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의 책.
내 인생의 책.
  • 오지영 (인터넷 정보? >
  • 승인 2004.08.28 1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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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생의 한가운데 '전혜린' 이 있다.

 등학교 시절, 선생님께서 전혜린의 ‘이 모든 괴로움을 또다시’ 라는 책을 들고 오셨다. 우리반 학우들은 이 책을 돌려보기 시작했다. 내가 처음 전혜린을 만났을 때는 그 책을 쥐고 있던 학우가 나에게 책을 건넬 때 까지의 설레인 기다림에서부터 시작되었다. 그러다가 방학이 되었고, 그 책은 나의 마음 속에서 잊혀져갔다.

 다시 대학에 들어와서 전혜린의 두 번째 에세이인 ‘그리고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를 우연히 접하게 되었을 때, 그때 그시절 생각과 함께 도서관에서 허름하고 누렇게 바랜 ‘이 모든 괴로움을 또 다시’ 를 찾았다.

 전혜린은 김광석의 노래 ‘서른즈음에’ 에 나오는 노랫말처럼 그녀의 나이 서른즈음에 점점 더 그녀의 생에서 멀어져 갔다. 바닷가의 여름 태양이 너무 눈부시기 때문에 사람을 죽였다던 카뮈의 소설 ‘이방인’의 주인공 뫼르소처럼 전혜린은 태양이 눈부시는 생의 어느날 격정적 삶에 대한 현기증과 함께 독일 슈바빙을 그리워하며, 한 시대의 이방인처럼 떠났을지도 모를 일이다. 모든 평범하고 사소하고 게으르고 목적없고 무기력하고 비굴한 것을 그녀는 증오했다. 그렇게 격정적으로 치열하게 살기를 바랬던 그녀는 31살의 나이에 생의 한가운데에서 그녀의 생의 불꽃은 꺼져버렸다. 자신이 열정에서 냉정으로 바뀌어가는 그저그런 평범한 소시민이 되어간다고 생각했던 것일까? 인간의 실존에 대한 끊없는 고뇌와 자신의 삶에 대한 끊없는 자극이 그녀를 허무감과 함께 을씨년스러운 새벽녘으로 내몰았을지도 모른다.

 우리는 인간의 실존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있는가? 청년실업이 하늘을 치솟는 이 시대에 우리는 실존이 아닌 생존에 대한 치열함으로 자신을 들어내고 있지 않은가?

 현실에 안주하게되는 나의 나태함과 하루 하루를 노력없이 그저 행복하고픈 나의 요행을 부끄럽게 만든다.   그녀의 고독과 담담한 열정을 씁쓸하게 가슴시려했던 나의 오만을 부끄럽게 만든다.

 독일 유학시절 평범과 피상이 아닌 절대를 추구했던 전혜린은 기계문명속에서 아직도 낭만과 꿈과 자유의 여지가 있는 대학근처동네 슈바빙을 좋아했다. 그 곳에서 그녀의 생의 여지를 찾고 싶어했을지도 모른다.

 한없이 슬프고 아름다운 영혼은 자신의 언어를 폐쇄시켰다. 그리고 우리에게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그녀가 번역한 루이제 린저의 소설 제목 ‘생의 한가운데’ 처럼 우리가 생의 한가운데에서 성장하기를 바라고 있을 뿐이다. 생을 사랑하기를 바라고 있을 뿐이다. 기차가 굴 속에 들어가서 잠시 보이지 않는다고 가지 않는 건 아니라며, 잠시 굴 속에 들어가있는 절망한 우리들에게 담담하게 열정을 심어주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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