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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들의 잃어버린 양심을 묻는다
2018년 09월 10일 (월) 14:56:25 정예은 기자 ye31301995@duksung.ac.kr

  “정치적인 세력 등의 부당한 영향력이 침투할 틈이 조금이라도 허용되는 순간 어렵사리 이루어낸 사법부 독립은 무너지고 민주주의는 후퇴하고 말 것입니다.” 지난해 9월 22일,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퇴임식에서 말한 퇴임사의 일부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는 임기 말에 사법행정권을 남용했다는 의혹을 받고 ‘사법부 블랙리스트’ 의혹에 대한 추가 조사를 거부한 채 퇴임했다.

  지난 2016년, 고(故) 김영한 전 청와대 민정수석의 업무 수첩을 토대로 청와대와 대법원이 요주의 법관들에게 불이익을 줬다는 정황이 드러나면서 법원 내부에서 사법부를 개혁하려는 노력이 진행됐다. 이에 법원 내 학회인 국제인권법연구회(이하 연구회)는 대법원장 중심의 사법부 관료화 문제를 비판하며 사법부를 개혁하기위해 ‘국제적 관점에서 본 사법독립과 법관인사제도에 관한 법관 설문조사’를 시행했으며, 전체 판사의 6분의 1이 해당 설문조사에 응답했다.

  그러자 대법원은 해당 설문조사 결과의 영향력을 축소하기 위한 물밑 작업에 착수했다. 연구회 소속 이탄희 판사에게 연구회의 활동을 축소시키라고 지시한 것이다. 그러나 이탄희 판사는 판사들을 뒷조사한 파일이 있다고 들었다고 밝히며 사법부 블랙리스트 의혹의 불씨를 키웠다.

  이후 구성된 진상조사위원회는 법원행정처가 사법행정권을 일부 남용했다고 밝혔지만 사법부 블랙리스트 의혹은 확인되지 않았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추가 조사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이어지면서 김명수 대법원장은 지난해 11월, 추가 조사를 결정했다. 이에 추가조사위원회는 지난 1월 22일, 양승태 전 대법원장 시절 법원 행정처가 특정 판사들의 동향을 파악해 관리한 문건이 대량 발견됐다고 밝혔다. 이어 지난 2월 12일,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 관련 특별조사단’(이하 조사단)이 구성돼 지난 5월 25일, 조사단은 양승태 전 대법원장 시절 법원행정처가 상고법원의 입법을 추진하기 위해 청와대와 재판 거래를 했다는 의혹이 담긴 두 개의 문건을 공개했다.

  조사단이 공개한 내용에 따르면 문건에는 19건의 재판이 ‘박근혜 전 대통령과의 협력 사례’로 적시돼 있었다. 해당 19건의 재판 중에는 대법원이 원심을 번복하고 사건을 파기환송했던 KTX 승무원 해고 사건, 신의성실의 원칙을 들어 사측
의 편을 들어준 기아자동차 통상임금 사건 등이 포함됐다. 또한 전교조의 법외노조 판결 사건에서는 상고법원 입법을 위해 고용노동부의 재항고를 인용해야 한다는 취지의 문건이 재판을 진행하기 전부터 작성됐던 것으로 밝혀졌다. 공정하게 재판을 진행해야 하는 사법부가 정치권력과 합세해 독립성을 훼손한 것이다.

  그러나 사법부는 해당 의혹을 부인하며 검찰이 요청한 압수수색 영장도 잇따라 기각하고 있다. 게다가 지난 4일,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상고법원의 입법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비자금을 조성해 고위 법관들에게 격려금 등으로 지급한 사실이 밝혀지면서 사법부에 대한 불신이 걷잡을 수 없이 쌓이고 있다.

  대한민국 헌법 103조는 “법관은 헌법과 법률에 의하여 그 양심에 따라 독립해 심판한다”고 명시한다. 그러나 사(司)법부는 이미 독립성을 잃고 사사로운 이해관계에 휘둘리는 사(私)법부로 전락하고 말았다. 사법부는 타인의 죄를 심판하기에 앞서 자기 자신들로부터 도난당한 법관으로서의 양심을 되찾아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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