 주로 남자주인공의 보조역인 여성 캐릭터에게 주어졌던 특징을 남성에게 적용한 것이었다. 기존에 여성 캐릭터에게 적용될 때는 특성이라 여겼던 것을 남성에게 적용하자 모욕으로 느껴진다는 반응은 많은 논란을 낳았다. 영화 속 여성 캐릭터들이 받아왔던 모욕과 한계가 성별을 전환해 본 후에야 드러난 것이다. 하지만 영화 속 여성 캐릭터가 지녀왔던 문제점은 덤 블론드 말고도 다양하다.
 

   
▲ 비서 케빈의 영화 속 한 장면이다.


  시도 때도 없이 감상 당하는 몸매
  영화를 보다보면 심심찮게 여성의 몸이 부각되는 장면을 발견할 수 있다. 갑자기 의미 없는 노출 장면을 보여주거나, 노출이 심하지 않아도 일부분의 노출을 클로즈업해 몸매를 부각시키는 장면들이 그 예다. 이는 대부분의 영화에서 삭제해도 문제가 없을 만큼 영화 내용과 관련이 적은 장면이지만, 노출 장면이 영화 내용과 관련이 있다 해도 관객들은 노출의 의도가 성적 대상화인지 아닌지 확연하게 느낄 수 있다. 노출 장면을 연출하는 카메라워크에 따라 느낌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원더우먼>(2017)은 개봉 전 주인공인 원더우먼이 입는 의상의 노출이 심하다는 지적을 받았으나 영화를 보고 나온 관객들의 반응은 달랐다. 노출이 심한 의상을 입고 있는 원더우먼의 몸매를 클로즈업하거나 노출된 부위를 훑는 장면이 없었기 때문이다. 영화 평론가 ‘듀나’는 원더우먼의 노출에 대해 “영화는 이런 캐릭터를 보여주면서 그 선정성을 과장하지 않는다”며 “익숙한 옷을 입은 원더우먼은 끊임없이 달리고 점프하고 탱크를 박살내고 총알을 막고 올가미를 던지고 적군을 두들겨 패며, 카메라는 육체 자체보다 그 육체를 통한 액션에 집중한다”고 평했다. 몸매가 아닌 상황에 초점을 맞춘 연출로 노출에 대한 반감이 줄어든 것이다.

  반례로 <미이라>(2017)의 ‘제니’는 평범한 긴 옷을 입은 차림새를 갖췄지만, 팔을 들어 올려 복부를 보이게 한 후 이를 클로즈업하는 장면이 나온다. 이렇듯 성적 대상화는 노출이 아닌 이것을 다루는 연출로 결정된다. 노출 장면으로 논란이 불거진 영화에서는 여성 캐릭터를 눈요깃거리로 여겨 캐릭터만의 특징이나 성격을 나타내기보다 캐릭터의 몸을 보이기에 급급했다. 이것이 연출에 반영돼 여성 캐릭터들은 연출 의도에 맞춰 ‘몸매가 좋던 여자’로만 관객들의 기억 속에 남는다.
 

   
   
▲ 원더우먼(위)에 비해 제니(아래)는 노출이 적은 옷 차림새를 하고 있지만, 연출의 차이로 관객들은 원더우먼보다 제니에게 더욱 불쾌감을 느꼈다.

  한국여성민우회 미디어운동본부의 정슬아 활동가(이하 정 활동가)는 의미 없는 노출 장면에 대해 “노출 장면이 영화가 흥행하는 데 도움을 준다고 생각해 전개에 필요 없다 해도 여성 캐릭터와 배우들을 이용해 노출 장면을 연출한다”며 “결국 영화 제작자들의 인식이 부족한 것이 문제다”라고 지적했다.


  나의 존재 이유는 바로 너
  “도와줘요, ○○맨!”이란 말을 처음 들어본 사람은 아마 얼마 없을 것이다. 이처럼 우리는 위험에 처한 여자주인공의 비명을 듣고 남자주인공이 달려와 그녀를 구해주는 모습을 어렵지 않게 상상할 수 있다. 문제는 이런 전개에서 여자주인공은 주인공에게 구해지기 위해 악당에게 잡혀있는 역할을 맡는 데 그친다는 것이다. 주인공에게 구해지기 위해 여성 캐릭터들은 주인공을 만나기 전엔 수동적인 모습을 보이고, 구출된 후에는 주인공에게 고마워하며 주인공과의 관계에 집중한다. 이 때문에 여성 캐릭터에게 별다른 특징이나 성격을 부여할 필요가 없다. 결국 여성 캐릭터에게는 그만의 서사가 생기지 않는다.

   
▲ 영화 추천 애플리케이션 ‘왓챠’에서 찾아볼 수 있는 <미이라>(2017)에 대한 평들이다.


  앞서 말한 <미이라>(2017)의 제니는 주인공인 ‘닉’에게 구해지고, 닉에게 호감을 가지게 된다. 영화 추천 애플리케이션 ‘왓챠’의 <미이라>(2017)에 대한 한 평에서는 “제니의 대사는 ‘닉!’과 ‘닉, 도와줘요!’ 밖에 기억나지 않고 제니에게서 엘리트 학자로서의 면모를 도저히 찾아볼 수가 없었다”며 제니의 수동적 면을 비판했다. 영화에서 제니는 학자라 소개되지만, 닉을 만나고 닉을 악당에게 안내하는 역할을 한 후부터 더 이상 학자로서의 특징이 나오지 않는다. 결국 제니는 닉을 사랑하는 연인으로만 남았다. 제니처럼 주인공을 사랑하는 연인인 여성 캐릭터에게는 특별한 정체성이 없다. 오히려 ‘주인공의 연인’이 캐릭터의 정체성이 됐기 때문에 캐릭터가 완전히 주인공을 위한 장신구로 전락한다.


  얘는 그래서 왜 나온 거야?
  <신비한 동물사전>(2016)을 관람한 여희수(21. 여) 씨(이하 여 씨)는 “영화를 보고 난 후 기억에 남을만한 활약을 한 여성 캐릭터가 아예 없었다”며 실망스러운 마음을 전했다. 이어 “영화의 여자주인공인 ‘티나’는 영화를 상영하는 내내 나오지만 결정적 역할을 한 적이 없다”며 “모든 사건을 해결하는 것은 남자주인공인 ‘뉴트’의 몫이었다”고 말했다. 이어 여 씨는 “티나가 영화에 등장하지 않아도 영화가 진행되는 데 아무런 문제가 없었을 것이다”고 지적했다. 많은 영화 속에서 여성 캐릭터들은 미미한 영향력을 가지곤 한다. 당연히 그들만의 서사도 없다. 여성 캐릭터는 자신이 어떤 존재인지 관객에게 알릴 기회를 잃는다. 관객에게 희미한 존재감을 가진 여성 캐릭터는 잊히고 영화는 자연스레 남성 중심으로 돌아가게 되는 것이다.

   
▲ <신비한 동물사전>(2016)의 여자주인공 티나의 모습이다.


  변하기 어렵다 해도 관심을 잃지 말아야
  정 활동가는 “과거에 비해 많은 사람들이 문제의식을 갖고 이에 대한 목소리를 내고 있지만 영화계가 쉽게 변하기는 힘들다”고 말했다. 이어 “여성 캐릭터에는 결국 사회가 여성을 바라보는 시선이 반영된다”며 “여성 캐릭터가 가진 한계를 극복하지 못하는 건 특정한 영화 제작자의 문제라기보다 이를 묵인하는 사회의 전반적인 문제로 봐야 한다”고 전했다. 또 정 활동가는 “영화를 제작할 때 권력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여성 캐릭터에 대한 논란에 둔감하기 때문에 새로운 시도를 할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는다”며 현실적인 한계를 지적했다. 이어 “기회가 있어 새로운 시도를 한다고 해도 영화가 제작돼 나오기까지 험난한 과정을 겪어야 하고, 이것이 바로 성공적인 결과를 가져오기도 힘든 일이다”고 전했다. 정 활동가는 “성별의 문제라고만 볼 수는 없지만 현재 영화계에 남성이 과도하게 높은 비율을 차지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라며 “현실적 어려움을 개선하기 위해 영화계에 더 많은 여성들이 진입할 수 있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정 활동가는 무엇보다 개개인이 문제의식을 갖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말한다. 또한 “오늘날 문제를 제기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그 파급력이 커지고 있다”며 “사람들이 공개적으로 목소리를 내서 그 목소리가 영화를 제작하는 영역에 있는 사람에게까지 닿을 수 있게 힘을 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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